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608812_P_0 copy.jpg » 한겨레 사진 자료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엄마 싸우자~ 싸우자~” 오늘도 아이는 눈 뜨자 마자 상어 인형과 악어 인형을 들고 와서 ‘싸우자’ 타령을 한다. 남자 아이치고는 얌전하다는 이야기를 꽤 듣는 편인데도 그 쪼그만 몸 뚱아리에 테스토스테론이 넘쳐나는지 질문은 늘상 “바다악어가 더 세요? 백상아리가 더 세요?”따위의 “누가 더 세요?”타령이고, 놀이는 늘 싸움이나 전쟁, 전투다. 


 “엄마는 평화주의자라서 안싸워”라고 대답하거나 빨리 끝내기 위해서 싸우자마자 바로 공격당하고 죽는 역할을 하곤 하지만 가장 괴로운게 이런 싸움놀이다. 철학의 문제가 아니라 인형놀이만 하고 자란, 나란 여자, 싸움놀이, 정말 재미없단 말이다. 


 하지만 아이와 놀이가 꼭 지루하고 고통스러운 것만은 아니다. 내가 아이와 함께 즐겁게 놀 수 있다는 걸 깨달은 건 노래를 통해서다. 많은 아이들이 그렇듯이 우리 아이도 애니메이션을 좋아할 뿐 아니라 주제곡 따라 부르기를 사랑한다.  나로 말할 것같으면 가끔 회식 자리 노래방에서 탬버린을 흔들며 광기 어린 음주가무에 빠지긴 하지만 노래부르기를 좋아하는 편은 아니다. 물론 노래실력도 그닥이다. 


그런 내가 아이와 노래 경쟁이 붙었다. 시작은 아이가 네살때 <발루뽀>라는 애니메이션을 보면서다. 유아용 애니메이션은 주제곡이 나올 때 노랫말이 화면에 깔리지 않는 경우가 많다. 아이가 이 애니메이션 주제곡을 외계어로 따라하자 나는 정확히 가르쳐주기 위해 인터넷에서 가사를  찾아보며 열심히 부르기 시작했다. 그런데 나이들어서 처음 들어본 노래를 외우려니 쉽지가 않았다. 가사를 더듬으며 틈만 나면 흥얼거리게 됐고, 길가다가도 흥얼거림은 멈춰지지 않았다. 


이 노래 다음으로 아이가 꽂힌 건 어린이집에서 매일 틀어준 것으로 추정되는 ‘한국을 빛낸 100명의 위인들’이었다. 아이는 이 역시 ‘포부리 세운 동명왕’‘서화갑부 황진이’ 등 외계어로 노래를 외우기 시작했고 부르다 막히면 “엄마 다음이 뭐죠?”물었다. 게다가 “대쪽같은 삼학사가 뭐예요?”라는 질문으로 나의 학창시절 국사실력 테스트까지 하기에 이르렀다. 나는 아이에게 제대로 가르쳐 주기 위해 노랫말을 찾아서 같이 부르기 시작했다. 그런데 역시나 잘 외워지지 않았다. 게다가 비록 외계어처럼 부르긴 하지만 아이가 갈수록 줄줄이 부르는 모습을 보면서 어쩐지 위기의식이 느껴졌다. 나는 밥먹다가도 수시로 노랫말을 검색하고 중얼중얼 외웠다. 이상하게 한번 발동이 걸리니 멈춰지지가 않았다. 한번은 밤에 침대에 누워 몰래 핸드폰을 켜서 가사를 보며 노래를 부르고 있는데 자고 있는 줄 알았던 아이가 벌떡 일어나서 “아 그만 하고 내일 봐요. 내가 내일 가르쳐 줄게요”라고 엄마에게 굴욕을 주는게 아닌가. 


그 이후로 ‘렛 잇 고’에 이르기까지 이상한 경쟁심에 사로잡혀 나는 아이가 꽂힌 노래를  눈이 벌개지도록 외워나가기 시작했고, 결과적으로 많은 동요와 애니메이션 주제곡을 아이와 함께 부르게 되었다. 집념의 노래부르기 놀이를 아이와 함께 즐기게 된 것이다. 엄마 이 노래 부를 수 있다고 자랑까지 하면서 말이다. 


아이와 놀아주는 건 사실 재미없다. 누구와도 놀아‘주는’ 건 재미없다. 재미가 없으니 쉽게 지치고, 나중에는 아이에게 버럭하면서 “저쪽 가서 혼자 좀 놀아”소리치게 된다. 그런데 아이가 대여섯살이 되면 말도 조금씩 통하게 되고 아이가 집중하는 분야가 생겨난다. 찾아보면 아이를 위해 해주는 거라고 굳이 생각하지 않으면서 어울려 놀거리들이 생겨나는 것이다. 또한 부모도 내가 어른이다 라는 생각에서 조금만 자유로워지면 아이와의 노래경쟁에 쌍심지를 켰던 나처럼 철없는 구석이 하나둘 씩은 있다.  이런 내 안의 아이를 끄집어 낸다면 아이와의 놀이도 지루한 돌봄이 아니라 재미가 될수 있지 않을까. 


나는 요새 술래잡기에도 빠져있다. 대장이 술래를 해야한다고 생각하는 아이라 내가 맨날 숨어야 한다. 처음에는 아이가 찾기 쉬운 곳에 숨곤 했지만 이제 아이도 나도 시시해졌다. 그래서 빤한 지정학적 위치를 가진 놀이터에서 숨을 곳을 찾기 위해 매의 눈을 밝힌다. 그렇게 숨어있는데 아이가 근처로 오면 나도 모르게 숨을 죽인다. 이런 나를 보며 아이 아빠가 말한다. “좋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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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형 기자
투명하게 비칠 정도로 얇은 팔랑귀를 가지고 있는 주말섹션 팀장. 아이 키우는 데도 이말 저말에 혹해 ‘줏대 없는 극성엄마가 되지 않을까’, 우리 나이로 서른아홉이라는 ‘꽉 찬’ 나이에 아이를 낳아 나중에 학부모 회의라도 가서 할머니가 오셨냐는 소리라도 듣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앞서는 엄마이다. 그래서 아이의 자존심 유지를 위해(!) 아이에게 들어갈 교육비를 땡겨(?) 미리미리 피부 관리를 받는 게 낫지 않을까 목하 고민 중. 아이에게 좋은 것을 먹여주고 입혀주기 위해 정작 우는 아이는 내버려 두고 인터넷질 하는 늙다리 초보엄마다.
이메일 : dmsg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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