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802_1.jpg » 한겨레 자료 사진.두 달 전부터 아내는 매달 하루짜리 휴가를 가기로 했다. 주말 하루, 육아와 가사로부터 완전히 해방돼서 밖에 나가노는 날이다. 물론 그날 육아와 가사는 온전히 내가 맡는 조건이다. 한 달에 한번 뿐인 이유는, 나머지 주말엔 가족 모두가 함께하기 위해서다. 휴가제도에 합의하고 결정하던 날, 아내는 무척 기뻐했다.


나도 물론(!) 기뻤다. 날로 힘겨워지는 두 아들의 뒤치다꺼리에 하루종일 힘들어 하는 아내를 보면, 늘 미안했다. 나를 보는 눈빛과 말투에선, 의도했건 안 했건, 원망이 느껴졌다. 주말 하루란 시간이 결코 길지 않지만, 혼자만의 시간을 갖게 해줬다는 것으로 내 미안함을 조금 덜었다. 비겁할진 몰라도, 내가 이 휴가를 고안한 배경엔 알리바이의 성격이 깔려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첫 휴가. 아내는 이것저것 한참 고민하더니, 결국 첫 목적지로 찜질방을 택했다. 평소 몸이 찌뿌드드해서 가장 먼저 떠올랐다고 했다. 느긋하게 목욕도 하고, ‘세신’도 하고, 마사지도 받았다. 개운해진 몸으로 찜질방을 나온 다음엔 발길을 옮겨 점심을 먹으러 갔다. 주말 오후 식당가엔 가족, 친구, 연인들만 가득했다. 혼자 나온 사람은 좀체 없었다. 아내는 그냥 작은 김밥집에 가서 점심을 해결했다. 대단할 건 없었을텐데, 그마저도 만족스러웠던 모양이다. 아내는 페이스북에 “쫓기지 않고 여유롭게 밥 먹는 거 참 오랜만이다”라고 적었다.


식사를 마친 뒤 아내는 평소 말로만 들으며 가고싶어 했던 카페에 갔다. 요즘 한창 유행하는 ‘버블티’ 가게다. 자리를 잡고 앉고 나니 ‘노트북이라도 갖고 올 걸 그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단다. 아마 그랬으면 조금 더 오래 앉아있을 수 있었겠지만, 아내는 그냥 거기 잠시 머물다 휴가를 끝내기로 했다. 저녁시간이 되기 전, 아내는 한결 편안해진 표정으로 내 몫의 버블티 하나를 사들고 집으로 왔다.


밖에서 보낸 시간이 한 6~7시간쯤 됐을까? 아내가 목욕재계하고 밥먹고 차마시고 중간중간 하릴없이 거리를 돌아다니며 보낸 그 시간동안, 나는 집에서 아이 둘과 무사히 잘 지냈다. 두 녀석을 데리고 외출할 엄두는 못 냈지만, 집에서 책도 보고 칼싸움도 하고 레슬링도 하면서 나름 재미있게 놀았다. 설거지도, 청소·빨래도 못했지만, 밥도 먹였고 낮잠도 재웠다. 아내는 고맙다고 했다.


한 달 뒤 아내의 두 번째 휴가가 찾아왔다. 휴가 며칠 전부터 옛 직장동료와 약속을 잡더니 둘이 볼 영화 표도 예매하며 부산을 떨었다. 영화를 본 뒤 점심식사를 할 레스토랑과 차를 마실 곳도 정했다. 그런데 아뿔싸! 갑작스레 내가 일이 생겼다. 아내는 모든 계획을 취소했다. 휴가는 2주 미뤄야 했다. 너무 미안했다. 만나려던 직장동료는 따로 집에 초대해서 식사를 함께했다. 아내는 보고 싶었던 그 영화를 결국 못 봤다.


2주 뒤 다시 돌아온 휴가날, 아내는 대학 동아리 선배 결혼식에 참석했다. 정말 몇 년 만에 학교 시절 사람들을 다시 만났다. 오후엔 미용실에 가서 머리 손질을 했다. 오랜만에 염색도 했다. 저녁 무렵 아내는 들어오더니 아이들과 인사를 나눴다. “엄마 보고 싶었어?” 하더니, 이내 아이들 궁둥이를 토닥이며 “잠깐 안 봤다 다시 보니까 더 예뻐 보이네”라고 했다. 온종일 나와 뒹굴며 하루를 보낸 아이들은 엄마의 무사귀환을 환영했다. 아이들이 잠든 뒤, 아내는 “요즘은 머리 염색하면 눈썹까지 해주더라. 예전엔 머리랑 눈썹 색깔이 달라 눈썹만 동동 뜨더니”라며 자꾸만 거울을 들여다봤다. 대학 때 연애하면서 봤던 귀여운 모습이 떠올랐다.

두 차례 하루짜리 휴가는 결국 가사로부터의 해방이었다. 해방의 맛을 본 아내는 어느덧 다음 휴가도 기다리는 눈치다. 며칠 전 “이달엔 여름휴가 갈테니까 휴가 안 가도 되지?”라고 넌지시 물었더니 샐쭉해지는 걸 보니 확실히 그렇다. 아내는 이달도 휴가를 가야겠나 보다.


뭔가 몹시 즐거우면서도 부담스러웠던 걸까? 아내는 슬그머니 “오빠도 휴가 줄까봐”라는 얘기를 꺼낸다. 하이고, 됐네요! 가사로부터의 해방이 휴가라면, 저는 그냥 휴가 삼아 출근할게요.


** 이 글은 월간 육아잡지 <맘&앙팡>(디자인하우스) 2013년 8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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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외현 기자
아이 둘의 아빠인 <한겨레21> 기자. 21세기 인류에게 육아는 남녀 공통의 과제라고 믿는다. 육아휴직 등으로 나름 노력해봤지만 역시 혼자 가능한 일은 아니며, 사회적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걸 어렴풋하나마 알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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