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009copy.jpg여름옷을 정리하느라 옷장을 뒤집어엎었다가 서랍장 밑에서 여름 내내 한 번도 안 입었던 옷 한 벌을 찾았다. 옷을 손수 지어서 제 딸 둘에게 입히는 친구가 물려주었던 옷이었다. 입학을 하는 둘째 딸을 위해 공을 많이 들여 만든, 정장풍의 블라우스와 치마였다.

일곱 살인 윤정이는 그 옷들을 보자마자 너무 예쁘다며 입어 보았다. 딱 맞았다. ‘진작 챙겨서 몇 번이라도 입혀 볼 것을…’ 정작 학교에 다니게 되는 내년 여름에는 옷이 작을 것 같았다. 윤정이는 하루 종일 그 옷을 입고 다녔다.

“엄마, 나 예쁘죠. 이거, 교복 같은 거예요?”

그랬다. 그 옷은 꼭 사립학교 교복처럼 보였다. 그 점이 오히려 딸아이의 맘에 든 모양이다. 오늘도 윤정이는 기어코 빨래 바구니에 넣어 두었던 그 옷을 다시 꺼내 입었다. 날이 선들대서 걱정을 했더니 얇은 내의에 스타킹까지 찾아서 신고 정성스레 옷매무새를 다듬었다. 목욕탕 거울 앞에 서서 저 혼자 단추를 끝까지 꼭꼭 잠그고 옷깃의 모양을 매만지는 딸아이를 보고 있자니 왠지 기분이 이상했다. 딸아이가 하루 사이에 훌쩍 큰 것처럼 느껴졌다.

어린이집도, 유치원도 다녀보지 않은 딸이었다. 일곱 살이 되도록 하루 종일 엄마와 함께 지내고 있는 딸이다. 엄마와 동생과 함께 지내는 생활을 좋아했지만 그래도 일주일에 두 번씩 발레를 배우러 주민자치센터에 갈 때마다 딸은 또래 친구들을 환하게 반겼다. 그런 딸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짠하곤 했다.

친구들이 늘 그리운 딸은 오래전부터 학교에 다니는 것을 갈망해 왔다. 벼룩시장에서 산 낡은 학교 가방을 늘 메고 다니면서 동생에게도 “언니는 내년부터 학교에 다녀야 하니까, 언니 없을 때는 엄마랑 둘이 있어야 해” 하며 벌써부터 동생에게 ‘언니 없는 시간’을 준비시킨다.

학교, 교실과 친구들, 선생님, 모두 함께 먹는 급식, 교과서와 신발주머니까지 딸아이는 모든게 다 설레고 고대되는 모양이다. 시키지도 않았는데 오빠가 쓰던 일기장을 찾아내어 더듬더듬 일기도 쓰고, 오빠는 몇 장 하다가 치워 버린 숫자 공부책을 꼬박꼬박 풀고 있다. 운동회도 해보고 싶고, 체험 여행도 가보고 싶고, 학예 발표회란 것도 너무 궁금하단다.

일찍부터 어린이집이나 유치원, 각종 학원을 오가느라 학교 입학은 오히려 시들해하는 아이들도 많다고 한다. 그런데 딸은 한 번도 단체생활을 해 본 적이 없어서 학교생활을 더 기다린다. 늘 떼를 쓰고 제멋대로 하는 어린 동생과 노는 일이 힘들었는데 자신과 잘 통하는 친구들을 학교에 가면 만날 수 있을 테니 빨리 입학하고 싶다고 노래를 부른다.

도무지 글자와 숫자에는 관심이 없어 애를 태우던 큰아이의 일곱 살 때를 생각해보면 딸아이가 보여주는 모습은 대견하기도 하면서 저렇게 기대하는 학교생활이 정말 기대만큼 근사하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도 생긴다. 그러나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어떤 경험이든 고대하며 기다리는 일에 미리 어떤 인상을 심어줄 필요는 없다. 다만 한껏 입학을 기다리며 설레는 그 마음이 예쁘다.

거울 앞에 서서 뿌듯한 표정으로 제 모습을 들여다보고 있는 딸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자니 이제 내 딸은 더는 어린이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겠다. 제가 속할 새로운 세상에 대한 기대와 설렘으로 가득 차 있는 예쁜 소녀와 새로 맞이할 생활들을 나도 더 기대하며 같이 기다리고 싶다.


(*한겨레신문 2013년 9월 10일자 베이비트리면(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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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순화
서른 둘에 결혼, 아이를 가지면서 직장 대신 육아를 선택했다. 산업화된 출산 문화가 싫어 첫째인 아들은 조산원에서, 둘째와 셋째 딸은 집에서 낳았다. 돈이 많이 들어서, 육아가 어려워서 아이를 많이 낳을 수 없다는 엄마들의 생각에 열심히 도전 중이다. 집에서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경험이 주는 가치, 병원과 예방접종에 의존하지 않고 건강하게 아이를 키우는 일, 사교육에 의존하기보다는 아이와 더불어 세상을 배워가는 일을 소중하게 여기며 살고 있다. 계간 <공동육아>와 <민들레> 잡지에도 글을 쓰고 있다.
이메일 : don3123@naver.com      
블로그 : http://plug.hani.co.kr/don3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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