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G_3938 (1).JPG » 가평 카라반 오토캠핑장의 외관.

 

오랜만의 일이었다. 너무 오랜만이라 내게는 처음 있는 일처럼 느껴졌다. ‘방콕’을 좋아하는 남편이 갑자기 카라반(캠핑카) 가족 여행을 떠나자 제안했다. 이게 웬 떡인가!
 
평소 주말 나들이 문제로 옥신각신해온 우리 부부. 남편은 주말에는 가급적 집에서 가까운 곳, 예를 들면 놀이터 같은 곳에서 아이들과 놀고 집에서 맛있는 음식 해 먹으며 한가로운 주말 보내는 것을 선호한다. 반면 나는 주말에 어디론가 콧바람 쐬러 나가고 싶고, 아이들에게도 다양한 경험을 시키고 싶은 욕구가 강하다. 그래서 매번 어디에 가자고 할 때마다 나는 남편에게 “또 역마살 도졌나”라는 핀잔을 들어야했다. 자꾸 나들이 문제로 의견 충돌을 빚자 언젠가부터 나는 남편에게 어디가자는 제안을 하지 않게 됐다. 차라리 나 혼자 아이 둘을 데리고 외출하는 편이 낫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9월 초였나. 남편이 온라인상의 아주 멋진 풍광의 카라반을 보여주며 “우리 여기 가보는 것 어때?”라고 말했다. 카라반이 남편의 야성을 건드린 듯싶었다. 나는 속으로 “아싸~”하고 쾌재를 부르며 “좋아! 아이들 정말 좋아하겠다~”라고 답했다. 카라반에 대한 로망이 있었던지라 아이들과 함께 그 낭만을 즐기고 싶었던 마음이 강했다.
 
그렇게 해서 우리 가족은 지난 9월 말 경기도 가평에 있는 카라반 오토캠핑장으로 1박2일 여행을 떠났다. 가평 주변에 가볼만한 관광지를 둘러보니 아침고요수목원과 남이섬, 쁘띠 프랑스마을이 소개돼 있었다. 하필 여행을 떠난 날 하늘은 흐리고 비가 곧 쏟아질 것만 같았다.
 
IMG_3597 (1).JPG » 아침고요수목원에서 만난 예쁜 꽃.

 

일단 카라반 오토캠핑장에 가는 길에 아침고요수목원에 들렀다. 아이들에게 자연을 더 많이 느끼게 하고 싶지만 항상 시간이 부족했던 터였다. 다른 곳보다 수목원에 꼭 들르고 싶었다. 대학생 때 가보고 아주 오랜만에 들른 아침고요수목원은 세월만큼이나 많이 변해 있었다. 더 많이 다듬어져 있었고, 수목원 내에 음식점이나 카페 등 상점들도 들어서 있었다. 수목원 길은 아주 완만해 아이들과 산책하기 딱이었다. 시냇물이 졸졸 흐르는 곳과 구름 다리, 징검다리 등등 아기자기한 자연의 요소요소가 곳곳에 배치돼 아이들은 너무 즐거워했다.

 

IMG_3605 (1).JPG » 졸졸졸 시냇물 흐르는 소리를 들어보는 아빠와 아이들.

 

IMG_3626 (1).JPG » 앙증맞은 선인장들.

IMG_3630 (1).JPG » 꽃과 거미줄에 관심이 많은 아이들.

 

IMG_3638 (1).JPG » 나뭇잎이 너무 커 무섭다는 딸.

 

 

요즘 거미와 거미줄에 관심이 많은 두 아이는 나무에서 거미줄을 발견할 때마다 “엄마! 거미줄이 있어~”라고 하며 소리를 질렀다. 공룡 꼬리처럼 기다랗게 늘어진 신기한 선인장을 보며 신기해했다. 두 아이는 대개 각종 전시관에 예쁘게 전시돼 있는 꽃보다 길가에 핀 꽃들과 개미들을 쭈그리고 앉아 쳐다보며 소곤댔다.
 
딸은 제비꽃을 책에서 봤는지 제비꽃을 찾아 헤매 다니기도 했고,(제비꽃은 봄에 피기 때문에 가을인 지금은 볼 수 없는데도 말이다) 100년 된 나무를 보며 어떻게 백년 넘게 나무가 살 수 있냐며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묻기도 했다.
 
이번 여행에서 또 하나의 발견은 남편이 식물에 관심도 많고 분재에도 관심이 많다는 사실이다. 평소 아파트 베란다에 앙증맞은 꽃 화분들을 들여오고, 상추 씨를 뿌려 작은 화분에 상추를 키우던 남편이긴 하다. 그러나 나는 그런 남편의 행동은 아이들에게 식물들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이번 수목원 탐방에서 남편이 작으면서도 위풍당당한 분재들을 보며 감탄하고, “나도 나중에는 이런 분재 키우고 싶다”고 말하는 것을 보고 식물 키우기가 남편의 주 관심사라는 것을 알게 됐다. 남편은 마당 있는 집(그것도 작은 연못이 있는)에서 분재도 키우고 다양한 나무도 키우며 그렇게 목가적인 삶을 살고싶어 했다. 당장이라도 가능하다면 마당 있는 집으로 이사해서 그렇게 살고 싶단다. 남편의 욕구, 남편의 소망 등에 대해 한 발자욱 다가선 느낌이었다. 여행을 하니 남편을 더 알게 되는구나…. 아파트 생활의 편리함을 완전히 포기하기 싫은 나로서는 당장 마당 있는 집으로 옮길 수는 없지만 언젠가는 남편 뜻대로 마당 있는 집으로 옮겨야겠다는 막연한 생각만 했다. 

IMG_3624 (1).JPG » 아이들이 이상한 선인장이라며 바라보던 선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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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G_3628 (1).JPG » 공룡 꼬리처럼 생긴 선인장. 아이들이 재밌어한 식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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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G_3606 (1).JPG » 남편이 관심있어 한 분재들.

 

 
수목원 곳곳을 둘러본 뒤 출출한 배를 움켜쥐고 카라반 오토캠핑장으로 향했다. 한번도 카라반 오토캠핑장에 가보지 않은 나로서는 카라반이 어떤 곳일까 궁금했다. 가서 보니 겉은 카라반이고, 안은 펜션이나 다름 없었다. 티비, 침대, 소파, 옷장, 샤워실, 샴푸와 린스, 바디 샴푸, 씽크대와 각종 그릇까지 없는 것이 없었다. 침대에 누우면 창이 큰 창문으로 하늘과 나무가 보였다. 작은 다락방을 연상시키는 구조였다. 아늑하고 은밀하고 아주 사적인 공간인 다락방. 다락방은 아이들이라면 누구나 좋아하는 공간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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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G_3937 (1).JPG » 카라반의 작은 창문이 그렇게도 재밌나보다. 들여다보고 안에 들어가 밖을 쳐다보는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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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카라반에 들어서자마자 침대에 올라 펄쩍펄쩍 뛰며 좋아했다. 냉장고도 열어보고, 화장실도 신기한 듯 들락날락했다. 그토록 작은 공간에 있을 것은 다 있으니 아이들로서는 많이 신기했을 것이다.
 
“아빠 고마워~~~~~~ 아빠 사랑해요!”“야~ 정말 신기하다!! ”
 
민지가 먼저 아빠에게 뛰어가 뽀뽀를 했다. 민규는 누나를 그대로 모방하며 “아빠 고마워요~ 사랑해요~”라고 했다. 아이들의 목소리에는 진심 어린 마음이 묻어 있었다. 남편은 아이들의 반응에 정말 뿌듯해하는 표정이었다. 아이들이 폴짝폴짝 뒤며 그렇게 좋아하는 모습을 보며 “그래~ 너희들이 이렇게 좋아하니 됐다~”하며 아이들을 꼭 안아줬다. 다소 무뚝뚝한 남편이 침대에 누워서 온 가족 ‘셀카’를 찍자는 제안까지 한 걸 보면, 아이들의 들뜬 목소리가 남편을 감동시킨 게 분명하다. 
 
오토캠핑장이라 우리는 음식도 많이 준비하지 않았다. 저녁은 주문해서 먹고, 아침은 누룽지와 김치로 가볍게 먹을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두꺼운 삼겹살과 새우, 버섯, 양파에 된장국과 밥까지 잘 차려진 밥상을 인상 좋은 주인 아주머니가 뚝딱 준비해주셨다. 비가 추적추적 내렸지만 오히려 선선하니 좋았다. 고기를 굽는 냄새가 고소했고, 남편과 나는 소주와 맥주를 시켜 술잔을 기울였다. 아이들은 밥을 먹으면서도 계속 카라반을 들락날락했고, 우리는 아이들이 그러든 말든 상관치 않고 오랜만에 이런저런 얘기들을 나눴다.

 

IMG_3696 (1).JPG » 평안하게 자는 아이들. 엄마는 자리가 비좁아 제대로 자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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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들아~ 비 오는 소리 들어봐”

다음날 아침에도 비가 아침부터 내렸다. 남편은 오랜만에 비 오는 소리를 듣는다며, 아이들에게도 비 소리를 들어보라 했다. 남편은 전날에도 수목원에서 시냇물이 흐르는 소리에 귀를 기울여보라며 아이들과 시냇물 앞에 시간을 내어 한참 앉아 있었다. 어렸을 적 산으로 들로 물가로 놀러다녔던 ‘촌놈’남편이 어린 시절의 추억에 빠진 것처럼 보였다. 비 오는 소리를 들으니 나 역시 뜨뜻한 아랫목에 배를 깔고 김치전을 먹으며 뒹굴뒹굴하고 싶었다. 남편은 어렸을 적에 비 소리를 들으며 낮잠을 실컷 자고 난 기억이 난다고도 했다. 아파트에서는 비가 와도 빗소리에 귀 기울이지 못하는데, 여행을 오니 빗소리에도 귀를 기울이게 됐다.
 
아침밥으로 누룽지를 맛있게 먹고 서둘러 우리 가족은 프랑스의 시골 마을을 재현시켜 놓았다는 ‘쁘띠 프랑스’로 향했다.소박하고 아담한 프랑스 마을이 재현된 이 곳은 마치 동화속에 나오는 마을처럼 생겼다. 입장료가 성인 8천원, 중·고생은 6천원, 소인은 4천원이다. 생텍쥐베리기념관, 오르골하우스, 프랑스 주택전시관, 갤러리와 전망대, 각종 공연장 등 볼거리가 풍부했다. 각 전시관과 전시관 간격이 멀지 않아 아이들과 이동하면서 보기 딱 좋았다. 공연 시간표를 보니 마임과 <잭과 콩나무> 인형극, 댄스 공연(인형들이 춤을 추는 공연), 오르골 시연을 볼 수 있었다. 아이들은 모든 공연을 즐겁게 보았다. 입장료만 내면 이 공연을 무료로 즐길 수 있다는 것 또한 마음에 들었다. 남편은 ‘우리는 좋은데 수익이 남을까’를 걱정할 정도였다. 공연을 보고 나니 시간이 많이 흘렀다. 뱃 속에서 꼬르륵 소리가 들렸지만, 나는 나머지 전시관을 다 둘러보고 싶었다. 남편은 아이들의 점심 때도 놓쳤고, 서울로 올라가는 길이 막힐 것을 걱정했다. 또다시 약간의 신경전을 벌였지만, 나는 남편 뜻을 따르기로 했다. 어떻게 온 여행인데, 굳이 나쁜 추억을 남길 필요 없지 않은가. 프랑스주택 전시관을 더 둘러보고 싶어하는 아이들을 설득해 서울로 올라가는 차에 몸을 실었다.

IMG_3881 (1).JPG » 쁘띠 프랑스 외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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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G_3797 (1).JPG » 싸이처럼 생긴 인형이 노래에 맞춰 즐겁게 춤을 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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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박2일이었지만 아주 알찬 여행이었다. 남편이 먼저 제안한 여행이었고, 남편을 재발견한 여행이었다. 카라반의 낭만과 아침고요수목원의 자연과 프랑스 마을이라는 이국적 체험 등이 어우려져 만족스러웠다. 비가 와서 걱정했지만, 오히려 비가 와서 좋았다. 남편에게 진심으로 고마웠고, 정말 재밌었다고 얘기해줬다.
 
이번 여행으로 내 역마살은 당분간 잠잠할 듯하다. 그에 비례해 남편에 대한 불만도 잠잠해질 것 같다. 그러나 타고난 역마살은 어쩔 수 없는 것. 가을 바람이 살랑살랑 불고 나뭇잎이 울긋불긋 물드면 그때는 또 어디로 콧바람을 쐬러 가고 싶을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양선아 기자 anmad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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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선아 기자
열정적이고 긍정적으로 사는 것이 생활의 신조. 강철같은 몸과 마음으로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인생길을 춤추듯 즐겁게 걷고 싶다. 2001년 한겨레신문에 입사해 사회부·경제부·편집부 기자를 거쳐 라이프 부문 삶과행복팀에서 육아 관련 기사를 썼으며 현재는 한겨레 사회정책팀에서 교육부 출입을 하고 있다. 두 아이를 키우며 좌충우돌하고 있지만, 더 행복해졌고 더 많은 것을 배웠다. 저서로는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자존감은 나의 힘>과 공저 <나는 일하는 엄마다>가 있다.
이메일 : anmadang@hani.co.kr       트위터 : anmadang21      
블로그 : http://plug.hani.co.kr/anmad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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