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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가을은 어느 해보다 바자회에 열심히 다녔다.
동네의 각 유치원, 학교를 시작으로 가장 최근에 가본 곳은 가까운 대학의 축제였는데
수의학을 공부하는 대학이라선지, 동물과 연관된 행사가 많은 것이 특징이었다.
집에서 키우는 개를 데리고 산책 삼아 구경나온 사람들로 북적거렸고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말타기 이벤트나 금붕어 낚시(?) 코너 등을
대학생 언니오빠들이 운영하고 있었다.
동물 좋아하는 우리집 아이들은, 한 손에는 금붕어가 든 비닐 주머니를 들고
또 다른 한 손으론 붕어빵을 먹으면서 넓은 대학 캠퍼스를 휘젓고 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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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입구부터 시작되는 각종 음식 코너를 지나,

대운동장으로 들어서니, 주변 지역 주민들이 주최한 큰 벼륙시장을 만나게 되었다.

아이들과 정신없이 구경을 하던 중에 둘째 아이가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만큼 자기가 좋아하는

장난감 파는 코너를 발견하고는, 엄마 손을 잡아 끌었다.

시중 가격보다 1/4정도의 싼 가격으로 파는데다 중고 장난감임에도 거의 새 것과 다름없이

깨끗해서 아이랑 와.. 하면서 구경하고 있는데,

5학년인 딸아이와 이 가게 주인이 서로 아는 사이인지 인사를 주고받는게 보였다.


이 중고 장난감 가게 주인은 바로, 딸아이와 같은 학교 5학년 남자아이였던 것이다.

자기가 어릴 때 가지고 놀던 장난감을 깨끗하게 닦고 포장해서 이 벼룩시장에 가지고 나온 것.

우리 둘째가 눈이 휘둥그레져 좋아하는 모습을 보더니,

"1개 200엔(약 2천원)이지만, 3개 고르면 500엔에 해 드릴께요."

우리는 거의 새 것과 다름없는 장난감(그 중엔 요즘은 팔지않는 귀한 캐릭터도 있었다)을

엄청 싼 가격에 얻을 수 있고, 가게 주인인 형아는 자기에겐 더 이상 필요없어진 물건을

정리하는 기회도 되고 적지만 용돈을 버는 기회도 되는 셈이다.

자기가 오래 가지고 있던 물건인만큼, 그 물건에 대한 설명을 잘 해주어

어린 손님들에겐 어른이 주인인 가게보다 더 인기가 많아보였다.

6살인 우리 둘째는 집에 있는 장난감으로 자신만의 가게를 연 형아가

대단해보이기도 하고 많이 부러운지, 그곳을 떠난 뒤에도 자꾸만 뒤돌아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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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메이드 작품들, 작은 가구와 생활 소품들, 겨울을 대비한 털모자나 머플러 ..
소박하지만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한 벼룩시장이었다.
생산자와 소비자가 직접 거래하는 곳인 만큼, 중간단계에서 필요한 비용이 없다보니
가격도 저렴하고 다양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재미도 있었다.
참여하는 사람들이 많은 탓에 조금 번잡해서 피곤하긴 했지만
유치원이나 학교 바자회에는 없었던 벼룩시장을 구경할 수 있었던 점이 참 새로웠다.


6살, 12살 두 아이가 올해 들어 가장 크게 달라진 몇 가지들 중에 하나를 들라면,

바로 '돈을 의식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세뱃돈을 받아도 엄마에게 바로 건내주던 큰아이도 올해 설날부터는

"이제부터 내가 가지고 있어도 돼요?"  라고 하길래,

세뱃돈 관리를 처음으로 아이에게 맡겨보았다.

둘째도 올해들어 부쩍 자기가 원하는 과자나 장난감을 얼마가 있으면 살 수 있는지,

자주 궁금해했고 누나처럼 자기만의 지갑을 갖고 싶어하곤 했다.

한마디로, 아이들이 '돈을 밝히기' 시작한 것이다.


되도록이면 이런 시기가 늦게 왔으면..하고 막연히 생각하긴 했지만

이미 어른들은 물론 아이들에게도 시도때도 없이 덮치는 소비의 유혹 속에

우리의 일상은 거의 점령당한 것과 마찬가지가 아닌가.

아이들에게 적절한 경제교육이 필요하겠다는 생각과 함께

마침 '돈'과 소비에 대한 책과 자료들을 찾아보면서
정리된 생각 몇 가지를 요즘, 실천해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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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이들과 은행에 자주 찾아가는 것이다.
- 지갑에서 돈을 꺼내 값을 치르고, 없으면 카드 사용도 가능하고, 현금 인출도 은행 창구가 아닌
   현금지급기 기계에서 찾다보니 아이들은 '돈은 필요할 때 언제든 꺼내쓸 수 있는 것'이란
   생각을 하기 쉬운 것 같다. 서점에 자주 찾아가면 아이가 책을 자연스럽게 즐기게 되듯이
   은행을 아이와 자주 방문하면서 저축에 대한 개념, 즐거움, 보람을 자연스럽게 느끼게 될 거라는
   생각에 학교가 좀 일찍 마치는 날, 큰아이와 작은아이를 데리고 은행을 찾아갔다.
   은행을 이용하는 방법과 소비보다 저축할 때의 보람에 대한 이야기, 차곡차곡 모든 돈으로
   꼭 필요할 때 사용할 수 있는 장점 등에 대해 알려주었다.

2. 통장이나 통장 커버 등
    돈 관련 소품을 아이들이 좋아하는 모양이나 캐릭터로 즐길 수 있도록.
- 아이들이 태어난 뒤, 만들어 준 각각의 통장에 올해 초에 받은 세뱃돈 중에 쓰고 남은 돈을
   일단 입금하게 했다.  두 아이 모두, 아주 조금의 금액만 더하면 앞자리수가 다음의 큰 수로
   바뀔 수 있는 잔액이라 더 효과적이었다. 입금 뒤에 한 자리 더 높은 수로 이동한 잔액 수를
   확인하며 저축하는 즐거움과 보람에 대해 함께 이야기했다.
   올해 아이들이 특히 좋아했던 <겨울왕국> 통장커버를 우체국에서 사서 씌워주니
   더 좋아하며 다음에도 은행에 또 가고 싶다고 한다.

3. 단순히 소비하는 것 뿐 아니라, 아이들이 스스로 예산을 세우고,
   갖고 싶은 것을 살 수 있을 때까지 참고 기다리는 연습,
   자신의 용돈으로 수없이 비교하고 선택하며 결정을 내리는 연습을 통해
   자라면서 점점 더 큰 경제적인 결정을 내리는 법을 배우게 해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

4. 엄마도 가계부를 제대로 쓰기로 마음먹었다.
- 절약을 많이 하는 편이고, 한달 수입에 맞게 지출을 하려고 노력해오긴 했지만
   가계부를 체계적으로 써 본 적이 없었다. 어쩌면 쓰면서 엄청난 지출 규모를 눈으로 확인하는게
   두려웠다는 게 정확한 변명일 거 같다.
   아이들과 함께 돈을 좀 더 투명하게 관리하는 습관을 가지려면 가계부를 다시 써야하지 않을까.
   새해가 오기 전에 꼭 실천에 옮겨보리라.

5. 돈을 깨끗하게 관리하고 쓰도록.
- 매년 훼손된 지폐를 폐기하고 새 돈을 만들기 위해 엄청난 비용이 든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그 비용은 결국 우리가 낸 세금으로 해결할 수 밖에 없으니, 한사람 한사람이 돈을 깨끗하
  게 쓰도록 노력한다면 그만큼 거기에 드는 비용을 절약할 수 있을 것이다.
  둘째가 태어난 다음부터 가방 속에 들어가는 짐을 최소화하기 위해, 반으로 접는 지갑을
  써 왔던 나는 이번 기회에 긴 지갑으로 바꾸어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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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룩시장에서 활약하던 5학년 형아를 보고 온 날,

6살 둘째는 아기 때부터 쓰던 자기 식탁의자 위에 이불을 뒤집어 씌우더니

그 안에서 뭔가를 하느라 한참을 부시럭거리며 나오질 않았다.


"뭐하는 거야?"  하며 식구들이 이불을 들춰보니,

그 안엔 자기 장난감들을 줄줄이 진열한 작은 가게 하나가 차려져 있는 게 아닌가!

아무래도 벼룩시장의 그 형아가 많이 부러웠던지, 그대로 흉내를 내고 있었던 듯 ..^^

우리도 내년엔 벼룩시장에 참가신청서를 한번 내볼까??

바자회나 마을 행사를 즐기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싶었는데

아무래도 직접 그 속의 한 공간을 맡아 운영하다보면, 좀 더 많은 걸 경험하고 배울 수 있겠지.


그러기 전에, 아들아. 이미 가진 물건을 좀 더 소중히 관리하고

이 장난감들이 우리 품을 떠나기 전에 좀 더 충분히 즐기면서 노는 게 먼저란다.

새로 물건을 살 때도 그런 것까지 고려하게 되면,

좀 더 현명한 소비를 하게 되지 않을까?

돈을 버는 법 뿐이 아니라 잘 그리고 제대로 쓰는 법,

잘 모으고 불리는 법. 하나씩 천천히 함께 배워가자꾸나.


아이들의 경제교육에 대해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읽게 된

<돈의 달인>이라는 책에는 이런 말이 있었다.


최소한의 화폐로 다양한 삶을 연출해 낸다.


경제교육의 진정한 의미와 목표는 바로 이런 것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나도 아이들도 이런 삶을 살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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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영희
배낭여행 중에 일본인인 지금의 남편을 만나 국제결혼, 지금은 남편과 두 아이와 함께 도쿄 근교의 작은 주택에서 살고 있다. 서둘러 완성하는 삶보다 천천히, 제대로 즐기며 배우는 아날로그적인 삶과 육아를 좋아한다. 아이들이 무료로 밥을 먹는 일본의 ‘어린이식당’ 활동가로 일하며 저서로는 <아날로그로 꽃피운 슬로육아><마을육아>(공저) 가 있다.
이메일 : lindgren707@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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