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 후 줄지 않는 뱃살에 우울하고...
우울해서 자꾸 단 것을 먹고...
단 음식 때문에 살은 계속 찌고...
악순환의 고리는 언제쯤 끊어질까?
» 출산 네달 뒤 재본 허리 사이즈, 숨을 들이쉬고 아무리 졸라도 30인치가 넘는다.
산모마다 산후우울증의 강도와 방향이 다 다르듯이 산후우울증에도 독립변수와 종속변수가 있는 것 같다. 아이와 씨름하며 느끼는 고립감이나 외로움이 절대적인 독립변수라면 출산 이후의 외모 변화는 상대적인 종속변수다.
출산하기 전에는 출산 후의 변화, 즉 다이어트 문제에 대해서 별로 걱정을 하지 않았다. 출산 전으로 돌아갈 자신이 있어서가 아니었다. 출산 전에도 사람들의 부러움을 받는 몸매가 아니었기 때문에 그냥 무신경했던 것 같다. 뭐, 어떻게 되겠지, 여기서 몇 킬로그램 더 찌나 안찌나 비슷하지 않겠어? 라고 막연히 생각했다.
그런데 얼마 전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남자들이 싫어하는 여자들의 옷차림 첫번째로 레깅스가 꼽히는 걸 보고 기분이 급다운됐다. 임신중기부터 지금까지 사시사철, 낮과 밤, 실내외를 막론하고 레깅스를 교복삼아 입어왔기 때문이다. 평소 같으면 코미디 프로그램 같은데서 나의 처지가 희화화되면 더 깔깔대고 좋아했는데 우울증 탓인지 완전히 의기소침해졌다.
냉정하게 말해 현재 내 처지가 아주 심각한 건 아니다. 몇달 전 신문에서 건강칼럼을 보니 한국 임산부들이 평균적으로 15킬로그램 쪄서 출산 후 10킬로그램 정도 빠진다고 했으니 평균 수준에 불과하다. (물론 그렇게 남은 5킬로그램이 문제라는 게 칼럼의 주제이긴 했지만 --;;) 출산 후 내 모습을 본 사람들도 쪽 빠졌다고 말하니 내가 엄살떤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오로지 생존!(시장, 병원 등 간단한 외출)을 위해서 입어본 바지들이 하나도 맞지 않음을 확인했을 때의 기분은 참 별로였다. 출산 130일이 지난 지금 허리 사이즈가 30인치대의 중반에서 전혀 내려갈 생각을 안하고 있으니 과연 옛날에 입던 옷들을 다시 입을 날이 올까 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이 생각은 내가 옛날의 잘나가는 커리어우먼(은 아니었고 뭐 그래도 평범한 직장인)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라는 청승맞은 상념으로까지 확대된다. 좀처럼 가까워지지 않는 바지의 단추와 단춧구멍 사이는 ‘민간인 사회’와 나와의 머나먼 거리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문제는 단지 빠지지 않는 살만이 아니다. 다이어트도 현재의 상황으로서는 참으로 요원하다는 게 문제다. 모유수유 때문에 친구 표현대로 ‘소처럼’ 먹어야 하는 상황이라서만은 아니다. 아이를 낳고 중독자가 돼 버렸다. 빵 중독자, 초콜릿 중독자. 아이와 둘이 있으면 외로움에 치를 떨며 임신 전에는 거의 무관심하던 남편의 퇴근 시간을 쌍심지 켜고 기다리는 나. 사실 남편보다 더 기다린 건 그가 사오는 케이크였다. 회사 앞 빵집에서 파는 ‘초콜릿 덩어리인지 케이크인지 구별하기 힘든 초콜릿 케이크’는 유일하게 요즘 나의 시름을 덜어주는 친구다.
육아로 몸은 지치고, 마음은 우울하니 초콜릿이나 크림빵 같은 단 음식이 땡기지 않을 도리가 있는가 말이다. 산후 도우미 아주머니가 이런 음식은 젖을 줄인다고 경고했건만 포기가 안된다. 오죽하면 케이크를 엄청 쌓아놓고 먹는 꿈까지 자주 꾼다. 우울해서 단 거 먹고, 늘어지는 뱃살에 다시 우울해지고의 반복이다. 뱃살을 줄이고 싶은 마음 간절하지만 누군가 ‘흥, 초콜릿 케이크부터 끊으시죠!’라고 냉정하게 말한다면 어쩌면 그 사람의 머리끄덩이부터 잡아당길지도 모르겠다.
이러니 뱃살 줄이기는 요원해 보이고, 옷장 속의 옛날 옷을 꺼내입을 날도 요원해 보이기만 한다. 이렇게 징징거리는 나를 보면서 남편은 청승 떨지 말고 새 옷사라고 말한다. 하지만 새옷 사면 지는 거다! 마음 약해져서 지금 88사이즈를 샀다가는 평생 그 사이즈로 남을 것만 같다. 그래서 나는 요즘도 옛날 옷을 다시 입을 생각으로 줄기차게 임시방편 레깅스 차림이다. 이노무 임시방편이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기약 없지만 언젠간, 언젠간 허리 사이즈 20인치대(아 물론 옛날에도 29였읍죠--;;)로 다시 돌아가고야 말테다. 일단, 케이크 한 조각부터 먹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