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청에 출입을 했던 2012년 초. 10대들의 연이은 자살 소식이 들려왔다. 학교 폭력에 견디다 못한 대구의 한 학생이 스스로 삶을 끊었다는 소식이었다. 좀더 나은 현실을 바꾸기 위해선 보기 싫은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바라봐야 했다. 피해자가 겪었을 고통과 가해자의 행적을 쫓는 기사들이 쏟아졌다. 얼마 뒤 또 다른 10대의 죽음 소식이 전해져 왔다. 그리고 또 한 사람, 그리고 또 한 사람. 4개월 동안 대구 경북 10대 일곱 명이 삶을 스스로 마감했다.

 

“자살 통계 자료를 담당하는 부서가 어디죠?”
 경찰청 홍보실에 문의를 해 자살 통계를 가지고 있을 법한 부서를 찾았다. 일선 경찰서는 직접 현장에서 수사를 담당하는 반면, 경찰청은 각 경찰서의 수사 자료들을 수집 정리하고 치안 정책을 기획하며 총괄했다. 해당 부서를 확인한 뒤 전화를 걸어 자료를 부탁했다.
 “안녕하세요, 출입기자 강남구입니다. 바쁘실 텐데 최근 OO년 간 나이대 별로 자살한 사람의 인원 수 자료를 부탁드립니다.”

 

 잠시 기다리라는 말이 들린 뒤 전화는 몇 차례 돌고 돌았다. 자료 요청을 드립니다. 네 잠시만 기다리세요. 자료를 구하는데요. 네 잠시만 기다리세요. 몇 번 전화가 돌아가자 급한 성격을 드러낼 뻔 했지만 그냥 꾹 참아야만 했다. 회사에 ‘10대 자살’을 주제로 기획 기사를 쓰겠다고 말을 해 놓은 터였으니까. 한 사람이 죽음을 선택하는 건 삶보다 죽음이 더 편할 거라는 기대 때문일 거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한 개인이 현실을 유독 더 힘들고 고통스럽게 받아들일 수도 있었겠지만, 반대로 한 개인이 버틸 수 없을 만큼 사회와 현실이 한 개인을 죽음으로 내몰았을 수도 있었다. 기자는 개인을 억압하는 사회에 관심을 갖고, 심리 상담자는 자신을 억압하는 자신에 관심을 가졌다. 전화가 돌고 돌아 담당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상대는 알겠다고 했지만 서두르겠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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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가 도착을 해야 기사 방향을 잡을 수 있어 시간 간격을 두고 이메일을 확인했다. 자료는 한동안 오지 않았다. 염치를 찾다보니 몇 시까지 자료를 보내주라는 말까지는 덧붙이지 못했다. 그저 빨리 보내주면 고마울 따름이었다. 기자만큼 성격이 급한 직업이 또 있을까? 그새를 참지 못해 전화를 걸었고 자료가 도착했다. 한 장짜리 자료 하나. 연도와 나이대 별로 인원 수만 간략하게 적힌 자료 한장이었다. 자료를 받는 입장에서 성의를 운운할 수는 없었지만 자료를 바라보니 성의가 문제가 아니었다. 자료를 확인한 뒤 데스크에 전화를 걸어 기획 기사 방향을 수정하거나 다른 주제로 잡겠다고 보고를 했다. 인원 수를 기준으로 자살을 선택하는 사람 수는 10대가 가장 적었다.

 

10대들의 사망 원인 1위가 자살인 건 10대는 질병이나 다른 이유로 죽지 않기 때문이었다. 사망 원인이 1위라고 많은 사람이 죽는 건 아니었다. 다른 나이대 사람들은 자살뿐만 아니라 여러 질병을 비롯해 다른 사망 원인 때문에 자살이 사망 원인 1위가 아니었을 뿐이었다. 자살을 선택하는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많았다. 50대가 두드러졌다. 50이란 숫자는 아버지란 단어를 떠오르게 했다. ‘아버지들이 위험하다’란 서울신문 기사엔 보다 구체적으로 자살의 현실을 비추어 주었다. 평균 자살률은 여성보다 남성이 2.3배가 높았으며 특히 50대에 이르면 여성보다 3.2배 많은 남성이 자살을 선택했다. 다시 아버지란 세 글자가 생각났다. 기사에선 실직의 고통과 경제력 부담을 아빠들의 자살이 많은 이유로 꼽았다. 풀리지 않은 궁금증은 왜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 유독 아버지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선택을 하느냐 란 질문이었다. 실직으로 인한 고통은 아내와 다른 가족들에게도 고스란히 돌아갈 텐데 말이다.

 

 그 오랜 궁금증이 풀린 건 기자 생활을 그만두고 아이들과 함께 글쓰기 수업을 하면서였다. 실직으로 가족들에게 철저히 외면을 받았던 한 가장의 이야기를 다룬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을 읽은 뒤 아이들에게 물었다.
 “엄마는 너희들에게 어떤 사람이니?”
 아이들이 대답을 했다.
 “밥 해주는 사람이요.”
아빠도 밥을 하지 않냐는 질문에 아이들은 아빠는 밥을 하지 않고 라면을 한다고 했다.
“빨래 해주는 사람이요.”
한 여자 아이는 조금 다르게 대답했다.
“같이 이야기하는 사람이요.”
여자 아이들의 대답이 이어졌다.
 “같이 쇼핑을 하는 사람이요.”
 “같이 산책하는 사람이요.”
 한 남학생이 이야기가 끝나갈 무렵 엄마는 자신을 위로해 주는 사람이라고 했다.

 

 카프카 <변신>를 주제로 이야기를 하기 위해 이번엔 아빠는 어떤 사람인지를 물었다.
 “돈 버는 사람이요.”
 다른 아이도 대답을 했다.
 “돈 버는 사람이요.”
 그리고 별다른 말이 없었다. 아빠는 또 어떤 사람이냐는 질문에 한 아이는 캠핑을 같이 가는 사람이라고 했지만 이내 다시 침묵했다. 모두들 동의하는 아빠의 존재는 바로 돈을 버는 사람이었다. 유년시절 가끔씩 아버지께서 어머니를 향해 내가 돈을 버는 기계냐 라고 하시던 푸념이 떠올랐다.

 

 아이들에겐 그랬다. 엄마는 밥도 하고 빨래를 해주는 사람이기도 했지만 같이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기도 했다. 밥을 한다는 건 함께 식사를 한다는 의미도 있었고 식사를 하며 대화를 나누는 시간도 포함돼 있었다. 엄마랑은 쇼핑도 가고 산책도 갔다. 그리고 아이들이 말한 엄마의 일은 정년이라는 게 없다. 아이는 나이가 들어도 엄마는 아이를 위해 여전히 밥을 지어질 수 있고 함께 대화를 할 수도 있으며 쇼핑도 가고 산책을 갈 수도 있다. 많은 아빠는 밖에 나가 돈을 벌어오는 사람이고 엄마는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그런 사람이었다. 하지만 가족들을 위해 돈을 벌어주는 아빠의 능력은 언젠가 끝이 난다.

 

강연회에 나가 엄마들을 만나는 일이 있으면 묻고 싶은 질문이 있었다. 
 “아이가 오늘 학교나 유치원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궁금하시지 않으신가요?”
 엄마들은 뭐라고 대답을 할까. 내 귀엽고 사랑스런 아이의 일상이 궁금할 것 같았다.
 “아이 아침식사를 위해서 어제부터 무슨 음식 재료를 준비를 하셨는지요?”
 성장을 위해선 영양이 중요했다.
 “아이에게 요즈음 사주고 싶은 옷이 무엇인가요?”
 유독 아이들의 옷과 신발은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을 좋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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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다 질문을 바꾸면 엄마들의 반응이 궁금했다.
“남편이 오늘 직장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궁금하신가요?”
“남편 식사를 위해서 어제부터 무슨 음식 재료를 준비하셨는지요?”
“남편에게 사주고 싶은 옷이 무엇인가요?”

 

 아이를 낳고 보니 가정에서 아빠인 난 내 자리가 없었다. 어린 생명을 키우는 게 중요하지만 모든 가족들은 아이를 향한 관심과 사랑으로 가득했다. 아이를 키워보니 남편이 아내에게 사랑을 받지 못하는 이유도 모를 일도 아니었다. 아홉 살이 된 민호를 보다가 거울 속에 비친 나를 바라보면 너무 초라했다. 아이는 탱탱했고 아빠는 주름졌다. 아이는 촉촉했고 아빠는 칙칙했다. 아이는 부드러웠지만 아빠는 까끌까끌했다. 아이에게선 향기가 나고 아빠에게선 냄새가 났다. 아이를 낳고 나서 적잖은 남편들은 아내에게 섭섭해 했다. 아빠들도 가끔씩은 아빠로 살기보다는 한 사람으로서 위로도 받고 싶고 사랑을 받고도 싶지만 가족들은 아빠는 으레 집밖에서 경제적 활동을 하는 사람으로만 바라본다는 느낌을 자주 받았다.

 

 인정은 크게 두 가지 인정이 있다고 했다. 내가 나에게 하는 인정이 하나이고, 다른 하나는 남이 나에게 하는 인정이다. 심리학은 이 둘 사이를 오고 가며 역사 속에 이론을 세워 나갔다. 심리학자 프로이트는 자신의 내면에 집중했고, 아들러와 같은 심리학자는 타인과의 관계를 중요시 했다. 사랑하는 아내가 혹시 아빠의 존재를 돈을 버는 사람이라고 주로 인식을 하더라도, 귀엽고 착한 자녀가 아빠를 회사에서 돈을 벌어다 주는 어른이라고 생각을 하더라도, 아빠만큼은 자신을 돈버는 사람이라고 생각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빠 자신들까지 자신을 돈을 버는 사람으로 생각할 때, 예고 없는 실직이나 경제적 능력이 작아지는 순간 자신의 존재도 세상에서 설 곳을 잃어간다. 나까지 나 자신의 존재를 그렇게 생각해 왔으니까. 존재의 이유를 잃어버리면 존재를 할 수가 없게 된다. 스스로가 돈을 버는 존재라는 정의에서 벗어나면 아빠는 경제적 부담에서도, 실직의 두려움에서도, 자유로워질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빠도 가족의 한 사람이니까. 아빠도 가족을 위해서 때로는 음식을 할 수 있으니까. 아빠도 때로는 아이와 대화를 할 수도 있고, 아빠도 시간을 내 아이와 함께 산책을 할 수도 있을 테니까. 아빠도 엄마와 같은 꼭 같은 부모이니까. 아빠도 엄마처럼 가정을 돌볼 수 있고 엄마도 아빠처럼 경제적 책임을 질 수도 있을 테니까.

 

 세상 사람들이 어떻게 나를 평가하고 받아들이더라도 나의 존재를 규정하는 건 바로 남이 아닌 나 자신이어야 한다. 가정엔 앞치마를 두른 아빠들이 더 많고, 직장엔 엄마들이 지금보다 더 많이 남아 있기를 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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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구
이름 앞에 붙는 수식어를 만들고 다듬느라 35년을 흘려보냈다. 아내와 사별하고 나니 수식어에 가려진 내 이름이 보였다. 해야 할 일보다 하고 싶은 일을 찾으려고 기자 생활을 접고 아이가 있는 가정으로 돌아왔다. 일 때문에 미뤄둔 사랑의 의미도 찾고 싶었다. 경험만으로는 그 의미를 찾을 자신이 없어 마흔에 상담심리교육대학원에 진학했다. 지은 책으로는 '지금 꼭 안아줄 것' '나의 안부를 나에게 물었다'가 있다.
이메일 : areopagi@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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