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G_2257.JPG » 어린이집 입학 2주차 등원길의 눈물바다는 잦아들었다.


드디어 아이가 36개월을 찍고 이달 초 어린이집에 입학했다.

 

전에 '어린이집에 보내지 않는 이유'라는 글에서 만 3살 이후에 보내겠다고 했지만 운좋게 딱 맞아 떨어진 건 아이의 생일이 2월이라서다. 아무튼 요즘 어린이집도 경쟁이 치열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지난해 10월 아파트 관리동에 있는 동네 어린이집에 대기 등록을 해서 입학 연락을 받게 됐다. 한 동네에 살던, 교육에 대한 관심 높은 동료가 별로라는 정보를 줬지만 뭐 구박만 안받으면 되지,라는 예의 편한 마음으로 큰 고민없이 등록을 했다.

 

참 신기하게도 어린이집 입학을 앞두고 아이는 마치 뭔가 알고 준비를 하는 아이 마냥 몇단계 성장을 했다. 쉬야통에 하던 쉬야도 어른 변기에서 하기 시작했다. 옷도 혼자 벗고 입었다. 물론 옷을 덜 벗어 조준을 제대로 못한 쉬야가 하늘로 치솟았던 적도 여러번이긴 하지만, 신발도 혼자 신고 벗으며 아이는 엄마의 품안에서 독립할 기세를 높여갔다. 겨우내 멀쩡하다 장염과 감기에 걸려 입학식날 첫 등원을 못하는 세리모니를 치루긴 했지만 말이다.

 

입학식을 건너 뛴 등원 첫날 출근 시간을 조정해 아이를 어린이집에 데려다 줬다. 며칠 전부터 '몇밤만 자면 인이 어린이집 가네. 재밌겠지? '라고 카운팅을 하며 길을 들여서인지 아이는 별 반감없이 쭐래쭐래 걸어갔다. 정문 앞에 도착하니 또래로 보이는 아이가 엄마의 채근에는 아랑곳없이 들어가지 않고 주변만 빙빙 돌고 있다. 벨을 누르니 원장이 나와서 반갑게 인사를 한다. 나에게서 원장에게 '건네진' 아이는 '여긴 어딘가 나는 누구인가'라는 표정으로 선생님 손에 이끌려 방으로 사라졌다. 이제는 내가 아까 그 아이처럼 정문 밖에서 서성인다. 창문으로라도 아이의 모습을 엿보고 싶었지만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가 갑자기 우왕~ 터지는 울음소리. 아이가 아닌가 해서 현관 문 쪽으로 달려가보니 다른 아이가 문고리를 잡고 통곡을 한다.

 

 곧바로 회사로 향하는 자동차의 가속기를 밟았다. 눈 앞이 뿌얘졌다. 이제 세상으로 첫발을 디딘 아이가 기특하고 뿌듯해야 할텐데 마음은 아리기만 했다. 이제 이 험한 세상 속으로 니가 들어가는 구나, 지금까지 자신을 중심으로 세상이 돌아간다고 여겼을 너의 믿음이 깨져 나가겠구나, 이제 너도 크고 작은 상처받고 아파하면서 자라나겠구나 라는 온갖 착잡한 생각들이 마음을 흔들었다. 역시 나는 비관주의자가 맞나보다.

 

다행이도 어린이집이 끝나고 오후에 담임선생님이 전화를 해줬다. 같은 반 친구들이 울면 금방 눈물이 고이며 "인이도 엄마 보고 싶어요"라고 말했지만 울지는 않았단다. 전화를 끊고 내가 울어버렸다. 이번에는 그래도 잘해냈다는 생각에 감격이 섞여있는 눈물이었다. 그렇게 이틀을 가더니 아이는 어린이집에 가기 싫다고 떼를 쓰기 시작했다. "어린이집은 너무 심심해요""어린이집은 너무 힘들어요""어린이집은 너무 무서워요" 아무래도 선생님이 아이 하나 하나에 집중할 수 없다보니 아이는 답답했나 보다. 한시간이지만 가족 없이 떨어져있는 게 생전 처음이니 불안도 했겠지. 둘째날은 쉬하고 싶다고 하고는 현관으로 달려가고 응가 마렵다고 현관으로 달려가고 했단다. 적응기니까 그러려니 생각하면서도 착잡했다. 이렇게 스트레스 받는 아이들을 굳이 서너살 되면 시설에 보내야할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고작 유치원 1년이나 초등학교에서 첫 시설 생활을 시작했던 우리 세대는 그래도 유치원에 가고 싶어하고 학교에 가고 싶어하는 설렘과 기대를 가득안고 첫 입학을 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요새 아이들은 울며 불며 힘든 적응기를 겪으며 첫 단체 생활을 시작한다. 수십년을 이어가야할 단체 생활의 첫 시작이 눈물바다여야만 할까. 마음이 아팠다.

 

이후 이모가 데려다준  첫주 3일동안 아이는 이모 다리에 대롱대롱 매달려 거부를 하다가 끌려들어가기를 반복했다고 한다. 퇴근하거나 출근을 앞둔 나에게 어린이집 안가겠다는 이야기만 앵무새처럼 반복했다. 앞으로는 재밌을 거야, 내일 가면 신나겠지? 아이를 달래다가 나중에는 그게 더 스트레스가 될 것 같아 차라리 그냥 어린이집 이야기를 꺼내지 않고 모른 척했다. 약간의 분리불안 증세도 나타났다. 그런데 내가 아니라 이모에 대한 집착으로 드러났다. 평소에 이모와 할머니와 내가 같이 있으면 그래도 항상 나에게 달려왔던 아이인데 이모가 어린이집 등하교길을 같이 해서 그런지 이모랑만 하루 종일 있으려고 했다. 내가 퇴근한 뒤 집으로 돌아가려는 이모의 바짓가랑이를 잡아 결국 이모가 재워야했고 자면서도 종종 이모를 찾았다. 애가 하도 이모만 찾아대니 친정엄마는 농담으로 "너 아들 뺏기나보다"말했다. 섭섭하기보다는 아이가 안스러웠다.

 

그리고 다음 주 월요일 아침 아이는 눈뜨자 마자 어린이집 안가겠다는 말만 반복하다가 막상 이모가 데려다 줄때는 거부하지 않고 걸어갔다고 한다. 땅바닥만 보며 이모의 이야기에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고 말이다. 네가 생에 처음 배우는 체념이구나, 싶었다. 야근이라 이모가 데려가 재운 화요일 아침에는 "오늘도 어린이집 가야돼요?"묻더니 "매일매일 가는 거야"대답하니까 별 반응없이 어린이집에 갔단다.  등원 7일째인 수요일 아침에도 눈을 뜨자마자 "어린이집 가기 싫어, 슬퍼"라며 대성통곡을 했지만 내가 출근을 할 쯤에는 아무 일없다는 듯이 등원을 준비했다.

 

수요일 저녁 퇴근을 하자마자 나는 아이에게 물었다. "어린이집에서 뭐했어? 재밌게 놀았어?" 어디서 들었는지 아이는 어른의 말투를 흉내매며 대답했다. "말~도 꺼내지마" 할머니와 이모와 내가 동시에 빵터졌다. 아직은 힘든 시절이지만 아이도 어른도 조금씩 조금씩 적응해가고 있는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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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형 기자
투명하게 비칠 정도로 얇은 팔랑귀를 가지고 있는 주말섹션 팀장. 아이 키우는 데도 이말 저말에 혹해 ‘줏대 없는 극성엄마가 되지 않을까’, 우리 나이로 서른아홉이라는 ‘꽉 찬’ 나이에 아이를 낳아 나중에 학부모 회의라도 가서 할머니가 오셨냐는 소리라도 듣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앞서는 엄마이다. 그래서 아이의 자존심 유지를 위해(!) 아이에게 들어갈 교육비를 땡겨(?) 미리미리 피부 관리를 받는 게 낫지 않을까 목하 고민 중. 아이에게 좋은 것을 먹여주고 입혀주기 위해 정작 우는 아이는 내버려 두고 인터넷질 하는 늙다리 초보엄마다.
이메일 : dmsg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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