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고 일어났더니 실내 온도가 14도 였다.
겨울이 되면 늘 이정도다.
거실에 해가 들기 시작하면 기온이 오르지만 아주 더디게 더디게
올라서 늘 오전이면 이 정도 기온속에서 생활한다. 난방을 하는데도
이 정도 온도다. 집은 크고 넓은데 사방이 커다란 창으로 되어 있는
이 집은 오래된 목조 창틀로 어디로든 찬 바람이 술술 새어든다.
겨울이면 15도 이하의 온도에서 잠이 들고 한 낮에도 기껏 18도 내외의
기온이 고작이다. 날이 풀려 20도라도 되면 더워서 겉옷을 벗게 될 정도다.
예전의 나를 생각하면 상상할 수 도 없는 일이다.
가난한 친정의 낡은 아파트에서 살때 제일 싫었던 것이 겨울의 추위였다.
더운 물도 잘 안나오던 친정집 목욕탕에서
몸을 씻는 일도 고역이었다. 더운 물 펑펑 나오는 따듯한 집에서
살아보는게 그 시절 내 소원이었다.
결혼과 동시에 내 소원은 이루어졌다.
신혼살림을 시작했던 신도시 아파트는 웃풍도 없이 따스했다.
물론 더운물도 펑펑 나왔다. 추위에 대한 상처가 많았던 나는
언제나 집을 따듯하게 하고 살았다.
실내온도 24도가 내려가면 얼어죽는 줄 알았다.
더위는 잘 견디지만 추운것은 질색이던 내가, 그래서 더운 날
마라톤은 하면서도 겨울에 하는 스포츠는 이해할 수 도 없던 내가
따듯하고 편안한 아파트를 떠나 춥고 낡고 오래되고 커다란 주택으로
이사를 한 것은 내 인생에서 가장 극적인 사건이었다.
아이들이 마음 놓고 뛰어 놀 수 있는 집, 사계절 자연을 가까이에서
느낄 수 있는 집, 무엇보다 마당에서 개를 기를 수 있는 집을 얻기 위해
내가 가장 먼저 포기해야 했던 것은 '따듯한 겨울'이었다.
한 겨울에 이사한 새 집의 추위는 상상 그 이상으로 혹독했다.
몇 년을 비워 두었던 큰 집은 난방을 하루 종일 해도 너무 너무 추웠다.
사람의 온기가 벽돌 한 장 한 장을 데워주어야 비로소 집이 훈훈해 진다는
사실을 뼈 저리게 실감하며 첫 겨울을 보냈다.
자고 나면 실내 온도는 12도.. 14도라도 나오면 살 것 같았다.
첫 돌도 안 된 막내까지 어린 아이를 셋 이나 데리고 추운 집으로 이사오면서
아이들이 탈 날까, 그게 제일 걱정이었다. 큰 아이는 이사를 앞두고 기침이 너무
심해져서 폐사진을 찍을 것을 병원에서 권하고 있었다. 기침을 심하게 하는
아이가 새 집에서 더 아프게 되면 어쩌나 걱정하며 이사를 했는데
찬 공기도 쐬지 않게 하라던 의사의 권고는, 이사하고 나서 바로 펑펑 내린
눈에 열광한 아이가 내복바람으로 마당으로 뛰어 나가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큰 아이는 그 겨울 내내 옷도 제대로 입지 않고 마당에서 살았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기침은 점점 좋아졌다. 병원이 멀어 자주 들리지도 않는 사이
어느결에 아이는 나아 있었다. 아파트살때 한 달이 넘게 잡히지 않고 심해지던
기침이었는데 말이다.
첫 겨울엔 잠을 자기전에 절차가 복잡했다. 내복을 입고 그 위에 두툼한 폴라폴리즈
옷을 한 벌 더 입고 양말까지 신고 잤다. 나는 심지어 장갑까지 끼고 잤다.
아파트에서 필요없던 두꺼운 이부자리를 사느라 큰 돈을 쓰기도 했다.
아파트에선 밤새 이불을 발로 차가며 자던 아이들이 새 집에선 내가 덮어준
그대로 두꺼운 이불 속에서 꼼짝 안하고 잠을 잤다. 잠결에 손이라도 이불 밖으로 나오면
찬 공기에 놀라 재빨리 이불속으로 다시 집어 넣곤 했다.
각오는 했지만 내 몸은 추위에 쉽게 적응되지 않았다. 다른 건 다 좋았지만
추운 것은 참기 어려웠다. 어떻게 하나.. 고민하며 겨울 나느라 애쓰는동안
세 아이는 감기 한 번 없이 첫 겨울을 지냈다. 돌아보니 정말 그랬다.
새 살림에 적응하느라 남편과 나는 골병이 들 정도로 몸이 고됬지만
매일 찬 바람을 쐬고 마당에서 뛰어 놀던 아이들은 어느새 시내의 병원에 언제
들렸는지 기억도 안 날정도로 건강해졌다.
큰 아이는 비염이 있어서 환절기마다 코가 차 오르고 기침을 심하게 했는데
새 집에서 네 번의 겨울을 나는 동안 환절기가 언제 지났지 싶게 신경쓸 일 없이
가벼운 증세로 지나게 되었다. 첫 돐을 이 곳에서 맞은 막내 이룸이가 제일
건강한 것은 물론이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항생제나 해열제같은
병원약을 먹어본 일이 없다. 당연히 몸에 주사바늘이 들어가본 일도 없다.
감기도 걸리고 배탈이 나기도 하지만 며칠 콜록거리면 스르르 낫는다.
아파트에서 살때는 몇 번의 고열로 마음을 조이게 하던 둘째도 새 집으로 오고 나서는
나를 걱정시킬 만큼 크게 아픈 적이 없다. 아파도 혼자 이겨내니 언제부턴가는
아이들 아픈 것을 신경쓰지 않고 살고 있다. 아이들이 아프지 않은 것만으로도
육아가 얼마나 수월해지는지, 엄마들은 잘 알것이다.
이제 새 집에서 만 4년을 살고 나니 아이를 건강하게 키우는 법을 알겠다.
비결은 우선 실외와 실내의 온도차이가 적을 수 록 건강하다는 것이다.
여름엔 덥게, 겨울엔 춥게 사는 것이 아이를 단단하게 한다.
계절을 몸으로 겪어 내면서 사는 것, 이것이 중요하다. 여름엔 냉방기로 더위를
가려주고, 겨울엔 지나친 난방으로 아이를 둘러싸면 오히려 아이들 몸은
더위와 추위를 견디는 힘이 키워지지 않아 병이 더 쉽게 들어오는 약한 몸이 되기 쉽다.
매일 밖의 공기를 충분히 쐬게 하는 것, 이것도 중요하다. 덥다고 실내에서 놀고
춥다고 밖에 나가지 못하게 하면 몸이 단단하게 여물어지지 않는다.
충분한 기회를 주면 아이들 몸의 적응력은 어른들의 생각보다 훨씬 뛰어나다.
그 적응력을 인위적인 것으로 가려주기 전에 자연스런 환경에 더 많이 내어 놓다보면
어느새 아이들은 더위도 추위도 제 힘으로 이겨내는 건강한 아이로 자라게 된다.
덕분에 나도 추위에 꽤 단련되었다.
자고 일어나면 내복위에 두꺼운 폴라폴리즈 옷 한 벌을 더 입고 양말도 두꺼운 것으로 신는다.
그리고도 그 위에 다시 두툼한 조끼를 입고 생활한다. 아이들은 나보다 더 얇게 입고도
춥다는 소리를 안 한다. 찬 바람이 쌩쌩 불어도 밖에 나가 논다.
눈 내리면 종일 눈을 쓸어야 하고, 개들과 닭들에게 매일 얼지 않은 물을 줘야 하고
늘 몸을 쓰게 만드는 새 집 덕분에 나도 여간해선 감기에 잘 걸리지 않게 되었다.
허리가 아프네, 어깨가 쑤시네 엄살을 하지만 감기 몸살에 걸리는 일은 확실히 줄은 것을 보면
이 집이 내 몸을 더 강하게 단련시킨 것은 분명하다.
에너지도 부족한 나라에서 실내 난방을 지나치게 하면서 사는 것은 나라를 위해서도
내 아이들의 건강을 위해서도 옳지 않은 일이다.
조금 춥게 살아보자. 처음엔 힘들지만 어느새 우리 몸은 더 건강해진다.
덥고 추운 계절을 몸으로 겪고 이겨내며 사는 것이 건강의 가장 큰 기본이라는 것을
새 집이 내게 가르쳐 주었다.
아직도 견뎌야 할 겨울은 길지만 세아이와 추위에 씩씩하게 맞서면서 건강하게
지내보자... 다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