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등 6학년인 큰아이가 두고두고 그리워하는 선생님이 있다.
아이가 2학년 때 담임을 맡았던 선생님이었는데,
고학년 담임을 오래 지내다가 저학년을 오랜만에 맡아서 그런가,
첫인상부터 무섭고 늘 엄한 표정에 9살 아이들을 대하는 말투도
그리 친절한 편이 아닌 분이었다.
첫 수업참관에 갔을 때 아이들의 그 얼어있던 분위기란..
마음이 솜털처럼 여렸던 큰아이가 담임 선생님이 무서워
학교가기 싫다고 하면 어쩌나...하는 걱정이 들만큼
아이는 새학기 내내 긴장한 채 학교를 다녔다.
그런데 그렇게 1학기가 지나고 2학기가 끝나갈 무렵,
반 아이들 대부분이 그토록 비호감이었던 담임 선생님을
너무나 좋아하는 기현상이 일어나 버렸다.
쉬는 시간만 되면 선생님 책상 곁으로 와글와글 모여드는 것도 모자라,
책상 밑에 기어들어가 선생님 다리라도 만지며
소심한 성격의 큰아이도 그 무리들 속에 섞여
쉬는 시간 대부분을 보냈다고 하니,
아이들의 마음을 이렇게까지 사로잡은
이 선생님의 인기비결이 나는 늘 궁금했다.
2학년이 다 끝나갈 무렵,
아이가 학교에서 가져온 가정통신문의 한 귀퉁이에서
그제서야 나는 이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사랑받았던 이유를
발견할 수 있었는데, 2학년 담임을 끝내는 선생님의 소감 란에는
이런 글이 쓰여 있었다.
"고학년만 오래 담당해 왔던 저는 이번에 맡은 저학년 담임에 적응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렸습니다. 학기 초에는 우리말이 통하지 않을 만큼
통제가 어려운 아이들과 지내며 당황스러웠던 적이 많았지요.
가족과 함께 여행갔던 곳을 다시 한번 찾아가 보기로 했습니다.
어렴풋했던 9살 때의 기억과 감성들이 여행하는 동안 하나씩 떠오르기 시작하더군요.
그곳에서 '아! 우리반 아이들이 세상을 보는 느낌이 이렇겠구나..' 생각하며,
여행지에서 9살 아이가 다시 되어보는 기회를 가졌습니다.
조금은 아이들의 마음에 다가간 느낌이 드는 소중한 시간이었고,
그런 마음으로 아이들과 보낸 지난 1년은
교사로서의 저에게 무척 소중한 경험이 되었습니다."
아. 그랬구나.아이들이 이 선생님을 좋아했던 이유는 바로 이것 때문이었던 것이다.
아이들은 알아보았던 것이다.
이제는 다른 학교로 전근을 가신 그 선생님을 몇 년이 지난 지금까지,
아이도 부모인 나도 가끔 그리워 하게 된다.
이젠 더 이상 가까이 있지 않지만
아이의 추억 속에서 여전히 우리 아이를 키우고 계신 선생님..
자신의 어린 시절을 애써 돌아보며, 아이들과 성실하게 관계를 맺으려 애쓰는
그건 어쩜 우리 어른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나의 말에 귀 기울여주고 아직 나에 대해 잘 모르더라도
이해하려는 마음과 눈빛으로 나를 응시하는 이에게
자연히 끌리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초등 1학년과 6학년인 두 아이는
나날이 거칠어지고 삭막해져가는 대도시의 초등학교를 다니고 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가끔은 위태롭게 보이는 상황들도 그럭저럭
잘 이겨내며 매일 아침 웃는 얼굴로 학교에 간다.
소심한 두 아이의 이런 학교 생활 이면에는
좋은 담임 선생님의 존재가 무척 큰 힘을 발휘하고 있다.
마음이 여린 두 아이를 둔 부모로서 이보다 더 다행스러운 일이 있을까.
두 아이를 키우면서 '내가 제대로 잘 하고 있는지' 헤매게 될 때마다
아이들 덕분에 인연을 맺었던 좋은 선생님들을 떠올려 보곤 한다.
교육의 성패는 테크닉이 아니라 관계와 소통의 힘에 달려있다는 걸,
그분들을 통해 배웠다.
제대로 된 부모 노릇만큼이나 좋은 교사가 되는 일이
너무나도 어려운 시대가 되었다.
부모- 교사 - 아이를 잇는 관계가 서로 돕고 소통하기보다
서로를 감시하고 의심하는 일이 더 많아진 요즘이다.
아이의 마음 아니, 인간의 마음을 이해하는 일의 어려움과 소중함을
아는 선생님의 존재는 아이들의 성장에 큰 힘이 된다.
좋은 선생님은 자신의 평생에 걸쳐 수없이 많은 아이들의 삶에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것이다.
아이들은 학교를 다녀와서도 저녁밥을 먹으면서도
"오늘 선생님이 있잖아..."
이렇게 말문을 열며, 선생님의 한마디나 행동, 재밌었던 표정,
집에서 기르는 애완동물 이야기 ... 들을 날마다 쏟아낸다.
아이들에겐 정말 둘도 없는 '의미있는 타인'인 셈이다.
올 한 해, 두 아이가 누린 선생님 복이 내년에도 또 이어지란 법은 없지만
얼마 남지않은 1학년과 6학년의 하루하루를 소중하게 보내고 싶다.
오늘은 또 두 아이가 선생님과의 어떤 에피소드들을 들고 올까.
저녁이 기다려진다.
초등학교에 입학해 처음으로 맞은 가을 운동회날의 둘째. 그새 또 자랐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