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을 빈 칸으로 두고 타닥타닥 자판을 두드립니다.
실은 제목만이 아니에요.
내용도, 미리 짜 둔 기승전결도 없어요.
그래서 이 글이 어떻게 끝날지(과연 끝맺음을 할 수 있다면), 그 결과가 무엇일지는 저도 끝까지 가봐야 알 것 같습니다.
지금 저는 맘속으로 베이비트리에 이런 식으로 글을 쓰는 게 처음이구나 생각하는 중이에요.
보통은 아이들이 잠든 사이 며칠 혹은 몇 주에 걸쳐 초고를 쓰고, 수십 번을 읽고 고친 다음 남편에게 검토를 받아 완성한 글을 복사 붙여쓰기한 다음 휴 끝냈다, 만세! 하는 식이었거든요.
인쇄가 되기 전까지 원고를 붙들고 있는 성미 탓이기도 하고, 글로 소통하는 일은 제가 가장 공들여 잘하고 싶은 일이니까요.
지금은... 그냥 가보자는 심정이에요.
얼마나 멋진 글이 탄생할지, 독자들로부터 호응을 얻을지 따위에 마음을 흐트리지 않고 오로지 순수하게 쓰는 일에 몰두하고 싶어요.
낯설지만 생각보다 괜찮네요.
아니, 설레기까지 해요. 손가락 끝으로 자판을 치는 건 여전한데, 마치 한지로 된 편지지 위에 붓펜으로 천천히, 행여 번지지는 않을까 정성껏 글씨를 새기는 기분.
오늘 처음으로 저의 진짜 결을 보여드릴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여기까지 쓰고 나니 이런 생각마저 듭니다.
뭐가 그리 힘들었을까요.
엄마로 사는 것도, 베이비트리에 글을 올리는 것도.
아마 잘하고 싶어서였을 거에요.
그래서 자꾸 힘이 들어갔을 겁니다.
육아에도, 글에도, 특히 산골마을에서 살아가는 일에도.
1인 출판사만으로는 도저히 못 살겠는 통에 월급을 주는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나왔소, 하는 건 틀림없는 사실이지만 가끔 무언가가 날카롭게 가슴을 할퀴고 지나가곤 했어요.
지난 2년 동안 과연 최선을 다했는가. 정말 도시로 뛰쳐나올 밖에 다른 도리가 없었는가.
누추함, 불편함, 지독한 먹고 살 걱정, 막막함, 두려움, 좋은 작가가 되고 싶은 욕망, 그리고 버거운 전업육아의 짐.
실은 이 모든 걸 벗어나고 싶었던 게 아니었나.
이렇게 정리가 안 된 상태에서 다른 소재로 연재를 시작하는 건 도리가 아니다, 하는 것도 이놈의 ‘잘 하고픈’ 지독한 강박이었겠지요.
오늘 저는 스스로에게 다시 한 번 증명하고 싶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제목이 없어도 글은 쓰여질 수 있다는 것.
경계할 것은 실패가 아니라 시작하지 못하는 두려움이라는 것.
삶은 끊임없이 새로운 문제를 선사할 테고, 그 괴로움과 맞붙는 순간에야 성장할 수 있다는 것...
"거창한 미래보다 지금의 행복을 선택했어요"
2년 전 처음만났던 양선아 기자님은 화순에 사는 우리에 대한 기사 제목을 이렇게 달으셨더랬어요.
지금도 그때와 똑같습니다.
잘하고 싶은 마음도, 강박도, 힘도 다 빼고, 지금 닥친 고통과 기쁨을 기꺼이 즐기고 싶어요.
앞으로 이 공간에서 여러분과 나누고 싶은 이야기는 일하는 엄마, 일하는 여자들에 관한 것들입니다.
3년 만에 복귀한 사회에서 엄마로서, 여자로서 부닥치는 문제, 아이들의 유치원 생활, 도시에서 사는 즐거움도 있을 거고요.
두 딸 엄마, 일하는 엄마, 좋은 글을 쓰는 작가가 꿈인 여자의 일상은 한없이 비장하고 투쟁적이지만 실은 자유와 행복을 찾아가는 엄마의 일기.
그래서 생각해 본 코너명이 <안정숙의 일하는 엄마, 글쓰는 엄마>인데, 여러분 어떠세요?
끝으로 생생육아의 인연을 만들어주신 양선아 기자님, 저희의 화순 생활을 응원해주셨던 분들 모두에게 진심으로 고마움을 전하고 싶습니다.
포기하지 않고 계속 도전하겠습니다.
진솔한 글과 마음으로, 실천하며 조금씩 갚아가겠습니다.
이 글을 마무리할 수 있어서, 무엇보다 오랫동안 그리웠던 공간에 다시 돌아와서 무척 기쁩니다.
안정숙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