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118_01.jpg » 한겨레 자료.아이가 좋아하는 장난감 중에 시계처럼 팔목에 차는 스마트키라는게 있다. 그걸 채워달라고 하면서 아이는 늘 이렇게 요구한다. "아프게 불편하게." 흔들리지 않게 꽉 조여달라는 말이다. 너무 꽉 조이면 불편하고 아프다고 말해주니 이제는 아예 "아프게 불편하게"를 요청한다. 비슷한 예로 따뜻하거나 미지근한 물을 먹이려고 하면 어김없이 "배아프게 찬물 주세요"하더니 이제는 "설사하게 찬물 주세요" 그런다. 찬물 먹으면 배 아퍼 말해도 듣지 않으니 설사한다고 강도를 높였건만 오히려 설사하게 찬물 달란다. 이건 뭐 자해공갈도 아니고...

 

여튼,

몇번이나 스마트키를 채워줘도 성에 차지 않는지 더 아프게 더 불편하게를 외치며 징징대는 아이 요구에 맞춰주다가 손톱이 확 꺾여버렸다. 나는 "이거 가지고 놀지도 마"소리를 버럭 지르며 장난감을 패대기쳤다. 애가 순간 조용해졌다.

 

안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서도 샌다는 속담과 관련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애 낳는다고 성격 어디가는 거 아닌가 보다. 애 앞에서 버럭하지 않으려고 노력하지 않는 바는 아니나 애와 하루 종일 씨름하는 주말에 한번은 버럭을 하게 된다. 아이에게든, 남편에게든.

 

조용해지는 아이를 보며 아이에게 미안했는가 하면 사실 그렇지는 않았다. 잘했다는 이야기도 아니다. 기왕이면 장난감을 던지지 않았으면 더 좋았을 것을, 아이에게도 "더 이상 하는 건 무리란다" 점잖게 타일렀으면 좋았을 것을 생각 0.5초 정도 생각은 했지만 미안함과 죄책감의 기나긴 반성은 하지 않았다. 내 성격이 이런데 어쩌겠냐규~

 

나도 처음부터 이렇게 못된 엄마는 아니었다. 아이가 두돌쯤 될 때까지는 욱하는 성격을 자제하려고 많은 노력을 했다. 라고 써보니 두돌때까지는 아이가 떼를 많이 쓰지도 않았고 유달리 예민한 아이도 아니긴 했다. 어쨋든 곱게 이야기하려고 노력했고, "우리 인이 이제 코 자야지?" "할머니 얼굴 때찌하면 안되지?" 이렇게 말끝을 부드럽게 올리며 착한 엄마 코스프레를 하느라고 하긴 했다.

 

되새겨 보니 내가 숨겨진 못된 엄마의 본성을 되찾기 시작한 시점은 육아책에서 손을 놓은 시점과 거의 겹치는 것 같다. 수면 교육부터 아이의 떼를 차분하게 다스리기 등 육아책 따라하기가 나에게는 느~무 힘들다는 걸 깨달으면서 육아서적 학구열이 급식었다. 그래서 남자아이의 경우 가끔 때리는 게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라는 식의 조언 몇가지만 머리에 새기고 본의 아니게 내 갈길을 가게 가게 된 것이다.

 

요즘 나는 이따금 아이의 '볼기짝'도 때리고 그보다는 자주 소리도 지른다. "엄마가 던지지 말랬지? "할머니한테 버릇없이 굴면 때려줄꺼야" "멍청이 소리 한번만 더 해봐, 볼기짝에 불나게 될테니" 뭐 써놓고 보니 깡패 엄마가 따로 없다.

 

착한 엄마들이 보면 기함할지 모르겠지만 솔직히 난 이런 내 행동에 큰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다. 상습적인 매질이나 윽박이 아니라면 아이는 좀 야단맞으면서 크는 게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다.언젠가 본 글 중에서 한 유명한 교육학자의 일화가 있다. 여행 도중 한 여인숙에 머무르게 됐는데 주인장 아주머니가 아이들에게 언성을 높이고 거친 말을 많이 했다고 한다. 그런데도 아이들이 명랑하고 밝은 모습을 보면서 충격을 받았단다.  결국 중요한 건 아이를 대하는 태도 그 자체보다 아이들이 충분히 사랑받고 있다고 느낄 정도로 진심어린 애정을 가지는 것이다.

 

곱지 못한 내 성격의 알리바이이기도 하지만 이유는 또 있다. 나는 아이에게 완벽한 엄마가 되고 싶지 않다. 엄마도 허술한 구석이 있고 불완전한 인격체라는 걸 아이가 다 커서 벼락같이 느끼기 보다는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깨우쳐주고 싶기도 하다. 물론 이전에 썼던 것처럼 엄마는 아이의 든든한 비빌 언덕이 되어야 한다. 하지만 결국 엄마는 나를 지켜주는 내편이라는 것과 엄마는 완벽한 인격체여야 한다는 건 다른 의미인 것 같다. 물론 가장 이상적인 건 부드러우면서도 필요할때는 단호하고 차분하면서도 권위 있는 엄마겠지만 그 목표의식이 주는 스트레스 지수가 엄청 높다면 조금은 변칙이 되도 괜찮지 않은가 말이다.

 

지금은 아이가 볼기짝을 맞거나 야단을 맞아도 30초도 안돼 언제 그랬냐는듯 헤헤거리고 엄마 이거 해줘, 저거 해줘를 해대니 못된 엄마짓도 가능해 보인다. 아이의 자의식이 커져서 문을 쾅닫고는 걸어잠그며 엄마의 야단에 시위하는 날이 올 것이다. 그때가 오면 나는 지금처럼 단순무식이 아니라 좀더 현명한 못된 엄마가 되야 한다고 생각한다. 점점 나에게서 벗어나 어른이 되어가는 아이를 조금씩 내품에서 떠나 보낼 준비를 시작해야 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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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형 기자
투명하게 비칠 정도로 얇은 팔랑귀를 가지고 있는 주말섹션 팀장. 아이 키우는 데도 이말 저말에 혹해 ‘줏대 없는 극성엄마가 되지 않을까’, 우리 나이로 서른아홉이라는 ‘꽉 찬’ 나이에 아이를 낳아 나중에 학부모 회의라도 가서 할머니가 오셨냐는 소리라도 듣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앞서는 엄마이다. 그래서 아이의 자존심 유지를 위해(!) 아이에게 들어갈 교육비를 땡겨(?) 미리미리 피부 관리를 받는 게 낫지 않을까 목하 고민 중. 아이에게 좋은 것을 먹여주고 입혀주기 위해 정작 우는 아이는 내버려 두고 인터넷질 하는 늙다리 초보엄마다.
이메일 : dmsg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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