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원에서 돌아온 둘째가 신체검사 결과표를 내밀었다.
키 110.8cm ..
태어날 때 50cm 조금 넘던 녀석이 5년만에 두 배 이상으로 자라다니.
"몸무게는 몇 킬로였는지 기억나?" 하고 물으니,
"음.. 300킬로!!"
...
다른 때 같았으면 크게 웃으며 아이를 끌어안고 흐뭇해 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럴 수가 없었다.
세월호 사고로 희생된 아이들의 인상착의가 쓰인 안내문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신장 175cm, 이마에 여드름 많음 ...
아.. 겨우 1m 조금 넘게 키우기까지도 이렇게 힘들었는데
어른 키만큼이나 장성한 아이들을 하루 아침에 잃은 부모 심정은 어떠할지
아침에 입고 나간 바지가 저녁이면 짧아져서 돌아온다는 시기의 아이들 뒷모습을
아침마다 보며, 엄마들은 얼마나 든든하고 대견스러웠을까
또 그만큼 키우기까지 얼마나 많은 정성과 희생이 있었을까 ..
이렇게 허망하게 많은 아이들을 보낼 줄 알았으면
공부 걱정없이 실컷 놀게 내버려두고,
잠이라도 좀 더 실컷 재우는 사회에서 자라나게 했으면 좋았을 것을..
단 몇 가지 인상착의로 자식의 주검을 확인해야 하는
부모님들의 마음을 생각하니, 잠도 밥도 일상생활도 제대로 이어가기가 힘들다.
밤마다 악몽에 눈을 뜨고 잠을 설치다 혹시..기적같은 일이라도.. 싶어
기사를 검색하다 다시 절망감에 괴롭기만 하다. 가만히 있어도 눈물이 줄줄 흐른다.
아무 도움도 못되는 무능한 나 자신도 미워진다.
이제 세상은 침몰하는 일만 남았구나 싶고,
그냥 되는대로 막 살다 다같이 이렇게 파멸하는 거지 뭐.
고치고 어쩌고 할 게 아니라 다 없어져야 해, 다..
몸서리를 치며 분노하고 원망하다 다시 이부자리에 누우면,
6살 둘째가 내 옆에 곤히 잠들어 있는게 보인다.
돌아누운 아이의 작디 작은 어깨를 보며, 아무렇게나 먹었던 마음에 죄책감이 밀려온다.
이 어린 것들이 살아갈 세상인데.. 이 아이들은 이제 어떡하나..
어른들이 잘 헤쳐가야 할텐데.. 이번만큼은 정말 힘이 안 나는구나.. 미안하다..미안하다..
아침에 눈을 뜨면 모든게 꿈만 같은 이 현실.
처음 겪는 일이 아닌 것만 같아, 내 안의 트라우마들을 더듬어 보니
3년 전 이맘때가 떠올랐다. 2011년 봄, 일본 동북아 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전 사고..
그때도 그랬다. 사는 게 사는 것 같지가 않고 이제 모든 게 끝이 난 것 같던 시절.
일본에 살면서 잦은 지진을 여러번 겪었지만 그때 그 지진이 있기 전에는
남편이 집에 소화기를 사들이는 게 극성스럽고 이상하게만 보였다.
지진을 대비해서 식구들 수대로 헬맷을 구비해야 되지않을까 고민하는 남편에게,
집도 비좁은데 짐 늘어난다고 잔소리를 하곤 했다.
시도때도 없이 이뤄지는 소방훈련과 대피훈련에
자못 심각한 표정으로 임하는 일본인들을 보며
참 피곤하게 산다.. 은근히 비웃으며 남일처럼 여기기도 했다.
이런 재난에 대한, 그간의 나의 무지와 안이한 태도는
3년 전의 대지진을 계기로 한꺼번에 바뀌었다.
물과 비상식량을 수시로 점검하고, 아이들의 일상적인 안전에도 늘 신경을 곤두세우고
여행 때도 의료보험카드를 지참한다.
침실에는 되도록 물건을 두지 않고, 벽에는 깨질 위험이 있는 액자 등은 걸지 않는다.
화재를 대비해 남편이 사둔 소화기를 부엌 가스렌지 옆에 제자리를 정해두고
유효기간이 지나면, 소방서에 반환한 뒤 새 것으로 사 둔다.
식기장, 옷장처럼 키가 높은 가구는 천정까지 지지대를 설치해 넘어지지 않도록 해 두고
유리 소재로 된 장식장이나 소품은 사지 않는다.
재해가 일어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어른이 방심해서 2차적으로 일어나는 피해가 없도록,
아이들이 있는 가정이기에 더더욱 조심해서 살피고 있다.
대지진이 일어난 순간,
오후 3시가 가까운 시간. 초등2학년이던 큰아이는 학교에 있었다.
복도를 걷다가 지진이 일어나 곧바로 운동장으로 대피한 아이들은
부모가 데리러 오기까지 2시간 동안이나 밖에서 떨며 기다려야 했다.
아빠와 함께 돌아온 아이는 실내화에 겉옷도 입지못해 코가 빨갛게 얼어있었는데
지진으로 교통이 마비되어 일터에서 아이를 데리러가지 못한 부모들은
직장에서 학교까지 몇 시간이고 걸어서 갔다고 했다.
그러는 사이, 지진이 일어난 동북 지방에선 실종자 수가 만 단위를 넘어가고 있었다..
일본 아이들은 단체 생활을 시작함과 동시에
교실 의자에 자기만의 방석을 두고 쓴다.
비상시에 머리를 보호하도록 뒤집어 쓸 수 있는, 모자처럼 생긴 쿠션에 아이 이름을 쓰고
그 위에 아이들이 제각각 좋아하는 색깔의 커버를 엄마들이 만들어 덮어준다.
교실 의자에 걸어두고 쓰는 게 보통이지만, 체육관이나 음악실, 미술실 등에서
수업할 때도 이 비상용 방석은 모든 아이들이 꼭 지참해서 이동한다.
지진을 비롯한 재난이 학교 시설 어디에서 일어날 지 모른다는 이유에서다.
만일의 경우, 아이들이 대피를 하거나 큰 재해를 만나게 되면
그 자리에서 재빨리 이 비상용 머리보호대를 꺼내 쓰는데, 그 위에 크게 쓰인 이름이
비상시에 자기 아이를 효율적으로 찾을 수 있도록 하는 역할을 한다.
수업참관 등의 학교 행사를 보러갈 때마다 아이들이 깔고 앉은 이 방석을 볼 때면,
아이들의 일상에 삶과 죽음이 늘 함께 하고 있다는 느낌에 섬뜩해지곤 했다.
그러나 이것이 일본인들의 운명이며 수천년 이어져온 그들의 삶이었다.
3년 전의 대지진은 수많은 생명을 빼앗아가는 것만으로 그치지않고
인간이 만든 원자력발전소의 사고로 이어져 전세계인을 충격과 공포에 빠지게 했고
그 피해와 고통은 지금도 현재형이다.
세월호 침몰은 우리 모두가 우려했던 안전불감증이 불러온 사고이며
대한민국의 총체적인 문제가 한꺼번에 터져나온 현실이다.
높으신 분의 아드님이 그토록 경멸해 마지않던 '미개한' 국민들은
정부의 대응능력이 너무 미개해서
이런 슬픔과 고통 앞에 그저 짐승처럼 울부짖는 것밖에는 할 수 없다.
선박이 급선회. 파도. 바람 등으로 기울어졌을 때
스스로 균형을 유지하는 기능을 복원성이라 한단다.
세월호가 지켜야 할 법과 규정과 매뉴얼을 무시해온 결과,
배는 본래의 복원성을 되찾지 못하고, 끝내 침몰하고 말았다.
죄지은 사람들이 한번도 제대로 처벌을 받지않은 나라 ..
많은 이들이 단언하듯, 과연 우리 사회도 머잖아 이렇게 침몰하고 마는 것일까.
조금. 아주 조금의 복원성조차 우리에겐 남아있지 않은 것일까.
우리가 이렇게 끝나고 만다면, 남은 우리 아이들은.. 어떡하나.
이제 봄날 새싹처럼 날마다 자라고 있는 이 아이들의 미래는 어떡하나..
학교에서 이제 곧 있을 1박2일 수련회를
올봄에 5학년이 된 딸아이는 오래전부터 설레어하며 기다리고 있다.
각자 좋아하는 메뉴로 식사를 고를 수 있다면서,
스파게티랑 우동 중에 뭘 고를까 날이면 날마다 심각하게 고민한다.
그런 딸의 모습을 평소 때처럼 엄마 미소를 지으며 바라볼 수 없는 현실이 가슴아프다.
아마도 세월호를 타고 수학여행을 떠나기 전의 아이들도
우리 딸처럼 그렇게 들떠있지 않았을까..
새 옷도 사입고 부산스럽게 가방을 싸들고 수다를 떨며 밤배에 몸을 실었을 것이다.
일주일 가까이 온 국민이 너무 많이 울며 고통스러워 했다.
시간이 지나도 이번만큼은 쉽게 평온한 일상으로 되돌아가기가 힘들 것 같다.
하지만, 아직도 가족을 못 찾은 시신과, 슬픔과 피로에 지친 유가족들이 우리 곁에 있다.
절망할 때 절망하더라도, 우선은 마음만이라도 함께 하며 그분들을 도왔으면 좋겠다.
미개하다 어쩌다 헛소리하는 자가 있으면, 소리높여 비난하고 막아주고
아직 200명이 가까운 실종자들의 시신도 힘 닿는 데까지 온전하게 찾을 수 있도록,
그리고 철저한 사고 조사와 수습과정까지 온국민이 함께 지켜보며 마음을 모았으면 한다.
그것만이,
차가운 바다속에서 속절없이 죽어간 어린 목숨들에 대한 예의가 아닐까.
나 하나는 미미한 힘이지만, 모두가 함께하면 거대한 힘이 될 수도 있다.
엄마의 힘을, 부모의 마음을, 정성을 다해 모았으면..
아이들아..
새로운 세상에선 부디, 성적으로 돈으로 외모로 차별받지 말기를..
실컷 뛰어놀고 실컷 자고
행복하게.. 부디 행복하게 살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