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살때 큰 형들의 딱지놀이에 낀 아이. 상대도 안하는 형들 옆에서 꾿꾿이 참견을 한다
“예찬아~” “영웅아~”
등원길 셔틀버스를 타는 곳에서 만난 일곱 살 삼총사가 신이 났다. 지난해도 같이 유치원을 다녀서 단짝처럼 친한 아이들은 만나자마자 아파트 단지 안을 방방 뛰며 길냥이를 쫓아다니기도 하고 서로에게 매달려 기차놀이도 하고 재잘재잘 수다를 떤다.
이 삼각구도에 다른 한 꼬마가 불쑥 끼어들었다.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가면 쫓아가고 누가누가 두발 자전거를 더 잘타나 수다를 떨면 “나도 두발 자전거 탈 수 있다~”끼어든다. 그러나 아무도 대꾸하지 않는다. 일곱 살 형님들에게 다섯 살 꼬마는 상대하기도 우스운 존재일 뿐. 투명인간처럼 무시당하면서도 줄기차게 형님들의 뒷꽁무늬를 쫓아다니는 아이는, 아~슬프게도 내 아이다.
아이는 올해 유치원에 입학했다. 걸어다닐 수 있는 아파트 단지 내 어린이집에 다녀서 이렇게 큰 아이들과 섞여 있는 모습을 볼 기회가 없었다. 물론 같은 학년 아이들이 없는 건 아니다. 그런데 대여섯살 아이들은 아직 친구들과 재미나게 노는 방법을 못익혀서 그런지 엄마 손을 잡고 얌전히 서서 형님들의 모습을 쳐다보고만 있는데 우리 애만 꼭껴서 투명인간이 된다.
하원길 버스에서 내릴 때도 부지런히 형들을 쫓아달려가지만 당연히 형들의 속도를 따라잡을 수 없어 형들이 시야에서 멀어지고 나면 가만히 서있다가 집으로 발길을 돌린다.
아~ 열받어. 아니 왜 친구들하고 못놀고 형들한테 껄떡대냐. 아니 형들은 어린 동생 좀 끼워주면 안되나? 이래서 결국 형제가 필요한건가?
생각해보면 아이는 어릴 때부터 꾸준히 형들을 동경했다. 세 살때부터 딱지 놀이를 하는 큰 형들 사이에 비집고 들어 앉아 투명인간 노릇을 했고(사진), 공원같은데서도 큰 아이들이 뛰어다니면 그 뒷꽁무늬를 열심히도 따라다녔다. 왜 아니겠나. 재미난 놀이도 많이 하고, 멋진 캐릭터들도 더 많이 아는 형들이 얼마나 멋있어보이겠는가 말이다.
마음같아서는 형들에게 우리 아이도 끼워달라고 부탁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건 안될 말이다. 일곱 살이라봐야 그 아이들도 작은 꼬마일 뿐인데 자신을 희생해가면서 어린 아이를 억지로 데리고 놀아야 할 이유는 없었다. 그리고 지금이 아니라도 아이는 언젠가 좋아하는 친구의 생일 초대를 받지 못하거나 어울리고 싶은 어떤 동아리에 낄 수 없는 경험을 할 것이다. 자신이 원하는 걸 모두 가질 수는 없다는 어쩔 수 없는 진실, 아이는 지금 그걸 배우는 것일 뿐이다.
나는 형들이 시야에서 사라진 걸 확인한 뒤 발길을 돌리는 아이의 손을 잡았다. 집으로 걸어가며 이야기했다. “어쩌겠니 이게 인생인걸” 진실이야 어쨌든 엄마로서 마음 아픈 상황에서 나 스스로에게 던지는 말이기도 했다. 뭔소린지 모를 엄마의 말을 들으며 아이는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기운이 나서 폴짝폴짝 뛴다. 아이는 이렇게 조금씩 단단해지는 것일 거라 믿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