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탄 소년.jpg

 

여기도 방탄, 저기도 방탄..

딸 들 방은 온통 방탄 소년단이 점령했다.

그래도 전에는 '트와이스'니, '블랙 핑크'니 하며 애정도 나누어주고, 서로 좋아하는 스타들도

달랐는데 방탄 소년단이 연일 뉴스에 나오고 전세계에 화제가 되면서부터 열 살, 열 세살 두 딸도

휩쓸리듯 '아미'가 되어 버렸다.

(물론 말로만 하는 '아미'다. 회비를 내고 가입을 하고 본격적으로 뛰는 그런 아미는 아니다 ^^)

방탄소년, 멋진 그룹이다. 노래도 춤도, 얘내는 말도 참 잘 한다. 매너는 또 어떻고..

한동안은 나도 기특해서, 엄마 마음으로 응원도 하고, 노래도 들었지만 내 관심은 딱 거기까지다.

방탄 말고도 나는 마당에 돋고 있는 민들레며, 더디게 가고 있는 책 작업이며, 남편이 눈치 주고 있는

밭 가는 일이며, 닭장에 물이 떨어졌는지 개똥이 쌓여가는지 어떤지, 다음주 대의원 회의 일정이며

곧 다가오는 친정엄마 생신이며, 당장 오늘 저녁 반찬은 또 뭘 해야 하는지와 반납일은 다가오는데 아직도

읽다 만 책 같은 것에 신경 쓰는 일로도 머리가 꽉 차 있다.

물론 진전없는 북미관계와 그냥 넘어가면 나도 참을 수 없는 장자연, 김학의 사건과 인재로 밝혀진

포항지진이라니 피해 입은 시민들은 어떻게 되는건지 그날 그날 일어나는 세상일로도 머리가 어지럽다.

그래서 참말로 한결같고, 날로 더 뜨거워지는 딸들의 방탄 사랑이 신기하기도 하고 지겹기도 하다.

아이들은 제 뜻대로 큰다. 정말 그렇다.

그렇게 먹거리, 유기농에 신경 쓰며 키웠어도, 유전자 조작 옥수수의 위험에 대해서 잘 알아도

아이들은 생협 과자보다 마트 과자에 더 열광한다. 힘 들여 애써서 만든 반찬보다 라면에 더 환장하듯

공들여 들려주고 함께 불렀던 ' 굴렁쇠 아이들 노래'도 이미 오래 전에 밀려났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친구에게 받았다는 방탄 스티커를 자랑하고, 친구들과 방탄 이야기를 하고,

집에 돌아오면 방탄 노래를 듣고, 일주일에 두 시간 뿐인 귀한 게임 시간도 방탄을 위한 덕질로

바뀌어 버렸다. 이젠 방탄 신곡 쇼케이스에 가고 싶다고 한숨이다.

열 세살 큰 딸이야 그럴만한 나이라고 치지만 언니와 열광과 숭배를 공유하는 막내도 만만치 않다.

 

방탄 소년2.jpg

분명 얼마전까지도 엄마랑 찍은 사진이 제일 중앙에 붙어 있었는데 어느새 구석으로 밀려나 있고

방탄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그마나 벽에 붙여 준 것 만으로도 고마와 해야 할 지경이다.

내가 초등학교 시절에 아이돌 따위는 없었다. 우린 운동회때 'eye of tiger'따위의 노래에 맞춰

응원 술을 흔들고, 교실에서는 대학가요제 우승곡을 목청껏 불렀다. 중학교에 들어간 후에야

'이선희' 언니를 좋아하는 패와, '소방차'를 좋아하는 그룹과, '김승진', '박혜성'을 서로 응원하는

아이들이 생겨났다. 나는 그 와중에도 딱히 누구를 더 좋아하고 어쩌고 하지는 않았다.

여고생이 된 후에 미국 가수 '라이오넬 리치'를 아주 조금 더 좋아했고, 쌍둥이가 열광하던

'에어 써플라이' 노래에 마음을 주었을 뿐 이다. 지금도 그들 노래는 참 좋다.

며칠 전에 큰 딸이 물었다.

새로 나오는 방탄 신곡 cd를 사고 싶다는 것이다. cd에 딸려오는 방탄 굿즈들이 꼭 갖고 싶다는 것이다.

막내도 졸랐다. 자기도 갖고 싶단다.

부모가 사 줄테니 방탄 굿즈는 나눠 갖고, 음악은 같이 듣자고 제안했다. 큰 딸은 단번에 거절했다.

제 용돈으로 사서 제가 다 소유하고 싶다는 것이다.

두 딸은 모두 핸드폰이 없어서 방탄 노래를 들으려면 엄마 아빠의 탭, 스마트 폰을 빌리거나,

한 대 뿐인 포터블 cd 플레이어를 이용해야 하는데 동생이 듣고 싶을 때 언니가 거절하거나

듣기 싫을 때 계속 틀어 놓으면 분명 갈등이 생길 것이다. '내 것'으로 갖고 싶은 딸들의 마음이야

이해할 수 있지만 같이 지내야 하는 공간에서 '내것'이 늘어날 수록 갈등과 시비가 커지는 것은

불 보듯 뻔해서 한숨이 나왔다.

그렇지만 "내 돈으로 사서, 내가 갖고 싶다는 건데 왜 안돼요?" 라고 항변하는 큰 딸 말을 수긍할 수

밖에 없었다. 모아 둔 용돈이 없는 막내는 이번에는 제가 양보하겠다고 했지만 분명 cd와 굿즈가

도착하면 무척 속상할 것이다.

방학 내내 동생들 방에서 들려오는 방탄 노래며, 피아노 앞에 앉으면 열광적으로 쳐 대는 방탄 노래들에

일찌감치 질려버린 아들은 "방탄 싫어!!"를 부르짖는다. 그럴때마다

"오빠! 그런 말, 아미들이 들으면 오빠 가만두지 않을 걸?" 여동생들은 한 마음이 되어 되받아 친다.

아.. 방탄 방탄...

그러나 우리집에는 두 딸이 호위하는 막강한 방탄 소년과 맞먹는 방탕 소년이 있었으니..

아직도 방학중이라 무려 오후 2시 넘어야 일어나시며, 매일 비빔라면을 꼭 드셔야 하는데다

깨어 있는 시간 대부분을 며칠째 깔아 놓은 이불속에 번데기처럼 누워 스마트 폰을 들여다보시는

열 일곱살 아들 되시겠다.

"어이, 방탕소년, 이 호랑방탕한 이 소년을 어떻하지, 어떻하지?"

이불 속에 누워 꼼짝 안 하는 아들 방 문 앞에 서서 아들을 향해 소리쳤더니

"저는 방탕 소년이 아니고 '방 안 소년'입니다. 어머님" 아들은 능청맞게 받아치며 빙글빙글 웃는다.

아, 이 녀석... 누굴 닮아서 정말 위트는 넘치는 녀석일세..

아아.. 방탄 소년, 방탕 소년, 방안 소년...

요놈의 소년들 정말...

사랑하지 않을 수 없구나..

"엄마도 결국은 우리 '지민'이의 매력에 빠지실걸요?" 딸들은 입 모아 외치고 있지만

엄마는 이미 필규, 윤정, 이룸이라는 이 세 아이들에게 17년째 푹 빠져 있어서 방탄 따위 들어올

틈이 없단다. 너희들이나 애정을 바치거라.

그나저나 방탄에 맞먹는, 아니 능가하는 이 방탕소년, 아니 방 안 소년은 언제 기숙사에 가나.

살다 살다 4월이 오기를 이렇게 기다리기는 처음이다.

방 안 소년이 벌떡 일어나 기숙사로 걸어가는 그날이 오면 그땐 나도 방탄 소년 노래에 맞추어

덩실 덩실 춤을 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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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순화
서른 둘에 결혼, 아이를 가지면서 직장 대신 육아를 선택했다. 산업화된 출산 문화가 싫어 첫째인 아들은 조산원에서, 둘째와 셋째 딸은 집에서 낳았다. 돈이 많이 들어서, 육아가 어려워서 아이를 많이 낳을 수 없다는 엄마들의 생각에 열심히 도전 중이다. 집에서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경험이 주는 가치, 병원과 예방접종에 의존하지 않고 건강하게 아이를 키우는 일, 사교육에 의존하기보다는 아이와 더불어 세상을 배워가는 일을 소중하게 여기며 살고 있다. 계간 <공동육아>와 <민들레> 잡지에도 글을 쓰고 있다.
이메일 : don3123@naver.com      
블로그 : http://plug.hani.co.kr/don3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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