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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은 시동생네와 함께 강낚시를 다녀왔다.

오후에 비가 올지도 모른다는 예보가 있었지만

아이들이 한 주내내 들떠 기다리고 있던 참이라

비가 오더라도 일단 가는 걸로!  의견을 모았다.

 

3살, 7살 아들 둘이 있는 시동생네는 둘 다 직장을 다니고 있어

주중에는 아이들과 함께 지낼 시간이 늘 부족하다.

작년까지만 해도 둘째가 아직 두 돌이 안 됐을 때라

그나마 가족이 다 함께 쉬는 주말에도 툭 하면 둘째가 열이 나고

아픈 바람에 바깥나들이를 거의 해 본 적이 없다고 했다.

둘째는 아직 어리니까 괜찮겠지만

첫째인 '타쿠미'는 이제 7살에 한참 어디로든 가고 싶어할 나이지만

다행히도(?) 집에서 노는 걸 좋아하는 편이라

주말이라 해서 꼭 어딜 나가서 놀고 싶다는 얘길 잘 하지 않는단다.

내가 보기에도 타쿠미는 엄마곁에서 껌딱지처럼 붙어있는 동생과는 달리

말수도 적고 고집을 피우는 일도 없어 요즘 부쩍 의젓해 보였다.

 

하루종일 집에 있어도 보채는 일이 없이 혼자 잘 논다는 조카 타쿠미가

우리 가족과 낚시를 가는 날을 그렇게 목이 빠지게 기다렸다고 하니

시동생네 부부는 비가 온다 해도 약속을 취소하지 말자며 자주 연락을 해오곤 했다.

 

드디어 3,5,7,11살  네 명의 아이들과 함께 강으로 출발!

날씨가 조금 흐리긴 했지만 오히려 선선해서 더 좋았다.

물을 보자마자 아이들은 바로 첨벙첨벙 물놀이에

어른들과 우리집 큰아이는 낚시 삼매경에 빠졌다.

낚시에 별로 경험이 없는데도 세 마리나 잡은 큰아이는 자기 손등에서 물고기가

발버둥치는 바람에 손이 아프다며 엄청 엄살을 피웠는데

피부에 닿은 살아있는 물고기의 펄떡거림이 꽤 강렬했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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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에 있는 사람 소리가 잘 들리지 않을 정도로 큰 강물소리와

시원한 바람, 나뭇잎 사이에서 빛나던 햇살, 아이들의 웃음소리..

작고 통통한 발을 물에 담그고 노는 어린 아이들이 너무 귀여워 그저 흐뭇하기만 한 엄마들과

긴 낚시대를 드리우고 과묵하게 딸아이의 낚시대를 살펴봐주는 아빠들의 모습이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다운 시간이었다.

한 주일동안 쌓인 피로가 다 씻겨지는 기분이 들며 너무 평화롭기만 하던 바로 그때!

사건이 하나 일어나고야 말았다.

 

동생들이랑 물 속에 장난감을 풀어놓고 신나게 물장난을 하던 타쿠미가,

언제나 늘 과묵하고 어른스러워서 놀랍기만 하던 조카 타쿠미가,

엉엉 소리높여 울기 시작했다.

의젓하기만 하던 아이가 강 물살의 거센 소리보다 더 크게 울고 있었는데

이유는 바로 물 속에 풀어놓은 장난감 하나가 물살에 떠내려가고 말았기 때문이다.

흙장난 할 때 쓰는 작은 '바케츠'(일본에선 이렇게 부른다^^)가 떠내려가는 걸

모두들 보고는 있었지만, 너무 눈 깜짝할 사이에 벌어진 일이고 붙잡으려

물 속에 들어간다 해도 떠내려가는 속도가 너무 빨라 금방 우리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다.

 

똑같은 장난감이 하나 더 있으니 괜찮다고 아무리 설득하고 달래도

아이의 울음은 멈추지 않았다.

서럽게, 보는 사람 모두가 슬퍼질만큼 너무너무 서럽게 타쿠미는 오랫동안 엄마품에 안겨 울었다.

아이들과 어른들이 돌아가며 달래고 먹는 것이나 다른 놀이로 꾀어보아도

"내 바케츠... ..."

만 외치며 울고 또 울었다.

그렇게 1시간이 지나도록 우는 아이를 달래며 동서는 혼잣말을 하곤 했다.

'늘 혼자 참고 있다가 이제야 터진 건가... 그동안 너무 혼자 잘 논다 싶더니...'

늘 듬직하기만 하던 사촌형아가 우는 걸 보고 심각해진 우리 둘째가 먹는 걸 찾았다.

내가 아이들 점심으로 준비해간 볶음밥을 자기 거랑 형아 거 두 그릇으로 나눠주니

울고 있는 형에게 들고가 같이 먹자며 건넸다.

시간은 벌써 점심시간을 훌쩍 넘기고 있었고 울다 지쳐 배가 고팠던지

타쿠미는 여전히 "내 바케츠..."하며 훌쩍거렸지만 엄마품에 안긴 채 밥을 먹었다.

 

아이들이 밥을 먹는 동안 엄마들이 재밌는 얘기들로 분위기를 띄우고

준비해온 과일이나 달달한 것들을 꺼내주니 타쿠미는 그제서야 긴 울음을 거두고

다시 물놀이를 시작했다.

아! 다행이다.. 가족 모두가 겨우 안심을 하고 물놀이와 낚시에 다시 몰두하고 있을 때,

한 사람 비는 자리가 있었다.

그러고 보니 아까부터 타쿠미의 아빠, 시동생이 보이지 않았다.

다들 어디갔어? 점심먹을 때도 지났는데 .. 하면서도 아이들 돌보느라

시동생의 존재를 까먹고 있을 무렵,

멀리서 타쿠미 아빠가 어슬렁어슬렁 걸어오는 게 보였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산 오르막길을 힘겹게 걸어올라오고 있는 그의 손에는

아들 타쿠미가 잃어버린 그 문제의 '바케츠'가 들려있는 게 아닌가.

 

순간 가족들 모두가 환호성을 질렀다.

시동생은 아들이 우는 걸 아무말 없이 보고 있다가 혼자 몇 킬로나 되는

산 길을 걸어 저 아래 강가까지 장난감을 찾으러 갔다 온 거였다.

남편은 여전히 물놀이에 정신이 팔려 아빠를 아직 보지 못한 타쿠미에게

"타쿠미!!  저것봐. 아빠가 바케츠 찾아왔어!!!"

무슨 말인지 몰라 얼떨떨해하는 타쿠미가 아빠에게 자신이 그토록 찾았던

장난감 바케츠를 받아든 순간, 또 다시 아이 눈에는 눈물이 글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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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마음에도 어른들 마음에도 작은 감동이 일렁이는 순간이었다.

타쿠미는 아빠가 오랜 시간 고생해서 찾아온 장난감을 받아들고 아무말이 없이 눈시울을 적시고

그 곁에서 우리 둘째아이는 자기 일처럼 기뻐하며 형의 마음을 함께 느끼는 듯 했다.

시동생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다시 낚시대를 잡고 네 명의 아이들은

옹기종기 그 곁에 모여앉아 물장난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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낚시터에서 돌아오는 길.

예상치 못한 '바케츠 사건'에 대해 차안에서

남편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남편은 평소에도 말수가 적은 동생이 주중에 아이들과 함께 놀아줄 시간이 없어

늘 미안해한다고 했다. 어른들이 생각하기엔 '그깟 장난감 하나' 떠내려간 걸 가지고...

할 수 있지만, 아이는 그걸 핑계로 울면서 자기 마음을 달래며

부모에게 평소에 부리지 못한 응석을 맘껏 부리고 싶었던 건 아닐까.

그런 아이 마음을 행동으로 묵묵히 채워줬던 동생의 부성애에

남편도 잠깐 감동받은 눈치였다.

 

아이들이 부모의 사랑을 느끼는 순간을 눈으로 볼 수 있는 그런 하루였다.

역시, 남자들은 말보다 행동으로 보여주는 게 멋있다는 사실.

연애 뿐 아니라 육아에서도 통한다는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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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영희
배낭여행 중에 일본인인 지금의 남편을 만나 국제결혼, 지금은 남편과 두 아이와 함께 도쿄 근교의 작은 주택에서 살고 있다. 서둘러 완성하는 삶보다 천천히, 제대로 즐기며 배우는 아날로그적인 삶과 육아를 좋아한다. 아이들이 무료로 밥을 먹는 일본의 ‘어린이식당’ 활동가로 일하며 저서로는 <아날로그로 꽃피운 슬로육아><마을육아>(공저) 가 있다.
이메일 : lindgren707@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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