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시작해 보고 싶었다.

 

결혼을 하고, 내가 자란 나라와는 전혀 다른 정서와 문화 속에서

두 아이를 낳고 키우며 허겁지겁 살아온 지난 시간 전체를 정리하고

삶의 공간도 아파트와는 다른 곳으로 옮겨, 연극의 2막이 열리듯

새롭게 시작해 보고 싶었다.

 

4년 전, 둘째가 태어났을 때부터 이런 나의 생각에 대해

남편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고 그 내용은 수정의 수정을 거듭해

작년 연말 즈음에 드디어 구체화되었다.

서로 의견이 다른 부분도 많았지만, 둘 다 공감해서 결정한 내용은

 

1. 아파트에서 주택으로 옮긴다.

2. 교육비 지출에 대한 계획을 분명하게 세운다.

      (이 부분이 불분명하면 주택구입비에 드는 비용을 감당하기 어려워진다)

3. 40대 이후에 자신이 꼭 하고싶은 것을 탐색하고 즐긴다.(노후대비)

4. 남과 비교하지 않고, 우리 가족에 맞는 삶을 산다.

 

였다. 일단, 집은 제법 긴 시간을 두고 여러 곳을 찾아다녀서 그런가

생각보다 일찍 적당한 곳이 나타났다. 문제는 비용이었고,

위의 두 번째 항목에 대해 꽤 오랫동안 둘이서 고민했다.

결국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사교육에 의존하지 않는 대신,

새로 옮기는 집에서 가족이 함께 할 수 있는 것들을

우리 스스로 만들어 가기로 결론이 났다.

 

그렇게 시작된 단독주택 이사를 위해

지난 두 달에 걸쳐 우리 가족은 숨가쁘게 달려왔다.

어느 나라나 이사는 피곤하고 힘든 일이지만

일본은 사회 전체 시스템이 그렇듯, 집을 사고 파는 과정과 절차가 무척 까다롭다.

특히, 주택은 아파트보다 스스로 준비하고 선택해야 하는 것들이 줄을 이었는데,

시간적인 여유가 많으면 즐기면서 할 수 있는 일도 시간에 쫒기다보니

뭔가를 '선택'한다는 것이 가끔은 고통스럽게 느껴지기도 했다.

또 하나를 선택하면 다른 것들을 '포기'해야 하는 연습도 함께 해야했고.

 

또 변화는 항상 좋은 것만 경험하게 하진 않는 법이다.

남편도 나도 처음엔 새로운 변화에 대한 설레임으로 충만했다가

일이 잘 안 풀리거나 힘들고 귀찮은 일들이 이어질 때면

서로에게 화를 내고 상대방 탓을 하는 일도 잦았다.

 

남편은 남편대로 회사일을 하면서 온갖 서류를 준비하고

부동산 업자와 상대하느라 지쳐있었고

나는 나대로 하루가 멀다하고 내놓은 아파트를 보러오는 사람들땜에

집안 정리에, 새집에 필요한 잡다한 물건들 준비에,

새학기라 아이들 준비물 챙기고 학교와 유치원 행사에 뛰어다니느라

몸이 열개라도 모자랄 지경이었다.

두달 동안 얼마나 바쁘게 쫒아다녔던지 새로 산지 얼마 되지도 않은

운동화에 구멍이 나 있어 놀랍기도 하고 황당했다.

 

이사 준비가 막바지였던 3월은

집안 곳곳에 이사용 박스가  널려있고 정리하다 만 짐들이

발에 밟혀 어수선함의 극치였다. 불안정한 일상이 계속 이어지고

날씨가 추웠다 따뜻했다 변덕을 부리는 환절기였으니 걱정했던 대로

식구들 모두가 돌아가며 감기를 앓는 사태가 발생..

한번쯤은 아프겠구나 싶었는데 이렇게 넷이서 한꺼번에 

고생하는 건 처음 겪는 일이다. 몸이 아프니 만사가 다 귀찮았다.

 

그러는 와중에 그동안 어렵게 어렵게 모은 돈들이

통장에서 썰물에 쓸려가듯 한꺼번에 빠져나가고 나니

아픈 몸 탓에 마음도 약해졌다.

그냥 아담한 아파트에서 얌전히 살걸 그랬나.. 아 아깝다..

나중에 후회하진 않을까.. 이렇게 투자할 만큼 가치는 있는 일일까..

하는 부정적인 감정들이 밀물처럼 나를 덮쳤다.

서로 쉽게 털어놓진 않지만,

남편도 회사일을 하다 문득 나같은 생각을 하진 않을까.

하지만 인생을 리셋하고 싶다 했으니, 이 정도 감정에 무너지면 안된다.

변화를 실천해가는 과정에서 가장 힘든 건

하루에도 열두번 왔다갔다하는 '내 마음'이라는 걸 새삼 절감했다.

 

하지만 결국!!  우리 가족은 그런 과정을 다 거치고

무사히 주택으로 옮겨왔다. 새집이고 주택이라 기쁜 것보다는

우리가 스스로 마음먹은 일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오랜 시간에 걸쳐

이뤄냈다는 것, 내 마음을 이겨냈다는 게 더 뿌듯하고 기뻤다.

그동안 바쁘다는 핑계로 아이들에게

자주 화내고 다그치고 했던 게 너무 미안했는데

그래도 두 아이는 어느새 훌쩍 자라 있었다.

 

짐정리와 쓰레기 정리의 일등공신이었던 큰아이와 

떼쟁이 둘째는 이제 혼자서도 너무 잘 놀고

잠이 오면 혼자 이불에 들어가 조용히 잠이 드는

신기한 장면을 자주 엄마에게 선물해 주었다.

이제, 마당이 있고 다락방이 있는 집에서

이 아이들과 마음가는 대로 실컷 살아볼테다.

남편과 내가 지난 40년간 살면서 터득한 삶의 노하우와 지혜를

모두 펼쳐 이 집의 시간과 공간을 채워보리라.

올해로 결혼13년차, 새봄과 함께 인생리셋 버튼 클릭!!

 

DSCN1235.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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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영희
배낭여행 중에 일본인인 지금의 남편을 만나 국제결혼, 지금은 남편과 두 아이와 함께 도쿄 근교의 작은 주택에서 살고 있다. 서둘러 완성하는 삶보다 천천히, 제대로 즐기며 배우는 아날로그적인 삶과 육아를 좋아한다. 아이들이 무료로 밥을 먹는 일본의 ‘어린이식당’ 활동가로 일하며 저서로는 <아날로그로 꽃피운 슬로육아><마을육아>(공저) 가 있다.
이메일 : lindgren707@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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