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협 육아모임에서 젖먹이 시절부터 함께 자란 아이들.
우리 가족이 이 모임에서 함께 한 지난 시간은 아이들이 세상에 대해 신뢰를 가질 수 있게 해 주었다.
이제 학교와 학원 외에도 아이들에게 함께 할 수 있는 공동체를 만들어 주어야 하지 않을까>
세월호 사고가 일어난 뒤, 벌써 한 달이 되었다.
슬픔과 분노를 넘어서, 가만히 있지 않고 또 잊지 않겠다는
다짐과 변화를 위한 시도, 움직임이 사람들 사이에서 술렁거리고 있다.
그런데, 어디서부터 무엇을, 어떻게, 시작해야 하는 걸까.
경쟁과 효율, 성공만을 부추기고 강조해 온 지난 몇 십 년동안
우리의 교육과 육아 문화는 더 이상 갈 곳이 어디인가 싶을만큼 피폐해 졌다.
많은 부모들이 아이를 키우면서 경쟁과 물질 만능이 판치는 교육환경에 한숨쉬며
'이건 아닌데..'하면서도, 그 물결에 당연한 듯 휩쓸리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미 너무 많이 와 버렸기 때문일까?
다시 제자리를 찾기엔 이제 불가능하다고 여기기 때문일까?
이렇게 마음이 답답할 때는 세상살이가 힘들 때마다 위로를 받았던 책이나
다니러 갈 때마다 희망 한 줌씩 얻어오곤 하던 인터넷 공간을 찾아가 본다.
좌절감이 이미 학습된 탓일까.
책을 뒤적이면서도 그리 큰 기대는 들지 않았다.
사고 후 지난 한 달동안 이런저런 자료를 천천히 읽어보고 생각을 거듭해 보니
그래도, 세상이 아직 어느 정도 살아숨쉬고 있는 데는
세계 곳곳에서 작은 목소리로나마 끊임없이 더 나은 세상을 위해 호소하고
활동하며 노력해 온 사람들이 존재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2011년 3월, 대지진과 원전 사고의 충격으로 한동안 아무 일도 할 수 없을만큼
절망과 무기력에 빠져 있을 때, 한 선배가 "영희 너, 이 책 아직 안 읽었구나." 하며
제인 구달의 <희망의 이유>란 책을 국제 소포로 보내주었다.
나는 정말로 희망을 가지고 있다.
우리의 후손들과 그들의 아이들이 평화롭게 살 수 있는
세계를 기대할 수 있다고 나는 굳게 믿는다.
나무들이 살아 있고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가 들리는,
그리고 원주민들의 북소리가 어머니인 지구와 위대한 신이
우리와 연결되어 있음을 힘차게 되새겨주는 그런 세계 말이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시간이 별로 없다.
지구의 자원은 고갈되어가고 있다.
우리가 지구의 미래를 진정으로 걱정한다면,
모든 문제를 저 밖에 있는 그들에게 떠넘기는 짓은
이제 그만두어야 한다.
내일의 세계를 구하는 것은 우리의 일이다.
바로 당신과 나의 일인 것이다.
- 제인 구달, <희망의 이유> 중에서 -

이 책을 보내준 선배 부부는 부산에서 마당과 북카페가 있는 어린이서점을 운영하며
지역민들과 다양한 어린이문화 행사를 꾸리며 삶을 실험해 가고 있다.
제인 구달의 책을 읽으면서, 이 선배들이 왜 희망을 잃지않고 꿋꿋이
이 공간을 지켜가고 있는 지 알 것 같았다.
사진은 서점 마당에 있는 작은 숲에서 자유롭게 뛰노는 토끼들.
대안교육 잡지 <민들레> 92호에는 '상품화된 육아'라는 주제로
좋은 글들이 많이 실려 있었다.
가족 구성원 중에 가장 강력한 구매력을 지닌 존재인 요즘의 아이들이
'사람만나는 즐거움'을 깨우치기 전에
'소비하는 즐거움'부터 배워간다는 내용은 당장 우리 가정부터 돌아보게 했다.
외로운 육아에서 벗어나 새로운 길을 찾는,
<엄마들, 숲에서 길을 찾다>라는 글은 아이들과 방과후 숲활동으로 대안의 길을 찾은
실제 엄마들의 이야기라 생생하게 와 닿았는데 공개된 사진이 한 장 있어 퍼 왔다.
<대안교육잡지 민들레 92호 중에서. 집에 있는 보자기를 모아 바느질한 엄마표 낙하산>
그동안 해 온 숲활동이 6년째가 되면서 사회적 역할도 인식하게 되었다는 이 엄마들은
궁금해 하는 이들을 위해, 숲에서 즐겁게 지낼 수 있는 방법을 정리한 책을 준비 중이라고 한다.
첫 해 일곱 엄마로 시작했다는 이 모임은 지금, 마흔 가족으로 늘었다는데
인원이 늘수록 연령대도 촘촘해지고 그만큼 정보도 많고 나눌 것도 많다고..
한겨레 2014.5.12일자 <내 나라가 싫어질 때>라는 칼럼에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책에서 인용한 글로 우리 사회와 교육환경을 돌아보게 했다.
"어린 시절이라는 것은 어른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아이일 때만 맛볼 수 있는 것들을 맛보기 위해 있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어린 시절 5분의 체험은 어른의 1년 체험을 이겨요.
그 시기에 사회 전체가 어떻게 지혜를 짜서
아이들이 얼마나 무럭무럭 잘 자라 살아갈 수 있게 하느냐가 중요하죠."
아이들을 위해 사회 전체가 지혜를 짜야 할 일을
그동안 너무 개인적으로, 각 가정 안에서만 해결해 온 게 아닐까.
국가가 그걸 당연시 하며 개인과 가정이 서로 경쟁하기만을 부추기고
부모들은 그런 시류에 어쩔 수 없다는 식으로 대처하며 여기까지 이르렀다.
이제, 더 늦기 전에 아이들에게
학교와 학원 외에도 갈 수 있는 공동체를 만들어 주었으면 한다.
공동체라 하니 너무 거창하게 들릴지도 모르겠다.
동네 이웃들과 아주 가끔이라도 함께 어울리며
아이들이 제대로 숨쉴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만들어 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내가 10년이 넘게 참여해 온 생협 육아 공동체를 통해 배운 몇 가지를 소개해보면,
첫째. 뚜렷한 목적이나 주제 없이,
비정기적으로 친목을 위해 편하게 만나는 만남이라도 상관없다.
하지만, 서로 다른 개성을 가진 아이들이나 어른들이 지속적인 만남을
유지해가기 위해서는, 또 모임의 초기보다 뭔가 서로가 성장하기를 바라는
욕심을 가지고 있다면 함께 공유할 수 있는 '공통 분모'를 가져보길 권한다.
위에서 소개한 것처럼, 숲체험이라든가, 대안 교육에 대한 책읽기라든가..
나같은 경우는 생협 친구들이 아이들의 식환경에 관심이 많은 편이라 요리와 그림책 읽기를
주제로 삼아 몇 년동안 모임을 이어오고 있다. 단순한 친목 모임이었다면 이렇게 오랫동안
지속되지 않았을 텐데 아이들을 위한 요리라는 중심 화제가 있어 여기까지 오지 않았을까 싶다.
둘째, 적은 인원으로 시작해도 상관없다.
시작은 둘, 셋이라도 좋다. 아이들과 함께 하는 경우, 오히려 너무 많은 인원일 경우
꾸려가기가 힘들 수도 있는데 소수 인원의 모임은 분위기가 덜 산만하고
구성원들의 의견을 모으기가 쉬운 장점이 있다.
셋째, 모임의 공간을 확보한다.
아이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안전한 공간, 부엌과 화장실을 갖춘 곳이라면 금상첨화다.
지역 주민센터나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공간 또는 어린 아이들이 많은 모임이라면
가정집도 훌륭한 공간이 된다.
넷째, 모임에 대해 너무 이상적인 기대(아이들이 금방 변할 것이다 혹은 여기서 많은
것을 얻어갈 수 있을 것이다 등)를 걸고 참여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지만,
가능하다면 소박하게 시작하더라도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우리가 이만큼은 성장할
수 있지 않을까 - 하는 정도의 꿈을 꿔보는 것도 좋다.
모임을 통해 구성원 개개인도 더 행복해지고, 그런 행복들의 힘으로 사회에 조금이라도
도움될 수 있는 역할을 한다면 그건, 정말 굉장한 일이 아닐까.
매일매일이 지치고 힘든 부모들에게 이 이야기들은 너무 비현실적으로 들릴 지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 모두는 우리의 귀하고 사랑스런 아이들이 꿈을 간직하기를 그토록 바라지 않나?
아이들이 그러기를 간절하게 바라면서 왜 부모인 우리 스스로는 꿈을 꾸지 않는 걸까?
희망에 대해 이야기하는 여러 글들을 찾아 읽으면서
마지막으로 씩 웃게 되는 한 마디를 발견했다.
"어느 동네에서든 멋진 일이 일어날 수 있다."
어려운 현실이지만,
어른들이 좀 더 꿈꾸기를 포기하지 않는다면
정말 그렇게 되지 않을까.
우리 동네에서 앞으로 일어날 지도 모르는 멋진 일에,
나도 힘을 보태고 싶다.
아이들이 훌쩍 더 커버리기 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