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 1.jpg

 

내게도 분명 기름종이 깔고 만화 '캔디캔디'에 나오는 금발의 안소니와 테리우스의 멋진 모습을
베껴 그리던 시절이 있었다.
그 시절 내 마음을 사로잡던 만화속 인물들이 어디 '안소니'와 '테리우스'뿐이랴.
'베르사이유의 장미'에 나오는 '오스칼'은 또 얼마나 멋졌는지... 비록 여자였지만 말이다.
더듬어보면 내 어린날들엔 순정만화들이 있었다. '캔디캔디'를 읽으며 '스테아'가 죽어가던 장면에서
얼마나 울었던가. '유리가면'에 나오던 연극 베틀은 또 얼마나 흥미진진하던지.. '백조'라는 발레
만화를 보며 발레리나를 동경하기도 했었고, '롯데롯데'라는 만화를 보면서는 '승마'를 배우고
싶었었다. '베르사이유의 장미'를 읽으면서 처음으로 '프랑스 혁명'을 접해 보았으니
그 시절 내게 순정만화는 역사와 사랑, 우정과 경쟁, 가족 등등 세상 살아가는데 필요한 모든
지식과 감성의 보물창고였다.

순정만화는 그저 어린 시절에 잠깐 빠져보는 장르라고 생각했는데, 마흔 하고도 셋을 향해가는
나는 요즘 다시 만난 순정만화에 푹 빠져 있다.
새로 사귀게 된 이웃집에 놀러갔다가 그 집에 있던 '캔디캔디'를 빌려 온게 계기였다. 그저
심심풀이로 넘겨볼까... 생각했었는데, 어찌나 재미있던지 살림도 미뤄두고 빠져들고 말았다.
새록 새록 예전에 느꼈던 감정들이 되살아나면서 무엇보다 하나도 변하지 않고 고대로인
캔디며 앤이며 안소니같은 주인공들이 마치 헤어진 친구를 다시 만난 것 처럼 반가왔던 것이다.
여기에 막강 동력자가 생겼으니 열살난 아들이다.

만화라면 장르를 가리지 않고 좋아하는 아들은 내가 읽던 캔디캔디에 금방 열광했다.
캔디를 읽고 나서는 제가 좋아하는 레고 놀이를 할때도 새로운 케릭터 이름을' 안소니 테리우스
아리 스테아'라고 지을 정도로 좋아했다.

 

 만화 2.jpg

탄력을 받은 나는 '베르사이유의 장미'도 들여왔다. 아들은 뮤지컬 '장발장'을 통해 '프랑스 혁명'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던 터 였다. 당연히 오스칼과 페르젠과 마리 앙트와네뜨가 나오는 만화에
빠져 들었다.

그래서 요즘 나는 아들과 함께 순정만화를 읽는 재미에 빠져 산다.

마침 큰 언니가 신일숙 작가의 '아르미안의 네 딸들' 만화 전집을 샀다며 빌려 주었다.
아들은 집에서 2권까지 읽고 학교를 다녀와서 오후 6시부터 10시 반까지 꼼짝도 안하고 10권
완결편까지 읽는 것이었다.

 

  만화 4.jpg

덕분에 열살 아들과 순정만화를 통한 아주 끈끈한 교감을 나누게 되었다.
한때는 아들이 열광하는 '스타워즈'와 '해리포터'에 같이 빠져 주는 일이 귀찮기도 했는데
이번엔 엄마가 좋아하는 세계에 아들이 기꺼이 함께 해 주니 더 없이 신나고 즐겁다.
자주 가는 동네의 작은 까페에도 옛날 만화들이 즐비하게 있는데 아들은 그 까페에서 '유리가면'
을 재미나게 읽고 있는 중이다. 40권이 넘게 나왔는데도 아직도 완결이 안 되었다는 사실에
절망하기도 했지만...

옛날 만화가 주는 커다란 즐거움을 다시 발견한 나는 내친김에 중고 책가게를 뒤져서 그 시절에
내가 열광했던 만화들을 다시 수집해 볼까... 생각중이다. 아들도 이렇게 좋아하는데 두 딸들이
크면 또 새롭게 빠져들 수 있을 것 같다.

아이들과 엄마가 함께 순정만화를 읽고, 재미나게 그 이야기를 하는 일이란 생각만해도 즐겁다.
TV가 없으니 '해품달'이 유행할때도 잘생긴 젊은 왕을 보지 못하고 지냈는데, 대신 만화속의
남자 주인공들을 다시 마음에 품을 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지..

나이들어도 여전히 내 마음속엔 때묻지 않은 말랑말랑한 감성이 살아 있다는 것을 다시 발견했다.
오히려 나이 들수록 이런 감성을 더 자주 꺼내어보고, 더 촉촉하게 유지하는 것이 정신건강에도
몸 건강에도 좋을 것 같다.
막장 드라마나 명품이나 이웃집 소문들이나 인터넷의 가쉽들에 기웃거리는 것 보다 수십배는
더 건강하고 산뜻하니 얼마나 좋은가.

자자... 집안 청소 대충 해 놓고 빨리 '아르미안'으로 떠나야지.

 

   만화 3.jpg

나른하고 변덕심한 봄 날에는 어린 아이들과 부대끼며 순정만화 속에 빠져 있는 것이 최고다.
한동안 몸이 아파 마음도 울적했는데 만화속의 멋진 주인공들이 지친 내 몸과 마음을 기운나게
해 주는구나.
한 때는 테리우스 같은 남자를 꿈 꾸었건만.... 달려라 하니에 나오는 아빠같은 남편을 만났다.
남편에게도 내가 캔디나 오스칼이 아닐테니 상관없지.. ㅋㅋ
그래도 마흔 넘은 아줌마는 여전히 테리와 오스칼이 사랑스럽구나..

반갑다 아그들아...
언니는 잘 살고 있단다..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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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순화
서른 둘에 결혼, 아이를 가지면서 직장 대신 육아를 선택했다. 산업화된 출산 문화가 싫어 첫째인 아들은 조산원에서, 둘째와 셋째 딸은 집에서 낳았다. 돈이 많이 들어서, 육아가 어려워서 아이를 많이 낳을 수 없다는 엄마들의 생각에 열심히 도전 중이다. 집에서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경험이 주는 가치, 병원과 예방접종에 의존하지 않고 건강하게 아이를 키우는 일, 사교육에 의존하기보다는 아이와 더불어 세상을 배워가는 일을 소중하게 여기며 살고 있다. 계간 <공동육아>와 <민들레> 잡지에도 글을 쓰고 있다.
이메일 : don3123@naver.com      
블로그 : http://plug.hani.co.kr/don3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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