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혀 안 그럴 것 같은데, 점을 자주 보러 다니는 친구가 있다.
시간과 비용 관계상, 꼭 필요한 이야기만 엄선(?)해서 하게 되는 국제전화 중에도
"여름엔 물을 조심하고, 올해 가기 전까지 교통사고 조심하라네." 라며
제법 진지한 목소리로 점집에 다녀온 이야기를 들려준다.
나는 대뜸,
"여름에 물가에 갈 일 많으니 물 조심하는 건 당연하고, 교통사고는 올해 아니라
언제 어디서든 조심해야 하는 거 아냐? 뭘 그리 당연한 걸, 거기까지 가서 확인해?"
이런 식으로 답하며 친구의 진지함에 찬물을 끼얹곤 했다.
그런데 요즘은 그 친구가 어떤 마음에서 그랬는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나와 동갑이지만, 일찍 결혼해 벌써 중학생, 고등학생인 두 아이의 엄마인데다
47kg 연약한 몸으로 스트레스가 장난이 아닌 직장생활을 오랫동안 해내고 있는 그녀는
내가 전화걸 때마다 모기만한 목소리로,
"영희야, 나 지금 한의원이거든.. 이따가 다시 걸께."
잠깐 지나 다시 걸려온 전화에선
"요즘, 입이 안 벌어져서 밥을 제대로 못 먹었어. 침 맞고 나니까 좀 낫네.."
... ...
아! 우리가 벌써 이런 대화를 나눌 나이가 된건가.
예전부터 워낙 몸이 약한 친구여서 그렇게 놀랄 일은 아니었지만, 남자든 여자든 40대가 되면서
건강이 나빠지는 경우를 주위에서 너무 자주 보게 된다. <꽃보다 청춘>에서 40대 세 남자들이
스스로의 노화를 확인하며 당황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한 시대를 빛내고 지금까지 그 빛을 유지하는
그들이 하물며 이럴진대, 친구나 나와 같은 평범한 아줌마들이 무슨 힘이 있을라고..
윤상이, 나이가 들어도 늘 멋있게만 보이던 그가, 오랜 세월 술을 끊지 못하고 겨우 끊고 난 뒤엔
약으로 버티고 있는 현실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누구나 다 나이드는 일이 쉽지 않구나..싶었다.
연역한 몸으로 사춘기 아이들과 육아의 가장 난코스를 통과하고 있는 나의 친구도
점이라도 보며 잠시나마 위안을 얻고, 다시 마음을 추스려 일상을 이어가고자 애쓰는 그 마음이
이해되기도 하고 귀엽기도 하다.. 그래서 요즘은,
"다음에 또 가면, 내 것도 좀 같이 봐주지.." 하며 웃곤 한다.
비교적 어린 아이들을 키우고 있는 나도, 이제 많이 큰 아이를 키우고 있는 그 친구도
각자 육아 고민을 안고 살아간다.
고민의 주제와 내용은 다르지만, 이런저런 나름의 시도도 해보고, 포기할 부분은 포기하고,
지금 이 지점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을 힘이 닿는 대로 해보고 있는데,
아이 키우기에는 보편성과 특수성이 늘 함께 하는 것 같다.
모든 아이들-이거나, 대부분의 아이들과 부모들이 공통적으로 겪는 것과
다른 아이와 부모들은 겪지않는, 그들은 끝까지 모르고 지나가지만,
우리 아이와 나만 겪거나, 아주 소수의 아이와 부모들만이 공감할 수 있는 그런 특이한 일,
이 두 가지 면이 항상 공존하는 것 같다.
그래서 아주 가까운 친구들과도 아이 이야기를 하다보면, 어떤 부분은 한마음으로 손발 짝짝
마주치며 공감하고 어떤 부분에선 '왜 그렇지?' '신기하다..' '특이하네..' 하며
더 이상의 공감도, 조언도 할 수 없는 지점에 이르기도 한다.
같은 부모 입장이라도, 내가 겪어보지 않았거나 잘 이해되지 않는 어려움을 토로하는 이에게
적절한 말을 해 주는 건 참 쉽지 않다.
나도 겪어보고, 지금 겪고 있거나, 곧 겪을지도 모르겠다 싶은 내용에는 이런저런 말을
쉽게 할 수 있지만, 가끔은 '나와 내 아이에겐 절대 없는 일일거야'라는 근거없는 확신으로
상대방의 고민을 대충 흘려 듣게 될 때도 있다.
그런데 많은 시간이 지난 뒤, 그때 그 사람의 고민이 나의 일이 될 수 있다는 걸
요즘 자주 경험하게 된다. 아! 그때, 그 사람 얘길 좀 자세히 들어뒀으면 좋았을텐데..!
그 아인 그때 그 일을 어떻게 극복하고 지금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지난 1학기 내내 나를 힘들게 하는 육아 고민 땜에
둘째 아이 친구 엄마와 문자를 오랫동안 주고받은 적이 있었다.
엄마로서 내가 처한 상황과 우리 아이 성격을 어느 정도 아는 그 엄마는
마지막에 이런 이 한 마디를 보내왔다.
- "함께 고민해 보자."
그 문자를 읽는 순간, 문제가 벌써 반은 해결된 듯한 기분이 드는 건 왜였을까.
10년 넘게 아이를 키워보니, 그때그때 최대의 고민이었던 일들은
해결이 되거나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레 잊혀지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사라지거나 해결된 고민들을 추억할 새도 없이,
새롭고 더 강력한 고민들이 어느새 자리를 꿰차게 된다.
그래서, 이젠 고민되는 일들이 생기면 문제해결 자체에 집중하기보다
아이에게도 부모에게도 어려운 이 시기를 어떻게 잘 보낼까,
어떻하면 좀 더 수월하게(?) 힘들 수 있을까, 궁리한다.
그런 궁리와 함께, "같이 고민하고 방법을 찾아보자"며 나의 육아고민에 마음으로나마
실시간으로 참여해 주는 친구들이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든든해진다.
그런 정신적인 연대가 현재의 문제를 좀 더 침착하게 볼 수 있는 여유를 만들어 주기도 하고.
다시 새학기가 되었고,
아이들이 새롭게 적응해야 하는 시기가 찾아왔다.
막내는 유치원 다니기가 벌써 3년째건만, 준비하는 아침이 여전히 쉽지가 않다.
적응을 안 하는 것도 아니고, 완전히 잘 하는 것도 아닌 채, 그렇게 3년째 다니고 있다.
이젠 좀 컸다고 안 간다고 울고불고 하진 않지만, 현관을 나서는 발걸음이 무겁고 더디기만 하다.
애써 우스꽝스런 표정 지으며 카메라를 들이댔을 때,
우울한 표정으로 천천히 올려다보던 아이의 얼굴을 오랫동안 잊을 수가 없다.
아침부터 이런 표정으로 집을 나서 유치원에 데려다주고 오면
하루종일 일이 손에 잡히지도 않고 엄마 마음은 한숨만 가득하게 된다.
언제가 될 지 모르지만,
이 사진을 보고도 그땐 그랬지.. 이 녀석아, 엄마 죽는 줄 알았다구, 하며
웃고 농담할 때가 오기를 바랄 수 밖에. 함께 고민을 나눠가져주는 친구들 덕분에
그래도 엄마는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단다.
이번 2학기는 좀 상콤하게 아침을 시작할 수 있을까?
떨리는 가슴으로 시작된 엄마의 9월,
잘.. 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