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했을 때 내가 준비한 신혼 살림은 아주 단출했다.
서른일곱에 신랑이 된 남편은 내게 '몸만 오면 된다'고 했는데다 내가 모은 돈으로만
결혼을 해야 했던 내 입장에선 정말이지 사는데 꼭 필요한 물건들만 준비하기에도
빠듯했다. 게다가 나는 그때 한창 '헬렌 니어링'과 '스콧 니어링' 부부의
검소한 삶에 심취해 있던 터라 침대도, 텔레비전도, 소파도 없는 소박한 신혼 생활을
꿈 꾸었더랬다.
그러나 37년간 총각으로 지내면서 애인대신 텔레비전을 끼고 살았던 남편은
다른건 다 안해와도 침대와 텔레비젼은 포기할 수 없다고 선언했다.
할수없이나는 남편의 소원을 들어 주었다. 텔레비전은 첫 아이 낳고 9개월만에 시댁으로
보내지게 되었으니 남편은 예상보다 일찍 애인과 헤어지게 되었지만 말이다.
첫 아이를 낳고, 둘째를 낳고, 셋째를 낳는 동안 두 번의 이사를 거치면서
살림도 늘고 집도 늘어나자 나는 슬그머니 '소파'에 대한 로망이 생겼다.
무엇보다 집안일 하다가 틈틈이 셋째에게 젖을 물릴때 편하게 엉덩이를 붙일 수
있는 그런 소파가 아쉬웠던 것이다. 텔레비전 대신 들여놓은 홈시어터로 영화를 볼 때에도
바닥에 앉아서 스크린을 쳐다보노라면 목이 아팠다. 아이들과 다 같이 앉아서
영화를 볼 수 있는 그런 소파 하나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간절해졌다.
남편과 적당한 소파를 사려고 가구 공단을 여러차례 다녀보기도 했지만
맘에 드는 소파를 찾을 수 없었다. 너무 비싸거나, 너무 크거나, 충분히
안락하지 않거나, 색이며 디자인이 맘에 들지 않거나, 소파를 고르는 일은
어려웠다.
그러던 어느날 남편과 외출했다 돌아오는 길에 우리가 사는 동 입구에 내 놓은
낡은 소파를 보게 되었다. 어느 집에선가 더 이상 쓰지 않을 요량으로 쓰레기
배출일에 맞추어 우선 집 밖으로 내어 놓은 것이었다.
낡긴 했지만 애초에는 고급스런 가죽소파인듯 했다. 쿠션도 아직 짱짱했다.
무엇보다 앉아보니 정말 안락했다.
나는 주워다가 우리가 쓰자고 남편에게 졸랐다. 남편은 질색을 했지만
결국 내 부탁을 들어 주었다. 크고 무거운 가죽 소파를 우리집 거실까지
옮기기 까지 이웃들의 도움까지 받아야 했지만 들여놓고 나니
우리집 거실과 정말 잘 어울렸다. 처음부터 우리집에 있던 것처럼
자연스러워 보였다. 세 아이들이 제일 좋아했음을 물론이다.
당시 여덟살, 네 살, 한 살이었던 아이들은 눈만 뜨면 소파에 함께 올라가
책을 보거나 뒹굴며 놀았다. 밤이 되면 온 가족이 함께 앉아 영화를 보았다.
주말에는 남편이 누워 편안한 낮잠을 즐기기도 했다.
돈을 주고 샀더래도 이렇게 좋은 소파를 구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2010년 여름)
그게 벌써 4년전의 일이다.
소파는 4년간 정말 많은 사랑을 받았다. 그러나 애초부터 낡았던 소파라 다섯 식구가
애용하는 동안 조금씩 가죽이 갈라지기 시작했다. 처음엔 갈라진 곳을 실로 깁기도 했지만
소용없었다. 아이들은 갈라진 곳에 손가락을 쑤셔 넣어 기어이 찢어 놓곤 했다.
마침내 소파는 가죽이 찢기고 솜이 비어져 나오고 스펀지가 드러나는
흉물스런 모습을 하게 되었다.
친정 엄마는 소파를 볼때마다 이젠 내다 버리고 새로 좋은 것을 사라고
보기 흉하다고 말씀하시곤 했다.
정말 그럴까... 하긴 누군가 충분히 썼다고 내 놓은 물건을 가져와서 4년이나
더 썼으니 이젠 정말 소용이 다 되었다고 할 만도 했다. 여전히 편안하고
좋긴 했지만 찢어진 곳은 점점 커지고 워낙 무거운 소파여서 이따금 큰 손님이
오실때 위치를 바꾸거나 하려면 퍽 애를 써야 하는 것도 힘들던 참이었다.
원목으로 된 가볍고 근사한 가죽 소파를 보아 둔 것도 있었다.
마침 대전에 사는 동서네가 들린다고 하니 서방님과 남편이 함께 들면 내놓기도
쉬울 듯 했다.
아이들을 불러 사정을 설명하고 소파와 안녕을 하자고 했다.
기념사진도 한장 찍고, 이 소파가 있어서 행복했던 것도 이야기 하고
우리집에 와서 정말 고마왔다고 만져주기도 하면서 오래 정들었던 소파와 이별하기를
하고 있는데 그러자고 고개를 끄덕이던 큰 아이가 눈물이 그렁해지는 것이다.
생명이 있는 것이든, 없는 것이든 대상에 마음을 깊이 주고, 한 번 마음을 준 대상과
헤어지는 것을 유난히 힘들어 하는 큰 아이였다.
그래서 유리병 하나, 종이 한 장, 쉽게 버리지 못한다.
덕분에 큰 아이 방은 온갖 잡동사니가 꽉 들어찬 박물관이 되었지만
아이가 애정을 기울이고 있는 것을
어른 맘대로 치울 수 도 없고 해서 지켜보고 있는데 가족이 함께 쓰던 소파에도
큰 아이는 커다란 애정을 가지고 있었나보다.
(2013년 여름)
학교에서 돌아오며 책을 찾아들고 소파에 앉곤 하는 큰 녀석이었다.
주말에 늦잠을 자고 나와도 다시 소파에 누워 단잠을 청하는 녀석은
소파를 처음 들여 놓을때의 기억과
환호를 여전히 생생하게 간직하고 있었다.
연말이면 소파에서 가족사진을 찍고, 밤이면 함께 앉아 영화를 보고,
소파 뒤에서 소꼽 놀이도 하고
엄마랑 껴안고 꼭 붙어 눕기도 하던 기억을 이야기하던 큰 아이는
새 소파를 사는데 동의를 해 놓고도
끝내 눈물을 보이고 말았다.
"....이 소파... 낡아도 괜찮은데... 꼭 버려야 되요?
저는 이 소파가 좋아요. 버릴 수 없다고요"
옷 속에 얼굴을 묻고 울고 있는 아들을 보고 있자니 나도 가슴이
뭉클해졌다. 나도 큰 아이처럼 물건에 대한 애착이 강한 사람이다.
이 소파와 함께 보낸 4년의 기억들이 한꺼번에 떠올랐다.
낡으면 어떤가. 남들에게 보기 흉하면 어떤가. 이 집을 떠나게 될때는
어쩔 수 없이 치워야 하는 소파지만 그때까지는 우리와 더불어
함께 살아도 되지 않을까.
남편에게 큰 아이 이야기를 했더니 남편은 아들을 불러 뭔가 소근거렸다.
아빠를 만나고 온 큰 아이 얼굴이 밝아졌다.
"소파, 안 버린대요. 이집에서 사는 동안은 계속 써도 된대요"
안심한 아들은 늘 하는 자세대로 편하게 소파에 올라앉아 책을 펴들었다.
잠시 새 소파를 바랐던 일은 없던 일이 되었다.
찢어진 곳은 어떻게 할까. 천갈이를 할까.. 알아보니 가격이 만만치 않다.
낡은 소파에 큰 돈을 들이는 것은 남편도 나도 반대다. 찢어진 곳만
가죽을 새로 대면 전체와 어울리지 않아 오히려 더 이상할 것이다.
방석이나 천을 덧대는 방법도 있지만 아이들 등쌀에 얌젼히 붙어 있을 리가
없다. 그냥 맘 편히 낡고 상하면 상하는 대로 쓰기로 했다.
쓰던 물건을 쉽게 버리고 새것을 사는 것이 아무렇지 않은 세상에서
낡은 물건을 지극히 아끼고 좋아하는 아이들이 있는 것도 감사한 일, 아닐까.
누군가에게 소용이 다 한 물건이 우리에게 와서 새롭게 사랑을 받는 일..
나는 그런 삶이 좋다. 내게 더 이상 필요 없는 물건을 기꺼이 이웃에게
나누는 일 또한 그렇다.
결혼 12년간 아이들 옷을 모두 물려 입히고, 작아지면 또 다른이에게
알뜰히 챙겨 물려주며 살고 있다. 우리집에 새 물건도 있지만 물려받거나
얻거나, 주워와 잘 쓰고 있는 물건이 더 많다. 이 집을 떠나 작은 집에
살게 되면 대부분을 다 처분해야 하겠지만 그땐 아낌없이 나누어주고
홀가분하게 떠나면 된다.
비 오는 날.. 아이들과 소파에 앉아 여름비가 쏟아지는 마당을 바라 보았다.
참 좋았다.
언제까지 일지 모르지만 같이 나이들어가며 더 많은 추억을 만들어가며
이 소파와 같이 살아야지.
한 물건과 오랜 시간을 함께 하는 일, 근사하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