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사랑 다엘

‘싱글맘의 날’을 아시나요

좌담회에서 쏟아진 미혼모들의 생생한 증언

제1184호
등록 : 2017-10-25 05:00 수정 : 2017-10-26 09:47
미혼모 단체 ‘인트리’ 좌담회 참석자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정은주

 

지난 9월 미혼모 단체 ‘인트리’에서 개최한 좌담회에 참석했다. 미혼부모 연구를 진행하는 일본 도요대 교수와 우리나라 미혼모들이 만나는 자리였다. 이곳에서 미혼모들의 생생한 증언을 들을 수 있었다. 한 미혼모는 아이의 생부가 양육비 지급은 않고 면접교섭권을 수시로 행사하는 현실을 개탄했다. 빼앗듯이 아이를 데려가서 키즈카페 같은 곳에 방치하곤 한다는 것이다. 의무는 묵살하고 권리만 챙기는 남자에게 한국의 법은 한없이 관대했다. 이날 참석자들은 국가의 복지 혜택을 알아보기 위해 수없이 인터넷을 검색하고 스스로 발로 뛰었던 경험을 얘기했다. 그러나 정작 공공기관에 발을 디디면 담당자들의 무례한 태도에 거듭 상처받아야 했다. 사생활을 함부로 파헤치기 전에 미혼모의 개인 상황에 맞는 정서적 지지가 먼저 이뤄져야 한다고 이들은 입을 모았다.

 

이날 만난 미혼모들은 낙태 등 성적 자기결정권, 사회적 지원의 필요성을 당당히 주장했다. 앞으로 학교 성교육에서 미혼모 이슈를 다뤄 자신과 같은 상황이 되었을 때 현실적 대처법을 가르치면 좋겠다는 당부도 덧붙였다.

 

이들의 합리적인 주장은 국가의 탁상행정이 보이는 무능을 넘어 복지가 가야 할 방향을 보여주었다. 한편으로 이와 대척점에 서는 부조리한 주장을 떠올려본다. 학생에게 미혼모 교육을 하면 미혼모 발생을 조장한다거나, 입양 활성화를 강조하면 원가정 해체를 불러온다는 말 등이다. 심지어 한 매체의 기자는 미혼모를 인터뷰하면서 ‘미혼모를 줄일 방법이 있느냐’고 물었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차별을 문제 삼는 대신, 당사자의 정체성을 정면 부인하는 질문을 한 것이다.

 

5월11일은 정부가 지정한 ‘입양의 날’이다. 몇 년 전부터 이날을 ‘싱글맘의 날’로 기념하는 단체들이 등장했다. 미혼모에게 양육 기회를 주지 않는 현실을 고발하며 ‘입양의 날’을 반대하기 위해서다. 사회보장이 잘된 선진국에선 미혼모가 자기 아이를 입양 보내는 일이 거의 없다고 했다. 좋은 지적이다. 두 가지 상황을 먼저 고려한다면 말이다. 시설에서 입양을 기다리는 아동 수에 비해 예비 입양부모 수가 턱없이 부족한 우리나라의 현실, 여성에게 피임이나 낙태, 입양 또는 양육에 대한 실질적 선택권이 있는 선진국의 현실이 그것이다.

 

같은 날을 기념일로 삼은 것은 역설적으로 미혼모와 입양가족이 한 배를 탔음을 보여준다. 이제는 무의미한 대립 구도를 만드는 대신 미혼부의 책임을 강화하는 일에 매진할 때라고 생각한다.

 

정은주 ‘사전의료의향서 실천모임’ 웰다잉 강사

 

 

(* 이 글은 한겨레21 제 1184호(2017. 10. 30)에 실린 글입니다.)

  • 싸이월드 공감
  • 추천
  • 인쇄
정은주
딸이 뇌종양으로 숨진 후 다시 비혼이 되었다. 이후 아들을 입양하여 달콤쌉싸름한 육아 중이다. 공교육 교사를 그만두고 지금은 시민단체 '사전의료의향서 실천모임'의 상담원이자 웰다잉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일산지역의 입양가족 모임에서 우리 사회의 입양편견을 없애기 위한 공부를 하고 있으며 초등 대안학교에 다니는 아들과 함께 대안교육 현장의 진한 경험을 쌓아가고 있다.
이메일 : juin999@hanmail.net      
블로그 : http://plug.hani.co.kr/heart

최신글

엮인글 :
http://babytree.hani.co.kr/31753694/9ea/trackback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수sort
1985 [김태규 기자의 짬짬육아 시즌2] 관중도 없는 각본 없는 드라마 imagefile [6] 김태규 2015-05-29 37737
1984 [김외현 기자의 21세기 신남성] 남편이 본 아내의 임신 - (2)망가지는 몸매 image 김외현 2012-05-03 37629
1983 [김미영 기자의 공주들이 사는 법] 셋째 아이의 발육(?)이 유달리 남다르다고요? imagefile 김미영 2011-08-01 37621
1982 [세 아이와 세상 배우기] 열 살 아들, 머리를 묶다!! imagefile [9] 신순화 2012-01-09 37461
1981 [양선아 기자의 육아의 재발견] 아이 머리 감길 때 울리지 않는 나만의 필살기 imagefile [16] 양선아 2012-07-05 37429
1980 [즐거운아줌마의 육아카툰] [육아카툰59편] 광화문 촛불집회를 다녀오니~ imagefile [6] 지호엄마 2016-11-29 37426
1979 [양선아 기자의 육아의 재발견] 말괄량이 삐삐 한강서 다시 만나다 imagefile [5] 양선아 2013-09-02 37389
1978 [김외현 기자의 21세기 신남성] 아들 2호야, 미안. 아! 미안 imagefile [6] 김외현 2012-12-21 37332
1977 [양선아 기자의 육아의 재발견] 여자 친구와의 우정, 느낌 아니까~ imagefile [3] 양선아 2014-01-16 37325
1976 [양선아 기자의 육아의 재발견] [산전검사 체험기] 다운증후군 고위험군이라니, 헉! imagefile 양선아 2010-06-06 37280
1975 [즐거운아줌마의 육아카툰] 만약 둘째 아이가 생긴다면... imagefile [13] 지호엄마 2012-02-27 37269
1974 [동글아빠의 육아카툰] [육아카툰] 울보공주의 눈물보 imagefile 윤아저씨 2010-10-08 37179
1973 [사진찍는 엄마의 길 위의 생각] 말레이시아 게임 하다 진짜 말레이시아로! imagefile [9] 빈진향 2013-04-19 37143
1972 [양선아 기자의 육아의 재발견] 밤의 ‘악마’, 잠버릇 길들이기 imagefile 양선아 2011-01-28 36919
1971 [사진찍는 엄마의 길 위의 생각] 촘백이 만든 평상에 놀러 오세요. imagefile [1] 빈진향 2013-05-24 36900
1970 [세 아이와 세상 배우기] 눈 앞에 펼쳐진 동해바다는 그저 달력일뿐 imagefile 신순화 2011-09-16 36839
1969 [세 아이와 세상 배우기] 오빠는 하향, 동생은 상향 평준화 imagefile 신순화 2010-12-14 36823
1968 [동글아빠의 육아카툰] [육아카툰] 등반 imagefile 윤아저씨 2011-07-21 36819
1967 [베이스맘의 베이스육아] 빅뱅 태양머리는 무슨! 단발령 잘못 내렸다가 큰일날뻔.. imagefile [12] 전병희 2012-04-19 36689
1966 [양선아 기자의 육아의 재발견] 여름 휴가 여행 전후, 아들이 달라졌어요 imagefile [4] 양선아 2013-08-14 366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