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123_07.jpg » 재래시장, 한겨레 자료 사진.

“여기였던가….”

얼마 전 ○○시장 그 자리에 다시 섰다. 당최 알아볼 수가 없다. 구조가 많이 바뀌었다. 없던 지붕이 생겼다. 좌판은 사라지고 건물이 들어섰다. 너무 오랜만에 온 모양이다. 결국 내가 기억하는 고추가게는 찾지 못했다.

어릴 적 이모를 따라왔다가 손을 놓쳤던 곳이다. 내가 만 두살 반쯤 됐을 때다. 아찔한 기억이라 그런지, 아직 어릴 땐데도 그 장면이 생생하다. 추운 겨울날 두툼한 옷차림으로 시장을 오가던 사람들. 좌판을 벌여놓은 상인들. 엉엉 우는 나를 보며 “무슨 일이니”라고 묻던 고추가게 아줌마. “우리 이모 찾아주세요”라고 울부짖던 나. 사람들을 헤치고 나타나 돌아온 이모의 혼비백산한 표정. 거기까지, 두세살 때 기억은 그게 유일하다.

사건 발생 10여년이 지난 중학생 시절, ○○시장에 다시 간 적이 있다. 고추가게가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이모가 “그걸 어떻게 기억하느냐”며 신기해 하셨다. 주위 풍경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고추가게 아줌마의 얼굴도 기억 속 그 모습이었다. 기분이 묘했다. 그러나 다시 20년이 지나 이번에 갔더니 시장 모습은 완전히 뒤바뀌어, 나의 기억과 트라우마는 증거를 잃어버렸다. 어쩌면 그 가게는 그대로 있었을지도 모른다. 단지 내가 대선 후보를 따라갔더니 유독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내 경우엔 어릴 때의 충격적인 일이 기억에 남았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은 모양이다. 나와 비슷한 연배의 방송 작가 ㄱ씨는 그보다 더 이전의 기억이 있다고 했다. 난로 위 주전자가 보글거리는 소리, 천정에 매달린 모빌이 흔들리는 모양, 엄마가 설거지하며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기억이 난단다. 그러다 ‘이동사진관’에 들어가 사진을 찍었단다. 그때만 해도 카메라 장비를 트럭에 싣고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어주고 돈을 받는 이동사진관이란 곳이 있었다.

ㄱ씨는 그게 언제의 기억인지 몰랐다. 어느날 엄마와 이야기를 나누다 알게 됐다. “엄마, 나 이동사진관에서 사진 찍었던 적 있었어요?” “아니, 네가 그걸 어떻게 아니. 그게 돌 사진이었을텐데.” ㄱ씨는 정작 그 사진을 본 기억이 없다고 했다. 몇 차례 이사를 다니다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아이가 얼마나 어릴 때부터의 일을 기억하는지를 알아내는 건 사실 쉬운 일이 아니다. 기억을 확인하는 작업은 대개 언어로 이뤄지는데, 아이의 언어 능력은 기억을 표현하기에 충분치 않은 경우도 많다. 두세살 아이에게 “아빠랑 동물원 갔던 거 기억나?”라고 물어도 아이가 모를 때, 과연 정말 기억을 못 해선지 그걸 표현할 능력이 부족해선지는 알 수 없다. 우리 삶에 늘 좋은 일만 있는 것도 아니니, 시장에서 이모 손을 놓쳤을 때의 절망이나 엄마·아빠의 말다툼 같은 나쁜 기억은 차라리 없는 편이 부모로선 덜 미안한 일이다. 하지만 아이들이 다 알면서도 단지 표현을 못 하는 것 뿐이라면, 한결 아이 앞에서의 행동거지가 조심스럽다.

그러니 언어 능력이 일취월장하는 시기에 어떤 비화가 터져나올지 모른다. 어느날 아이를 재우던 한 선배는 아이의 이야기에 깊은 고민에 잠겼다. “아빠, 4살 땐가 5살 땐가 가물가물한데, 집밖으로 쫓겨나서 울었어.” “그래? 왜 쫓겨난거야?” “그건 기억 안 나고, 그냥 쫓겨나서 울었던 것만 생각나.”

큰 아이가 어느덧 30여년 전 ○○시장에서 이모 손을 놓쳤던 나와 비슷한 또래가 됐다. 새해엔 아이에게 좋은 기억을 많이 만들어줘야겠다.

** 이 글은 월간 육아잡지 <맘&앙팡>(디자인하우스) 2013년 1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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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외현 기자
아이 둘의 아빠인 <한겨레21> 기자. 21세기 인류에게 육아는 남녀 공통의 과제라고 믿는다. 육아휴직 등으로 나름 노력해봤지만 역시 혼자 가능한 일은 아니며, 사회적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걸 어렴풋하나마 알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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