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충제 계란 사태로 온 국민이 충격에 휩싸였다. 특히 엄마,아빠들이 안심하고 계란을 식탁에 올릴 수 있는지 걱정이 태산이다. 또 아이들이 먹는 대부분의 과자, 빵 등 여러 음식에 계란이 들어가니 집에서만 조심한다고 될 문제도 아니다.
아이를 키우는 엄마,아빠들에게, 특히 맞벌이 부부에게는 계란과 김은 일종의 구원 투수다. 지금은 아내가 육아휴직 중이라 저녁 풍경이 좀 여유롭지만, 둘이 같이 일할 때는 허겁지겁 퇴근하고 나서 매일 저녁밥을 후다닥 차려 아이들과 먹는다. 퇴근은 일의 끝이 아니라 가사와 돌봄 노동의 또 다른 시작이다. 아이들에게 차려줄 반찬이 변변한 게 없거나, 퇴근이 지체돼 저녁이 늦어질 때, 아이들이 배고프다면 빨리 밥 달라면서 아기새처럼 짹짹 거릴 때, 계란과 김은 언제나 옳다. 계란후라이에, 김가루를 쓱쓱 뿌려 밥에 비벼주면 너무 잘 먹어서 어쩔 때는 미안할 정도다. “이렇게 대충 먹여도 되나”라는 생각으로. 압력밥솥으로 밥을 할 때 계란을 풀어서 야채 좀 넣고 그릇에 담아 쌀 위에 올려 불을 켜면 밥과 계란찜이 동시에 된다. 이야말로 일석이조다.
바쁜 아침에도 계란은 언제나 나에게는 고마운 요리 재료다. 결혼하고 나서 아침 당번은 나다. 신혼여행 다녀오고 나서부터였다. 아이가 태어나고 나서도 아침 당번은 여전히 나다. 내가 아침식사와 아이 잠재우기 당번이니, 우리 집 하루는 내가 열고 내가 닫는 셈.
주말 아침 어느날, 첫째 윤슬이와 같이 만든 사과피자. 오래 구웠더니 치즈가 좀 탔다. ㅠㅠ 그래도 아이들은 맛있게 먹었다.
아침에도 계란은 이래저래 요긴하게 쓰인다. 샌드위치를 만들 때 계란은 필수. 시간이 나면 야채를 송송송 다져서 계란에 넣고, 시간이 없으면 그냥 풀어서 부친다. 첫째 윤슬이는 계란 스크램블을 좋아한다. 파와 양송이버섯을 넣어서 계란 스크램블을 해주면 언제나 잘 먹는다. 둘째 은유는 계란 스크램블을 좋아하지 않는다. 형이 계란스크램블을 해달라고 하면 옆에서 “난 계란후라이”라고 말한다. 아이들 밥도 먹이고 출근도 준비해야 하는 바쁜 아침이지만, 둘의 식성이 달라 어쩔 수 없이 후라이도 하고 스크램블도 한다. 아내가 옆에서 그 모습을 보고는 “어유~주는 대로 먹지”라고 아이들을 타박하지만, 아이들 식성이 다른 것을 어쩌겠냐.
이렇게 계란은 아이가 있는 집에서는 빼놓을 수 없는 식재료다. 이런 계란에 그 독한 살충제 성분이라니. 화가 나고 걱정이 될 수밖에 없다. 제주 이주하고 나서 만난 지인이 닭 농장을 하고 있다. 조류독감 파동이 있거나 살충제 파동이 있을 때마다 그 지인이 자연스레 떠오르고 걱정이 된다. 카톡으로 아내가 어제 그 지인에게 “00농장은 괜찮아요?” 물었다. 그러자 그 지인이 “흙목욕 한방이면 진드기 걱정 끝”이라며 닭들이 흙목욕하는 사진을 올렸다.
좀 전에 지인의 농장이 한겨레 기사로 났다. 카톡 사진과 함께 “닭 날개속 진드기 30마리, 흙목욕 1주일만에 사라졌다”는 제목으로 한겨레 메인기사에 떴다.
지인이 카톡에 올린 사진이 한겨레 기사에도 그대로 실렸다.
‘300여평 계사에서 닭 3500여마리를 키우는 제주의 한 양계농가는 살충제는 물론 백신도 쓰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름을 밝히지 않는 이 농장주는 “마당을 만들어주니 닭들이 땅을 파서 안에 들어가 흙을 끼얹고 뒹군다. 여름에는 땅 밑이 시원해서 땅을 파서 더위도 식히고 진드기가 있으면 털어낸다. 흙목옥을 할 때 보면 깃털 사이로 흙을 끼얹어 털어낸다’ (한겨레 8월 18일자 기사)
이름을 밝히지 않는 농장주의 이름을 아는 나로써는 그 지인과 농장 이름을 확 밝히고 싶지만, 본인이 굳이 밝혀지기를 거부하니 그럴 수는 없고, 입만 막 근질근질하다. 그는 제주토박이자 한살림 생산농가이다. 생산성도 떨어지는 제주 토종닭을 주로 키워 계란을 생산한다. 대학원에서 경제학을 공부했고 기자생활을 하다 귀농한 그 지인의 경제개념은 한마디로 ‘착한 경제’다.
페이스북 이름도 “happy hen’이다. 맞다. 닭도 행복해야 우리도 행복할 수 있다. A4 한 장의 공간도 허락되지 않는 공장식 축산에서는 살충제 계란, 조류독감은 숙명이다. 청정지역이었던 제주에서도 올해 초 조류독감이 휩쓸고 지나갔지만, 그 지인의 농장은 조류독감도 피해갔다.
2년 전 지인의 농장에 초대 받았다.
막 산란한 따끈한 계란과 함께 닭백숙도 대접받았다.
“내가 먹는 게 바로 나다”라는 말이 있다. 살충제 계란 파동은 우리 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우리 아이들의 건강을 위해서도 이제 닭들의 건강과 행복도 함께 고민해야 한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다. 어디 닭뿐이랴, 돼지도, 소도 마찬가지. 아이들 재우고 나면 베이비트리 엄마, 아빠들 봉준호 감독의 ‘옥자’도 한 번 보시길 바란다.
박진현/ 제주에서 8살, 4살 아들을 키우는 아빠입니다. 육아휴직도 두 번 했습니다. 우리 부부의 좌우명은 평등육아입니다. 사실 아내가 먼저 외치기 시작한 좌우명이지만, 저도 동의합니다. 진짜입니다. ㅎ 4년 전에 제주로 이주해서 인터넷 언론 '프레시안'에도 글을 쓰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