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만에 속이 시원하게,
가려운 곳을 제대로 긁어주는 글을 만났다.
아이들의 악기교육에 대한 이야기인데
베이비트리에서도 꼭 한번 나눠보고 싶었던 주제라 좀 긴 글이지만 소개해 본다.
대부분 학부모인 동료 교사들에게
"의외로 요즈음 악기 배우는 애들이 적은 것 같아요?" 했더니 시큰둥한 반응이 돌아왔다.
"요새 애들 할 게 얼마나 많은데."
이어서 교육열도 높고 제법 진보적인 부모인 한 교사가 다소 싸늘하게 받아쳤다.
"피아노는 아이들이 세상에 태어나서 겪는 거의 첫 번째 좌절 아닌가요?"
... ...
십여 년 전의 부모들이 '아이가 자라서 악기로 좋아하는 곡 하나쯤 연주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던 분위기와는 확연히 달랐다. 동료 교사들은 자신이 부모로서, 악기 교육을 열심히 시키지 않는
이유에 대해 할 말이 많은 듯했다. 그들이 피아노 교육에 연연해하지 않는 이유는 새로운 악기가
늘어나서이기도 하지만 부모 자신이 어린 시절에 악기 교육을 경험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피아노를 배우면서 좌절을 너무 많이 경험했고, 또 거기에 순응해서 어느 정도 피아노를 익힌다고 해도,
레슨을 마지막으로 마친 초등학교 시절 이후, 피아노 뚜껑을 잘 열어 보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 창비어린이 2015. 봄호 / <악기 연주 좌절인가, 행복인가> 중에서 -
피아노를 배우면서 수없이 좌절했던 자신의 경험에도 불구하고
우리 아이가 악기 하나쯤은 다룰 수 있는 어른으로 자랐으면.. 하는 욕심과 바램을 포기하기는 어렵다.
연습이 귀찮을 때도 있었지만, 처음 악기를 제대로 다루게 되었을 때의 기쁨을 떠올리다 보면
되도록 아이가 어린 시절부터 음악과 친해졌으면 하는 마음을 부모라면 누구나 가지게 되고
그래서 피아노 배우기는 70,80년대부터 지금까지 오랜 세월, 대표적인 음악 사교육으로 군림해왔다.
일본 역시, 피아노는 아이들이 꼭 거쳐야 하는 사교육 중의 하나라는 믿음이 여전히 통한다.
그래서 많은 아이들이 유아기 혹은 초등 입학 전후에 피아노 학원으로 향한다.
반면, 피아노를 배우면 제법 잘 어울리고, 재능도 있을듯한 아이임에도
피아노 학원은 근처에도 보내지 않겠다고 결심한 듯한 엄마들도 제법 만나게 된다.
피아노.란 단어만 들어도 고개를 절래절래 흔드는 그 엄마들은 대개 이런 속내를 털어놓곤 한다.
"어릴 때 발표회에 나갔다가 실수를 했던 게 큰 트라우마가 되서...
내 아이만큼은 그런 식의 좌절을 너무 어린 나이에 겪게하고 싶진 않아요."
나 역시 80년대에 초등 시기를 보낸 대부분의 여자 아이들처럼
엄마의 결정에 따라 피아노 학원을 몇 년 다녔는데
위에 인용한 책 속의 표현처럼, 체르니 100번, 30번, 40번, 50번은
그때 아이들에게 계급장 같은 것이었다.
어려운 곡을 제대로 치고 다음 곡으로 넘어갈 때의 뿌듯함이 있긴 했지만
경이로운 손가락 놀림과 속도로 건반 위에서 재능을 맘껏 발휘하는 몇몇 아이를 보며
체르니 30번을 겨우겨우 치던 나와 또래 친구들은 어쩐지 들러리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무도 뭐라 하거나 그런 사실을 말로 드러내진 않았지만, 어린 마음에도 그냥 알 것 같았다.
선생님이 다른 아이들을 거쳐 내 옆에 앉으실 때까지
토막토막 멜로디를 연습하다가 나는 곧잘 엉뚱한 공상에 빠지곤 했는데
그때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 앞 작은 피아노 학원에는
피아노가 딱 세 대밖에 없었는데, 오래된 중고 피아노 두 대와
모든 아이들이 가장 앉아 치고 싶어했던 새 피아노 한 대였다.
날마다 그 세 대의 피아노를 번갈아 치며 연습하던 어느 날,
세 피아노의 서로 다른 소리와 촉각을 달걀에 비유해보는 상상에 빠지고 말았다.
다른 아이의 연습을 봐주고 선생님이 내 자리로 오실 때쯤,
드디어 내 머릿속에선 세 피아노와 달걀에 대한 비유가 완성되었다.
나는 기쁜 마음으로 선생님께 대단한 발견이라도 한 것처럼 자신있게 떠들었다.
"있잖아요, 선생님! 우리 학원 피아노가 다 좀 다르잖아요? 꼭 달걀같아요.
제일 오래된 피아노는 건반이 부드러워서 날달걀같구요..
새 피아노는 건반을 두드리면 꼭 삶은 달걀 느낌이 나구요..
저 안쪽 방에 있는 피아노는 건반이 너무 딱딱해서 달걀 껍질 만지는 것 같아요!!"
나의 긴 이야기를 다 들으신 선생님은 한동한 멍...한 표정으로 말이 없으셨다.
그러다 이내 정신을 차리신 듯, "자, 빨리 연습한 거 쳐보자."
... ...
그때 나는 깨달았다.
'아! 이런 식의 이야기는 어른들에겐 통하진 않는구나... 괜히 말했네.'
내성적이던 내가, 그래도 그런 이야기를 할 수 있었던 건, 그때의 피아노 선생님이
당시 내 주위의 어른들 중에서는 가장 감성적이고
아이들 이야기를 귀기울여 들을 줄 아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홀로 수많은 아이들을 가르쳐야 했던 선생님의 현실은,
평범하기 그지없는 피아노 실력을 가진 아이의 엉뚱한 말들에 정성어린 반응을 해 줄만큼
여유가 없었을 것이다. 어린 마음에도 꼭 선생님 탓만은 아닐 거란 생각을 하면서도
그날 이후로 어쩐지 피아노가 재미없어졌다.
학원을 그만둔 것도 그 즈음이었던 것 같다.
<노다메 칸타빌레>의 노다메는 훈련 중심의 피아노 교육에서는 낙오된 아이였지만
자신만의 피아노를 즐기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 ...
악기 연주를 통해 아이들이 음악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어린이 악기 교육의 중심에 있어야 할 것이다.
악기 연주는 기술이나 개인을 돋보이게 해 주는 장식품이 아니라,
음악을 통해 사람과 사람이 소통하고 예술적 감흥으로 공명할 수 있게 해 주는
인류의 중요한 발명품이라는 것을 우리는 기억할 필요가 있다. (같은 책)
나는 악기 교육의 필요성과
피아노를 가르치려는 부모의 욕구를 부정하려는 것이 아니다.
다만 음악 교육의 본질과 악기 사교육에 들이는 우리의 시간과 비용의 효율성,
그리고 기능만을 강조하는 악기 연주 교육이 결국 모든 아이들을 미완성의 존재로(같은 책)
만드는 계기가 되는 건 아닌지, 찬찬히 생각해 보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30여 년 전 피아노 선생님이, 나의 황당한 '달걀과 피아노' 비유에 대해
"그럼, 영희 넌 그 세 피아노 중에서 어떤 게 젤 좋아??"
라고만 물어봐 줬다면, 피아노에 대한 나의 관심이 그렇게 빨리 식지는 않았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저는 날달걀 만지는 느낌의 오래된 피아노가 젤 좋아요!" -
속으로 대답도 미리 준비해 뒀는데 말이다.
악기를 배우는 것이,
즐거움보다 좌절로 끝맺었던 경험을 아이들에게도 대물림해 줘야 할까.
서툴더라도 자기 나름대로 악기를 즐기며 느낄 수 있는 시간과 여유를
아이들이 맘껏 누릴 수 있었으면 좋겠다.
피아노를 배우던 당시의 어린 나에게 필요했던 건,
건반을 잘 치는 기술보다는 공감과 감성을 나누는 기회가 아니었을까.
놀이처럼 피아노 뚜껑을 열고 건반을 두드리는 두 아이를 볼 때마다
'피아노에 대한 트라우마'만은 품지 않고 자랐으면..
그런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