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를 시작하며...

식당과 마트, 거리에서 아이들과 마주칠 때마다, 그 아이들의 뒤편에 있을 엄마들을 상상했다.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고 뛰어다니는 아이들, 호기심과 생명력으로 충만한 이 아이들의 몸과 마음을 하루도 빠짐없이 건사하고 있을 엄마들을. 그들은 어떻게 엄마라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을까. 한 사람의 의식주와 습관과 정신과 미래의 자질을 몽땅 책임져야 하는 그 무거운 자리를, 다들 어떻게 소화하고 있을까.
다른 엄마들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싶다는 소망은 다 같이 모여 애환을 나누고 싶다는 열망으로 이어졌다. 함께 마음에 걸친 옷을 벗어던지는 장면이 떠올랐다. 책, 영화, 드라마, 강연 같은 다양한 경로를 통해 우리 안에 뿌리내린 ‘좋은 엄마’라는 강박관념을 과감하게 벗어던지고 서로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장면이 자꾸만 떠올라 머릿속에 떠다녔다. 그러나 사람의 마음은 복잡한 것이라, 한순간 손쉽게 확 열어 보일 수는 없을 것이다. 설사 의기투합하여 동시에 열어 보인다 해도 각자의 피부 아래 복잡한 형태로 얽혀 흐르고 있을 각각의 역사와 경험을 제대로 읽어낼 수도 없을 테고.
이 글은 엄마로서의 내 삶을 정리해보기 위한 기록이다. 그래서 이야기 중간중간에 나의 본모습이 많이 드러난다. 특히 어질지 못한 성정, 예민하고 변덕스러운 기질, 속물적 욕망과 허위의식이 그대로 드러난다. 그럼에도 한번 써보자 결심한 것은 다른 이들의 마음을 들여다보려 하기보다 먼저 내 마음을 드러내 보여야겠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엄마라는 막중한 타이틀을 달고 살면서 나는 늘 그런 글들을 읽고 싶었다. 엄친아를 키워낸 완벽한 엄마가 다른 이들에게 비법을 전수해주는 글이 아닌, 어떻게 해야 좋은 엄마가 될 수 있는지 가르쳐주는 전문가들의 책이 아닌, 당사자의 경험이 새겨진 진솔한 글. 자신이 했던 실수와 못난 성정을 가감 없이 드러내고 경험에서 얻은 깨달음을 다른 이들에게 아낌없이 공유해주는 책이나 글들.
나는 2005년에 첫아이를, 2009년에 둘째를 낳은, 13년차 경력의 아들 둘 엄마다. 나이가 차면 결혼해야 한다는 통념에 따랐고, 아이 또한 당연한 수순으로 생각하고 낳았다. 대한민국 엄마들의 평균이라 할 수 있는 수준보다 한 단계 더 극성스러운 엄마였고, 사교육에 대해서도 강박관념에 가까운 열망을 가지고 있었다. 닥치는 순간순간 늘 당황했고, 언제나 불안했으며, 바짝 긴장한 상태로 살았다. 아이를 키운다는 건 방향을 알 수 없는 정글을 영원히 헤매고 다니는 것 같은 일이다. 나는 그런 정글에서 헤매다 두려움과 불안함 때문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면 책에게로 달려갔다. 책은 때로는 도피처가, 때로는 친구가, 때로는 심오한 지혜를 안겨주는 선생님이 되어 살얼음판 같은 일상에 동행해주었다.
이 글은 자신이 무얼 하고 있는지 자각하지 못 하던 사람이 엄마가 된 뒤, 시시각각으로 떨어져 내리는 온갖 책임에 이리저리 치이며 필사적으로 붙잡았던 ‘책’이라는 동아줄에 대한 이야기이다. 책이라는 작은 직사각형의 물건을 붙잡고 간신히 지나갔던 위태위태한 여정에 대한 회고이기도 하다. 이 글이 지금 뜨겁게 엄마라는 자리를 지나가고 있는 누군가에게 작은 위안이라도 되기를, 그리하여 자신의 경험을 드러내 공유하고 싶다는 마음을 불러일으킬 수 있기를 바라본다.
우리 엄마들은 동료 엄마들이 삶으로 헤치고 지나온 진짜 이야기를, 모든 것을 완벽하게 해내면서 단 한순간도 모성애가 마르지 않는 ‘인위적인 엄마상’으로 가공되지 않은 날것의 이야기들을 더 많이 만날 권리가 있으니까. 그래서 내가 지극히 정상임을, 지금도 굉장히 잘해내고 있는 것임을 알아야 하니까. 앞으로 무수히 세상에 나오게 될 엄마들의 ‘진짜’ 이야기를 기다리며 조심스럽게 나의 이야기를 내밀어본다.

소설가 정아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