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1219_1.JPG » 한겨레 자료 사진


초등학교 동창회가 다시 불이 붙었다. 10여년 전엔 ‘아이러브스쿨’이란 웹사이트가 주도하더니, 이번엔 ‘밴드’라는 모바일서비스가 주역이다.

아이러브스쿨 시절 20대 중반이던 우리는 대부분 미혼이었다. 아직 학생이거나 또는 사회생활 초년병인 푸른 시절이었다. 당시 꽤 많은 선배님들은 추억여행의 금도를 넘어서면서 가정불화를 일으켰다. 사회적 문제가 됐다. 싱글인 우리는 자유로웠다. 오히려 그 시절 만난 동창과 연애를 시작하기도 했다. 결혼에 골인한 경우도 있었다.


그러다 흐지부지 10여년 연락이 끊긴 채 지냈다. 30대 후반이 되어 다시 만난 우리는, 일부 ‘화려한 싱글’을 빼면, 다수가 엄마, 아빠가 돼있었다. 프로필 사진은 저마다 자기를 닮은 아이들 사진이었다. 고향 사투리로 반갑다는 인사를 나눴다. 한 친구가 ‘우리는 바람피우지 말자’는 글을 올렸다. 다들 킥킥댔다.

어느날 온라인으로 수다를 떨다가, 이럴 게 아니라 실제로 한 번 보자고 했다. 몇주 뒤 금요일 저녁 남녀 각각 절반씩 열댓 명이 모였다. 왁자지껄 수다를 떨다가 자정을 넘기면서부터 두 여자동창의 전화기에 불이 났다. 전업주부인 아내들에게 “왜 아직 안 오냐”며 귀가를 재촉하는 남편들의 전화였다.


10분마다 걸려오는 전화를 받던 한 친구의 하소연. “사실 나도 할 말이 없지. 예전에 내가 그랬거든. 10분마다 전화 걸어서 빨리 안 오고 뭐하냐고 했지. 그때는 너무 밉더라고. 나는 혼자서 집에서 애들한테 시달리는데, 자기는 뭘 하는지 맨날 밖에서…. 일하다보면 그럴 일이 있는 걸 모르는 건 아니지만, 나는 나대로 속상해서. 그런데, 참 우습지. 나는 이런 날이 올 줄 몰랐지. 남편이 지금 나한테 복수하는 거야.” 아이 넷의 엄마인 친구는 클클 웃더니, “이젠 가야겠다”며 먼저 자리를 떴다.


또 다른 친구는 싸늘한 표정으로 한참 전화통화를 하다가, 테이블로 돌아와 수다에 재합류하기를 반복했다. 이 친구는 자리가 파한 새벽 4시까지 남아있었다. 귀가 뒤 아침 ‘밴드’에는 “내 결혼생활 8년을 걸고 마신 술이었다. 남편이 삐쳤다. 우리 이제 10년 뒤에 보자”는 비장한 글이 올라왔다. 하지만 이튿날 “남편 화 풀림 ㅋㅋ (남편이) 베이컨 넣고 볶음밥 해줘서 딸이랑 먹고 있음”이란 ‘낭보’를 전해왔다. 다행이었다.


남자동창들도, 차이는 있었겠지만, 다들 마음에 미안함과 부담을 갖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자정께 마감이 끝나고 귀가하는 길에 ‘설마 아직 하고 있을까’ 하는 마음에 잠시 들렀던 길이었다. 집에는 아무 얘기를 하지 못했다. 모임 참석 뒤 토요일 아침 티 안 내려고 평소와 똑같이 일어나 주말을 보냈더니 그 주는 유독 피곤했다. 결국 지금까지도 말을 못하고, 이 지면을 빌어서 ‘동창회 참석’을 고백하려니 미안스럽다.


그날 모임 뒤 ‘밴드’에 자주 등장하는 말이 있다. “마일리지 쌓아서 다음에 또 보자.” 가정에 충실한 모습으로 믿음을 충분히 쌓은 뒤, 다음 동창회 때는 시간 걱정 말고 놀자는 뜻이다.


10여년 전 동창회 땐 연애와 취업 얘기로 밤을 지새웠건만, 이제는 제일 큰 화제가 애 키우는 얘기다. 애들은 몇이냐, 몇 살이냐, 어떻게 키우냐, 뭐하고 노느냐, 어디가 좋냐, 뭘 가르치냐 등등 끝이 없다. 이런 분위기에서 도대체 선배들은 어쩌다 바람이 난 건지 의문이 들 정도다. 나도 앞으로 마일리지를 쌓겠다는 심정이긴 한데, 아, 아무래도 뒤늦은 고백 탓에 되레 좀 까먹었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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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외현 기자
아이 둘의 아빠인 <한겨레21> 기자. 21세기 인류에게 육아는 남녀 공통의 과제라고 믿는다. 육아휴직 등으로 나름 노력해봤지만 역시 혼자 가능한 일은 아니며, 사회적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걸 어렴풋하나마 알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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