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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키우다보면, 책 한 권에게 예상치 못한 큰 도움을 받을 때가 있다.

교육적인 효과나 행동교정을 꼭 목적으로 한 건 아니지만,

아이의 현재 상황이나 욕구가 꽤 괜찮은 그림책과 딱 맞아떨어졌을 때 일어나는

화학반응과 효과를 자주 지켜보았기 때문이다.


밤에 아이가 안심하고 푹 잘 수 있도록 도와주는 우리집 최고의 베드타임 북!

바로 타카노 후미코의 <요, 이불, 베개에게>란 그림책이다.

언젠가 서천석 선생님이 쓰신 '잠과 아이들'에 관한 글에서도 소개된 적이 있었던 이 책은

잠의 세계로 들어가는 아이를 안심시키고 좋은 수면 습관을 만드는데 도움을 준다.


잠자리의 3종 세트 - 요, 이불, 베개에게 아이는 자신이 가진 불안을 이야기하고

의인화된 그들은 아이의 부탁에 "아무 걱정말고 내게 맡겨" 라고 말한다.

한밤중에 오줌이 나오려고 소란을 피우면,

요가 오줌에게 참으라며 아침까지 아이의 엉덩이를 다독여준다거나,

낮에 넘어져 다친 무릎도 빨리 나을 수 있도록, 이불이 따뜻하게 감싸주고

나쁜 꿈을 꾸게 되면 베개가 콧김을 불어, 악몽을 날려보내준다는 내용인데

실제로 만화가인 작가의 작품답게 단순한 그림이지만 참 재밌고 귀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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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저귀를 떼고나서도 오..랫동안 밤중에 쉬를 해서 요와 이불을 다 적셔놓거나

좀 나아진 다음에도 쉬가 마려워 한밤중에 엄마아빠를 자주 깨우던 오줌싸개 둘째에게

그동안 이 책은 큰 위로가 되어주었다. 잘 때마다 이 책을 함께 읽고 안심했던 탓인지,

아니면 아이가 긴 겨울밤 동안도 아침까지 쉬를 참을 수 있을만큼 몸이 자랐기 때문인지

요즘은 정말 완벽하게 밤중 쉬를 마스터했다.


하루가 멀다하고 유치원에서 놀다 넘어져 상처가 나면, 밤에 잠들 때마다

이불아 부탁해! 베개야 부탁해! 하며 주문을 외우듯 하며 눈을 감았다.

안심하는 건 아이뿐 아니라 부모인 나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다.

요와 이불과 베개까지 나서서, 우리 아이의 잠자리를 밤새 돌봐준다는 상상은

생각만으로도 따뜻하고 잔잔한 웃음을 머금게 한다.

아이가 집단생활에서 마음의 상처를 입고 온 날은, 잠든 아이 얼굴을 보며

맘 속으로 이렇게 빌어보곤 했다.

'요야, 이불아,

 오늘 일은 깨끗하게 잊고 내일 다시 씩씩하게 갈 수 있도록 도와주렴..'


유난히 추웠던 이번 겨울,

하루 일과를 마친 밤, 포근한 이불 속에 몸을 묻으면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다.

편안한 베개에 머리를 대고 따뜻한 이불을 덮고 아이와 함께 이 그림책을 읽은 뒤,

불을 끄면 아이는 행복한 얼굴로 금새 잠에 골아떨어지곤 했다.

아직은 엄마나 아빠가 함께 이불에 눕지않으면 안되지만

언젠가 혼자 잠드는 연습을 시작하게 될 때, 다시 이 책을 떠올리게 될 것 같다.


아이들이 잠자는 시간은 어릴수록 하루의 절반에 가까울만큼 길다.

잠이 들면 아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이 두려워 되도록 잠드는 시간을 늦추고싶어한다.

서천석 선생님의 글에서처럼

'자기 옆에 자신을 도와줄 누군가가 없는 순간이 온다는 걸, 아이들은 알고 있기' 때문일까.

그래서 더욱, 아이들이 잠드는 순간이나 잠자리의 배경, 도구들을

친근하게 느낄 수 있도록 해주는 도움이 필요한 것 같다.

다 큰 어른들조차 안 좋은 일이 있었던 하루라해도, 잠을 푹 충분히 잘 자고 나면

그것만으로도 다음날 기분이 좋고 새로운 의욕이 생긴다. 아이들은 더 그렇다.


요즘, 항상 일정한 밤 시간에 자기 시작해 10-11시간을 한번도 깨지않고 푹 자는 둘째는

아침에 일어나면 늘 기분이 최고다. 아침밥도 두 그릇을 뚝딱 할만큼 잘 먹고,

늘 적응을 어려워하던 유치원도 이제는 빨리 가서 놀고 싶어한다.

잘 자고 잘 먹는 덕분인지, 추위가 혹독했던 올 겨울동안 감기나 장염 한번 앓지 않고

건강하게 보내준 것이 무엇보다 고맙다.

잠들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릴 뿐 아니라 새벽에도 자주 깨곤 했던 아이였기에

이불에 눕자마자 한방에 잠들고, 논스톱으로 아침까지 푹 자주는 지금이 너무 소중하다.


올바른 수면습관이 아이의 일상뿐 아니라

부모의 일상에도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치는지, 다시 한번 절감하고 있다.

이 여세를 몰아, 변화가 많은 새 학기에도 무난하게 잘 적응해주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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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학기, 새생활이 시작되는 3월이다.

변하는 계절에 몸과 마음이 적응해야 하고,

새로운 환경, 새로운 친구, 새로운 선생님 ...

많은 변화와 적응을 아이들이 겪어내야 하는 시기다.

새로움에 대한 적응과 불안을 아이들이 무사히 잘 이겨낼 수 있도록,

혹 마음에 걸리는 일을 겪더라도 격려와 위로를 아끼지않는 이불 속에서

하룻밤 푹 자고 난 뒤, 깨끗하게 잊고 다시 웃으며 하루를 시작할 수 있길 바래본다.


아이들의 변화를 지켜보고 도와줘야하는 우리 엄마들도 그랬으면 좋겠다.

새 생활을 시작하는 모든 아이와 부모들에게 용기와 행운이 함께 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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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영희
배낭여행 중에 일본인인 지금의 남편을 만나 국제결혼, 지금은 남편과 두 아이와 함께 도쿄 근교의 작은 주택에서 살고 있다. 서둘러 완성하는 삶보다 천천히, 제대로 즐기며 배우는 아날로그적인 삶과 육아를 좋아한다. 아이들이 무료로 밥을 먹는 일본의 ‘어린이식당’ 활동가로 일하며 저서로는 <아날로그로 꽃피운 슬로육아><마을육아>(공저) 가 있다.
이메일 : lindgren707@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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