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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앞에서 마을 버스 기다리는 세 아이)



비가 지나가니까 끈적끈적 습도가 높고, 흐린 날이 계속된다.

집 안팎에서 징글징글하게 뛰어 노는 세 아이 데리고 세 끼 더운 밥 해 먹을 일이 징그럽다.

이럴 땐 나가줘야지.

장대비가 오는 날도 씩씩하게 우산 들고 아기띠 메고 유모차까지 챙겨서 길을 나서는 우리다.

그래서 본래 계획없이 움직이는 우리 4인조는 집을 나섰다.

목적지는 양재에 있는 '예술의 전당'이다. 방학을 맞은 필규가 '한가람 미술관'을

가보고 싶다는 것이다. 그래, 그래... 오랫만에 제대로 된 문화생활을 해 보자구...



우리의 나들이는 우선 한 시간에 한 대뿐인 마을버스를 타는 것으로 시작된다.

마을버스를 타고 구불구불한 시골 외길을 25분쯤 달리면 4호선 전철 대야미역에 도착한다.

전철을 타고 사당에 내려서 2호선으로 갈아 탄 후 다시 교대역에 내려 3호선으로 갈아탄다.

중간에 이룸이가 잠이 들어서 간이 유모차에 태웠는데 교대역에선 계단을 여러 번 지나야 했다.

아홉살 필규는 얼마 전부터 전철역에서 만나는 계단에서 제가 이룸이가 탄 유모차 앞 쪽을 들곤

한다. 무거워서 끙끙대긴 하지만 이젠 제가 할 수 있다고 여긴다. 오늘은 다행히 맘 착한

청년들이 들어 주었다.

두 살, 다섯 살, 아홉 살 세 아이 데리고 마을버스 타고, 전철을 타며 움직이는 일이 쉬운 일은

아니다. 카메라까지 들어 무거운 가방을 메고 이룸이를 번쩍 안아 버스를 탈 때 반으로 접은

유모차를 챙기는 것은 필규 몫이다. 윤정이도 제가 들고 온 모자와 인형을 스스로 챙겨야 한다.

자가용으로 다니면 편하기는 제일이다. 그렇지만 밀리는 도로며 주차장에서 자리 찾는 수고하며

나중에 관람료보다 더 나오는 주차비를 생각하면 대중교통 수단이 역시 최고다. 무엇보다

아직 아무 때나 젖을 찾는 이룸이에게 맘 놓고 젖을 물릴 수 있다.

기다리고, 걷고, 차 안에서 적지 않은 규칙을 지켜야 하는 것이 아이들에게도 쉽지 않지만

어려서부터 이렇게 다녀본 아이들은 제 몫들을 잘 해낸다.

힘들게 다니면서 같이 크는 의젓함들도 있는 법이다.



공중도덕이니, 공공시설을 이용할 때 지켜야 하는 법들이니, 다른 사람들을 배려하고 내 욕구를

참는 능력들은 뭐니 뭐니 해도 직접 이런 경험들을 할 때 생생하게 배울 수 있다.

처음엔 전철 안에서 떠들기도 하고,  싸우기도 했지만 그럴 땐 일단 전철에서 바로 내려버린다.

기껏 자리잡고 앉아서 가는 중간이라도 예외는 없다. 더 심하게 말썽을 부리면 나들이는 즉각

취소되고 집으로 가는 전철을 타야 한다. 설마 진짜 그렇게 하겠어? 하던 아이들에게

단호한 모습을 두어 번 보여 주었더니 이젠 전철 타고 아무리 멀리 가도 남에게 폐가 되는

말썽은 부리지 않는다. 작은 것을 참지 못하면 더 큰 것을 잃어 버린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양재역에 내려 땡볕을 받으며 걸었다. 한참 걸어 버스 정류장에 도착해서 다시 예술의 전당까지

가는 버스를 탄다. 이런 여행에 경험이 많은 필규는 제 운임은 목에 걸고 다니는 어린이용

교통카드로 스스로 해결한다. 한 놈이라도 제가 알아서 챙기는 것이 있어서 큰 다행이다.



오전 11시에 집 앞에서 마을버스를 탄 우리들이 전철과 버스를 번갈아 타면서 예술의 전당에

도착한 것이 오후 1시 무렵이다. 꼬박 두 시간 걸려 온 셈이다.

바로 점심부터 먹는다. 점심은 아이들이 예술의 전당에 올 때마다 고대하는 돈까스 전문점에서

먹는다. 길가 지하에 위치한 이 식당은 매우 작은데도 항상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한다.

힘들고 배고픈데 식당에서 자리에 앉기까지 또 한참을 기다렸다. 그래도 다른 곳 가자는 소리를

안 한다. 그만한 보람이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20분을 기다려 맛있는 점심을 먹었다. 든든히 먹고 예술의전당 한가람 미술관에서 관람을 시작한다.

오늘은 아이들이 맘대로 만지며 놀 수 있는 특별한 전시회가 있다.

이룸이도 재미나게 두 시간 동안 신이 나게 즐겼다.



로비에서 맛난 아이스크림 하나씩 먹고 다시 한겨레신문사에서 주관하는 사진전 '지구상상전'을 관람한다.

마음을 쿵 울리는 멋진 사진들을 보고 있자니 여기까지 오느라 고생한 게 아깝지 않다.

관람 후에는 나무목걸이도 만들고 손수건에 좋아하는 무늬도 새겨보는 체험을 한다.

관람에 두 가지 체험을 하는 비용이 6천원인데 내용이 알차다.

체험을 즐기고 주변을 돌아다니며 놀다보니 잠실에 있는 남편이 우리를 데리러 왔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세 아이들은 모두 곯아 떨어졌다.

어지간히 힘들었을 것이다.

저녁은 집에 와서 묵은지 달달 볶아 볶음밥을 해 먹었다. 아이들은 한 숨씩 자고 일어나

저녁을 먹었다. 다녀온 얘기 하고 깔깔 대다가 밤 늦게 잠이 든다.



7월 16일 필규가 방학을 한 뒤에 우리 4인조는 이런 나들이를 벌써 여러 번 했다.

둘째 이모가 있는 양주에 갈 때는 전철 타는 시간만 두 시간 가까이 되기도 했다.

동물원 야간개장을 다녀오기도 했다. 남편이 있는 잠실에 놀러가 맛있는 저녁을 얻어 먹기도 했다.

그래도 아이들은 가고 싶은 곳이 넘쳐 난다. 나머지 방학 기간에도 부지런히 다니자고 입을 모은다.

전철에서 자리가 쉽게 안 날 때는 한참씩 서서 가기도 하고, 화장실이 급해서 고생을 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좋단다.

‘오늘 어디, 갈까?’ 하면 무조건 ‘좋아요!’ 한다.

전철을 타고 갈 수 있는 곳은 어디라도 떠난다. 한번은 제주도 출장에서 돌아오는 남편을 마중하러

김포공항까지 간 적도 있다. 힘 들어도 길 떠나면 즐거운 아이들이다. 그래서 씩씩하게

우리 4인조는 집을 나선다. 이런 나들이도 어릴 때나 가능하겠지. 아이들이 조금 더 크면 엄마랑 다니는 것이

시시할 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아직 필규가 엄마와 어린 동생들이랑 같이 다닐 수 있을 때 즐겁게

다녀보는 거다. 불편함도 참고, 힘든 것도 견디면서 함께 땀 흘려가며 신나고 재미난 추억들을

만드는 거다.



동물원도 또 가보고 싶고, 현대 미술관도 가자고 하고, 경찰 박물관이며 삼청동에 있는

부엉이 박물관이며, 인사동이며 청계천이며 아이들이 가고 싶은 곳은 무궁무진하다.

우기 동안 사방엔 풀들이 쑥쑥 자라나서 풀 베고 손 봐야 할 일들도 태산인데 아아아... 모르겠다.

집안 일 나몰라라 팽개쳐 놓고 4인조는 오늘도 고고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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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순화
서른 둘에 결혼, 아이를 가지면서 직장 대신 육아를 선택했다. 산업화된 출산 문화가 싫어 첫째인 아들은 조산원에서, 둘째와 셋째 딸은 집에서 낳았다. 돈이 많이 들어서, 육아가 어려워서 아이를 많이 낳을 수 없다는 엄마들의 생각에 열심히 도전 중이다. 집에서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경험이 주는 가치, 병원과 예방접종에 의존하지 않고 건강하게 아이를 키우는 일, 사교육에 의존하기보다는 아이와 더불어 세상을 배워가는 일을 소중하게 여기며 살고 있다. 계간 <공동육아>와 <민들레> 잡지에도 글을 쓰고 있다.
이메일 : don3123@naver.com      
블로그 : http://plug.hani.co.kr/don3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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