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겨울, 아이는 수술을 받았습니다. KT 증후군으로 인해 거북이 등처럼 볼록 솟아오른 발등을 조금 낮춰주기 위한 수술이었지요. KT 증후군은 공통적으로 특정 유전자의 돌연변이에 의해 나타나는 질환이지만, 겉으로 드러나는 증상은 환자마다 조금씩 다릅니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같은 병명으로 진단을 받고도 팔/다리 부피 차이가 그리 크게 나타나지 않지만, 우리 아이 같은 이들은 다른 무엇보다도 부피 차이가 뚜렷해서 애를 먹습니다. 기성 옷/바지와 신발이 맞지 않아 따로 제작하거나 맞춰 입고 신어야 하는 불편함은 물론이고, 한쪽 팔/다리가 무거워 일상 생활에 어려움을 겪기도 합니다. 손등과 발등의 부피가 커지는 경우에는 손가락과 발가락의 위치나 기능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어서 더욱 문제가 됩니다. 부피 차이가 나는 이유도 여럿입니다. 어떤 이들은 정맥 혈관이 팽창해서, 또 어떤 이들은 림프 부종 때문에, 또 어떤 이들은 뼈나 근육, 지방층이 과다 형성되어서 한쪽 팔/다리 부피가 다른 쪽보다 커집니다. 우리 아이는 그 중 이 세 번째 이유 때문에 부피 차이가 나는 경우인데 이런 경우 현재까지 알려진 유일한 대처법은 외과적 시술을 통해 과다 형성된 지방층을 잘라내는 것입니다. 근육과 뼈에도 문제가 있으니 지방층을 잘라내는 것만으로는 크게 달라지지 않지만, 오른쪽의 무게를 조금이라도 줄여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결정한 일이었습니다.
그렇게 첫 수술을 마치고 맞은 어느 봄날, 여느 때처럼 동네 놀이터를 순회하며 놀다 가슴 서늘해지는 장면을 만났습니다. 한쪽에만 커다란 신발을 신은 우리 아이를 처음 본 낯선 아이들 서넛이 순식간에 아이를 에워쌌습니다. 그 날 우연히 오랜만에 만난 한 엄마와 이야기를 나누느라 조금 먼 발치에 있던 저는 순간 겁이 났습니다. 아, 저걸 어쩌지. 아이가 겁을 먹거나 상처를 받지 않을까, 하고요. 그런데 그런 걱정을 미처 드러내기도 전에, 뭉클한 장면이 펼쳐졌습니다. 자신을 둘러싼 아이들 한 가운데에서, 아이는 서슴없이 자신의 발을 꺼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누군가 “너는 발이 왜 그래?” 하고 물었던 모양인지, 아이는 미끄럼틀에 올라가다 말고 아이들 사이에 앉아서 “이건 KT라서 그래” 하고 아무도 알아듣지 못할 말을 하고는 신발, 양말을 차례로 벗어 수술 자국이 선명한 맨발을 아이들에게 내보였습니다. 그리고는 말했습니다. “여기는 수술을 해서 이렇게 자국이 난 거야.” 아이들은 ‘아 그렇구나’ 하는 눈으로 아이의 발을 내려다 보았습니다. 곧 누군가가 “아프냐”고 물었고, 아이는 “지금은 아프지 않지만 밟으면 안 돼. 그럼 아파”하고 답했습니다. 아이들은 이내 아무렇지 않은 듯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 놀기 시작했고, 우리 아이 역시 다시 양말, 신발을 차례로 신고 아이들 틈에 섞여 들었습니다.
사랑스럽고 자랑스러운 순간이었습니다. 곁에서 이 장면을 함께 본 친구가 “너는 정말 대단한 엄마야, 애가 저렇게 하기가 쉬운 일이 아닌데, 네가 잘 키워서 그래!”하고 추켜세워줬을 때, 아니라고 손사래를 치면서도 한편으론 ‘그런가?’ 싶었습니다. 하지만 이내 그렇지 않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엄마 아빠의 영향이 없진 않겠지만, 이건 무엇보다도 아이의 기질, 아이의 마음가짐, 아이의 의지에 따른 결과라는 걸요.
그림책 <당당하게, 몰리 루 멜론>(Stand Tall, Molly Lou Melon) 속 몰리 루 멜론의 이야기가 바로 그걸 보여줍니다. 아주 작은 키에 커다란 덧니를 가진, 우스꽝스런 목소리로 노래하고 손놀림이 서툴러 설거지를 했다 하면 그릇이나 와장창 깨먹는 아이. 그런 몰리 루 멜론이지만 몰리는 언제나 당당합니다. 몰리의 다정한 할머니는 늘 몰리에게 말씀하셨거든요. “당당하게 걸어라” “크게 웃어라” “큰 목소리로 노래하고 너 자신을 믿어라” 하고요. 하지만 몰리는 할머니와 떨어져 새 동네로 이사를 간 뒤에도, 그 당당함을 이어갑니다. 못생겼다고, 목소리가 이상하다고, 키가 작다고 놀려대는 못된 친구의 훼방에도 굴하지 않지요. 할머니와 떨어져 살게 된 뒤에도 당당함을 잃지 않는 몰리를 보면, 아이의 성장이란 처음엔 어느 정도 보조가 필요한 일일지라도 결국엔 아이 스스로 일구어 나가는 것이란 걸 깨닫게 됩니다.
키가 작아도 당당하게 어깨를 펴고 걸으면 세상이 너를 그렇게 보게 되리라는, 커다란 덧니가 있어도 기죽지 말고 그저 즐겁게 웃으면 세상이 너와 함께 웃으리라는 할머니의 말이 몰리에게 커다란 힘이 되었으리란 건 분명하지만, 그런 말을 아무리 듣는다한들 그렇게 살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건 바로 제가 그, 작은 키, 커다란 덧니에 우스꽝스런 목소리를 가진 사람이어서 너무나도 잘 알아요. 커다란 덧니와 못난 입 모양 때문에 사진에 찍힌 내 모습이 늘 불만스러웠던, 사람들 앞에 서면 속수무책으로 덜덜 떨려대는 목소리 때문에 늘 창피했던 사람이 바로 저, 케이티의 엄마거든요. 누가 뭐라고 한 것도 아닌데 지레 고개를 움츠리고 안으로 파고들기 일쑤였던, 남들이 예쁘다고, 잘 한다고 추켜세워줘도 ‘난 못났어' '난 못해’ ‘자신 없어’하고 뒤로 물러서던 게 저였습니다. 제게도 몰리의 할머니 같은 다정한 할머니가 있었고, 늘 사람들 앞에서 당당했던 엄마가 있었지만 정작 저는 그렇게 살지 못했습니다. 어쩌면 바로 그 때문에 케이티의 엄마로서 그런 노력을 더 기울였을 수는 있겠지요. 남다른 몸을 타고 태어난 아이가 눈초리 매서운 낯선 사람들과 폭력적이고 가시 돋힌 세상으로부터 자신을 지켜낼 수 있기를, 그리고 그런 사람들과 세상을 맞닥뜨릴 때에라도 사람과 세상에 대한 믿음을 버리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아이를 대하는 건 사실이니까요. 하지만 알고 있습니다. 결국 자기 삶의 구체적인 모양과 성질을 빚어가는 건, 아이 자신이라는 걸요. 남들 앞에서 스스럼 없이 발을 꺼내 보이며 설명하고, 이해를 구하는 아이의 모습은 아이 스스로 빚어낸 거라는 것을요. 부모가 해줄 수 있는 건, 그저 아이가 스스로 그런 모습을 만들어갈 수 있도록 뒤에서 믿어주고, 지켜봐 주는 것이 전부겠지요. 너무 앞서 걱정하거나 개입하지 않고, 부모가 원하는 방향이 아니라는 이유로 실망하거나 힐난하지 않는 것, 그리고 이 아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존중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가는 것, 그게 부모가 할 수 있는 최선이라고, 저는 믿어요.
발등의 지방을 제거하는 수술을 한 것이 지난해 12월. 그 수술 자국이 완전히 아무는 데 꼬박 11개월이 걸렸습니다. 영영 아물지 않으면 어떡하나 남몰래 걱정하던 때가 지나가자마자 다시 두 번째 수술 날짜가 돌아왔습니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순간, 아이의 두 번째 수술이 20시간 앞으로 다가와 있군요. 혼자 수술실에 들여보내야 하는, 또다시 긴 회복기를 거치게 되리라는 걸 알고 있는 엄마 아빠의 마음은 무겁지만, 아이는 마냥 즐겁습니다. 수술 후 작아질 다리를 상상하고, 회복실에서 먹을 맛난 간식을 생각하면서 말이죠. 그렇게 당당하게 또 한 걸음 세상 속으로 걸어 들어갈 아이의 뒷모습에, 우리는 오늘도 한아름의 사랑과 응원을 보냅니다.
<작년 수술 후 처음으로 샌들을 신고 보낸 올 여름의 뒷모습. 다가올 다음 여름의 뒷모습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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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은 책: <Stand Tall, Molly Lou Mel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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