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능하지 않은 걸 꿈꾸면 안되나요?"



얼마전 뉴스룸에 이효리가 나왔을 때 마지막으로 했던 말이다.

참 오랜만에 이런 말을 들어보네... 하는 생각이 얼른 들었는데,

나만 그런 게 아니었던지

인터뷰를 하던 손석희 앵커도 흠칫 놀라는 눈치였다.

정확히는 기억나지 않지만,

마지막에 어록을 남기시는군요.. 뭐 이런 멘트로

두 사람의 이야기는 훈훈하게 끝을 맺었다.


한동안 잠잠하던 이효리가 요즘 방송에 나오면서

여러 사람들에게 적지 않은 영향을 주고 있는 것 같다.

그녀의 삶의 방식은

많은 사람들이 지적하듯

돈이 많으니까 그렇게 살 수 있는 것일 수도 있다.

이효리 자신도 쿨하게 인정한다.

우리 부부는 돈 안 벌고 편하게 사니까,

서로에게 예쁘게 말할 수 있는 거라고.


어쩌면.

뉴스룸 인터뷰에서

"가능하지 않은 걸 꿈꾸면 안되나요?"

라고 되물을 수 있었던 것도

돈과 시간의 여유를 풍족하게 가진 사람에게서 나올 수 있는

생각이었는지도 모르겠다.

하루하루 살아내는 것만으로도 힘든 사람들에게는

그들의 여유와 호기를 고운 시선으로만 보기엔 힘들 것 같다.


하지만.

내 생각엔

우리 사회에서 돈과 시간 여유가 있는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부를 축적하고 경쟁하는 데만 몰두하는데서 벗어나

좀 더 다양한 삶을 실험해 봤으면 좋겠다.

사회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자연과 환경, 슬로라이프, 동물들과 공존하는 삶의 방식,

그리고 자신의 집을 민박집으로 공개하며

다양한 사람과 교류하는 이효리처럼 말이다.


남편과 일상을 건강하고 아름답게 꾸리며

20대 친구들을 통해 자신의 젊은 시절을 돌아보고,

노부부 분들께 막걸리 담는 법을 배우고,

어렸을 때 엄마를 여읜 3남매와 노래를 만들고,

후배인 아이유에게 일과 사랑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담담하지만 깊이있게 들려준다.

민박집 주인과 손님이 함께 만든 노래 중에


제주보다 푸르른 그대여


란 가사가 있는데

효리네 민박집에 나오는 모든 사람들에게

참 잘 어울리는 표현 같았다.


'꿈'이라는 단어가

우리 삶에서 점점 멀어져가는 게 참 슬픈 요즘이었는데,

이효리의 삶과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작고 푸른 희망 같은게 느껴져 문득문득 행복해졌다.

그래, 이렇게 서로가 가진 것을 함께 나누고, 공감하고,

있는 그대로 바라봐주고, 서로가 못 하는 걸 도와주면

많은 사람들이 지금보다는 좀 더 행복하게 살 수 있지 않을까?

가능하지 않은 많은 것들을

좀 더 많은 사람들이 함께 꿈꾼다면.


여름방학이 되기 전까지

애벌레가 나비가 되는 과정을 과학 수업에서 배운 초등3학년 아들이,

너무 재밌는 그림책을 발견했다며 도서실에서 빌려와 보여준 일이 있었다.

애벌레 시절에 사각사각 맛나게 갉아먹었던 양배추를

나비가 되고 나니

더 이상 먹을 수 없어 아쉬워한다는 내용의 그림책이었는데,

빨대 모양으로 변해버린 자신들의 입을 원망(?)하던 나비들이

채소 가게 주인아저씨에게 사정을 이야기한다.

"양배추가 먹고 싶어요!!"


더 이상 가능하지 않은 걸 꿈꾸는 이 나비들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여기까지만 읽고도

작가의 상상력에 벌써 가슴이 탁 트이는 것 같았다.

책을 보여주며 줄거리를 장황하게 설명하는 아들도 잔뜩 들뜬 표정이었다.

어떻게 나비가 애벌레 시절에 먹던 음식을 그리워할 거란 상상을 했을까??



크기변환_DSCN7934.JPG

불가능을 꿈꾸는 나비들을 위해
채소가게 주인 아저씨는 고민 끝에 양배추를 갈아 쥬스로 만든다.

크기변환_DSCN7935.JPG

나비들은 양배추 쥬스를
자신들의 긴 입으로 마음껏 흡입하며 꿈을 이룬다.




논농사는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내 생에서는 있을 수 없다고 여겼던 일이었다.

그런데

어찌어찌하다보니, 지금은 현실이 되어 있다.

3,4살 어린 아이부터 60대 할머니, 중년 부부, 외국인 엄마 아빠들이

틈나는 대로 농사 준비를 하고 모내기를 하고, 김매기를 한다.

모를 다 심은 지, 두 달이 되었나 싶은데

한뼘 정도밖에 안 되던 모는 벌써 몇 배 키로 자라나 초록 물결이 이는 논이 되었다.


농약을 한 방울도 쓰지 않고 완전한 유기농법으로 키운 쌀을

이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되면 우리 스스로 거두어 먹을 수 있다는 게 정말 꿈만 같다.

자다가도, 길을 걷다가도

이 생각만 하면 웃음이 난다.

이효리처럼

양배추 맛을 그리워하는 나비들처럼

가능하지 않은 걸 좀 더 많은 사람들이 꿈꾸었으면 좋겠다.

함께,

그리고

경쟁과 시기, 질투보다

서로 배우고 도우며.


긴 여름방학이 이제 막 시작되었다.

잠시라도 아주 잠시라도

아이들에게 꿈꿀 수 있는 시간을 선물하는

그런 방학이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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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영희
배낭여행 중에 일본인인 지금의 남편을 만나 국제결혼, 지금은 남편과 두 아이와 함께 도쿄 근교의 작은 주택에서 살고 있다. 서둘러 완성하는 삶보다 천천히, 제대로 즐기며 배우는 아날로그적인 삶과 육아를 좋아한다. 아이들이 무료로 밥을 먹는 일본의 ‘어린이식당’ 활동가로 일하며 저서로는 <아날로그로 꽃피운 슬로육아><마을육아>(공저) 가 있다.
이메일 : lindgren707@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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