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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1학년 엄마들은 특별하다.

첫째를 보내든, 둘째를 보내든 1학년때 만난 엄마들과는 오래 오래 연락을 하며

지내게 된다. 아이가 잘 적응을 하는지, 학교생활은 어떤지, 선생님과 친구들과

교과 과정과 학교 행사 모두  제일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참여하는 시기도 1학년인

탓에 내 아이가 첫 학교 생활을 시작하는 친구들의 엄마라는 인연은 쉽게 끈끈한

관계로 발전한다.

 

우리반 엄마 하나가 남편의 직장을 따라 지방으로 이사하게 되었다.

그것을 핑계삼아 점심 번개를 가졌다.

갑작스레 올린 번개에 열명이나 응답을 해 주었다. 반찬 한가지씩 가지고 와서

점심 먹자는 이야기는 곧 나물 한가지씩 가져와서 양푼에 비벼 먹자는 이야기로

발전을 했다.

누구는 콩나물을 가져오고, 누구는 버섯을 볶아오고, 무생채에, 숙주나물에

호박나물, 시금치 나물, 마침내 상추와 계란 프라이, 당근채 볶음까지 순식간에

정해졌다. 나는 묵은지찜과 현미밥을 내기로 했다.

한 밤중에 열띤 카톡으로 비빔밥 재료를 나누고 정하면서 엄마들은 즐거워했다.

그냥 모여서 밥 한끼 먹자는 건데 설레고 좋았다.

 

그동안 바쁘다는 핑계로 소홀했던 집안 청소를 새벽 한시까지 해치웠다.

반 엄마들이 열명이나 온다는데, 대부분 처음 오는 엄마들인데 대충이라도

1,2층을 치워둬야지 싶었던 것이다. 퇴근한 남편도 거들었다.

큰 모임이 있으면 작정하고 집안을 치우는 마누라인것을 알기에 남편은

내가 사람들을 부르는 것을 은근히 반기는 눈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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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수업이 늦게 끝나는 목요일 오전 11시 반이 되자 약속한 엄마들이 하나둘 씩

마당으로 들어선다. 살림하는 사람들 답게 집안을 샅샅이 구경하며 한마디씩

평들을 늘어놓고는 준비해온 음식들을 꺼내기 시작했다.

한가지씩 나올때마다 '와아' 하는 탄성이 쏟아졌다.

매일 해 먹는 콩나물이며 호박, 버섯 나물인데 다같이 모여서 먹을 생각을 하니

아이처럼 들떠서 호들갑스럽게 반기게 되는 것이다.

내가 만든 묵은지찜도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얼마전에 우리 이웃으로 이사온 태은이네는 구수한 시어머니표 된장찌개를 들고 왔다.

모두 꺼내놓고 보니 정말 푸짐하고 근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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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 양푼으로 모자라 태은이 엄마가 자기 집에서 더 큰 양푼을 들고 왔다.

한 솥 가득 한 밥을 몽땅 넣고 가져온 반찬들을 한데 넣어 척척 비볐다.

어른이 되고 나서 이렇게 통 크게 비벼본 일은 처음이었다.

고추장을 넣을 것도 없이 간이 딱 맞았다. 온갖 나물이 어우러진 비빔밥에 묵은지찜을

올리고 된장찌개와 같이 먹으니 이보다 더 맛있는 음식은 찾을 수 가 없었다.

한 그릇 뚝딱 먹고 다시 덜어 또 먹어도 비빔밥은 넉넉했다.

모두들 즐거운 수다를 나누며 양껏 먹었다.

 

아이를 학교에 보내느라 종종거리며 애쓰다가 훌쩍 점심때가 오면 엄마 혼자서

혹은 어린 동생과 함께 먹는 밥은 그닥 맛이 없다. 가끔은 아이만 차려주고

대충 간식거리로 때우기도 한다. 남편과 큰 아이가 있어야 정성이 들어가는

밥상이 나온다. 한 끼라도 쉽고 편하게 먹고 싶은 마음에 제일  소홀해지기 쉬운게

엄마들의 점심이다. 그런데  모여서 같이 비벼 먹으니 이렇게 맛있을 수 가 없다.

혼자라면 두 세가지도 하기 어려웠을 다양한 나물들을 한자리에서 먹는 것도 좋고

함께 먹으니 입맛도 더 살아난다. 부실했던 점심 밥상이 하루 중 제일 푸짐하고

화려하게 채워졌다.

 

반모임2.jpg

 

외동이를 키우는 젊고 손 빠른 엄마가 설거지를 도맡더니 똑 소리나게

뽀독뽀독 반짝반짝  씻어 놓았다.

차를 마시고 과일을 먹으며 새 그릇들이 나와도 번쩍번쩍 씻어 놓으니

우렁색시가 따로 없다.

가지고 온 반찬 그릇들은 설거지도 안 하고 다시 챙겨 넣고, 비빔밥을 먹을때도

그릇 하나 덜 쓰자며 한 그릇에 같이 먹는 것도 살림하는 사람들의 마음 씀씀이다.

금방 친해지고, 친해지면 속 얘기까지 다 나누고, 한 살이라도 많으면 언니가 되고

동생이 되는 것도 한국 엄마들만의 특징이 아닐까.

포트럭 파티가 더 폼나고 근사할지 모르지만 이렇게 커다란 양푼에 함께 숟가락

꽂아 밥을 나눠 먹으며 쌓이는 정은 역시 우리만의 정서다.

 

30대 초반에서 50대 초반까지 나이도 정말 다양하고 고향도 다 다른 사람들이지만

같은 학교 같은 반이라는 것 만으로도 금방 언니가 되고 동생이 되고 의지가 생긴다.

내 아이의 학교 생활을 다른 시선으로 바라봐주고 힘든 아이의 학교 생활을

같이 염려해 주고 학교에서 일어나는 여러가지 일들을 이야기하고 의논하는

자리도 된다.

시댁얘기도 하고, 남편들 얘기도 하고, 큰 아이들이며 어린 동생들 이야기도

서로 나누고, 얼마전에 세상을 뜬 신해철을 함께 그리워하며 열명의 여자들은

시간가는 줄 모르고 즐거운 수다에 푹 빠져 있었다.

바쁜 엄마는 일찍 일어나고 아이가 방과후 프로그램을 같이 하는 엄마들은

늦게까지 남아 수다를 이어갔다. 

 

너무 맛있고 즐거웠다며 행복해 하는 엄마들에게

" 일주일에 한 번씩 할까" 했다. 진심이었다.

어짜피 먹는 점심, 일주일에 한 번쯤 여럿이 모여 뭐든지 넣고 같이 비벼 먹는

다면 얼마나 좋을까.

살다보면 힘든 일도 있고, 속 썩이고 미운 사람들도 있고, 맘대로 안 되는

아이들도 있지만 함께 모여 밥을 비벼가며 사연과 사정과 정을 나누다 보면

한결 힘이 될 것이다.

모여서 밥 먹고, 모여서 공부도 하고, 모여서 놀기도 하고, 모여서

고민도 해야 진정한 이웃사촌이리라.

언제건 따스한 밥 한끼 허물없이 함께 먹을 수 있는 그런 사람들이 많은 곳,

그런 동네를 늘 꿈꿔 왔었다. 맘 먹으면 어려운 일도 아니다.

일주일에 한번씩 대청소를 한다해도 좋다. 내 집이 큰 부엌이 되고 사랑방이 되어

사람들이 모이고 즐겁고 행복한 곳이 된다면 이보다 더 근사한 일이 있을까.

 

비빔밥 한 그릇에 한껏 행복해진 가을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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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순화
서른 둘에 결혼, 아이를 가지면서 직장 대신 육아를 선택했다. 산업화된 출산 문화가 싫어 첫째인 아들은 조산원에서, 둘째와 셋째 딸은 집에서 낳았다. 돈이 많이 들어서, 육아가 어려워서 아이를 많이 낳을 수 없다는 엄마들의 생각에 열심히 도전 중이다. 집에서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경험이 주는 가치, 병원과 예방접종에 의존하지 않고 건강하게 아이를 키우는 일, 사교육에 의존하기보다는 아이와 더불어 세상을 배워가는 일을 소중하게 여기며 살고 있다. 계간 <공동육아>와 <민들레> 잡지에도 글을 쓰고 있다.
이메일 : don3123@naver.com      
블로그 : http://plug.hani.co.kr/don3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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