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올봄 중학교에 입학하는 딸아이의 교복을 맞추러 갔을 때였다.
치수를 맞추느라 여러 사이즈의 교복을 입어보며
거울 앞에 선 딸을 본 남편은
"기분이 이상하네..."
하며 영 실감이 나지 않는 모양이었다.
우리가 낳은 첫아이가 벌써 중학교 갈 나이가 되었다니.
교복을 입은 아이 모습을 눈앞에서 보면서도, 나도 잘 믿기지 않았다.
2003년에 태어난 딸아이가 14살이 된 지금까지
10년 남짓에 불과한 세월이지만
그동안 세상은 놀랄만큼 크게 변했다.
지난주 <비정상회담>이란 예능프로에서
'각 나라 어린이의 행복을 위협하는 사회 이슈'를 다루는 걸 보았는데,
이날 게스트로 출연한 권오중은
자신의 아이가 고2라고 소개하며
한국 사회에서 아이를 키우는 고충을 솔직하게 털어놨다.
자신의 아이는 초등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줄곧 꼴등을 해왔는데,
그동안 폭행도 당하고 왕따도 당하고
정말 많은 일을 겪었다,
이런 과정이 아이나 부모의 성장에 도움이 되기도 하겠지만,
그걸 이겨내는 과정이 한국에서는 너무 힘들다고 했다.
'아이 키우면서 한이 너무 많다'는 그의 말이
같은 부모로서 가슴 깊이 와 닿았다.
우리는 어쩌다 이리,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자식을 낳아 키우면서
만족과 행복보다 셀 수도 없이 많은 불안과 '한'을 쌓으며 살게 되었을까.
조기교육과 사교육이 상식이 된 시대에
아날로그 육아, 슬로 육아로 첫아이를 지금까지 키운 나의 내면에도
무어라 설명하기 힘든 감정이 차곡차곡 쌓여 있는 것 같다.
아이가 중학교에 들어갈 즈음이 되면,
부모의 이런 부담과 스트레스가 거의 포화상태에 이르게 되고
아이가 그런 기대에 적절히 반응해 주거나 성과를 제대로 보이지 않게 되면
서로에게 힘든 사춘기를 보내게 되는 것 같다.
초등 고학년을 거치면서 짧은 2,3년 사이
아이는 그 이전과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된다.
기본적인 아이의 성향은 크게 변함이 없지만
몸도 마음도 '내가 알던 그 우리 아이'가 아닌 다른 존재 같다.
얼떨떨하고 당황스럽고 어떻게 다가가야 할지도 모르겠는데
아이는 점점 자신만의 세계로 벌써 내면의 짐을 챙겨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
우리집 아이도 짐을 싼 지 벌써 오래인 것 같다.
아이들의 행복을 위해 다른 부모들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이란 질문에 권오중은 이렇게 말했다.
"누가 100억 준다고, 1000억 준다고 해서
우리 아이를 그 돈과 바꾸진 않을 거 아니냐.
그런데 우리는 평생 10억 벌기도 힘든데 일에만 매달려
100억, 1000억이 넘는 아이를 외면하고 있다.
아이와 함께 부모들이 좀 더 많은 경험과 추억을 쌓길 바란다."
동네 산책만 나가도 깡총깡총 뛰며 좋아하고,
따스한 봄날, 딸기밭에 가면 세상을 다 가진 듯 황홀해 하는 시기도
다 지나고 보면 정말 짧다.
열 서너살만 되어도 아이와 부모의 관계가 역전되어
이젠 부모가 가자고 졸라야 마지못해 따라나서는 때가 금방 온다.
남편과 나는, 유난히 밖에 나가는 걸 좋아했던
예전의 딸아이를 벌써 그리워 한다.
부모보다 친구와 있을 때 더 활짝 웃는 사춘기 아이를 보며
아쉬움과 허전함을 느끼지만, 그래도 지난 시간동안
아이와 동네 한 바퀴라도 더 돌며 산책했던 것,
하나라도 더 경험하고 보여주려 노력했던 시간과 추억들이 있어
참 다행스럽다.
우리의 첫아이는 이제 중학교에 가서
지금과는 또 다른 세계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인간으로서 가장 민감하고 섬세한 시기를 보내게 될 아이를 위해
부모로서의 내 마음의 폭을 더 넓고 깊게 가져야 할 때가 왔다.
봄의 기운이 온 세상을 가득 채우는 요즘,
우리 첫아이의 삶에는 지난 방의 문이 닫히고
새로운 세계의 문이 열리고 있다.
아가. 그동안 수고했어.
앞으로 또 열심히 응원할께.
망설임없이 성큼 새로운 세계의 문을 열고 들어선 딸 뒤에서
엄마는 오늘도 두근두근 조마조마하며 지켜보고 있다.
엄마는 언제까지나 소심할 수 밖에 없는 운명..^^
새내기 중학생들, 그리고 엄마들,
이만큼 자란 것, 그리고 이만큼 키운 것
함께 축하해요.
아이가 태어난 뒤로 수도 없이 묶었던
신발끈을 다시 한번 단단히 묶고 또 시작합시다.
모두모두 화이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