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을 알리는 첫 월요일 오후, 문자 한통이 도착했다. 같이 책을 읽고 글쓰기 수업을 하던 아이의 번호였다. 5월 첫째주는 회사원에겐 임시 공휴일을 기다리는 날이었고, 연인에겐 계절의 여왕을 만나는 시간이었으며, 어린이에겐 커다란 선물을 기다리는 때였고, 부모에겐 감사의 편지를 받는 기대를 갖던 시기이지만, 십대 청소년에게 5월의 첫 주는 꽉 막힌 공간 안에서 답답함과 자유로움 사이에서 고통을 받는 시간이었다. 전국이 맑은 하늘과 여유로 설레는 5월의 첫째주, 십대는 내가 남과 비교하고 남이 나를 비교하는 중간고사를 치렀다. 봄을 만나고 싶었던 십대들은 안과 밖을 구분하기 위해 투명하게 가로막은 도서관 유리창을 통해서 5월을 바라볼 뿐이었다.

 

도서관 창밖은 초록이 짙어졌지만 문자를 보낸 십대 아이는 지난 몇 주 동안 자신의 따뜻한 색을 서서히 잃어갔다. 중간고사 시험이 가까워질수록 그 아이의 입은 거친 단어로 채워졌고 손과 몸짓도 날카롭게 불쑥 튀어나왔다. 지인의 부탁으로 시작된 글쓰기 수업 시간. 3~4명의 아이들과 함께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시간을 벌써 5년 동안 갖다보니 가까이서 십대들의 행동과 말을 지켜볼 수 있었다. 최근들어 그 아이에겐 친구가 전하는 어떤 이야기도 짜증스러워 했다. 친구들이 말을 걸면 그 말의 뜻을 부정적으로 해석한 뒤 부정적으로 해석된 말로 되돌려 주었다. 자신을 챙기던 엄마의 말과 행동에서도 마음에 들지 않은 말과 행동만 듣고 보였다. 침착했던 아이의 눈동자는 갑자기 분노를 품기도 했고, 한숨이나 분을 삭이며 주먹을 쥐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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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아이를 데리고 조용한 방 안으로 들어가 마주앉았다. 단정하게 깎은 머리, 조그마한 얼굴에 짙은 눈썹, 얼굴 아래부터는 팔과 다리엔 16살의 에너지를 담은 근육이 단단하게 붙어 있었다. 경제적으로 넉넉한 환경과 내노라하는 엘리트 집안의 아이가 왜 최근 공격적으로 변하는지 궁금했다. 


학교 생활이 어떠냐고 물었다. 아이는 잠시 침묵을 하다 입을 열었다. 요즈음 화가 많이 난다고 했다. 구체적으로 어떤 상황에서 화가 나는지를 물었다. 운동을 하다 실수를 할 때면 그 아이는 자신의 실수를 놀리는 친구들의 말이 거슬린다고 했다. 


“성적도 낮은 애들이 저를 놀리는 걸 참을 수가 없어요. 시험으로 한 번 붙자고 하면 걔네들은 자신이 없으니까 피하면서 저를 이래 저래 놀려요. 그냥 짜증이 나고 화가 나요.”
분노는 때로는 거친 말로 바뀌어 나타났다.

 

전교 30등 안팎의 성적. 내로라하는 가문 환경. 잘 생긴 외모를 갖춘 그 아이가 친구들의 농담 섞인 놀림에 그토록 신경을 쓰는 이유가 궁금했다. 아이는 반복해서 친구와 시험 이야기를 연관지었다. 친구로 시작한 이야기는 얼마 뒤 학원 스트레스 이야기로 이어졌다. 중3만 되어도 밤 11시 넘게까지 학원을 다니는 현실, 2016년 대학민국 입시는 더 이상 대학 입시가 아니라 고등학교 입시가 되어버린 현실을 들었다. 아이의 모든 말 속엔 시험과 자신의 목표가 자리잡고 있었다.


그 아이에겐 친구들은 크게 둘로 나뉘었다. 자신보다 성적이 좋은 친구와 자신보다 성적이 낮은 친구. 그리고 자신은 성적이 좋은 친구와 성적이 낮은 친구 사이 좁은 틈에 꽉 끼여 있었다.

 

성적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란 어른의 말은 잠시 위로일 뿐 진정한 위로는 되지 못한다. 많은 학생들에게 성적은 숫자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대한민국 학교란 공간에서 한 학생은 성적을 통해 인정을 받는다. 그건 윤리의 문제가 아니라 현실의 문제이다. 사람은 크게 두 가지 측면에서 인정을 받는다고 했다. 하나는 내가 나를 인정하는 과정이고 다른 하나는 남이 나를 인정하는 과정이라고 했다. 그러니까 학생들에게 성적이 높다는 건 다른 사람들이 나를 인정해 주고 높이 평가해 주는 의미가 있다. 미국의 유명한 심리학자 매슬로우는 인생을 욕구를 실현해 가는 과정이라면서 ‘인정 욕구’를 가장 높은 욕구 가운데 두 번째로 높은 단계의 욕구라고까지 했다. 누군가가 나를 인정해 주는 일만큼 나를 들뜨게 하고 즐거운 일도 많지 않을 테다. 동의할 수 없는 현실이지만 5년 째 아이들을 만나면서 배운 건, 아이들에게 자신의 성적은 세상으로부터 인정을 받을 수 있는 징표였다.

 

잠시 침묵이 흐르고 땅을 향해 고개를 떨어뜨린 아이가 촉촉한 눈으로 조용히 말을 건넸다. 

“선생님, 저는 제가 원하는 고등학교에 입학을 못할 것 같아요. 결국 서울대학교에 못 들어가겠죠. 그건 우리 집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에요.”

그는 자신을 대학교 이름과 비교했다. 자신 부모부터 가까운 친척에 이르기까지 모두 서울대학교를 졸업했다는 사실을 그 아이는 다시 한번 떠올렸다. 서울대학교를 들어가는 건 어렸을 때부터 일종의 숙명이었다고 했다. 대학 이름과 자신의 이름을 비교하던 아이는 자신을 향한 비난의 말을 하나씩 꺼내놓았다. 수학에선 자신보다 수학을 잘하는 아이들이 보며 자책했고, 영어에선 자신보다 영어를 잘하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자신을 비난했다. 남과 자신을 비교할 때마다 스스로 자신을 오그라뜨렸다. 결국 그런 비교의 말은 자신의 부정적인 평가로 결론을 내렸다.


“선생님, 전 잘하는 게 없어요.”
 

원하는 고등학교를 갈 수 없는 현실을 보며 자신의 미래는 어두울 것이라고 단정지었다. 원하는 고등학교를 가지 못하더라도 미래가 밝을 수 있는 가능성은 하늘의 별처럼 많지만 그 모든 가능성이 없다며 자신의 지난 시간을 자책했다.  아이의 말을 한참을 듣다가 되물었다.
 

“OO아, 넌 스스로 잘하는 게 없다고 생각하고 있구나.”

자신의 말을 다시 한번 되새겨보기를 바라며 아이가 한 말을 그대로 되받아 되돌려 주었다. 자신의 말을 그대로 비춰주면 상대는 내가 한 말을 거울 삼아 자신을 되돌려 보는 시간을 갖는다. 심리 상담에서 대화는 상대가 말한 걸 되풀이 하며 상대가 스스로 자신의 생각과 감정이 합리적인지 그렇지 않은지를 점검하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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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과 나를 비교하면 나는 남보다 작은 나를 발견한다. 나보다 돈이 많은 사람과 나를 비교할 때면 돈이 없는 내가 보이고, 나보다 잘 생기거나 예쁜 외모를 지닌 사람과 나를 비교할 때면 볼품없어 보이는 내가 보인다. 남과 나를 비교를 할 때면, 그렇게 비교를 할 때마다 나는 못난 나와 만나야 한다. 그래서 남과 나를 비교하는 시간은 그 비교를 통해 더 나은 나로 성장하기보다는 부족하고 볼품없는 나를 보는 시간이다. 남과 나를 비교할 때 내가 나에게 화가 나거나 내가 나에게 불만을 품거나 내가 나 때문에 울적한 감정을 남긴다. 주변 친구들의 작은 놀림에도 민감하게 반응했던 건 그 친구들이 놀린 말 때문이 아니라 그 말의 내용을 사실로 받아들였기 때문이었다. 주변 사람들의 평가 때문에 감정이 상하는 건 주변 사람들의 평가가 문제가 아니라 자신이 그런 평가를 받을만한 사람이라고 스스로 판단하는데 원인이 있었다.

 

걸어 잠근 문을 열기 전 그 아이에게 부탁의 말을 건넸다. 다른 사람과 비교를 하지 말라고, 그건 너를 더 좌절하게 만들 것이라고. 그러면서 너무 높은 목표도 너를 무릎꿇고 속상하게 할 것이라고 전했다. 이야기를 듣던 아이는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었다. 자신이 발전하기 위해선 남과 더 비교를 해야 하고 큰 목표를 가져야 자신도 더 큰 사람이 될 거라고 반박했다.


그 아이의 이야기를 들으며 잠시 예전의 내 모습이 그 아이를 통해 보였다. 사회부 기자 시절엔 매일 내 기사와 다른 기자의 기사와 비교를 하고, 내가 사는 집의 크기와 다른 사람의 집의 크기를 비교하고, 내가 타던 차와 다른 좋은 차를 비교하던 시절, 그렇게 비교를 하는 게 나를 성장시킬 것이라는 믿음은 되돌이켜보면 나의 삶은 행복이 없는 전쟁터였다.

아이의 고백을 들으며 최근 나의 경험을 고백했다. 


“지난 번에 낸 나의 책이 몇 권 팔렸는지 확인을 하고, 내 책과 동시에 나온 또 다른 작가의 책이 몇 권 팔렸는지 비교를 하던 때가 있었거든. 그런데 그런 비교가 글을 쓰는데 도움이 되지 않더구나. 그런 비교는 나를 더 무기력하게 만들고 오히려 글쓰기에서 멀어지게 했거든. 살림도 마찬가지였어. 갑자기 아내와 사별을 한 내가 다른 엄마들의 살림과 비교를 하면 육아도 살림도 더 하기가 싫어지게 되더라고. 계속 잘못하는 ‘나’를 발견하니까 말이야. 비교를 하면 할수록 나는 점점 더 못나 보였지.” 


그 아이는 나의 고백을 조용히 들었다. 침묵 속에서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묻는 것 같았다.

 

남과 하는 나의 비교는 나를 더 위축시키지만, 과거의 나와 지금의 나를 비교를 하면 그 비교는 나를 더 성장시킨다고 전했다. 그리고 지금의 모든 시간은 과거보다 ‘조금’, ‘아주 조금’만 더 성장시키기 위한 시간이라고 생각을 하면 우리가 지나온 모든 시간과 지금 겪고 있는 시간은 모두 의미가 있을 거라고 말했다. 우리에게 모든 시간은 배움의 시간이고 그래서 그 배움을 통해 예전보다 아주 작게나마 성장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을 거라고 했다. 


난 그렇게 글을 쓰는 시간의 어려움과 살림과 육아의 좌절감 속에서 나를 지키고 있다고 전했다. 행복에 이르는 길은 남과의 비교가 아니라 과거의 나와의 비교라고 말한 건 나의 말이 아니라 요즈음 인기를 끄는 심리학자 아들러의 생각이었으며 대학원을 다니며 다른 심리학 수업 시간에 배웠던 내용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중간고사 시험 결과 목표를 너무 높이 세우지 말고 지난 시간보다 아주 조금만, 아주 아주 조금만이라도 더 오른다면 그걸로도 충분할 것이라고 서로 이야기를 주고 받았다. 그리고 난 뒤 잠갔던 문을 열었다. 그렇게 오랜 이야기를 주고 받은 뒤 그 아이는 중간고사 시험을 치렀다.

 

연휴가 시작되기 전날, 아이는 성적이 올랐다는 반가운 목소리를 담은 문자를 보냈다. 자신이 생각한 것보다 많은 점수가 오른 모양이었다. 그 문자만 보아선 여전히 남들과 비교해서 기뻤는지 아니면 지난 자신의 성적보다 올라서 기뻤는지는 알 수 없었다. 문자를 보며 그 아이가 느끼는 기쁨이 숫자를 넘어 힘든 시간을 견디어 온 자신을 바라보고 자신을 다독이고 자신을 인정하고 자신을 믿는 기쁨이면 좋겠다 라는 바람을 가졌다. 성적의 결과로 다시 남과 자신을 비교하는 순간 자신에게 남는 건 분노와 자책의 감정이라는 사실과 자신은 자신이 기대하는 모습에서 더 멀어질 거라는 걸 기억해 주기를 희망했다. 중간고사 시험의 결과보다 어려운 시간을 지나온 자신을 마음껏 칭찬해 주면 좋겠다. 지나온 시간 속에서 의미를 찾고 그 시간을 통해 성적이 오른 것보다 더 소중한 건 모든 시간은 성장을 위한 시간일 수 있다는 걸 배우기를 바랐다.

 

아이를 키우는 아빠로서 자주 아이를 다른 아이들과 비교하기보다는 성장하고 있는 아이의 모습에 집중하는 아빠가 되기를 기도했다. 다른 아이와 비교를 하는 순간 민호는 더 성장하기보다 위축되고 좌절하며 부정적인 감정에 휩싸일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을 기억하기로 했다. 공부든 행동이든 정체하거나 심지어 퇴행을 하더라도 그 모든 시간은 아이가 더 성장하고 성숙하기 위한 시간이리라 믿어주는 아빠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랐다. 그런 아빠가 되기 위해서 내가 나의 삶을 먼저 다른 사람들의 삶과 비교하지 말자고 다짐했다.

 

“행복의 첫 번째 비밀은 자신을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않는 것이다” 

– 꾸베 씨의 행복한 여행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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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구
이름 앞에 붙는 수식어를 만들고 다듬느라 35년을 흘려보냈다. 아내와 사별하고 나니 수식어에 가려진 내 이름이 보였다. 해야 할 일보다 하고 싶은 일을 찾으려고 기자 생활을 접고 아이가 있는 가정으로 돌아왔다. 일 때문에 미뤄둔 사랑의 의미도 찾고 싶었다. 경험만으로는 그 의미를 찾을 자신이 없어 마흔에 상담심리교육대학원에 진학했다. 지은 책으로는 '지금 꼭 안아줄 것' '나의 안부를 나에게 물었다'가 있다.
이메일 : areopagi@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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