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밤 10시가 다 되어 휴대폰에 문자 하나가 도착했다.
‘낼 아침에 성당 가니? OO 씨한테도 가?’ 
오랫동안 기자생활을 같이 했던 동료이자 오랜 친구가 보낸 문자였다. 안부를 묻는 문자는 상대가 그리울 때 가능한 일이어서 고마운데 오랜 동료는 나뿐만 아니라 저 멀리 떠난 아내를 그리워하며 그렇게 물어왔다. 날짜를 보니 동료가 문자를 보낸 그 다음날이 아내 기일이었다. 꼭 4년 전 해맑게 웃던 아내 사진 앞에서 무릎 꿇고 슬픔을 눈 밖으로 쏟아내던 날, 장례식장을 함께 지켜주던 그는 이날도 이렇게 나를 챙겼다. 4년이라는 긴 시간 사이 나는 가족의 의미를 찾기 위해 집으로 돌아갔고, 친구는 언론인으로서 의미를 찾겠다며 뉴스타파 라는 언론사로 자리를 옮겼다. 몸은 서로 다른 장소에 떨어져 있었지만 이날 우리는 아내 기일이라는 기억을 같이 하며 오랜만에 마음으로 같이 있었다.

 

 떠난 아내에게 갈 거냐는 질문을 보며 마치 동료는 오랫동안 기다리고 있을 아내와 그에게 갈 남편을 떠올렸을 테다. 누군가에게 가기 위해선 기다리는 사람이 있을 때 가능했다. 그래서 가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두 가지가 고마운데 하나는 기다려주는 사람이 있어 고맙고, 이 세상에 단 한 사람이라도 보고 싶어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고맙다. 그래서 누군가에게 갈 수 있는 사람은 행복하다. 지금 당장 만날 수 없는 사람을 기억 속에서 만날 수 있는 사람도 행복할 것만 같았다. 마음의 방 안에 한 사람을 그리워하며 기다라고 그 마음의 문을 열고 언제나 만날 수 있을 테니까.

 

 지난 4년의 시간을 따라 기억을 더듬어 갈 즈음 그 친구로부터 전화가 왔다. 
 “어디야?”
 친구가 물었다. 
 “밖이야. 금요일 저녁엔 민호를 부모님에게 맡기거든. 혼자 있으면 답답해서 금요일 저녁엔 밖에 있어.”
 “그래서 집에 없었구나. 나 너 집 앞이거든. 언제쯤 올 수 있어?”
 집 앞이라고 했다. 깜짝 놀라 시계를 보니 밤 10시가 훌쩍 넘었다. 집까지 서둘러서 가더라도 30분은 족히 거릴 거리에 있었다. 그 동료는 30분 정도면 집 앞에서 기다리겠다고 했다. 기다리겠다 라는 말을 듣고 무슨 일인지 묻지 않았다. 그에겐 반드시 만나야 할 이유를 ‘기다리겠다’는 말로 대신하는 듯 했다.

 

 전화를 받을 즈음엔 상수역에서 4호선으로 전철을 갈아타는 플랫폼에 서 있었다. 4호선 전철은 서울과 경기도의 경계인 ‘사당’까지만 가는 전철과 서울과 경기도의 경계를 넘어 안산까지 가는 전철로 나뉘는데 하필이면 사당역까지 가는 전철이 먼저 도착했다. 경기도로 가는 전철은 한참 뒤에나 도착할 예정이었다. 왜 그 친구가 이 시각에 집에 와 있을까 란 질문이 잠깐 들었다가도 서둘러 가야 한다는 생각이 모든 의문을 지워 버렸다. 사당에서 내리자마자 뛰어 올라 역사 밖으로 나갔다. 금요일 밤 택시는 원거리 승객만 태우려 했고 사당 전철역에서 가까운 과천까지 가는 택시는 잡히질 않았다. 택시를 포기하고 버스에 오르자 버스 안은 술냄새와 대화 소리로 가득찼지만 집밖에 기다리고 있을 동료 생각에 버스 앞 창문만을 바라봤다. 승객을 가득 실은 버스는 신호등을 빨리 지나치기보다는 천천히 안전 운전을 했다. 버스 정류장에서 내리자 마자 전화를 걸어 지금 뛰어 가고 있다는 말로 집앞에서 50분이나 기다린 친구의 마음을 달랬다.

 

 집앞에 다다르자 친구의 차가 보였다. 차 안 어둠 속에서 휴대폰을 바라보던 친구의 얼굴이 보였다. 어떻게 미안함을 전해야 하는지 문밖에서 가슴 저리는 사이 50분 동안 집앞에서 기다리던 동료가 차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막상 그를 보는 순간 별다른 말을 할 수 없었다. 미안하다는 말대신 그리고 무슨 일이 있느냐 는 말대신 그가 들고 온 꽃바구니에 시선과 말이 모두 멈췄다. 양 어깨 길이 남짓한 크기의 커다란 꽃바구니, 그 바구니 위엔 하얗고 붉은 꽃들이 한 아름이었다. 
 “OO씨 기일이잖아.”
 동료는 다시 한번 아내가 떠난 날을 확인해주며 꽃바구니를 내 손에 쥐어주었다. 고맙다는 말이나 미안하다는 말 대신 짧게 감탄사를 내뱉었다. 감탄사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이 언어와 만나지 못한 채 아무런 계산없이 나온다.

 스승의 날(보정).jpg

꽃바구니를 집안에 가져다 놓은 뒤 친구를 데리고 집앞 맥주 가게로 끌고 갔다. 늦은 시간이라 부담스럽다는 친구의 말을 뒤로 한 채 무조건 가야 한다며 떠밀었다. 너가 나에게 준 부담을 나 혼자다 받기에는 버거우니 맥주 한 잔만의 부담을 덜어 내고 싶은 내 욕심이 그를 잡아 끌었다. 맥주병 다섯 개와 마른 안주 세트를 주문했다. 
 “꽃바구니 주려고 지금까지 기다린 거야?”
 “하필이면 스승의 날이 OO씨 기일이잖아. 어떻게 잊어. 지난 2년 동안 바쁘다는 핑계로 넘어갔는데 이번엔 휴일이어서 챙기고 싶었거든.”
스승의 날이 떠난 아내의 기일이라는 생각은 동시에 아이 얼굴을 떠올리게 했다. 민호는 어버이날이 있는 5월을 힘들어 했지만, 조금 더 나이가 들면 엄마가 떠난 날이 스승의 날이라는 사실에 5월이 민호를 더 힘들게 할 것만 같았다.

 

 민호 생각이 스치면서 동시에 꽃바구니 생각도 났다. 커다란 꽃바구니의 크기가 고마우면서도부담스러웠다. 살아서 가장 큰 꽃바구니를 받아본다는 말에 친구는 그 꽃을 사게 된 과정을 설명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자신의 아내에게 꽃을 부탁했는데 한아름 크기의 꽃바구니를 사왔다고 했다. 자신도 놀랐다는 반응이었다. 동료 부부 두 사람을 오랫동안 알고 지냈는데 이번 기일엔 그의 아내까지 기일을 같이 챙겨준 셈이었다. 그러니까 꽃바구니는 친구의 아내가 사고 배달은 친구가 한 셈이었다. 고맙다며 친구 아내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했다. 
 “얼마나 됐지?”
 “5년째. 만 4년이야.”
 “벌써 그렇게 됐구나.”
 우리 두 사람은 아내가 병원 과실로 떠난 횟수를 확인한 뒤 아이를 키우는 아빠로서 사는 이야기를 나눴다. 자정을 넘긴 시간까지 두 사람의 수다가 이어졌다.

 

 친구와 헤어지고 집안에 들어서니 꽃향기가 집안을 가득 채웠다. 꽃을 보며 그 꽃을 전해주기 위해 집밖에서 50분이나 혼자서 있었던 그 기다림이 고마웠다. 그리고 꽃을 사기 위해 고속터미널 지하를 다녔을 친구의 아내도 그 꽃바구니가 전해지기를 다른 공간에서 기다렸을 것만 같았다. 
지나고 보면 많은 사람들이 아내를 떠나 보낸 젊은 아빠와 어린 아이를 묵묵히 지켜보며 기다려주었다. 감당할 수 없는 감정이 가슴에서 차오를 때 글로 풀어내 블로그에 올릴 때면 그럴 때마다 블로그를 찾아준 많은 분들은 위로와 격려를 해 주며 두 사람이 일어서 걸을 때까지 지켜봐주었다. 가슴 아파 방황하던 아들을 묵묵히 기다려 준 부모님이 계셨고, 그리고 그런 아빠 곁에 아이도 함께 시간을 보내주었다. 그 사이 오랫동안 아내를 마음의 방 안에 놓아 둔 채 아내와 만나는 날을 기다렸던 난 마음의 방에서 조금씩 문을 열고 나왔다.  

 

 추모관은 고인이 쉬는 곳이 아니라 고인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찾아가는 곳이다. 그래서 추모관은 고인의 넋을 달래기보다는 남은 자의 마음을 달랜다. 고인에게 갈 거냐는 친구의 질문은 고인이 추모관에 있기 때문이 아니라 기일을 챙기지 못한 미안함과 혼자 남은 친구를 위하는 마음으로부터 나왔을 터이다. 넘치는 자신의 업무와 가정 생활에도 불구하고 떠난 누군가를 기다려준 그 마음이 고맙고 따뜻했다. 


아내가 떠난 지 4년이 지난 지금, 난 떠난 아내를 그리워하기 보다 내 곁을 지켜준 그 동료와 그 동료의 아내와, 내 곁을 지켜준 아이와 부모님과, 우리 가족을 지켜봐 준 사람들과 만나는 시간을 더 그리워하기로 했다. 떠난 아내와 함께 한 시간이 감사하지만 그렇다고 과거에 머무를 때 내가 오늘 만날 수 있는 사람들과, 오늘 내가 할 수 있는 일들과, 오늘 내가 배울 수 있는 기회를 놓칠 수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 꽃바구니를 볼 때 떠난 사람보다 내 동료와 그 동료의 아내가 더 고맙고 다시 만나고 싶었다.

스승의 날 2.jpg

 그 동료를 만난지 열흘이 지나 민호를 돌보던 선생님으로부터 문자가 왔다. 대학원을 밤늦게까지 다니다 보니 민호를 돌보는 선생님은 민호를 재우고 귀가를 하시는데 이날 따라 다소 긴 문자를 보내셨다. 민호 돌봄 선생님은 민호와 나눈 대화를 생생하게 보내주셨다.

 민호가 잠깐 잠들었다가 
  “왜 눈에 눈물이 맺혔지?” 
 “하품했나보네”
 괴한들이 엄마를 하늘로 보내는 꿈을 꿨다고요 
 기분이 어떠냐고 물었더니 “찝찝해요” 하고는 활짝 웃네요 
 그러고는 잠들었어요.

IMG_1441.JPG

어버이날을 맞이해 은하철도 999를 불렀던 민호는 결국 꿈에서나마 엄마를 만났다. 프로이트는 ‘꿈의 해석’에서 현실에서 억누르는 무의식이 꿈에 나타난다고 했는데 민호는 그만큼 엄마를 만나고 보고 싶어했다. 민호는 엄마를 기다리고 슬퍼하는 시간이 클 것만 같았다. 슬픔이나 즐거움이나 모든 감정은 일시적으로 나타났다 사라진다고 했다. 그래서 슬픔은 외면하고 회피하는 게 아니라 견디어 내고 받아들일 때 슬픔은 떠나 간다. 그리고 견디어 낸 슬픔 뒤에는 지난 시간은 아름답게 남는다. 안타까운 건 그 슬픔은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아빠가 충분히 슬퍼하고 가슴 아파한 뒤 엄마를 그리워하기 보다는 내가 지금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을 그리워하는 것처럼, 민호도 충분히 슬퍼하고 가슴 아픈 시간이 지난 뒤 엄마를 그리워하기 보다는 민호를 지금 여기서 사랑해주고 아껴주는 사람에게 눈을 돌리기를 희망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민호 주변에 많기를 소망했다. 난 민호가 아파하는 그 시간을 내 부모님과 내 동료들이 그랬던 것처럼 묵묵히 지켜보며 아이가 스스로의 힘으로 일어서는 날을 아이 곁에 남아 기다리기로 했다.  2016년 5월이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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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구
이름 앞에 붙는 수식어를 만들고 다듬느라 35년을 흘려보냈다. 아내와 사별하고 나니 수식어에 가려진 내 이름이 보였다. 해야 할 일보다 하고 싶은 일을 찾으려고 기자 생활을 접고 아이가 있는 가정으로 돌아왔다. 일 때문에 미뤄둔 사랑의 의미도 찾고 싶었다. 경험만으로는 그 의미를 찾을 자신이 없어 마흔에 상담심리교육대학원에 진학했다. 지은 책으로는 '지금 꼭 안아줄 것' '나의 안부를 나에게 물었다'가 있다.
이메일 : areopagi@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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