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 신문.jpg

 

아이들이랑 종일 무슨 얘기를 하세요?

밥 먹었니? 숙제 했니? 시험은 어땠어? 준비물 챙겼어? .. 이런 일상을 확인 하는 얘기나

또 스마트폰 보니? 숙제 먼저 하고 놀랬지! TV 좀 그만 봐. 학원 늦으면 안돼! 반찬 좀 골고루 먹어!

같이 지시하거나 야단치거나 경고하거나 짜증내는 말들은 말고, 아이와 무슨 얘기를 나누세요?

아이가 어렸을때는 정말 많은 이야기를 나누다가 커 갈 수록 같이 할 이야기가 적어지곤 한다는 부모들이

많지요. 아이들이 세상을 읽을 수 있는 능력을 좀 키워 주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부모들도 많구요.

아이와 이러 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데 꺼내고 보면 야단치는게 되버리고, 취조 하는 것 처럼 아이에게

대답을 강요하게 되어서 아이가 아예 부모 앞에서는 입을 다물어 버린다는 이야기도 참 많이 듣습니다.

그러다가 아이에게 스마트폰이 생기고 나면 부모와의 대화는 더 멀어지고 말지요.

궁금하고 재미나고 알고 싶은 것들을 저 혼자 해결하면서 제 세상 속으로만 들어가는 아이 뒤에서

부모는 쉽게 무력해지다가 포기하게 되는데요.

16년간 세 아이를 키워 오면서 제가 제일 도움을 많이 받은 것이 바로 종이 신문입니다.

큰 아이는 워낙 활자 읽는 것을 좋아해서 신문을 그냥 같이 읽었어요. 책도 같이 읽었구요.

그때는 저도 아이 하나 키우는 엄마라 열정이 넘쳐서 아이가 관심있어 하는 주제가 있으면 도서관을

다 훑어서 그 주제에 관한 재미난 책을 찾아 내밀곤 했지요. 큰 아이와는 그렇게 이어진 16년의 시간들이

차곡 차곡 쌓여서 열 일곱살인 지금도 제법 좋은 사이로 지내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첫 아이때 통한 것이 둘째, 셋째에게 통할리가요. ㅠㅠ 아이들은 저마다 참 다르잖아요.

딸들에게도 신문을 건네봤지만 둘 다 별 관심이 없었습니다. 책도 글자책보다 만화책을 더 좋아하구요.

딸들에게는 새로운 전략이 필요했어요. 이런 저런 시도 끝에 정착한 것이 아침 밥상에서의 기사 읽기 입니다.

아침밥을 먹고 있는 딸들에게 전날 미리 살펴보고 골라 오려 놓은 신문 기사 몇 편을 건넵니다.

요즘 화제가 되고 있는 일들이나 두 딸들이 관심있어 할 내용, 혹은 꼭 알았으면 하는 내용이 있는

기사들을 고르지요. 읽기 싫어하면 대신 읽어주면서 듣게 합니다.

오늘 고른 기사는 네 편..

먼저 정준영, 승리 관련 사건으로 인해 한창 성장하고 있는 케이팝의 위상이 흔들리고 있다는 일부 언론

경고에 대한 분석 기사 두 편 입니다. 이번 사태는 연예계의 몇 몇 몰지각한 사람들이 벌인 일일 뿐인데

연예계 전체의 문제처럼 확대해서 보는 것은 무리이며 오히려 이번 사건을 키우는 것이야말로

잘 나가는 케이팝의 위상을 흔들어 많은 손해를 야기하는 일 이라고 보는 것이 왜 문제인지, 케이팝의

위상보다 더 중요하고 시급한 일이 무엇인지애 대해서 두 사람의 필자가 글을 썼는데 저는 특히

tv 칼럼니스트 '이승환'님의 글을 좋아합니다.

그리고 요즘 딸들과 함께 재미나게 보고 있는 드라마 '열혈사제'에 대해서 '황진미' 대중문화 평론가가

쓴 글을 같이 읽었구요, 서울교대 몇몇 학과에서 여학생 얼굴 품평 성희롱을 했다는 기사도 읽었습니다.

newspaper-973049_960_720.jpg » 이미지 픽사베이.

아이와 이런 글들을 같이 읽을 때 우선적으로 아이들의 관심사와 흥미, 관련성을 고려합니다.

정준영, 승리 사건은 불행하게도 초등학생까지 다 알고 있습니다. 스마트폰이 있는 아이들은 자극적으로

재구성된 이 사건들을 흥미로운 이야기거리로 소비합니다. 그렇지만 그렇게만 이해하고 넘어가면

안되잖아요.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뭐가 잘못인건지, 우리는 이런 일들을 어떻게 이해하고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알아야 하니까요.

우선 이번 사건을 통해 아이들은 sns를 사용할 때 꼭 염두에 두어야 할 것들을 배울 수 있습니다.

"SNS는 사적인 공간이 아니라, 공적인 공간이라고 선생님에게 배웠어요. 그러니까 누구든

볼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고 써야 해요" 열 세살 윤정이는 말 합니다. 이렇게 분명하고 단순한

사실조차 배우지 못하고 SNS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어떤 실수와 범죄를 저지르고 있는지 우린

수없이 보고 있지요.

그 다음으로는 방탄 소년단에 열광하는 두 딸들과 기획사에서 키워지고 관리되는 스타들에 대한

교육 이야기를 나눌 수 있습니다. 짧은 시간안에 세계 음악계를 흔들게 된 케이팝의 성장과 발전은

눈부시지만 어린 나이에 발탁되어 기획사로부터 키워지는 아이들에게 제대로 된 교육과 인성개발

에는 관심이 없는 현 시스템은 이미 많은 문제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화려한 아이돌 스타의

이면에 실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방법에 무능하고 개인의 인권이 무시되며 스스로를 돌보는

법을 배우지 못한채 자라나는 것이 미치는 수많은 부작용들이 있습니다. 우리가 열광하는

스타들이 그런 교육을 제대로 받고 있는지, 그 기획사는 스타들을 정말 제대로 보살피고 있는지

그런 부분에까지 관심을 넓혀 갈 수 있습니다. 진정한 펜이라면 그런 보살핌과 돌봄까지 요구할 수

있어야지요.

동의 하지 않은, 혹은 몰래 촬영한 성관계 동영상 자체의 불법성과 유포가 가지는 범죄성은

열 세살 큰 딸도 잘 압니다. 약물로 파트너의 의식을 잃게 해서 성폭행을 저지른 일의 위법성은

말 할 필요도 없습니다. (열 세살, 열 살 아이들과 이런 이야기를 나누어도 되냐구요? 저는 합니다.)

요즘 재미있고 잘 만든 드라마, 정말 많습니다. 어른과 아이가 드라마를 같이 보는 일도 흔하지요.

(이 일 자체가 옳은가 그른가에 대한 판단은 일단 미뤄두겠습니다. ^^)

그런데 그냥 같이 보며 울다 웃고 끝내기보다 함께 보면서 여러 이야기들을 나눌 수 있습니다.

저 주인공은 왜 저렇게 행동하는지, 그 마음은 어떨지, 뭐가 문제일지, 나라면 어떻게 할지..

이 드라마는 우리 사회의 어떤 면들을 반영하고 있다고 느껴지는지...

나눌 수 있는 얘기는 참 많습니다. 잘 써진 분석 기사를 같이 읽으면 더 도움이 되구요.

열 세살 윤정이는 그렇다 치고 열 살 이룸이한테는 다소 어려울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아이는

딱 자기 수준대로 이해합니다. 그걸 염려할 필요는 없습니다. 엄마와 언니가 나누는 이야기를 통해서

배우는 것도 있으니까요.

미투 사건 이후로 학교 현장에서 성에 관련된 의식은 아주 빠른 속도로 달라지고 있습니다.

큰 아이가 초등학에 입학했을때 남학생이 여학생에게 하는 똥침은 짖궂은 장난 정도로 여겨졌지만

만약 지금 누군가 그런 행동을 했다면 그건 일급 성추행 입니다. 바로 학폭위가 소집될 사안입니다.

아이들은 이런 변화에 적응도 빠르고 이해도 빠릅니다. 어른들이 제대로 못 따라 갈 정도로요.

중, 고등학교에서 일어나는 스쿨미투나 이번 기사처럼 대학교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성희롱 관련

사건들을 아이들과 세심하게 읽어가고 있습니다. 내 몸과 나 자신에 대한 이해와 권리를 잘 알아야

나를 포함한 타인의 권리를 잘 지킬 수 있으니까요.

이제 아이들은 친구들 사이에서도 외모 평가나 비하가 큰 잘못이라는 것을 압니다. 초등학생들도

아는 것들을, 하물며 미래의 교사를 키우는 학교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다니요.

여고 시절, 담임 선생님은 대입 상담을 할 때 성적이 낮은 아이들에게 함부로 하셨습니다.

"그 성적으로 대학을 간다고? 집에 가서 솥뚜껑 운전이나 하셔"

"너는 구로 공단에나 가"

"니 얼굴로 무슨 예술대? 거울이나 보고 오셔"

그 시절, 교사에게 받는 모멸감과 수치는 일상이었습니다. 그때는 그저 숨어서 담임 욕이나 하는 게

고작이었지만 지금은 압니다. 가사 노동을 비하하고, 공장에서 일하는 여자 노동자를 비하하며,

학생의 외모를 비하하는 것 모두 심각한 범죄입니다.

귀하게 키운 우리의 아들, 딸들이 이런 범죄의 대상이 되거나, 잘못인지도 모르고, 혹은 잘못인지 알면서

그릇된 말과 행동을 하는 사람이 된다면 얼마나 가슴 아플까요.

국어 성적, 수학, 과학 성적도 중요하지만, 좋은 학원을 알아보고 더 좋은 정보를 얻는 일에

관심을 갖는 일도 중요하겠지만 더 소중한 일은 제대로 사고하고 행동하는 시민으로 키우는 일 일겁니다.

거창하지 않습니다.

매일 식탁에서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나누고 짧고 간단하더라도 서로의 생각을 주고 받는 일에서

그런 힘들이 생겨날 수 있습니다. 욕심 부리지 말고 하루에 한 가지라도, 처음엔 아이가 좋아하는

스포츠나 연예계 뉴스 부터라도 어떤 주제라도 나눠보세요.

기왕이면 아이에게 스마트폰을 건네기 전에 시작하는 게 좋습니다. 스마트폰이 있다 하더라도

밥상에서는 안 꺼내는 것을 규칙으로 해야 함은 물론이구요.

포털 뉴스로도 할 수 있습니다만 그러면 아이들과 밥상에서 디지털 화면을 들여댜 봐야 하잖아요.

스크롤해 가며 읽는 기사는 머릿속에서 휘발되는 속도도 빠릅니다.

엄마가 오려준 신문 기사를 들고 읽는 동안 손 끝으로 느껴지는 종이의 질감, 신문 특유의 냄새

바스락 거리는 소리.. 기억은 이런 감각들과 함께 저장되었을 때 훨씬 생생하고 오래갑니다.

그래서 종이 신문을 권합니다.

한 달에 만 팔천원을 들여 아이들 교육에 가장 많은 효과를 보는 것..

저는 신문 말고는 다른 무엇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읽고 딱히 아이가 제 의견을 말하지 않아도 됩니다. 눈으로만 훑어도 마음에는 스며듭니다.

아이들을 키울때는 콩나물을 떠올리며 살아야지요.

물은 다 밑으로 빠져나가는 것 같아도 그 적은 물기가 콩나물을 쑤욱 크게 하지 않나요?

왜 그토록 많은 것을 들이부었는데 다 새어나오고 보이는게 없냐고 좌절할 필요 없습니다.

느껴지지도 못할 만큼 남은 그 물기로도 아이는 큽니다. 쑥쑥 큽니다.

아이들이 가고 저는 다시 오늘자 신문을 펼칩니다.

내일 아침 아이들과 나눌 한 줄의 좋은 기사를 찾아서요. 이런 시간이 통하는 것도 딱 초등학교 시절

까지 입니다. 중학교만 가도 부모 맘대로 안되더라구요.^^

좋은 논술학원 보내는 것 보다 제겐 더 효과 있는 방법이었습니다.

같이 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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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순화
서른 둘에 결혼, 아이를 가지면서 직장 대신 육아를 선택했다. 산업화된 출산 문화가 싫어 첫째인 아들은 조산원에서, 둘째와 셋째 딸은 집에서 낳았다. 돈이 많이 들어서, 육아가 어려워서 아이를 많이 낳을 수 없다는 엄마들의 생각에 열심히 도전 중이다. 집에서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경험이 주는 가치, 병원과 예방접종에 의존하지 않고 건강하게 아이를 키우는 일, 사교육에 의존하기보다는 아이와 더불어 세상을 배워가는 일을 소중하게 여기며 살고 있다. 계간 <공동육아>와 <민들레> 잡지에도 글을 쓰고 있다.
이메일 : don3123@naver.com      
블로그 : http://plug.hani.co.kr/don3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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