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정엄마가 보내준 사진 중.
사촌언니의 분홍색 원피스를 빌려 입고 잔뜩 신이 났다.
“예쁘냐? 기침은 하지만 잘 노니까 걱정하지 마.”
“졸렸나봐. 과자 먹고 잠들었다. 내일 먹을 겨울왕국 음료수랑 송이송이 등 몇 개 사놨다.”
“저녁 내내 기침하다가 이제 일어났어. 그래도 사진 찍는다니까 포즈를 취한다.”
띵동! 몇 분, 몇 시간 단위로 사진과 함께 메시지가 날아온다.
발신자는 내 엄마. 사진 속 아이는 민들레 꽃씨를 불고 있고, 과자 봉지를 안은 채 할머니 침대에서 자고 있다.
내가 왜 내 딸의 근황을 내 엄마에게서 듣고 있느냐 하면 지긋지긋한 감기 때문이다.
화순에서 광주로 이사 온 작년 가을부터 무려 세 번의 계절이 바뀌었건만 우리 집은 그때부터 지금껏 감기의 아귀를 못 벗어나고 있다. 고열, 기관지염, 축농증, 중이염. 알만한 건 다 나왔다.
아이들만이 아니다. 머리가 깨질듯하고 목이 붓고 코가 질질 나오던 연말에 나는 중요한 통계자료를 작성 중이었는데, 나중에 낫고 나서 보니 도대체 뭘 더하고 빼서 이런 결과가 나왔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엉망이어서 팀장님과 선배 팀원에게 사죄의 메일을 보냈다.
좀 더 집중하겠습니다요 죄송합니당, 쿨럭.
최악은 주전선수가 여럿일 때다. 한 명씩 바통을 이어가는 릴레이면 그나마 좀 해볼만 한데, 지금처럼 두 아이가 동시에 뛰어들때는 상황이 복잡해진다.
새벽에 고열이 심해서 응급실을 들락날락 하다가 “되도록이면 (어린이집 말고) 집에서 푹 쉬게 해 주세요”하는 소리를 들으면 어쩔 수가 없는 거다. 둘 중 상태가 좀 더 나쁜 아이를 좀 더 안전한 곳으로 피신 시키는 수밖에.
그렇게 우린 여러 번 이산가족이 되었다.
젤로 만만한(유일한) 대안은 부모님이다.
1순위는 같은 도시 30분 거리에 사는 자영업 워킹맘 시어머니. 자영업이란 게 마음껏 시간을 낼 수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고 하여튼 어중간한데, 나는 주중이든 주말이든 갑작스러운 일이 닥칠 때마다 “어머니, 어머니”하며 그 에매함을 교묘히 활용한다. 두 아이가 처음 어린이집에 들어갈 때 비상연락망 같은 걸 제출했는데 엄마 아빠 다음으로 당연히 시어머니 이름을 적었다.
그래도 이번만은 안 되겠다. 교묘함에도 상도가 있지. 아이들이 슬슬 장기전에 돌입할 시동을 걸었던 지난주 내내 하루걸러 죽을 쑤고, 반찬과 국을 이고 지고 우렁각시처럼 다녀가신 분에게 “아예 우리 애를 당신 집으로 데려다가 사나흘, 아니면 일주일간 좀 봐 주소” 는 도저히 못하겠는 것이다.
다행히 나에겐 이럴 때를 대비한 2차 대안이 있다.
전업맘, 퇴직 교사로 구성된 친정 부모님 세트.
다른 도시에 살지만 지금같이 (어린이집 말고) 집에서 푹 쉬어야 하는 상황에 딱 이다.
“나는 더 이상 연차도 못 내겠고, 정서방은 마침 이번 달까지 끝내야 하는 일이 있어서 힘들고. 병원에서는 푹 쉬는 게 좋겠다고 하는데 어머님도 지난주 내내 왔다 갔다 하셔서 부탁드리기가 영 그렇네. 그래도 엄마 일정이 먼저니까. (괜찮아, 데려와) 정말? 다른 스케줄 없어?”
이런 여우가 있나! 당시 부모님은 일주일 뒤에 23년 간 살던 아파트를 떠나 다른 동네로 이사할 예정이었고, 물론 나도 그걸 잘 알고 있었다.
탁월한 연기력은 진정성을 의심받지 않는다.
“데려와, 어쩔 수 없지. 일이 있어도 봐 줘야지.”
대화가 좀 더 길어지면 덤으로 측은지심까지 따라온다.
“아이고 얼마나 애썼냐(나를 말하는 거다). 한 놈이면 좀 편하겠지. 며칠이라도 좀 쉬어. 그나저나 니 딸 보고 싶어서 어쩔래.”
그렇게 시나리오대로 아이를 엄마에게 안겨주고 돌아오면 후련할 것 같은데, 아이가 없는 온기 없는 집에 들어서는 순간 무언가가 울컥 치밀어 오른다.
관절마다 파스와 보호대를 붙이고 사는, 심지어 며칠 뒤 이사까지 할 예정인 엄마에게 아픈 자식을 맡겨야 하는 나.
엄마 노릇하는 자기 딸이 안쓰러워서 기꺼이 다시 엄마가 되는 늙은 엄마들.
아픈 아이와 늙은 부모를 보며 죄의식을 느껴야 하는 일하는 엄마들.
이렇게 대를 물려가며 이어지는 엄마의 자식사랑에 빨대를 꽂고 피를 빼먹는 흡혈귀 같은 사회.
내 엄마는 내가 이런 울분을 토해낼 때면 "세상 일이 그렇게 마음에 안 들어서 어쩌냐, 너만 머리 아프지. 제발 적당히 생각하며 살어" 하신다. 그 염려의 근원 또한 자식사랑인 줄은 알지만, 엄마, 잘못 알고 계시는 거에요.
아, 난 정말 단순하게 즐겁게 살고 싶은데 세상이 안 도와주는 겁니다.
내가 다시 일을 찾은 지도 어느새 30년이 흘렀다.
여성과 육아에 관련된 일을 하다 보니 모든 연령대의 여성들을 많이도 만나고 다녔다.
여성들의 가장 큰 고민은 언제나 일자리 찾기와 육아 문제였다.
- 박혜란, <다시 아이를 키운다면> 가운데.
3년 만에 다시 사회로 나와 일하는 엄마로 살면서 부닥치는 모든 문제는 육아와 연결돼 있었다.
흔히 말하는 일과 가정의 양립문제다(이 표현은 언제 들어도 입에 안 붙는다).
그나마 현재 근무하는 곳의 직장 어린이집이 있고, 화순을 나올 때 아예 걸어서 회사를 다닐만한 곳으로 이사를 와서 평소에는 어른도, 아이들도 무척 안정적이다.
그리고 이건 정말 운이 좋다고밖에 할 수 없는데 팀 자체가 일하는 엄마에게 우호적인 분위기다.
다섯 명의 팀원 중 싱글 여직원을 제외한 세 명이 워킹 맘이고, 유일한 남자인 팀장님은 우리 회사가 직장어린이집을 설치할 당시 주관부서 책임자였을 만큼 육아에 대한 이해가 깊다.
티타임 때는 자연스럽게 아이들 이야기가 나온다.
퇴근하면 아이와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고 해야지 다짐하지만 막상 아이를 보면 힘이 턱하니 풀려 빨리 재우고 싶은 생각만 든다는 얘기(너도나도 맞아 맞아 하하하하), 주중에 아이를 봐주러 시어머니가 집에 와 계신 덕분에 집이 시댁 모임의 집합소가 되었다는 얘기(어머 어떻해), 대학교 3학년인 팀장님 아들은 국토대장정을 간단다(제 아이들도 그렇게 자랐으면 좋겠네요). 그리고 연차를 내고 친정엄마 집에 두고 온 딸을 데리러 가는 나의 이야기.
어느 날, 싱글 여직원이 정말 궁금하다는 듯 물었다.
“육아가 그렇게 힘든가요?”
아, 그러게 말입니다. 이렇게 예쁘고, 사랑스러운 아이들을 키우는 굉장한 일인데.
왜 다들 그렇게 육아가 어렵다고 난리인 걸까요? 도대체 왜?
나는 그 후배를 비롯하여 순수한 궁금증을 가지고 있을 예비 엄마들을 위해 ‘대충’ 한 번 적어 보았다.
다섯 살, 세 살 두 여자아이를 키우며, 회사에 다니며, 좋은 글을 쓰고 싶은 엄마의 이야기다.
(출산의 고통, 젖몸살, 젖 먹이기 임무가 끝난 뒤 쭈글쭈글 쪼그라든 젖을 보는 고통, 시린 이, 탄력 없는 몸, 이런 이야기는 생략하고)
일단 잠을 못 잔다.
임신했을 땐 몸이 무거워서, 신생아땐 젖 먹이느라, 그 다음엔 팔이랑 어깨가 저려서(두 아이가 양쪽에서 내 어깨 죽지를 누르고 잔다). 그러니 푸석푸석 거무죽죽 얼굴이 이모양이다.
애들이 잘 때, 같이 자면 되는 거 아니에요? 애들은 잠도 많다던데.
맞다. 하지만 애들이 자는 동안 할 수 있는, 아니 애들이 자야 비로소 할 수 있는 일들이 있으니 문제다. 청소, 설거지, 쓰레기 치우기, 빨래 개기, 반찬 만들기 같은 ‘가사’. 알림장 쓰기, 친구들 생일 선물 챙기기 같은 ‘어린이집 관련 업무.’
그래도 시간이 난다면(거의 불가능하지만) 책 읽거나 글쓰기.
엄마와 더 놀고 싶은 애들을 어떻게, 어떻게 해서 침대로 끌고 가는데 성공했다면 이제 코~ 자자 분위기를 유도할 차례.
자장가를 부르면서 가슴속으로 굳게 다짐한다. 애들이 자면 벌떡 일어나야지.
그런데 대개는 내 자장가 소리에 내가 먼저 곯아떨어진다. 그렇다보니 아이들이 자는 동안 비로소 할 수 있는 것들 중 우선순위의 가장 마지막에 있는(그러나 가장 좋아하는) 운동이니 독서니 하는 것들을 시도할 짬이 안 난다.
(나처럼) 깔끔 떠는 성미라면 좀 더 힘들 수 있다.
나의 두 딸은 손에 닿는 건(심지어 의자든 뭐든 밟을 수 있는 건 다 밟고 올라가서) 다 끌어내리고 그렇게 바닥으로 내려온 물건들로 ‘바다’를 만들고 자랑스레 엄마를 부른다.
치우면 되지 않아요?
다시 금방 ‘바다’ 가 되는 꼴을 보느니 아예 그냥 놔두는 것이 정신건강에 좋다. 크레파스를 손에 쥐기 시작했다면, 역시 온 집이 스케치북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정신건강에 좋다. 큰 맘 먹고 아이들 침대를 들여온 날, 하얀색 매트리스에 빨간 매직으로 그려진 지렁이들도 같이 왔다.
하나 더. 품위 유지도 어렵다. 흰색 바지, 자켓은 애들을 안아 올릴 일이 없을 때(애들이 엄마들 집에 있을 때) 입자. 허벅지 안쪽이나 궁둥이에 겨울왕국 스티커가 붙어 있을지도 모르니 수시로 더듬어 봐야 한다.
밥? 오호호!
식당에서 아이들이랑 같이 온 부모들 얼굴을 한번만 들여다보시라.
다 식은 미역국에 밥 말아 먹다가 울 수도 있다는 걸 나도 몰랐다.
그런데 뭐 여기까진 그렇다고 치자.
아무 노력 없이, 고통 없이 얻어지는 성과란 없고, ‘엄마’가 되겠다고 다짐했을 때부터 어느 정도 각오를 했으니까.
나에게 육아가 진짜로 어려운 이유는 지금부터다.
저 출산이 사회적 문제라면서 출산과 육아의 책임은 개인에게 돌리는 사회.
임신하면 눈치 주고, 육아 휴직해도 눈치주고 승진 지연 시키고.
세 살까지는 엄마가 돌보는 게 참말로 중요하다면서 전업맘을 집에서 노는 사람 취급하지 않나, 어린 아이와 떨어져 일하는 엄마를 이기적이다 비난하지 않나.
여성, 아이들, 노인, 장애인, 약자에 대한 배려는 멀고도 먼 이야기.
과연 이곳은 내 아이가 안전하게, 마음껏 꿈을 꾸며 살아갈 만한 세상인가 하는 문제...
이러니 어찌 제가 심각하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어머니.
그러나, 사랑하는 후배들이여.
호기심은 유지하되 지금은 그냥 무조건 즐기시라.
엄마가 된 뒤 세상이 달라졌다는 말은 그때야 비로소 실감할 수 있을테니까.
내가, 우리 모두가 그랬던 것처럼.
사실 선배들의 육아 수다를 경청해주는 것만도 고맙다.
엄마가 되기 전의 나로 말할 것 같으면 근무 시간에 사무실에서 어린이집 선생님과 전화하는 선배를 프로답지 못하다 여길만큼 무지하고 매정했던 얼치기였다.
다만 이 선배는 애가 탑니다.
지금부터 30년 뒤에도 "여성들의 가장 큰 고민은 언제나 일자리 찾기와 육아 문제였다"고 운을 떼야 하는 상황이 닥치면 어쩌나 하고.
후배들에게, 내 딸들에게 지금보다 별반 나아진 게 없는 세상을 물려주면 어쩌나 하고.
그래서 오늘도 열심히 외칩니다.
"즐겁고 행복하게 일 하고, 아이를 키울 권리를 보장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