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6살인 아들은 기차를 좋아한다.
유치원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또래 남자 아이들과 몸으로 부대끼며 노는 걸 제일 좋아하긴 하지만,
아들이 태어난 뒤로 지금까지 5년 정도의 시간동안, 기차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 식은 적은 없었다.



처음 관심을 보였던 건, 6개월 즈음이 좀 지났을 때.
혼자 힘으로 앉지도 못하던 그때부터 업드린 채 토마스 기차 모형을 만지거나
장난감 레일 위에 달리는 모습을, 침을 흘리며 지켜보면서 놀곤 했다.



돌이 지났을 무렵에는 기차를 테마로 한 그림책을 얼마나 수도 없이 읽었던지.
읽어주기도 하고 혼자 중얼중얼하며 넘겨보기도 하고..
차를 타고 이동을 할 때도 카시트에 앉아
기차 그림책를 하염없이 들여다 보곤 하던 기억이 난다.


두 세 돌 무렵이 되어서는

옆으로 엎드려 기차 장난감을 앞뒤로 밀면서 놀다가 잠드는 일이 많았다.

엄마인 내가 집안일을 하다가 '왜 이리 조용하지..?'싶어 돌아보면

어김없이 저런 모습으로 잠들어 있곤 했다.

다만, 곁에 있는 기차는 당시 그의 관심과 취향에 따라 그때그때 달랐다.^^




기차 그림이 그려진 옷을 입고
기차 모형 장난감 놀이에 몰두한 아들.
아이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색깔이란 개념에 대해 인식할 때,
빨강은 00기차, 노랑은 00기차, 파랑은 00기차 .. 라는 식으로 말해 깜짝 놀란 적이 있다.
심지어 아들이 처음 변기에서 소변을 보게 되었을 때, 그 색깔을 물끄러미 보더니
"00기차 색깔이랑 똑같네!" 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아이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나긴 하겠지만
딸을 키울 때와는 달리, 아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것에 관해서만큼은
아직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집중력과 애정을 쏟아붓는다는 사실이다.
언젠가 베이비트리의 이벤트를 통해 받아보았던,
<엄마, 아들을 이해하기 시작하다>란 책에서

소년은...
조용한 시간에는 자신이 발견한 보물을 지그시 바라보며
꽤 오랜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라는 구절이 있었는데,  아들을 키우면서 자주 공감하게 되는 말이다.
아이가 이렇게까지 기차에 관심이 갖게 된 건, 사회문화적인 영향도 큰 것 같다.
일본은 철도 문화가 굉장히 발달한 나라이고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기차나 기차여행, 철도를 좋아하고 관심이 많은 편이다.
워낙 다양하고 넓은 데다 굉장히 전문화된 분야다 보니,
이 일과 연관된 직업도 다양하고 인기가 높은데
요 몇년 동안, 일본 남자 아이들의 장래희망 순위를 보면,
1위   스포츠 선수
2위   철도 운전수 및 관련 직업
3위   TV, 애니메이션, 게임 업계
4위   경찰관, 소방수
5위   장인

거의 이런 식이다. 어릴 때부터 철도를 동경하다 어른이 되어 그 분야에서 일을 하게 되는
경우가 많고, 요즘은 여성의 취업률도 많이 늘고 있다.
어릴 때 좋아하다가 결국 다른 직업을 갖게 된 사람들도, 여전히 철도를 좋아하고
기차 여행을 취미로 즐기는 사람들도 일본에는 너무너무 많다.

이번 여름방학 동안, 두 아이가 평소 좋아하던 것을 좀 더 깊이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자 남편과 의논을 하다 여름 휴가를, 아들이 좋아하는 기차를 타러 가는 것으로 정했다.
한정된 기간동안 실제 <토마스 증기기관차>를 운행하는 곳으로 고고씽!!




석탄을 때서 검은 연기와 함께 리얼한 칙칙폭폭 소리를 내며
거친 숨을 몰아쉬는 듯한 토마스 증기기관차는
그곳에 모인 어른과 아이 모두를 압도하고도 남았다.
35도를 넘는 무더위 속에서 그에 못지않는 열기를 뿜어내는 기차 곁에서
모두가 흥분의 도가니!!   어느 아이돌 못지않게 카메라 세례를 받는 대상이 기차라니..
외국인들 눈에는 좀 우스울 지도 모르지만, 일본 남자 유아들과 그의 부모들은 너무너무 진지..^^




수많은 기차를 보고 타기도 한 아들이지만,
증기기관차를 본 건 처음인 아들. 너무너무 좋아했다..
토마스가 가고 난 다음엔 검은 외관의 증기기관차를 1시간 정도 달렸다.
아주 옛날 처음 기차가 만들어졌던 시대처럼
창문을 열고 검은 연기 탓에 내릴 때쯤엔 얼굴까지 꺼뭇꺼뭇해진 채.

기차를 향한 아이의 관심이 언제까지 이어질 지는 잘 모른다.
다만, 아이가 어른이 되어서도
좋아하는 기차를 타고 훌쩍 여행을 떠나는 것만으로도 좋을 것 같다.
출구가 없는 듯한 답답한 일상이 힘들어 질 때,
기분전환이 되고 위로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세계 곳곳마다 매력적인 기차여행을 즐길 수 있는 곳은 얼마나 많은가.
20대 시절, 유레일패스 하나 들고  유럽 구석구석 작은 마을까지
기차를 타며 배낭여행을 했던 기억은 내 평생 가장 소중한 추억이다.
아이 아빠는 자기가 젊은 시절 해 보고 싶어했던
시베리아 철도여행에 대한 꿈을 아들과 함께 이뤄보고 싶어한다.

기차에 대한 아들의 로망을 앞으로도 계속 응원해 주고 싶다.
좋아하는 대상이 많을수록 삶은 즐겁고 풍부해지는 법이니까.
아들아!   세계는 넓고 기차는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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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영희
배낭여행 중에 일본인인 지금의 남편을 만나 국제결혼, 지금은 남편과 두 아이와 함께 도쿄 근교의 작은 주택에서 살고 있다. 서둘러 완성하는 삶보다 천천히, 제대로 즐기며 배우는 아날로그적인 삶과 육아를 좋아한다. 아이들이 무료로 밥을 먹는 일본의 ‘어린이식당’ 활동가로 일하며 저서로는 <아날로그로 꽃피운 슬로육아><마을육아>(공저) 가 있다.
이메일 : lindgren707@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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