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d6ae90742115104a64ec900fdcd23ef.이른 아침. 기운 넘치는 1과1/2살의 아이는 우리집 ‘금아구역’인 공부방으로 쪼르르 걸어간다. 이곳이 금아구역인 이유는 창고처럼 책부터 옷가지까지 온갖 짐이 먼지와 함께 잔뜩 쌓여있는데다 엄마아빠가  이따금 열어놓는 노트북 컴퓨터같은  전자기기들로 가득하기 때문이다.


컴퓨터에 ‘환장’하는 아이 덕에 작업만 마치면 노트북 컴퓨터를 가방 안에 꽁꽁 싸놓는게 기본규칙인데  전날 밤 늦게야 작업을 끝내는 바람에 깜빡했다. 아니나 다를까~ 아이가 전광석화처럼 노트북 앞으로 달려간다. 다행히 컴퓨터가 켜져 있지는 않았다.


“컴퓨터가 아직 코 자고 있네, 맘마먹고 이따가 컴퓨터 잠 깨면 다시 만나러 올까?” 아빠가 아이를 밖으로 데려오기 위해 말했다. 아기는 아빠를 잠시 빤히 쳐다보더니  검지 손가락으로 노트북의 전원 버튼을 꾹 눌렀다. 노트북 화면에 불이 들어오자 아이는 만면에 흐뭇한 표정을 가득 머금었다. 그러니까 잠시 아빠를 보던 아이의 표정은 ‘지금 뭐라고 하는 거임? 날 바보로 아는 거임?’ 바로 이런 것이었던~ 것이었던~ 것이었다.


물론 나도 한때는 안티 스마트 기기를 주장하는 엄마였다.  어린 아기에게 스마트폰을 쥐어주다니 미친 거 아냐? 아기 앞에서 컴퓨터를 켜다니 육아를 포기했군!  아이에게 티브이를 보여주다니 바보를 만들기로 작정했나?  혀를 차고 한숨을 내쉬곤 했다. 내 아이를 키우기 전까지는 말이다 .

현재 스코어,  아이패드는 출근한 엄마를 대신하는 우리집 놀이선생이 됐고,  스마트폰은 식당에서 아이의 난동을 잠재울 수 있는 마법의 주문이 되었으며, 노트북 컴퓨터는 블록놀이보다 흥미진진한 아이의 장난감이 됐다. 두 돌이 되기 전에는 절대 보여주지 않으리라 마음먹었던 티브이는 뭐랄까, 아이 일상의 배경화면이 됐다고나 할까?  또다시 현실에서 발생하는 육아 이론과 실전의 괴리다.


지금도 죄책감이 없는 건 아니다. 아이가 보여달라는 대로 스마트폰에서 아이패드로,  노트북으로 옮겨다니며 뽀로로 동영상이나 유아용 어플리케이션 등을 보여주는 아이 아빠에게 '생각나면' 버럭하곤 한다. 하지만 나 역시 아이가 울고불고 떼를 쓰면 어느새 핸드폰을 슬그머니 쥐어준다. 그러면서 티브이나 스마트폰을 보여주면 안된다는 전문가들의 조언을 볼 때마다 마음이 불안하다.


하지만 전문가들에게 항변을 하고 싶기도 하다.  최근 배철수의 목소리로 나오는 광고 흉내를 내자면 이것(스마트 기기)은 일하는 엄마들에게 변덕스럽지 않은 베이비시터이고, 이것은  하루종일 육아로 지친 엄마들에게 잠시간의 안식이다. 그러니 전문가여러분,  ‘절대로’ ‘반드시’라는 표현을 쓰면서 스마트 기기를 금지하는 조언은 좀 삼가, 아니 톤다운 해주시길 부탁드린다.  아이에게 창창한 미래가 있듯이 엄마에게도 잠시 동안 육아노동으로부터 해방될 ‘인권’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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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형 기자
투명하게 비칠 정도로 얇은 팔랑귀를 가지고 있는 주말섹션 팀장. 아이 키우는 데도 이말 저말에 혹해 ‘줏대 없는 극성엄마가 되지 않을까’, 우리 나이로 서른아홉이라는 ‘꽉 찬’ 나이에 아이를 낳아 나중에 학부모 회의라도 가서 할머니가 오셨냐는 소리라도 듣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앞서는 엄마이다. 그래서 아이의 자존심 유지를 위해(!) 아이에게 들어갈 교육비를 땡겨(?) 미리미리 피부 관리를 받는 게 낫지 않을까 목하 고민 중. 아이에게 좋은 것을 먹여주고 입혀주기 위해 정작 우는 아이는 내버려 두고 인터넷질 하는 늙다리 초보엄마다.
이메일 : dmsg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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