나는, 장애와 비장애의 경계에 아슬아슬 걸쳐 있는
한 아이의 엄마다. 주변 환경에 따라, 또 병의 진행 상황에
따라 장애인이 될 수도, 비장애인이 될 수도 있는 아이. 아이와
함께 태어난 KT증후군(Klippel-Trenaunay
Syndrome)은 어떤 환자들에게는 극심한 통증을, 어떤 환자들에게는 때이른 죽음을, 또 어떤 환자들에게는 위험천만한 절단술을 선사한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휠체어와 의족에 의지해 살아가야 하는 지체 장애인이 되기도 하고, 또 어떤 이들은 눈에 보이지
않고 어떤 약으로도 잡히지 않는 극심한 통증과 외로운 싸움을 하며 지독한 하루하루를 견뎌낸다. 그리고
또 많은 이들은 그저 팔다리 생김이 남들과 다르다는 이유로 비공식 장애인으로 살아간다. 내 아이도 마찬가지다. 지난 겨울 첫 번째 수술을 한 뒤 조금 나아졌지만, 그래도 아이의
오른 다리와 오른 발은 보통의 다리, 보통의 발과는 확연하게 다르다.
발등 높이가 낮아지긴 했어도 여전히 기성 운동화는 신을 수 없기 때문에 수술 후에도 짝짝이 신발을 신어야 하는 건 마찬가지고, 그래서 더 쉽게 눈에 띈다. 지금보다 조금 더 커서 진짜 '사회'에 발 딛는 순간, 이
아이는 또래 집단에서, 학교, 연애, 취업 등의 모든 사회적 무대에서 비공식 장애인이 될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지금은 괜찮지만, 통증이 시작되는 순간, 우리는 어쩌면 아이를
공식 장애인으로 만들어버릴 지 모를 어려운 결정을 내려야 할지도 모른다.
<지난 겨울 수술 후,
아이는 한동안 다리에 붕대를 감은 자신의 모습을 그림 속에 표현해냈다.>
생명에 지장이 없으니, 이 다리를 가지고도 살아갈 만하다 생각되니
태어났을 것이라는, 어찌보면 참으로 단순하고 때로는 무모해 보이는 나의 믿음. 그것이 아니었더라면 나는 아이가 이만큼 평범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놔두지 못했을거다. 걱정과 불안으로 매일 전전긍긍하며 살 수도 있었을 것을, 나와 남편은
앞서 걱정하거나 불안해하지 않고 그저 아이가 가는 길을 뒤따라 가며 언제나 등 뒤엔 엄마 아빠가 있음을 알게 해 주는 정도로 우리의 마음을 대신했다. 우리의 이런 태도는 아이가 자신의 병을, 그로 인한 남다른
외모를 그대로 받아들이고 존중하도록 하는 데에도 긍정적인 역할을 했다. 아이는 놀이터에서 만나는 처음
보는 아이들에게도 서슴없이 제 발을 꺼내 보여주며 제 나름대로 설명을 하고, 아이들과 스스럼없이 어울린다. 가끔 다른 아이들이 아이와 놀기 꺼려하거나 주저하는 경우가 없진 않지만, 아직까진
그리 어렵게 받아들이지 않고 수월히 넘어가는 것도 그래서일거다.
장애와 질병이 있는 몸을 '최대한 고치는 것'을 목표로 하는 태도를, 학문적으로는 '장애에 대한 의료적 모델'이라고 부른다 한다. 그리고 '물리적 시설이나 사회 제도의 변형을 통해 장애를 해소하는
것'을 '장애의 사회적 모델'이라고 부른다. 단 한번도 들어본 적 없고 배워본 적 없는 용어들인데, 알고 보니 이 '장애의 사회적 모델'이란 게 내 생각, 내 삶 속에 이미 들어와 있는 그것들이었다. 장애를 가진 아이들에게 욕을 가르쳐 다른 아이들이 욕을 하면 나쁜 말인 줄 알아듣고 대응하도록 했다는 많은
사례들을 접하며, 또 KT를 갖고 태어난 아이들의 부모 대부분이
시술과 수술, 치료법, 의사 찾기에만 골몰하는 걸 보며, 나는 내 아이를 거친 말과 행동으로 무장하거나 아이의 몸을 고치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한 일은 사회를 바꾸는
거라고 생각해왔다. 완치법이 없고, 참조할 선례도 많지 않은
희소질환. 그걸 고쳐야 한다고, 고칠 수 있다고 억지부리는
순간, 우리 삶엔 '극복'이라는
불가능하고 억지스러운, 끝내지 못해 끝끝내 괴로워할 과제가 주어지리라는 걸, 우리는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아이의 몸을 억지로 고치려 애쓰면서
아이가 그 주어진 운명을 '극복'하게 만들려고 할 수록, 아이는 자신의 몸을 도리어 부정하고 혐오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걸, 우리는
알고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아이의 커다란 다리, 울퉁불퉁한
발을 쓰다듬으며 두 다리 모두 예쁘다고, 아니, 다리를 굳이
얘기하지 않고도 너는 그냥 있는 그대로 사랑이며 자랑이라고 말해주었다. 그리고 아이의 몸보다는 아이가
살아갈 세상을 바꾸는 일에 마음을 써야겠다고 다짐했다.
비록 그 시작은 내 아이를 위하는 이기적인 마음, 그것에서
출발했을지라도, 내가 도착하고자 하는 지점은 내 아이만을 위한 세상은 아니다. 처음 한국에 있는 KT 환자들을 위한 온라인 공간을 개설하면서 생각했던
대로, 나는 이미 태어난, 또 앞으로 수없이 태어날 다른 '케이티'(KT)들을 위해 변화를 만들어내고 싶다. 정말 우리가 여기서 앞으로 10년 이상 더 살게 된다면, 나는 이곳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서도 조금 더 적극적으로 대응하며 살 수밖에 없고, 그 경험들이 한국 사회를 바꾸어내는 데 어떤 식으로든 보탬이 될 수 있게 할 작정이다. 하지만 이러쿵 저러쿵 말해봐야, 결국 나는 ‘정상 세계의 거주민’. 장애인 당사자가 아닌 이상,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처음부터 커다란 한계를 가질 수 밖에 없다. 게다가
정작 나와 우리 아이는 조금이나마 나은 환경에서 살고 있으면서 기껏해야 외부자로서 한국의 상황에 대해 왈가왈부 하는 것 밖에 안 되니, 한국에서 온몸으로 투쟁하는, 이미 그렇게 살아왔고 지금도 그렇게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염치없는 일이 되진 않을까. 때로는 이런 염려조차 염치없는 일일지 몰라 혼자 고민에
빠지기도 한다.
김원영이 쓴 <나는 차가운
희망보다 뜨거운 욕망이고 싶다>를, 첫 번째 읽을 땐
많이 울었고, 두 번째 읽으면서는 필사 노트에 부분 필사를 해가며 읽었다. 예상치 못한 순간에 눈물이 터져 나오는 때가 많았는데, 그건 그가
담담히 써 내려간 자기 삶의 기록 사이사이에 너무도 황망한, 갑작스럽고 안타까운 좌절과 죽음들이 드리워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의 삶과 생각을 따라 읽으며 나는 아주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어린 시절의 누군가를 떠올렸고, 그로 인해 많이 부끄러웠다. 고백하건대, "장애가 개인의 운명적인 비극이
아니라 사회적인 문제라는 사실, 그래서 (장애인은) 누구의 동정이나 구휼에 의지해 살아가야 할 존재가 아니라 이 땅에서 인간으로서 기본적인 권리를 누릴 자격이
있다는 사실"(129)을, 나는 여기 와서 살면서야 깨달았다. 한국에선 장애인을 일상 공간에서
만날 기회가 거의 없었던 게 사실이고, 가끔 있다 해도 내가 살고 있는 세계와 완전히 분리되고 격리된
세계의, '구경 당하는' 존재로서의 장애인만을 만났다. 그런데 여기선 전동 휠체어를 타는 사람들이 나와 같은 버스를 타고 같은 마트에 장을 보러 다닌다. 바로 어제만 해도, 아이와 하원길에 오른 버스 안에서 우리는 두
사람의 전동휠체어 이용자를 만났다. 그 두 사람을 차례로 버스에 태워 안전장치를 채우느라 대기 시간이
길어졌지만, 안전장치를 채우느라 분주한 버스기사도, 함께
대기하는 승객들도 누구 하나 소리내어 불평하지 않았다.
그 뿐이 아니다. 거리와 학교에서는 그보다 더 다양한 사람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백반증이 있는 흑인 여성이 대학엘 다니고, 안면
기형이 있는 사람이 대학 내 직원으로 일하고, 소아마비로 다리를 저는 키 작은 여성이 패스트푸드 매장에서
계산을 하고, 자폐스펙트럼에 속하는 아이들이 동네 초등학교엘 다니며,
다운 증후군을 갖고 태어난 아이들이 동네 축제며 동물원에 가족들과 함께 구경을 나온다. 혼잣말을
중얼거리거나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르며 동네 산책을 하는 정신장애인들이 오다가다 내게 가벼운 인사를 건네는 경우도 흔하다. 그러다보니 이 곳 사람들은 어릴 때부터 "다양한 신체를
가진 존재들이 이 땅에 아주 많이 살고 있다는 사실을 자연스레 경험"할 수 있다(156). 아이가 보육기관에서 갖고 노는 장난감 중엔 휠체어와 목발을 이용하는 사람들을 표현해 낸 인형들도 여럿
있다. 아이들은 휠체어에 아기 인형을 태워 밀고 다니며 의사 놀이를 하고, 우리 아이의 남다른 다리 모양에도 크게 신경쓰지 않고 스스럼없이 어울려 논다.
이런 환경에 놓이면, 나 아니라 어느 누구라도 깨달을 수밖에 없다. 세상엔 정말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모습으로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그래서 어릴 적부터 다양한 존재들과 섞여 드는 경험이 정말 중요하다. 그것이 없이는 두 세계가 서로를 만나고 이해하는 일은 불가능에 가깝다.
<위, 아래 모두 현재 아이가 다니는 보육기관의 교실에 구비되어 있는 장난감들>
그런데 우리는 어떤가? 두 세계가 완전히 분리되어 한쪽에는 특목고, 자사고 등의 특수 엘리트 교육을 위해 미친 경쟁을 벌이는 아이들이 있고, 다른 한쪽에는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초등 교육도 다 받지 못한 채 시설을 전전하거나, 완전히 분리되어 전혀 다른 의미의 특수교육을 받거나, 집에만 틀어박혀 사는 아이들이 있다. 가장 최근에도 서울 강서구에서는 특수학교 설립을 반대하는 여론으로 온 동네가 몸살을 앓고 있다. 특히 이번 강서구 특수학교 관련 문제는 경제적, 신체적, 정신적으로 취약한 계층에 대해 ‘비정상성’을 강조하면서 오랜 세월 쌓아 온 분리와 배제, 차별과 혐오가 뒤섞여 단단히 공고해 진 우리 사회의 현재 모습을 잘 보여준다. (관련 기사 보기: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809343.html?_ns=t1)
교육이나 주거 문제 뿐이 아니다. 장애인들이 이동권을 쟁취하기 위해 몸을 철로에, 도로에 묶어 드러눕고, 탈시설과 자립, 취업과 경제활동을 할 수 있는 권리를 위해 거리에
나섰다가 수 천만원의 벌금을 물어야 하는 일이 지금 이 순간에도 여전히 일어나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살고자, 존재하고자 온 몸으로 세상에 맞서는 장애인들에게 특정한
규범을, 시선을 들이댄다. ‘잘못된’ 몸을 갖고 태어난 건 ‘잘못’이라는, 그것도 ‘너’의 잘못이라는
죄명을, 나와는 상관 없는 일이라는 무심한 시선을, 그리고
그렇게 태어났으면 얌전히 니들끼리 살라는,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하라는 모욕을 던져댄다. 그런 면에서, 김원영의 책 제목 <나는 차가운 희망보다 뜨거운 욕망이고 싶다>는 저자가 하고 싶은 말을 잘 담아 낸 문장이란 생각이 든다. 사람들의
시선에 쿨한 사람, 욕망도 이기심도 없이 착하고 늘 긍정적이고 씩씩한 슈퍼 장애인, 이 아니라 그 반대이고 싶다는 바람이 이 한 문장에 담겼다. 사람들의
시선에, 모욕에 불같이 반응하는 사람, 배우고 싶은 욕망, 있어 보이고 싶은 욕망, 사랑하고 사랑받고픈 욕망을 모두 가진, 때로 이기적이고 잘난척도 하며 종종 혼란스러워 하고 분노하기도 하는, 그런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다는 바람이.
나는, 커다란 다리와 발을 갖고 태어난 내 아이가 바로 그런 사람이기를 바란다. 남들 눈에 불쌍해 보이거나 대단해 보이는 사람이 아니라, ‘그런 다리를 갖고서도 즐겁게 뛰어 노는 밝은 아이’가 아니라, 그저 똑같이 ‘인간적인’ 사람으로 사람들 속에 섞여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주어진 조건에 순응하고 긍정적이고 씩씩한 사람이 아니라, 불가능한 것을 꿈꾸고, 화 내고 저항하고 욕망하는 그런 사람이기를 바란다. 다르게 태어났으니 더 바라지 않고 그저 살아 있는 것에나 감사하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 다르게 태어난 사람들도 사람답게 살 수 있는, 누구나 인간으로서의 권리와 욕망을 요구하고 표현하며 살 수 있는 세상을 바라며 늘 불평하고 화내고 주장하고 싸우는 사람이기를 바란다. 엄마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일과, 당사자로서 아이가 할 수 있는 일엔 분명 차이가 있겠지만, 나는 내 아이가 뜨겁게 욕망하는 존재로 살아갈 수 있도록 늘 힘을 보태고 지지하는 사람이고 싶다. 그런 나를, 이 책은 다시 한 번 두드려 깨웠다.
그의 글을 읽으며, 마음 한 구석이 뜨끔해지는 경험도, 뒷통수를 한대 맞은 것 같은 경험도 여러 번 했다. 아무리 바른
소리랍시고 입 밖에 내봐야 '정상 세계의 거주민'에 불과한
나의 협소한 경험과 졸렬한 의식에 그야말로 쨍, 하고 제대로 균열을 내 주었다. 분리된 세계 저쪽의, 뜨겁게 욕망하는 한 사람이.
같이 읽어요.
김원영, <나는 차가운 희망보다 뜨거운 욕망이고 싶다>
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6255738
그리고 같이 서명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