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a3155f364ab0690d6832cdc656b865d. » 2011년 10월 윤정



첫 아이로 아들을 낳고 만 4년 만에 얻은 첫 딸 윤정이는 내게 또 한번 세상을 얻은 것 같은 행복이었다.

키우는 일도 그랬다. 까다롭고 예민해서 힘들었던 아들에 비해 너무나 수월하게 자라주었다.
윤정이는 신생아 때 부터 좀처럼 울지 않는 아기였다. 자다가 깨어도 방긋 웃었고 젖만 먹으면
잘 잤다. 몸무게도 첫 아들 때 보다 훨씬 적어서 안고 거두는 일도 거뜬했다.
둘째를 낳은 그 달부터 남편은 전국으로 출장을 다니게 되어서 주말에만 집으로 오곤 했는데
그나마 윤정이가 워낙 순한 아기여서 남편없는 날들을 한결 쉽게 지낼 수 있었다.
게다가 윤정이는 18개월 때 기저귀를 떼었고 그 무렵부터 말문이 트여 만 24개월이 지났을 때는
못하는 말이 없었다.
첫 아이는 26개월 때 ‘엄마’소리를 했는데 둘째는 그 개월 때 나와 술술 대화를 할 정도였다.
24개월 무렵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먼저 타고 있던 한 아이가 유모차에 앉아 있는 윤정이를
가리키며 ‘엄마, 아기가 있어’라고 말했다. 그러자 윤정이는 ‘난 윤정인데..’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제가 그냥 ‘아기’가 아니라 ‘윤정’이라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었다. 그 어릴때부터 유난히
자의식이 강했다. 놀랄 만큼 영민한 아이였다.


윤정이를 키우는 일은 기쁨이 많았다. 세살 때 데리고 나가면 사방에서 깜짝 놀라곤 했다.
‘얘는 몇살인데 이렇게 말을 잘해요?’ 소리를 수없이 들었다.
한번 들은 노래는 곧잘 흉내도 내고, 언제나 방글방글 웃고 다녀서 귀여움을 듬뿍 받았다.
이른 아침 잠이 덜깬 내게 다가와 ‘엄마, 눈 뽀뽀 해드릴께요’ 하며 내 두 눈에 뽀뽀를 하고
뺨이며 이마에도 달콤한 뽀뽀세례로 내 잠을 깨우던 말할 수 없이 사랑스러운 딸이었다.
내가 전생에 무슨 착한 일을 해서 이렇게 이쁘고 고운 딸을 얻었을까.. 감격하던 날이었다.
네살 차이 나는 오빠가 심술을 부려도 꾹 참고, 세 살 어린 여동생이 고집부리고 떼를 써도
저 혼자 속상해 할 뿐 해코지 한 번 하지 않던 천사표 딸이어서 고마움이 더 컸다.


그런데...
다섯살 가을을 맞은 윤정이는 많이 변했다.
키도 커지고 몸도 튼실하니 커졌지만 눈빛과 표정이 아주 달라졌다.
무엇보다 오빠와 동생에게 늘 참고 양보하던 아이가 더 이상 참지를 않게 되었다.
오빠에게도 소리지르고 싸우고, 그래도 억울하면 세상이 떠나가도록 크게 운다.
두살 동생이 심술을 부리면 같이 아프게 때려주기도 한다. 동생이 울어도 제것을 꼭 쥐고
양보하지 않고 전에는 동생 때문에 많이 울었는데, 이젠 그만큼 자주 동생을 울리는 언니가 되었다.
고집도 엄청나게 세졌다. 제가 하기 싫은 일은 꿈쩍도 하지 않는다.
늘 해오던 일도 안 하겠다고 고집을 부려 여간 난처한 게 아니다.
예를 들면 밖에 나가 놀다 와서 손 씻기 싫다고 버틴다. 맨발로 흙 마당을 비벼대며 놀고 들어왔으면서
절대로 발을 씻지 않겠다고 버티는 식이다. 정 하기 싫으면 억지로 안 시키며 키워왔지만
이건 기본적인 위생에 관한 일이라 받아주지 않고 하게 하는데, 내가 씻겨주겠다고 잡아 끌어도
몸부림치며 싫다고 버틴다. 수십권씩 책을 펼쳐 놓고 정리하게 한 곳에 모아 놓으라고 하면
꼼짝도 안 하고 ‘하기 싫어요’ 한다. 내가 간단한 심부름을 부탁해도 ‘엄마가 해요’ 라고
매몰차게 자른다. 반면에 요구하는 건 정말 많다. 바로 들어주지 않으면 버럭 성을 낸다.
‘에이 참’ 하며 짜증도 부리고, 가끔은 나를 탓하며 야단치는 것도 같다.
부탁은 수없이 하고 이것 해달라, 저것 해달라 요구도 많으면서 제 도움이 뻔하게 필요한 일도
거절하고 잘 안 움직이니 넓은 집안에서 매달려대는 이룸이 보면서 해야 할 일이 늘 많은
나는 윤정이의 이런 변화가 여간 얄미운 게 아니다.
2층에서 빨래를 널고 있는데 1층 끝 방에 놓인 전화벨이 계속 울려도 ‘윤정아 전화 좀 받아줘’하는
내 소리를 싹 무시하고 ‘엄마가 받아요’ 하며 제가 보는 책에서 눈도 떼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아무때나 저를 안아 달라고 매달린다. 끌어 안는 게 아니라 번쩍 들어 안아 달라는
것이다.


그동안 오빠와 동생 사이에서 많이 치였던 것이 힘들었던 모양이구나..

이제 여섯살이 되려고 하니 생각주머니도 쑥쑥 커지나보다..
부쩍 제 목소리를 내고 억울하고 답답한 것도 많아 졌구나..
더 이상 어린 아이가 아닌가보다..
짐작하고 끄덕 끄덕 그럴 때가 되었지... 생각은 하지만 20개월로 접어든 막내의 말썽이 보통이
아닌데다가 여전히 나를 많이 찾는 큰 아이 챙겨가며 넓은 집 살림하기가 늘 벅찬 나는
윤정이의 이런 변화를 넉넉하게 이해하고 받아들이기가 어렵다.


사실 그동안 막내를 이만큼 키우기까지 윤정이의 덕을 많이 보았다.

마당있는 큰 집으로 이사를 와서 농사며 가축 돌보는 일이며 처음 시작하는 일들이 너무 많아서
일거리가 넘칠때 윤정이는 바빠서 놀아줄 새 없는 엄마를 찾지 않고 저 혼자 책을 들여다보고,
저 혼자 소꿉놀이를 하고, 저 혼자 그림을 그려가며 놀곤 했다. 그러면서도 늘 얼굴이 밝았다.
기특하게 엄마 힘든거 알고 저 혼자 노는구나.. 대견하게만 여기며 내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는 일에만 매달리곤 했다.
그래도 아직 어린 아인데, 막내인 친구들은 아직도 엄마에게 매달려 지내는데 동생이 있어서
일찍 철 들었나보다 싶으면 짠하기도 했지만 그 마음까지 다 헤아리고 챙겨줄 여유가 없었다.
또래보다 의젓하고, 또래보다 영리하고, 또래보다 성숙한 것이 고맙기만 했었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윤정이는 언제나 그 나이답지 않았다
더 투정부리고, 더 매달리고, 더 떼쓰고, 더 징징거릴 나이인데 늘 또래보다 한 두 살 더 먹은
아이처럼 행동했었다. 그게 대견하고 흡족했었다. 그러다보니 어느사이 그런걸 당연하게
여기고 있었나보다. 나를 덜 힘들게 하는 것만 고마와 하고 있었나보다.
오빠와 동생 사이에서 늘 양쪽의 심술에 당하고, 양쪽의 고집에 눌리고, 양쪽의 요구에
제것을 굽혀야 했던 그 마음은 결코 쉬울리 없었을텐데 말이다.


나도 그랬다.
위로 언니 둘, 아래로 여동생 둘을 둔 셋째로 지내면서 늘 좋은 건 언니와 동생들에게 양보했었다.
언니와 동생이 먼저 선택하고 내가 맨 나중 것을 차지하곤 했다. 부모님은 양보 잘하는 착한
딸이라고 칭찬했지만 마음속에선 늘 서운하고 아쉬웠다. 그러면서도 착한 딸이란 칭찬을
놓치고 싶지 않아 진짜 마음을 감추고 억누르며 자랐다. 그때의 그 서운한 마음이 어른이 되어서도
고스란히 내 마음에 남아 있다는 것을 살아가면서 느끼고 있지 않은가. 마흔이 넘은 이 나이에도
나는 여전히 내가 원하는 것을 남에게 표현하는 일에 서툴다. 그러면서 속으로는 그 시절
어린 나처럼 속상하고 서운해 한다. 어릴 때 억누르고 오래 참았던 것들이 지금까지도 나를
힘들게 하는데 그러며서도 윤정이의 마음속에  쌓이고 있을 서운함을 외면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그 시절 나처럼 희생하고 참는 역할을 어린 윤정이에게 은근히 강요해 왔던 것은 아닐까.


다행이다.
윤정이는 이제 제 목소리를 크게 내기 시작했다. 제 고집과 제 주장을 굽히지 않고
심술부리는 오빠에게 대들고, 고집피우는 어린 동생을 울리곤 한다. 그래서 집안은 더 소란해지고
내가 중재하고 보듬고 감당해야할 다툼과 갈등은 훨씬 늘어났지만 이제서야 윤정이가 제 나이답게
행동하는 것일 뿐이다. 이제부터라도 집안이 더 소란스러워질 것을 각오하고 윤정이의 마음속에
울리는 소리들에 더 정성껏 귀 귀울여보자.
착하고 의젓한 딸도 좋지만 그 보다 더 좋은 것은 제 나이 몇이라도 제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당당하게 표현할 줄 아는 딸이다.

오빠와 동생 사이에서 순하고 착하게만 커 오던 둘째가 반란을 시작했다.
오빠도 동생도 더 크게 소리지르고, 더 요란하게 맞붙기 시작했다.
집안이 들썩거리고, 덩달아 내 혈압도 더 오르고 있지만
그러나 둘째의 반란이 대견하다. 이렇게 또 한 계단을 오르며 쑥쑥 자라는 모습이 보인다.
비온 후에 훌쩍 자라있던 토란잎처럼 다섯살 가을을 맞은 둘째의 미소가 왠지 깊어 보인다.
이 아이를 더 많이 더 깊게 품어줘야지..

올 가을엔 나도 한뼘 더 자라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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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순화
서른 둘에 결혼, 아이를 가지면서 직장 대신 육아를 선택했다. 산업화된 출산 문화가 싫어 첫째인 아들은 조산원에서, 둘째와 셋째 딸은 집에서 낳았다. 돈이 많이 들어서, 육아가 어려워서 아이를 많이 낳을 수 없다는 엄마들의 생각에 열심히 도전 중이다. 집에서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경험이 주는 가치, 병원과 예방접종에 의존하지 않고 건강하게 아이를 키우는 일, 사교육에 의존하기보다는 아이와 더불어 세상을 배워가는 일을 소중하게 여기며 살고 있다. 계간 <공동육아>와 <민들레> 잡지에도 글을 쓰고 있다.
이메일 : don3123@naver.com      
블로그 : http://plug.hani.co.kr/don3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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