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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의 학교가 개학을 했다. 그러나 아들은 학교에 가지 않았다.
2년간 다닌 학교를 끝으로 제도권 학교를 나온 것이다.
3학년 부터는 집 근처에 있는 작은 대안학교에 다니기로 했다.
요즘에야 대안학교에 다니는 일이 그리 대수로운 일도 아니지만 이런 결정을 하기까지
우리 가족은 적지 않은 진통을 겪었다.

첫 아이를 신도시의 아파트 숲에 낳고 기르면서 아이의 교육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다.
조금만 크면 학습지를 시키고, 아파트 단지 안에 있는 학원을 보내고, 전교생이 아파트 단지
아이들로 채워져 있는 획일적인 초등학교에 보고 싶지 않았다.
나도 자라는 동안 제도권 교육에 대한 트라우마가 적지 않았다. 내  아이가 태어나 자랄 무렵에는
달라져 있을거라고 믿었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내가 학교에 다닐때보다도
더 힘들어졌고 황폐해져 있었다. 늘 뭔가 다른 길이 있을거야... 라는 생각을 품고 있었다.
대안교육을 다루는 잡지를 구독하며 어렴풋이 그 '다른 길'에 대해서 고민하기 시작한게
큰 아이가 네 살 무렵부터 였다. 이렇게 키우는 집도 있구나, 이런 교육도 있구나.. 새로운
세상에 조금씩 눈을 뜨기도 했지만 내 아이에게 적용하기는 쉽지 않았다.
아들은 유치원도 다니지 않았다. 가고 싶지 않다고 해서 보내지 않았다.
대신 여섯살 때 산속에 있던 공동육아 어린이집에 9개월 정도 다닌것이 고작이다.
일곱살 땐 집 근처에 있던 청소년 문화센터의 어린이 프로그램을 조금 들었었다.
자연속에 있고, 공부보다는 놀이와 관계를 중요하게 여기는 그런 학교를 찾아 이리저리 발품을
팔다가 다행히 멀지 않은 곳에 폐교될 위험에 처해 있다는 시골 학교를 알게 되었다.
전철 역으로는 한 정거장 차이 였지만 신도시와는 아주 다른 전원 풍경이 펼쳐지는 곳이었다.
그 작은 학교는 그 당시 처음 선보이던 '혁신 학교'가 될 것이라는 얘기가 돌고 있었다.
그 말에 기대를 하고 이사를 했는데 입학이 가까와 오도록 혁신학교로 지정되었다는 얘기가
들리지 않았다. 일반 학교는 보내고 싶지 않아서 더 알아보니 마침 우리가 사는 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작은 대안학교가 있었다.
학교 설명회를 참석하고 남편을 설득해서 등록을 하고 힘들고 까다롭다는 입학절차도 밟았다.
아들은 계절학교에 참석하더니 재미있다고 다니고 싶다고 했다.
그런데 입학만을 남겨둔 시점에서 그 시골학교가 갑작스레 혁신학교로 지정되었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 짧은 사이 극심한 혼란을 겪었다.
혁신학교 때문에 이사를 했던 것인데 대안학교 수속을 다 밟은 상태에서 지정 발표가 나다니..
대안학교의 가치와 철학이 맘에 들긴 하지만 혁신학교는 어떻게 다를지 궁굼했다. 다른 곳에서
솔솔 들려오던 성공사례에도 마음이 끌렸다. 때 맟춰 집안에 급작스런 일이 생겨 경제적으로
큰 지출을 해야 했다. 처음부터 대안학교보다는 혁신학교를 선호하던 남편이 적극적으로
혁신학교를 주장하기 시작했다. 일단 보내보고 아이가 정 적응하지 못하면 그때 대안학교로
옮겨도 되지 않냐느 것이었다. 그래서 아이를 설득했다.
혁신학교가 어떻게 다른지 잘 모르지만 한 번 경험해 보자고, 그렇지만 언제라도 네가 원하면
대안학교로 옮길 수 있다고 얘기 했다. 아들은 동의했고, 우린 그렇게 첫 아들을 제법 복잡하고
어렵게 초등학교에 보냈다.

처음엔 희망이 컸다.
혁신학교로 지정되었다는 얘기에 수많은 입학생이 몰려 들어서 입학식도 흥성거렸고, 무엇보다
매일 아침 교문에서 일일이 전교생을 맞이하는 교장선생님의 정성스런 모습이 좋았다.
그러나 아들이 입학할 무렵에 겨우 100일이 되는 셋째를 돌보던 나는 아들의 학교 뒷바라지를
전혀 해 줄 수 가 없었다. 아들은 친구 엄마들을 따라 등, 하교를 했고 늘 엄마들과 함께
학교에 다니는 친구들을 부러워 했다. 학교는 산길을 따라 20여분을 걸어 가야 했는데
어린 아기와 다섯 살 둘째까지 데리고 그 길을 함께 오갈 수 는 없었다. 아들은 늘 시무룩한 얼굴로
집을 나서곤 했다.
그래도 80분씩 블럭제 수업을 하고 30분간 쉬는 시간이 있는데, 아들은 이 쉬는 시간에 친구들과
딱지 치는 일이 제일 즐겁다고 했다. 무엇보다 아무때나 교장실에 들어가  교장 선생님과 이야기 하고
선물로 주시는 사탕을 받는 일을 좋아했다. 공부엔 관심이 없었지만 학교를 좋아해주기만을 바랬다.
그러다가 1학년을 마치고 지금 사는 집으로 이사를 했다.
30년간 아파트에서 살아오던 내게 너른 밭과 마당이 딸린 산자락의 단독주택 생활은 야생과 다름없었다.
혹독한 추위에 어린 막내가 탈날까 노심초사했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느라 나도 남편도 아이들도
각각 쉽지 않은 시간을 보냈다.
아무때고 인터폰을 해서 만나던 친구들이 새 집에는 없었다. 눈이 내리면 마을 버스도 잘 안 들어오는
새 집에서 아들은 겨우내내 눈썰매를 타고 동생들과 어울리며 지냈다. 그렇게 1학년 겨울방학을
마치고 다시 친구네 차를 얻어타고 학교에 다시는 생활이 시작되었다.
2학년 담임은 1학년때와 너무 달랐다. 공개수업때 갔더니 수업에 생기가 없었다. 아들은
자주 한 눈을 팔게 된다고 했다. 조금씩 늘어나는 학교 숙제도 싫어 하고 어려워 했다.
아침이면 늘 늑장을 부리고 가기 싫다는 얘기로 애를 태웠다.
2학기엔 사정이 더 안 좋아졌다. 아들이 제일 의지를 하고 좋아하던 교장 선생님이 갑자기
전근을 가시게 된 것이다. 새로 오신 교상선생님은 전형적인 제도권 스타일이었다. 교장실문은
굳게 닫혔다. 

'엄마..학교를 왜 다녀야 되요?' 아들은 묻기 시작했다.
'글쎄...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 새로운 것들을 배우기 위해서 다니는게 아닐까?'
'학교에 안 다녀도 배울 수 있잖아요'
'그렇긴 한데...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 어떤 것을 배우고 싶은지 알고 싶어서 다니기도 해.
'그런건 학교에 안 다녀도 알 수 있어요'
'엄마.. 숙제는 왜 해야되요?'
'학교에서 배운 것을 더 잘 알기 위해서 하는게 아닐까?'
'저는요, 숙제 때문에 학교에서 배우는게 더 지겨워져요'
'....'
'저는 학교 안 다니고 싶어요'

자주 이런 대화가 오고 갔지만 아들의 질문에 딱 떨어진 대답을 해 줄 수 가 없었다.
늘 내 안에 있던 질문들이기 때문이다. 언젠가는 아들에게 이런 질문을 들을지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이렇게 빠를줄은 몰랐다.
'전 수능시험같은 것은 안 볼래요', '저는 대학엔 안 갈거예요. 대학에 안 가도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어요' '엄마가 집에서 저를 가르쳐 주시면 안 되요?'

가끔은 진지하게, 그러다가 다시 아침이 되면 악다구니로 변해서 학교에 보내기 위해 아들과
싸웠다. 이런 갈등을 겪는 동안 아들은 내게 더 집요하게 매달리고 엄청난 분노를 쏟아냈다.
새 집에서 처음 겪는 모든 계절이 힘 들었다. 여름엔 비가 너무 많이 샜고, 가을엔 농삿일이
바빴다. 그 와중에 내게 쉼없이 달려드는 둘째와 막내를 거두는 일이 힘에 부쳤다.
그래서 난 큰 아이는 이제 제가 좀 알아서 해 주기를 바랬고, 자꾸 '너는 컸잖아. 니가 해'라는
소리를 달고 살았는데 아들은 엄마의 관심이 제게서 멀어진다고 느꼈던 모양이다.
학교에 대한 스트레스가 심해질수록 나를 공격하고 내게 스트레스를 푸는 횟수가 잦아졌다.
매일이 전쟁같았다.
그나마 마음을 나누던 제일 친한 친구도 갑자기 전학을 가버리자 아들은 학교에 다니고 싶지
않다고 선언했다. 좋아하는 친구도 없고, 자기를 괴롭히는 아이들도 있다고 했다.
나에게 폭풍같은 스트레스를 쏟아 놓으면서 '나도 학교에서 괴롭힘을 당하기 때문에 엄마에게라도
풀고 싶다구요! '라는 소리도 했다. 그제서야 나는 아들이 학교에서 겪는 일들을 진지하게
물어 보았다. 늘 별게 없다고 얘기를 안 하던 아들은 오래 뜸을 들인 후에 털어 놓았다.
언젠가부터 이를 닦고 씻는 것도 저 혼자 하게 했는데 아마도 그게 잘 안 되었던 모양인지
입냄새가 난다고 저를 놀리는 아이들이 있다는 것이다. 아기때부터 지금까지 코를 파는 버릇이
있는데 더럽다고 놀리는 아이도 있다고 했다.  돼지 같다고, 더럽다고, 냄새 난다고 놀릴 때마다
친구들을 때리고 싶었단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고 했다.
새 집에서의 살림이 너무 힘들어서 언제가부터 자꾸 너 혼자, 이젠 네가 알아서 라며 아들을
마음에서 밀어내고 있었던게 아닐까. 그럴수록 내게 더 매달리고 화를 내던 아들이었는데
그 마음을 읽으면서도 다 품어줄 여력이 없었다. 조금 더 크면 괜찮겠지.. 이렇게만 생각하는
동안 아들은 학교 생활에서 적지않은 상처들을 품고 있었던 것이다.

다시 큰 아이를 씻기는 일부터 내가 직접 나섰다. 학교를 찾아가 담임선생님과 상담을 해 보니

아들은 또래 친구들과 생각하고 표현하는 방식이 많이 다르고 수업에 집중을 잘 하지 못한다고 했다.

그렇다면 그 동안 무슨 생각을 하며 수업시간에 앉아 있었을까.. 생각하니 마음이 짠했다.

 

학교에 처음 보낼때부터 공부를 잘 해야 한다는 생각은 가져본 적이 없다.
다만 친구들이 있으니까 친구들과 노는 일이 재미있어서라도 학교를 좋아해주기를 바랬다.
필규는 제가 다니는 학교가 혁신학교라서 일반 제도권 학교보다는 여러모로 나은 점이 있다는 것을
사촌들을 통해서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교 생활은 즐겁지 않았던 모양이다.
교과서도 너무 재미없고, 수업도 재미없고, 선생님도 무섭고, 숙제도 싫고, 친구들도 싫다고 했다.
더 다녀보면, 더 친해지면 해결될 일이라고 아들을 설득할 수 가 없었다.
어떤 문제들은 시간이 해결해 줄 수 있는 성질이 아니라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오래 고민하다가 '그 대안학교라면 다니고 싶니?' 라고 물어 보았다.
'네.. 거기라면 한 번 다녀보고 싶어요' 아들은 대답했다.

그렇게 나와 아들은 다시 2년간 잊고 있었던 대안학교를 찾았다.
아들은 학교를 옮기고 싶어했지만 남편은 처음엔 반대했다. 학교를 다니면서 겪는 여러 어려움들을
이겨내는 것이 교육이지 그 문제들에서 아이만 빼 오는게 능사는 아니라는 것이다. 물론 그렇다.
대안학교라고 해서 문제가 없을리 없고, 새로운 문제들이 생기고 거기서도 적응하지 못하면
그땐 어떻게 할거냐고도 했다. 물론 그럴 수 도 있다. 하지만 나는 무엇보다 아들에게 기회를
주고 싶었다. 내가 어릴때는 학교아니면 안되었기 때문에 감히 그 안을 벗어난다는 것은
생각하지도 못했지만 내 아이에겐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다. 다른 세계도 있다는 것을 알게 해주고
싶었다. 어떤 세계든 문제가 없을 수 없지만 더 마음이 가고, 더 애쓰고 싶고, 더 행복해질 수
있는 선택이 있다고 믿고 싶었다.
대안학교의 특성상 편입은 주로 저학년에서만 가능하다는 것도 중요했다.
남편은 결국 나와 아들의 말에 따라 주었다.
다시 까다로운 절차를 밟고, 서로의 생각을 확인하고 알아보는 치열한 논쟁을 거쳐가며 편입이 결정되었다.
입, 편입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계절학교를 다녀온 아들은 '빨리 빨리 다니고 싶어요'라며 웃었다.
우리 가족은 이제 2월 18일부터 1박 2일로 대안학교에 다니는 모든 구성원들이 모여 진행되는
입학식을 기다리고 있다. 가족소개 동영상도 만들어 보냈고, 입학식에 있을 장기자랑을 연습하는
중이다. 

전교생이 30명에 필규 학년은 겨우 여덟명 뿐인데다 학부모 모임도 많고 해야 할 역할도 많다.
일반 학교에 보낼때보다 훨씬 더 할 일도 늘어나고 바빠져야 하는게 대안학교다. 게다가 아빠들의
역할도 많다. 힘들기도 하겠지만 기대가 더 크다. 아들을 학교에 보내놓고 한 걸음 뒤로 빠져 있던
남편과 함께 아이 교육에 뛰어 들어야 하는 것에 더 많은 기대를 하고 있다.
한 달 교육비 40만원을 부담해야 하는 것이 만만치는 않지만 이제껏 학원 하나 안 다닌 것을
생각하면 남들이 평범하게 한 아이를 10년가 키우면서 들인 돈을 우린 지금부터 들이는 것으로
생각하면 된다. 다행히 이 학교는 출자금도 저렴해서 문턱이 낮다.

필규와 같은 문제를 겪는 아이들에게 대안학교만이 답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제도권 학교에 적응해야 한다고 여기지도 않는다. 다만 자신이 처해 있는
상황과 환경에 맞게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만약 우리집 가까이 갈 수 있는 대안학교가 없었다면 나도 이런 선택을 하진 않았을 것이다.
생활의 터전을 옮기고 다른 식구들의 희생을 감수해야 한다면 그 또한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우린 다행히 가까운 곳에 대안학교가 있었고 필규 혼자 집 앞에서 마을버스를 타고 다닐 수 있는
곳이기에 선택할 수 있었다. 중학교는 어떻게 하냐고 묻기도 하지만 벌써 거기까지 고민하진
않으려 한다. 4년간 이 학교에서 생활하다보면 그 이후의 길에 대해서도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둔대학교 2.jpg

 

  방학이 끝나기 전에 세 아이들을 데리고 필규가 다니던 학교를 찾았다.
빈 교실에 들어가 필규의 흔적이 남아 있는 모든 것들을 카매라에 담고 필규가 앉아서
공부하던 자리에 다시 앉아 보았다. 좋은 일도, 나쁜 일도 있었지만 필규에게도 나에게도
첫 학교였다. 똑같이 생긴 학교건물, 똑같이 생긴 복도와 교실 풍경을 나 역시도 진저리쳤지만
그래도 이 곳을 떠난다는 생각엔 가슴이 뭉클해졌다.
윤정이와 이룸이 손을 잡고 필규를 데리러 오가던 복도며, 필규가 늘 오래까지 혼자 남아 있던
도서실이며, 처음으로 참가한 운동회에서 1등으로 나를 향해 달려오던 기억들이며 2년간의
온갖 추억들과 인사했다. 나는 눈물이 글썽했지만 필규는 담담하고 특별한 감흥을 보이지 않았다.
제가 열심히 만들어 전시했던 미술 작품 하나만 정성껏 품에 안고 나왔을 뿐이다.

첫 아이는 내게 처음부터 지금껏 가장 어려운 숙제다.
조산원에서 낳겠다고 했을때부터 반대를 당했고, 유치원을 보내지 않는다고 했을때도 염려와
걱정을 들었다. 변두리로 이사가는 것도 이해하지 못했고, 학원 하나 보내지 않는 것도
좋은 소리 듣지 못했다. 이 아이와 맞는 일은 늘 처음이다. 우린 항상 함께 첫 길을 내며 걸어왔다.
윤정이와 이룸이는 필규가 한번 지난 길이라 한결 수월하게 통과하고 있다.
이런 운명이 억울하다고 얘기하는 필규지만 그래서 더 마음이 가고 애틋한 아들이다.
이제 나는 필규와 함께 대안교육의 새 길을 간다. 설레기도 하고 두렵기도 하다.
그러나 늘 그랬듯이 이 아이와 처음 가는 길에서 수없이 다양한 풍경들을 경험할 것을 안다.
그 길 끝에 무엇이 있는지가 중요한게 아니라, 함께 가는 시간들이 우리에게 더 많은 성장을
줄 것을 믿기 때문이다.

어떤 경험이라도 우린 결국 더 많이 자랄 것이다.

그것이면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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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순화
서른 둘에 결혼, 아이를 가지면서 직장 대신 육아를 선택했다. 산업화된 출산 문화가 싫어 첫째인 아들은 조산원에서, 둘째와 셋째 딸은 집에서 낳았다. 돈이 많이 들어서, 육아가 어려워서 아이를 많이 낳을 수 없다는 엄마들의 생각에 열심히 도전 중이다. 집에서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경험이 주는 가치, 병원과 예방접종에 의존하지 않고 건강하게 아이를 키우는 일, 사교육에 의존하기보다는 아이와 더불어 세상을 배워가는 일을 소중하게 여기며 살고 있다. 계간 <공동육아>와 <민들레> 잡지에도 글을 쓰고 있다.
이메일 : don3123@naver.com      
블로그 : http://plug.hani.co.kr/don3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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