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수학 수업이 들었다고 힘들어 하던 다엘이
아기 부처상에 삼 배를 하며 기도했다.
수학 시간에 잘 할 수 있기를 빌었단다.
수학의 어려움이 신앙생활의 초석이 되고 있다.

 

5학년이 되어 배우게 된 분수에서
개념 익히기만 하며 한 학기를 보내면 딱 좋으련만
이어지는 분수의 덧셈, 뺄셈, 곱셈, 나눗셈이
혼을 빼놓는다.

 

피아제의 인지발달 이론에 의하면
12세 무렵부터 형식적 조작기가 시작되어
체계적이고 논리적인 사고능력이 발달한다고 한다.
이전 단계까지는 구체적인 사례에서만
사고할 수 있는 한계를 가지며,
추상적 사물들에 대한 논리적 사고는
만 12세가 되면서 가능하다는 것.

 

12세는 한국 나이로 중학교 1학년, 즉 14세 정도를 말한다.
어느 전문가가 말했듯이 지금 초등수학을 어려워하는 아이가
딱 2년 정도 지나면 이해를 한다는 말이 정확히 들어맞는 것이다.

전문가들이 말하길 선행학습이 문제라는데
이건 교과서 자체가 선행학습이니 뭐라고 해야 하나.


다엘은 자신의 머리 탓까지 하며 호소한다.
“내 뇌가 1년 정도 늦는 거 아니야?
왜 나는 이렇게 못하는 거야…. 잘 하는 애들이 부러워!”

 

교육방송을 보라는 지인의 충고에 따라
초등수학 방송강의를 함께 보면서 응원을 했다.
“그래, 바로 저거야,
숫자를 쭉 써가며 최대공약수, 최소공배수를 찾으려면 얼마나 힘드니.
저렇게 하면 금방 구하잖아.
그래서 수학은 공식이 있는 거란다.”

 

나의 추임새에도 다엘의 표정은 굳어 있었다.
“공식이 더 어려워! 그냥 쭉 써가면서 찾는 게 쉽다고!”
“아니 그게 뭔 소리야! 문제 푸는 과정도 단축되고 얼마나 좋은데!”

 

공식이 왜 생긴 건지, 왜 그렇게 풀면 답이 나오는지 스스로 납득하지 않고는
덥석 공식을 쓰지 않겠다는 다엘의 결연한(?) 의지가 엿보였다.
남이 던져준 공식이 있으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갖다 썼던 나의 학창시절과 매우 비교가 됐다.

 

도서관에 뛰어가 수학에 관한 책들을 찾기 시작했다.
대략 이 정도면 읽겠다 싶어 몇 권 빌려 왔지만
벽에 부딪혔다.
음…더 쉬워야 해, 더 단순하고 철학적인, 뭐 그런 거 없나?
책을 읽어 주다가 덮어두고 다시 교육방송으로 리턴.

 

과자를 씹으며 방송을 듣는지 시간을 때우는지 알 수 없는 다엘의 모습에
내가 한마디 했다.
“아 뭐 영화 보냐, 과자는 왜 이리 먹어대는 거야!
집중을 해야지, 집중을!”
다엘은 방송을 틀어놓고
누워서 과자를 먹으며 한 눈으로 보고 있었다.

 

그러다 하는 말,
방송 강의가 너무 빨라서 따라가기 힘들단다.
“이해 안 되는 건 하루에 한 가지씩 내가 설명해줄게.”
아주 천천히 설명하자 조금씩 이해를 했다.
어느 날, 다엘이 말했다.
“같은 강의를 네 번 듣고 마무리로 한 번 더 들었더니
좀 이해가 되기 시작하네!”

 

다엘수학1.jpg » 다엘의 요청에 따라 내가 내 준 수학문제. 다엘이 풀다.

최근에 지인들과 함께 교육강연을 들으러 간 적이 있다.
강의 제목은 ‘교육의 미래와 직업의 미래: 냉정하고 솔직하게’.
강의 후 부모들의 질문 시간이 되자
초등 수학에 대한 성토가 터져 나왔다.
사교육 시키지 않겠다고 결심했는데
수학 때문에 큰 혼란에 빠졌다며 어찌 해야 하는가 물었다.

 

강사 역시 대한민국 초등수학의 난이도에 대해 같은 문제의식을 갖고 있었다.
우리 애가 수학이 어렵다고 하면 ‘정상이구나’ 생각하시고
옆집 애가 수학을 잘한다고 하면 ‘영재구나’ 생각하란다.

 

초등수학의 문제점을 누구나 알면서도 왜 근본적인 수술을 하지 않을까?
학력 격차를 일찌감치 벌여 놓아 노동시장 양극화의 포석을 놓고자 함은 아닌지,
사교육업자들이 모종의 보이지 않는 손 역할을 하는 건 아닌지
온갖 의심이 생기면서
나는 우리 사회가 빚어낸 아동 학대라는 결론을 내렸다.
‘초등수학의 전면수술을 위한 전국민연대’라도 필요한 게 아닐까.

 

초등수학이 던져준 문제의식은 거듭 나의 숨은 문학성을 일깨우고
없는 시심도 절로 생겨나게 하여
오늘도 부족하나마 시 한 수 남긴다.

 

 

 

수학이 너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라
교육업자들의 검은 손이 의심되어도
머지않아 수학은 알파고가 맡아주리니

 

마음은 앞날에 살고
교과서는 언제나 한심한 것이니
공부의 설움은 덧없이 사라지고
우리의 고군분투는 훗날 추억이 되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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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은주
딸이 뇌종양으로 숨진 후 다시 비혼이 되었다. 이후 아들을 입양하여 달콤쌉싸름한 육아 중이다. 공교육 교사를 그만두고 지금은 시민단체 '사전의료의향서 실천모임'의 상담원이자 웰다잉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일산지역의 입양가족 모임에서 우리 사회의 입양편견을 없애기 위한 공부를 하고 있으며 초등 대안학교에 다니는 아들과 함께 대안교육 현장의 진한 경험을 쌓아가고 있다.
이메일 : juin99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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