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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5월 초, 큰 딸 임신 5개월 이던 무렵.

다슬기를 잡는 엄마와 남편.

농부 일색인 시골마을에서 초등학교 교사 집은 부유하고 특별할 것이란 오해를 사기 쉽다.

하지만 딸린 가족이 많고 물려받은 전답이 없는 우리 집 살림은

매사에 아끼고 절약하는 것이 어려서부터 몸에 밸 만큼 빠듯했다.

옷은 물론 동화책, 참고서, 심지어 내 인생의 첫 브래지어도

서울 사는 이종사촌 언니들이 물려준 것이었다.


반면 엄마는 도시출신이었다.

덕분에 나는 일 년에 두어 번 산으로 둘러싸인 답답한 마을을 벗어날 기회가 있었다.

서울, 대전, 전주.

하얀 바탕에 빨간색 글씨로 행선지가 적힌 직행버스들이 서 있는

읍내의 버스터미널에 도착할 때마다 나는 얼마나 긴장하고 흥분했던가.

흰 바탕에 칙칙한 풀색 줄무늬의 군내버스에서 내려 직행버스로 갈아탈 때는

대단한 자부심마저 느껴지곤 했다.

그때만 해도 도시에 친척이 산다는 건 분명, 특권이었다.


아빤 학교가 끝난 뒤 와야 했으므로 출발할 땐 엄마와 나, 여동생 여자 셋이었다.

일단 내가 먼저 달려가 기사 아저씨 뒤로 두 세 번째 쯤 되는 자리를 잡았고,

짐을 든 엄마와 동생이 뒤따라 들어왔다.

커다란 나일론 가방 한두 개는 좌석 밑으로 쏙, 아예 구두를 벗고 앉은 두 여자아이는

검은 봉지에 담긴 쥐포나 문어다리를 질겅질겅 씹다가 이내 잠이 들었다.

 

도시로 갈 때마다 엄마는 언니들에게서 물려받은 것 중 가장 고급스러운 원피스를 입혔고,

신발도 운동화 대신 빨간 구두를 신겼다.

그래봤자 대책 없이 내리 쬐는 시골 햇살에 얼굴은 붉고 검게 그을린,

누가 봐도 촌스러운 시골 아이들이었지만,

그것은 도시 출신으로서의 품위를 지킴과 동시에

친정 식구들에게 잘 살고 있음을 보여주고픈 여자의 자존심이었으리라.


그런 엄마가 부업으로 선택한 일은 다슬기 잡이였다.

그리고 열두 살 때 동생과 난 처음으로 손목시계란 것을 가졌다.

옷이나 학용품 같은 것 외에 내가 처음으로 향유했던 사치품이었다.

 

몇 시간 동안 강물에 종아리를 담그고 있어도 좋을 만큼 한낮에는 햇볕이 따뜻하고,

마침 어린이 날도 끼어 있는 5월.

정확하지는 않지만 엄마에게 손목시계를 선물받았던 건 이맘 때가 아니었을까 싶다.

 

가난한 살림이었지만 엄마는 기념일을 그냥 지나친 적이 없었다.

 

생일에는 만두를 굽고 초코파이를 쌓아 올려 케이크로 만든 뒤

언젠가 써야지 하고 부엌 찬장 한 편에 챙겨두었을 생일초를 켜 주었고,

소풍 때, 한복차림에 곱게 화장을 하고, 시금치와 맛살이 들어간 김밥을 싸온 엄마를

친구들은 무척 부러워하곤 했다.

크리스마스 때도 양말에 초콜렛이나 학용품 등을 넣어주셨다.

스스로 일찍 철이 들었다고 생각했지만,

덕분에 산타 할아버지가 엄마였다는 것은 초등학교 고학년이 돼서야 알았다.

아직 미혼이라 부모님과 함께 사는 남동생은 지금도 크리스마스 이브에

커다란 양말을 제 방문 앞에 걸어 두고 자고, 엄만 기꺼이 초콜렛과 금일봉을 준비한다.

 

돌이켜 보면 이것들 역시, 도시 출신 여자로서 품위를 지킴과 동시에

자기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 하고 싶은 엄마의 자존심이었으리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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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가족에게 이번 주는 축제의 주간이다.

4월 말은 우리 커플이 처음 사귀던 날 기념일이 있고,

그 뒤로 결혼기념일, 어린이날, 어버이날이 쭉 이어진다.

 

엊그제 광주에서 화순 집으로 돌아오기 전 여러 군데 들렀다.

 

적지만 얼마 안 되는 인세를 탈탈 털어

양가 부모님들께 드릴 카네이션 편지지와 금일봉, 남편을 위한 카드를 준비했다.

장보러 마트에 간 김에 아이가 좋아하는 뽀로로 가방과 선글라스를 샀다.

사실 아이가 아직 어리기도 하고 소유에 대한 개념도 없는 것 같아

굳이 어린이 날을 기념해서 무언가를 준비할 마음은 없었는데,

막상 아이가 좋아하며 목에 걸고 다니는 걸 보니 참 잘했구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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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전, 엄마도 지금 나와 같은 마음이었으리라.

하루 종일 강가를 휘저으며, 끊어질 것 같은 허리를 가끔 펴가면서도

아이들에게 특별한 선물을 해 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기뻤을 것이다.

 

아이를 키울수록 자라는 건 아이가 아니라 내 자신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이에 대한 사랑이 깊어질 수록, 부모님에 대한 마음도 더욱 애틋해진다.

 

그러니 얼마나 다행인가, 내가 부모가 된 것은.

엄마가 되지 않았더라면, 세상의 커다란 보살핌 덕분에

지금의 우리가 있다는 것을 절대 알 수 없었을 테니까.

하루하루, 올바르게 가치있게 살아야 한다 다짐할 일도 없었을 테니까.

 

그래도 집안 일 하는 틈틈이 농사꾼 시어른들의 눈치를 봐가며

며칠 동안 잡고 모은 다슬기를 들고 장에 가, 노련한 장사치들과 흥정해야 했을 여자,

저렴하면서도 예쁜 시계를 고르며 설렜을 한 젊은 여자의 뒷모습을 상상하면

왜 이렇게 마음이 시린지 모르겠다.

 

어쩌면 이번 어버이 날에는 난데 없이 눈물바람이 일지도 모르겠다.

그냥 임신 호르몬 탓으로 돌리고 말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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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숙
2012년 첫째 아이 임신, 출산과 함께 경력단절녀-프리랜서-계약직 워킹맘-전업주부라는 다양한 정체성을 경험 중이다. 남편과 1인 출판사를 꾸리고 서울을 떠나 화순에 거주했던 2년 간 한겨레 베이비트리에 ‘화순댁의 산골마을 육아 일기’를 연재했다. ‘아이가 자란다 어른도 자란다’를 통해 아이와 부모가 함께 성장하는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2017년 겨울, 세 아이 엄마가 된다. 저서로는 <호주와 나 때때로 남편>이 있다.
이메일 : elisabethah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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