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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간 이어진 휴일의 마지막 날 일요일.

혼자 광명역에서 KTX를 탔다. 대전 유성에서 강의가 있기 때문이다.

아.. 혼자 타는 기차..

아련하고 행복했다.

빠르게 달린 기차는 한 시간여 만에 나를 햇빛 뜨겁게 비치는 대전역에 내려 주었다.

정오가 막 넘어서는 시간..

강의는 오후 2시. 시간이 넉넉하다.

망설일것도 없이 역 앞의 중앙 시장으로 향한다.

그 도시가 어디든 오래되고 큰 시장은 내가 사랑하는 장소다.

그 도시의 냄새와 목소리가 흠씬 느껴진다.

어딘가 가볍게 요기를 할 만한 곳을 눈으로 찾다가 호박죽 냄새를 맡았다.

대전 할머니들 사이에 끼어 앉아 4천원짜리 호박죽을 주문했다.

죽은 뜨겁고 부드러웠다.

- 노인네들, 혼자 집에 있을때 이렇게 나와서 죽 한 그릇 사 먹는거 좋아유 -

내 옆에 있는 할머니가 딱히 누구에게라고 할 것 없이 한 마디 하신다.

- 암유, 암유 -

그 옆에 앉아 팥죽을 후후 불며 드시던 할머니가 맞장구를 친다.

- 애기 낳고 온 몸이 퉁퉁 부었을때 이 호박죽 한 양푼 끓여 먹었더니 붓기가 쑥 빠지더라구-

- 팥죽도 그렇게 좋대유. 나는 몸이 좀 안 좋으면 이 팥죽 생각이 그렇게 나드라구-

- 나도 일 하다가 허리를 다쳐서 을매나 고생을 했는지.. 그래두 일 하던 사람이 한달을 쉬려니까

그것두 죽겠드라구.. 그래서 다시 일을 시작했더니 내가 하던대로 안 해 놔서 다시 다 제대로 하느라구

아주 힘들어 죽어유-

- 허리에 복대를 꼭 차구서 하시지-

- 복대두 하구 약두 먹는디 그래두 아프고.. 이러다 완전히 망가져야 일을 그만 둘라나-

서로 모르는 사이가 분명한 두 할머니 수다가 재미나서 슬쩍 끼어 들었다.

- 아이구, 그래도 더 쉬시지, 허리 더 아프시면 어쩌시려구요-

- 그게 일 하던 몸이라 쉬는 것두 징역이여-

- 어디서 일 하시는데요?-

- 춘대병원에서 청소해유-

- 에고 힘드시겠네.. 살살 하셔야겠다-

- 여기 호박죽이 맛있어유. 우리 아들은 기침할때도 이 호박을 푹 대려서 먹이니까 금방 낫더라구-

- 그러게요. 그러면 좋은데 요즘 젊은 엄마들은 그런거 잘 안해요. 아드님도 나이가 적지 않으실텐데

어르신이 잘 챙겨주시네요-

- 우리 아들은 닭도 튀긴거 이런거 안 좋아하구 내가 감자, 큰거 말고 중간거 딱 절반씩만 잘라서 숭더숭덩

넣고 고추장이랑 고춧가루 잔뜩 넣고 바글바글 빨갛게 끓여주면 그게 그렇게 맛있대유-

- 아이고 말만 들어도 맛있겠네요-

아들 얘기만 나오면 언제건 신이 나는... 나도 이런 할머니가 되는 걸까..

- 여기 호박죽 조금만 더 주세유-

할머니가 빈 죽그릇을 내밀자 주인은 인심좋게 반 넘게 죽을 더 퍼준다.

4천원짜리 죽을 팔면서 다 먹으면 또 떠주는구나, 이런 인심이 반가와서 나도 염치없이 죽그릇을 또 내밀었다.

- 이번엔 팥죽으로.. 조금만.. 맛만 보게 조금만 주세요-

작은 소리로 말 했더니 주인은 아무렇지 않게 한 국자 푹 떠 주었다.

구수한 팥죽과 따스한 마음을 정성껏 떠 먹었다.

잠시 친구가 되어준 두 할머니에게 인사를 하고 일어났다. 배도 마음도 뿌듯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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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시간이 남았다.

오래된 시장을 천천히 걸어 보았다.

내 손을 잡고 청양시장을 돌아다니던 외할머니 생각도 나고, 며느리들과 함께 강릉 중앙시장을 누비던

어머님 생각도 난다. 두 분다 지금은 세상에 안 계시다.

시장은 할머니와 엄마에 대한 추억이 가득한 곳..

사방에 외할머니와 시어머님과 내 엄마같은 사람들이 오간다. 이 귀하고 사랑스런 사람들의 살림살이도

살만한 것이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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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 주택가 한 켠에 자리한 마을 조합 까페 '공유'의 푸른색 가득한 실내에서 스므명 남짓 모인 사람들을

앞에 두고 세시간 넘게 이야기를 풀었다.

사람들은 웃고, 안타까워 하고, 심각해졌다가 다시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내 이야기를 들으러 온 사람들을 만나는 일은 언제나 감격스럽고 조금 부끄럽다.

내 글을 아끼는 한 독자의 열정으로 마련된 자리.. 소박하고 진한 마음들이 가득했다.

돌아오는 기차를 타러 서대전역으로 오는 동안 이룸이는 아빠가 닭을 사와서 닭볶음탕을 해 주셨는데

생각한것보다 훨씬 맛있다며 사진을 찍어 보내주었다.

남편에게 전화를 했다.

- 이제보니 닭볶음탕도 잘 하는구먼. 내가 먹을것도 있어?-

- 그럼 -

남편의 목소리에 힘이 가득 들어있다.

- 그럼 저녁 안 먹고 간다-

- 그래, 어서 와-

전화를 끊는데 가슴이 꽉 차 올랐다.

내가 없어도 남편은 아이들을 든든하고 맛있게 챙겨 먹이고 있고 마누라 먹을 것 까지 챙겨 놓는구나.

고맙다, 참 좋다.

서대전역에서 6시 57분 기차를 탔다.

정오에 죽 두 그릇 먹고 세시간 넘게 강연하고 생강차와 쿠키 몇 개 먹은게 다 인데도 배가 고프지 않다.

빨리 집에 들어가 남편이 만들어 놓은 닭볶음탕을 먹고 싶다.

광명역에서 남편을 만나 집에 들어가는 동안 남편은 신이 나서 닭볶음탕 레시피를 읊었다.

차가 마당에 들어서자마자 이룸이가 달려와 나를 안아 주었다.

- 닭볶음탕 맛있어서 다 먹을려고 했는데, 오빠가 안된다고 엄마꺼 남겨야 한다고 소리쳐서

닭고기 두 조각만 먹고 남겼어요 -

그렇구나. 아들 녀석도 엄마 챙기느라 애썼구나.

커다란 닭고기가 네 조각이나 남아 있는 닭볶음탕을 다시 데워 덜 먹었다는 이룸이랑 같이 맛있게 먹었다.

내가 만든 것보다 훨씬 더 맛있다.

- 이렇게 잘 하면서 그동안 한번도 안 해준거야? 다음엔 두 마리 사다가 해줘 -

닭볶음탕 국물을 훑어 먹으며 남편에게 얘기했다.

남편은 빙글빙글 웃었다.

시간이 흐르는 동안 나도, 남편도, 아이들도 다 자랐구나, 많이 자랐구나..

감사한 마음이 뿌듯하게 차 올랐다.

4일간의 휴일이 지나갔다.

하루 하루가 참 좋은 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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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순화
서른 둘에 결혼, 아이를 가지면서 직장 대신 육아를 선택했다. 산업화된 출산 문화가 싫어 첫째인 아들은 조산원에서, 둘째와 셋째 딸은 집에서 낳았다. 돈이 많이 들어서, 육아가 어려워서 아이를 많이 낳을 수 없다는 엄마들의 생각에 열심히 도전 중이다. 집에서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경험이 주는 가치, 병원과 예방접종에 의존하지 않고 건강하게 아이를 키우는 일, 사교육에 의존하기보다는 아이와 더불어 세상을 배워가는 일을 소중하게 여기며 살고 있다. 계간 <공동육아>와 <민들레> 잡지에도 글을 쓰고 있다.
이메일 : don3123@naver.com      
블로그 : http://plug.hani.co.kr/don3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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