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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쿠알라룸푸르 새 공원에 가자, '바나나 입 새' 보러.

일어나, 일어나, 일어나, 일어나, 어서 일어나, 어서 일어나라니까~
새 공원 가자~ ‘바나나 입’ 새 보러 가야지~
오늘도 종달새 한 마리가 잠을 깨운다. 서울에서는 가장 늦잠 꾸러기였던 좌린, 여행만 오면 종달새로 변신하여 빨리 나가자고 성화다.
이상해, 이상해, 아빠는 이상해,
아빠는, 아빠는, 왜 맨날 서울선 늦게 일어나 더 잔다, 잔다 하고, 여기선 젤 일찍 일어나, 일어나라, 일어나라 해?
우리도 노래로 화답.
“엄마, 진짜로 ‘바나나 입 새’ 보러 가는 거야?”
그 새의 이름이 ‘혼빌(horn bill)’이라고, 부리에 뿔이 있어 붙여진 이름이라고 설명해주었지만, 아이들은 계속 ‘바나나 입 새’라고 부른다.
“엄마, 동전 챙겼어? 먹을 거 사주려면 동전 많이 있어야 한대잖아.”
지난밤에 회사 일로 쿠알라룸푸르에서 2년째 살고 있는 선배 가족을 만났는데 그때 들은 말을 아루가 기억해냈다. 자판기에서 새 모이를 파는데 아이들 호기심을 채워주려면 동전을 넉넉히 준비해가라는 이야기였다. 어제 KLCC 공원에서 아이들이 아주 잘 놀아서 오늘 하루 더 가도 좋을 것 같았는데 ‘새 공원 강추!’라는 선배 가족의 말에 마음을 바꿨다. 새 공원은 해람이가 처음 생각해낸 일정이기도 하고. 나중에 싱가폴에 갈 거라서 나는 속으로 ‘쿠알라룸푸르 새 공원’과 싱가폴의 ‘주롱 새 공원’을 두고 어디가 나을까 고민하고 있었다. 싱가폴의 ‘주롱 새 공원’이 워낙 유명하다니까 지금 참고 나중에 가면 어떨까 생각했는데 쿠알라룸푸르 새 공원이 주롱 새 공원에 비해 덜 꾸며져서 좋다는 말에 마음이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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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쿠알라룸푸르 새 공원은 인공적인 모습이 느껴지지 않았다. 우리가 평소에 상상하던 공원이라기보다는 작은 트레킹 코스 같았다. 울창한 숲 사이로, 시멘트로 포장하지 않은 흙길을 따라 걸었다. 새들이 새장 속에 갇혀 있지 않고 자유롭게 날아다니고 사람들 사이로 걸어 다니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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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왕! 공원 산책로로 들어서자마자 우리를 깜짝 놀라게 한 것은 여러 마리 커다란 공작이었다. 공작새가 깃털을 쫙 펼치고 뽐내고 서 있는데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멋졌다, 엄청나게. “이렇게 크고 멋진 공작새는 처음이야!” 나는 아이들보다 더 흥분해서 셔터를 눌렀다. 사람이 가까이 가도 놀라는 기색 없이 유유히 걷다가 부채처럼 깃털을 펼쳐 제 모습을 뽐냈다. “저기, 저기, 저기도 있어!” 한두 마리가 아니라 곳곳에 널린 게 공작이었다. ‘뭐야, 여기는 공작새가 너무 많아. 공작새가 아니라 평민새라고 해야겠는걸!’ 싶을 정도로.
화려한 깃털이 아름답다, 처음의 생각. 사진 찍느라고 가까이서 얼굴을 클로즈업하고 보니 성격이 좀 못된 것 같은데, 그리고 나중에는 깃털이 무겁지 않을까, 안돼 보이기도 하고 아무 데서나 깃털 쫙~펼치고 서 있는 모습이 허세 부리는 것처럼 우스꽝스러웠다. 쿡쿡, 웃음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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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새 모이 파는 데가 어디야?”
입구에서 바꾼 동전을 들고 아루가 보채듯 물었다. 이럴 때 보면 아루는 나를 많이 닮았다. 얼굴은 좌린을 쏙 빼닮아서 지인들이 ‘여자 좌린’이라는 호칭을 붙여 줬지만, 성격에 있어서는 좌린보다는 비니(나의 애칭)에 가깝다. 뭔가 계획을 하고 그걸 실천해야 직성이 풀리는! 자판기에서 모이를 사서 새에게 주겠다고 마음먹은 아루는 계속 두리번거리며 자판기를 찾았다.
“어딘가에 있겠지. 가다 보면 나올 거야.” 나는 아루가 자판기는 잊어 두고 지금 이 순간을 즐기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계획한 일에 골몰하기보다 당장 눈앞에 펼쳐진 풍경, 신기한 새들의 모습에 푹 빠져 보면 어떨까. 그게 훨씬 아이다운 모습이 아닐까. 아루의 관심을 다른 곳으로 유도해보았지만, 별로 효과가 없었다. 아루의 마음은 금세 자판기로 돌아왔다. ‘타고난 성격을 어쩌랴, 마음먹은 일을 잊지 않고 해내는 것도 참 좋은 자세니까.’ 마음을 고쳐먹고 아루를 내버려 두기로 했다. 파랑새를 좇든, 자판기를 찾든.
마침내 자판기 앞에 도달했다. 50센트 동전 두 개를 넣어 손잡이를 돌리면 달걀보다 작은 동그란 통이 나온다. 학교 앞 문방구에서 하는 뽑기처럼! 열어보니 새 모이라기보다 물고기 밥으로 보였다. 자판기에는 ‘새 또는 물고기 먹이’라고 씌어 있었는데. 새에게 시도해보다가 반응이 없어서 바로 앞에 있는 연못의 물고기들에게 털어 줬다. 조그만 인공 연못 앞에 낚시 의자를 펼치고 앉았다. 무더운 날씨에 아이들이 숨을 헐떡거렸다. 얼굴도 벌겋게 달아올랐다. 서울에서 낚시 의자를 가져오길 참 잘했다. 부피가 크지 않아, 가지고 다니기 좋고 좁은 공간에서도 펼치고 앉을 수 있다. 아이들 앉혀놓으면 우리도 숨을 돌리거나 주변을 돌아볼 여유가 생긴다.
자판기에서 두어 번 더 먹이를 샀다. 아루는 아껴서 조금씩 주는데 해람이는 한번에 확 털어준다. 아직 어려서 그렇기도 하지만 좌린을 닮아서일지도 모른다. “아끼면 똥 된다.” 좌린이 종종 하시는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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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공원의 전체 넓이는 2만평 정도. 욕심내지 말고 천천히 둘러보기로 했다. 날씨가 무더워, 한낮으로 갈수록 더 힘이 들었다. 옛다, 아이스크림! 나도 시원한 탄산음료가 간절하였기에 선심 쓰듯 아이스크림 하나씩 사 주었다. 매점 주변이 온통 새 똥이라서 그나마 나은 자리 찾는데 시간이 걸렸다. 주위로 새들이 거닐었다. 열대의 새들이 눈앞에서 어슬렁거리는 풍경은 우리가 꿈속에 들어와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게 했다. 공작 한 마리가 다가와, 아이스크림콘 부스러기를 주니 잘 받아먹는다.
“엄마, 얘들도 과자나 아이스크림 좋아하나 봐!” 자판기에서 산 먹이보다 제 걸 나눠 먹는 게 더 신이 난 아이들. 어린이에게 과자가 해로운 것처럼 새에게도 좋지 않을 거라고, 새가 관광객들이 주는 과자에 길들어지면 곤란하다고 했더니,
“우리도 과자나 아이스크림 많이 먹으면 밥 못 먹잖아!”
“그럼, 새들도 엄마한테 혼날걸?” 그러신다.
엄마한테 혼날걸? 아이들의 한마디가 마음에 박힌다. ‘먹을거리에 대해 내가 좀 강압적인가?’ 싶기도 하고, 내 딴엔 아이들의 마음을 살피고 일방적으로 심하게 제한하지는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조금 억울하기도 하다. 아이들에게 건강하고 좋은 먹을거리를 먹이고 싶은 엄마의 마음과 달콤한 맛을 좇는 아이들의 욕구 사이에는 어쩔 수 없는 간극이 존재하는 것 같다. 너무 억누르면 그에 대한 부작용으로 오히려 단 것에 더 집착할 수도 있다지만, 그렇다고 한정 없이 욕구를  채워줄 수는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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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무새는 알록달록, 보기엔 예쁜데 조금 사나웠다. 돈을 내고 우유 먹이기를 했는데 좌린이 자세를 바꾸느라 위치를 조금 옮겼더니 손을 꽉 물었다. 눈물이 찔끔 났겠지만, 부모 된 업보로 참아야지. 아이들이 이렇게 즐거워하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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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크르르르릉
꾸크르르르릉
휘롱 휘롱 휘로롱
휘롱 휘롱 휘로롱
좌린이 새 소리를 따라 했다. 너무 비슷해서 진짜 새로 착각할 정도였다. 좌린은 흉내를 잘 낸다. 닭은 꼬꼬댁 꼬꼬, 강아지는 멍멍, 개구리는 개굴개굴, 나는 동물을 흉내 낸다기보다 글자로 배운 것을 읽을 뿐인데 좌린은 방송국 효과음에 가까운 진짜 소리를 만들어낸다. 어릴 때 시골에서 자라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음감이 좋은 걸 보면 타고나기도 했다. 좌린의 주장으로는 어릴 때 TV를 못 봐서란다. 집에 TV가 없어서 아이들 사이에서 유행하던 개그 프로그램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단다. 그래도 아이들과 어울리려면 알아야 하니까, 아는 척 해야 하니까, 친구들이 하는 것을 유심히 보고 따라 하다 보니 관찰력과 흉내 내는 능력이 길러진 것 같다고. 어쨌든 내겐 없는 이런 재능이, 지치고 힘들 때 청량음료처럼 기분을 밝게 해 주는 효능이 있었다. 아이들이 생기를 되찾아 아빠 따라 새 소리를 흉내 내기 시작했다.
“꾸끄르르르르릉. 엄마도 해 봐!”
“꾸끄르.르.르. ”혀를 입속에서 동그랗게 말아 떨리듯 내는 ‘르’ 소리를 나는 잘 못 낸다. 연속적으로 ‘르르르르르르~’가 되지 않고 그냥 끊겨 버린다. 스페인어 공부하다가 좌절했던 가장 큰 이유였다. RR 발음이 안돼서. “새 소리는 왜 이렇게 혀 굴리는 소리가 많은 거야?” 투덜거리는 내게 “꾸끄르르르르릉, 엄마는 정말 이게 안 된단 말야? 꾸끄르르르르르르르르르릉~” 한껏 뻐기는 아이들.
원래 새 공원에 오게 된 것은 ‘바나나 입 새’, 혼빌을 보기 위해서였는데, 공작 꽁무니를 쫓아다니다가, 앵무새 먹이 주기에 정신이 팔려 혼빌은 제대로 못 봤다. 공작처럼 흔치 않았고, 돈을 내고 혼빌과 포즈를 취해 사진 찍는 곳이 있었는데 그냥 지나쳤다. 다행히 아이들도 별로 아쉬워하지 않았다. 애초의 목적이었던 혼빌을 제대로 보지는 못했지만, 생각보다 다양한 새들을 아주 가까이에서 많이 만났다.
엄마, 저 새는 머리에 털이 있어. 저건 입이 뾰족해. 목이 길어. 다리도 길어. 저 색깔 좀 봐. 저기 저 나무 위에 있는 것도 새야? 진짜 조그맣다.
덥다고 징징거리다가도 쉴새 없이 조잘거렸다. 뭔가 조금이라도 새로운 것이 보이면 얼마나 신이 나는지! 산책로 중간 중간에 새의 이름과 사는 모습에 대한 설명이 적혀 있었지만 제대로 보지 않았다. 읽어주지 않았다. 이름을 꼭 알아야 할 필요가 있을까? 그냥 가까이 가 보고 들리는 소리 입으로 따라 하고 마음속으로 그려 보는 것으로 충분하리라.

 

#이슬람의 재발견, 이슬람 예술 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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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공원 안에 있는 식당에서 늦은 점심을 먹고 이슬람 예술 박물관까지 걸었다. 새 공원은 인적이 드문 곳에 있어 대중교통이 닿지 않고 공원 앞 택시들은 터무니없이 비싼 요금을 불렀다. 박물관까지 1킬로미터 정도 되는데 살짝 내리막이라서 나쁘진 않았다.
“이제 슬슬 먹구름이 몰려오지 않을까?” 무더위가 절정에 이르른 느낌이었다. 도착한 첫날부터 한껏 무덥다가 오후가 되면 한 번씩 비가 쏟아졌다. 이곳의 날씨 유형을 조금 알 것 같다. 오늘은 날씨가 어떨까? 습관처럼 이렇게 묻지만, 사실 이곳에서는 일기예보라는 게 별로 의미가 없다. 연중 비슷한 기온에 비슷한 강우량. 하루 종일 무덥다가 한 번씩 시원스레 비가 쏟아져 열기를 식혀준다. 좌린이 내려받은 날씨 어플을 보면 날마다 천둥 번개, 천둥 번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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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대로 하늘이 어두워졌다. 아이들을 업고 서둘러 걸었다. 다행히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할 무렵 박물관에 다다랐다. 우르르쾅~ 쏟아지는 건 순식간이다.
오늘도 기막힌 타이밍! 날마다 비가 왔지만, 버스 타자마자, 지하철 타자마자, 그리고 오늘은 박물관에 들어오자마자, 비가 쏟아졌다. 마치 우리를 기다려 준 것처럼! 아무래도 이 도시는 우리를 좀 봐주는 게 아닐까 싶다. 아이를 업고 길에서 비를 쫄딱 맞는 아찔한 상상을 하니 참 고마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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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 예술 박물관은 건물 자체로 단아하고 멋스러웠다. 전시품도 아름다웠고! 섬세한 무늬가 새겨진 도자기와 기하학적인 타일 장식에 눈길이 머물렀다.

우리는 이슬람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부정적인 이미지가 먼저 떠오른다. 여성 인권의 사각지대, 극단의 원리주의자, 광신도 집단, 수틀리면 칼 빼들고 달려드는 호전적인 야만인, 언제 테러를 일으킬지 모르는 잠재적 위험 집단...
이슬람에 대해 다른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스페인의 알함브라 궁전을 보았을 때였다. 스페인 남부는 이베리아 반도에서 이슬람 세력이 가장 늦게까지 저항했던 지역이다. 알함브라 궁전은 내가 본 건축물 중 최고였다. 단순하면서 화려한 아름다움!(상반되게 느껴지는 두 말이 같이 쓰일 리 없을 것 같지만, 진짜 그랬다!) 이렇게 섬세하고 아름다운 문화를 간직한 이들이 테러집단이라니, 이해할 수 없었다. 알함브라를 보고, 이집트와 요르단을 여행하면서 그동안 이슬람에 대해 잘 몰랐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대로 배운 적도 없고 가까이서 접할 기회도 없었다. 서구 문화에 길들어진 우리는 이슬람을 바라보는 시각도 서구, 특히 미국의 입장을 그대로 받아들이게 된 것은 아닐까. 이슬람에 대한 편견, 적대적이고 부정적인 이미지를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박물관 한쪽에는 아라베스크 문양을 그리는 법이 소개되어 있었다. 예술과 과학의 정교한 만남이랄까, 다양한 원과 직선의 반복으로 만들어내는 무늬가 흥미로웠다. “이렇게 그리면 세모가 되고 별이 되고, 꽃잎이 되는 거야!” 단순한 도형과 직선이 만나면서 새로운 모양이 만들어지는 것이 신기했다. 그 안에 꽃, 잎, 덩굴손 같은 자연물을 표현하고 아랍 글자를 형상화해낸 완성품은 볼수록 멋있었다. 나중에 아이들과 직접 그려봐도 좋을 것 같아 사진으로 찍어 두었다.
전성기의 이슬람 문화는 유럽보다 훨씬 발전해 있었고 유럽을 가르치는 입장이었다. 매우 지적이고 수준 높았던 이슬람 문화는 몽고족의 침략, 그 뒤를 이어 서구의 식민주의를 경험하며 쇠퇴했다. 수백 년 계속된 외세의 침략은 이슬람에 큰 상처를 주었다. 패배의식과 피해의식이 내면화되었고 정체성을 지키기 위한 노력이 전통에 집착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다. 기독교에 뿌리를 두고 있는 서구의 제국주의에 대항하기 위해 이슬람은 보수적이고 폐쇄적인 길을 걷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이런 맥락에서 본다면 서구 사회가 이슬람을 폭력과 야만이 난무하는 세계로 몰아 가고, 테러 집단으로 규정하는 것은 좀 억울한 일이다. 서구 세력이야말로 몇백 년 동안 침략 행위를 일삼고 이들의 문화와 가치를 망가뜨린 장본인 아닌가 말이다.
말레이시아에서 무슬림(이슬람교도)은 인구의 65퍼센트를 차지한다. 그런데 이곳의 이슬람교는 우리가 뉴스에서 보고, 은연중에 그려온 이미지와는 사뭇 다르게 느껴진다. 훨씬 자유롭고 다원적이다. 옷차림만 보아도 진짜 머리부터 발끝까지, 까만 천으로 감싸고 눈만 빼꼼히 내놓은 사람도 있지만, 알록달록 화려한 색으로 치장하고 얼굴만 드러낸 사람이 더 많고 몸의 곡선이 드러나게 청바지와 티셔츠를 입고 히잡(머릿수건)만 한 사람도 있다. 이슬람이라고 하면 하나의 종교 집단처럼 뭉뚱그려 생각하기 쉬운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이슬람교는 유라시아, 아프리카 등에 광범위하게 분포하며 인종과 종파, 문화적 차이에 따라 매우 다양한 모습으로 존재한다. 우리가 이슬람과 동일시하곤 하는 아랍국가는 전 세계 이슬람 인구의 20퍼센트에 지나지 않는단다.
어쨌든 다양성이 살아 있다는 것은 참 멋진 일이다. 다양한 사람들의 모습이 공존할 수 있다는 것은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기 때문이니까. 다르다는 이유로 배척하거나 억지로 같아질 것을 강요하지 않으니까. 다르지만 각자의 모습을 스스럼없이 드러낼 수 있는 사회, 상대방의 다름을 너그러이 받아들일 수 있는 사회, 이것이 우리가 진정으로 바라는 세상의 모습이 아닐까. 다름을 인정하고 포용한다면 종교 간, 문명 간의 갈등도 쉽게 풀릴 것이다. 사소하게는 개인 간의 관계에서도 평화를 얻을 수 있겠지. 자세히 들여다보면 어딘가에 차별의 그늘과 갈등도 존재하겠지만, 다원주의를 지향하는 이 나라가 감동적으로 느껴졌다.

 

#방글라데시 청년의 코리안 드림

아라베스크 문양에 한껏 취해서 박물관에 있는 기념품 가게에서 기하학적인 무늬가 찍힌 티셔츠를 샀다. 아이들에게는 이슬람 문화와 모스크를 소개하는 색칠놀이 책을 하나씩 사 주었다. 하나는 영문판, 하나는 말레이어판.
이슬람 예술 박물관 맞은 편에 국립 모스크가 있어서 잠깐 둘러보기로 했는데, 마침 기도 시간이라서 안에 들어갈 수가 없었다. 기다릴까 하다가 피곤해서 그냥 숙소로 돌아왔다.
숙소 근처의 식당에서 저녁을 먹었다. 며칠 사이에 단골이 된 방글라데시 식당. 인도 커리와 난(오븐에 구운 납작한 밀가루 빵)이 맛있어서 인도 식당이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주인이 방글라데시 사람이었다. 종업원들도 대부분 방글라데시 사람이라고 했다. 두 번, 세 번 가다 보니, 우리를 알아보고 우리가 원하는 걸 빨리 알아차리는 직원이 생겼다. 첫날엔 무심했는데 두 번째 갔을 때 우리가 한국 사람이라고 했더니 금세 태도가 바뀌었다. 알고 보니 ‘코리안 드림’을 꿈꾸는 청년이었다. 애초의 목적지는 한국이었는데 브로커에게 사기를 당하는 바람에 돈만 날리고 말았단다. 차선으로 선택한 것이 말레이시아였다고. 한국에 비해 돈을 많이 벌지는 못하지만 여기 생활이 나쁘진 않단다. 사장과 동료들이 방글라데시 사람이라서 편하고 자신들에겐 말레이어가 쉽게 배울 수 있는 언어라서 적응하기 쉽다고 했다. 한국 사람이라고 잘해주니 고맙고 우리랑 이야기하고 싶어 하는 것이 좋았지만, 그의 코리안 드림에 뭐라고 답해줘야 할지 몰라 머뭇거렸다. 대학 때 사진 작업하면서 만난 이주 노동자들의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음성적으로, 양성적으로 값싼 노동력을 이용하면서 그들의 인권을 제도적으로, 문화적으로 보호해주지 못하는 현실이 부끄러웠다. 돈을 모아서 다시 한국행을 시도할 거라는 그의 계획에 한국에서 보자는 말을 하지 못했다. 한국은 단일 민족국가라는 인식이 강하고 노동 강도가 세다는 이야기로 나의 곤란함을 에둘러 표현했다. 그리고 그의 친절에 진심으로 고맙다는 말을 했다. “감사합니다!” 오히려 그가 한국어로는 고맙다는 말을 어떻게 하냐고 묻더니 계속 따라 했다.

 

#해람이가 그린 공작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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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로 돌아와 과일을 먹고 거실(게스트하우스에는 대부분 투숙객 공용으로 이용할 수 있는 거실이 있다.)에서 노닥거렸다. 좌린과 나는 오늘 찍은 사진을 정리하며 홀랜드(네덜란드) 부부와 수다를 떨었고 아루는 비행기에서 익힌 방법으로 펭귄을 여러 마리 접었다. 해람이는 그림을 그렸다. 아루가 만든 펭귄 가족을 게스트하우스 스태프에게 주었더니 크리스마스 트리 옆에 장식해 놓았다. 아루가 수줍어하면서도 무척 좋아했다.
아이들 재우고 방안을 정리하다가 해람이가 그린 그림을 발견했다. 낮에 본 공작새와 낮에 먹은 아이스크림을 그려 놓았다.
“엄마, 공작새 깃털에는 눈동자가 있어.”
“엄마, 공작새는 여자야? 치마를 입었잖아.”(공작새가 깃털을 접어서 몸 뒤로 길게 늘어뜨린 것을 보고는)
낮에 해람이가 한 이야기가 떠올라 얼굴에 웃음이 번진다. 공작새의 특징을 잘 살린 해람이 그림이 보기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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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진향
사진으로 만난 남편과 408일간 세계일주를 했다. 서로에게 올인해 인생을 두 배로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 목표였다. 둘이 넷이 되었고, 현재를 천천히 음미하며 충실히 살아내는 것이, 돈 벌기 보다는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것이 좋다는 생각은 여전하다. 아루(아름다운 하루), 해람(해맑은 사람)과 함께 자연과 사람을 만나며 분주한 세상 속을 느릿느릿 걷는다. 2012년 겨울, 49일동안 네 식구 말레이시아를 여행하고 왔다. 도시텃밭에서 농사를 짓고, 사진을 통해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는 소중한 경험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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