뽀뇨와 올레길 걷기는 큰 도전이었다.
마을길 10미터를 함께 걷는데도 꽃구경하랴 지나가는 할머니 구경하랴
바쁜 뽀뇨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큰 도전을 할 수 밖에 없는 사건이 생겼다.
제주올레 20코스 개장식에 서울에서 늘 내 일을 도와주고 있는 벤타코리아측 이사님이
제주올레 친구기업으로 공식초청을 받았기 때문이다.
뽀뇨를 어떻게든 아내에게 맡겨보려 하였으나 아내는 올해 말까지 생태문화해설사 양성교육을 받고 있어
금, 토요일엔 항상 집을 비운다(자고 일어나면 사라지는 아내. 밥상을 항상 차려두고 사려져 요즘 나는 우렁이 각시라 부른다).
결국 뽀뇨랑 얼마나 걷게 될지 몰라 대절버스가 아니라 차를 몰고 올레출발 코스인 김녕서포구로 향했다.
<김녕서포구, 올레 20코스 출발점에 모인 올레꾼들. 제주에 사는 사람들은 정말 복을 타고났다. 이렇게 아름다운 올레를 매일 걸을 수 있으니>
오전 10시 개장식후 출발인데 도착하자마자 많은 사람들이 모여있었고 늘 그렇듯 줄을 지어 사람들이 걷기 시작한다.
마을길이 좁고 사람들 발걸음이 빠르니 뽀뇨를 안고 출발했는데
어젯밤 맥주한잔 한 탓인지 발걸음이 무겁다.
결국 김녕포구 초입의 아름다운 광경을 찍으려는 핑계로 정자앞에서 잠시 휴식.
'이제 200미터 정도 걸었나? '
눈앞에 펼쳐진 바다에 정신이 혼미해진다.
그래 ‘이렇게 아름다운 바다인데 뭐 어때’하며 다시 걸음을 재촉.
<김녕포구를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정말 말로는 표현할 수 없다. 그런데 이런 포구들이 제주에는 마을마다 있다는 사실 ㅠㅠ>
김녕포구에 들어서 길이 넓어지자 아빠는 뽀뇨를 내려놓았다.
기다렸다는듯 뛰기시작하는 뽀뇨.
여기저기서 카메라가 올레꾼들을 찍는데 열심히 달리는 뽀뇨도 몇컷 포착된다.
‘우리 뽀뇨, 9시 뉴스에 나오는거 아냐?’하며 기분좋아하는데
다시 길이 해안가 좁은 자갈길로 빠진다. ㅠㅠ
이렇게 시작된 꼬불꼬불길이 도대체 얼마나 이어지는지, 오른쪽 어깨로 안았다가 왼쪽 어깨로 안았다가 하는데
옆에서 이사님이 한마디 거든다.
“뽀뇨랑 친해지면 내가 좀 안아줄텐데.. 얼굴 마주치기 무섭게 고개를 돌리니”
팔에 뽀뇨를 안은 상태로 30분 이상을 걷고 있는데 신이 난 뽀뇨.
“야~ 바다다. 야. 구름이다. 야 비행기다”(비행기가 전혀 보이지 않는데도)
한 시간이 다 되어 아빠 체력은 바닥이 될 즈음 아스팔트 도로를 만났고
나는 빠질려는 어깨를 구출하기 위해 뽀뇨를 내려놓았다.
신이나서 내달리는 뽀뇨. 맞은편에 차가 다녀서 그냥 놓아두지도 못하는 상황.
통증에 어깨가 내려앉으려는데 같이 길을 걷는 올레꾼들은 ‘최연소 올레꾼’이라며 뽀뇨를 치켜세운다.
아빠 기분이 업된 상황인데도 체력은 완전 다운이다.
결국 에너지를 보충하려고 찾아간 식당.
이름은 마을어촌계식당인데 안에 생긴 모양새나 음식 나오는거나 형편이 없다.
제철 자리물회가 냉동상태로 나오다니.. OTL
<전복뚝배기를 시킨 이사님은 그래도 맛있다며 드신다. 나름 입맛 까다로운 난 절대 이 식당 두번다시 가지않겠음>
그래도 꾸역꾸역 먹으며 소셜미디어로 '얼어있는 자리물회'에 대해 친구들에게 알리고 다시 출발하려는데
이사님, “비행기 출발시간이 몇시간밖에 안 남았는데 우리 되돌아가는건 어떨까요?”
내심 기대한 이야기였지만 아름다운 풍광에 빠져 정신없이 이끌려왔다.
근데 되돌아갈려니 더 걱정인 상황. 버스를 탈 방법은 없나 하고 물어보니 해안도로라 한참을 걸어나가서
언제올지 모르는 버스를 기다려야 된다고.
결국 아빠는 되돌아가야 했다. 그것도 뽀뇨를 안고서.. 올때는 몰랐다. 되돌아가는 이 길이 이렇게 긴줄.
뽀뇨를 오른 어깨, 왼 어깨로 안으며 아스팔트길로 묵묵히 걷는데
‘왜 이렇게 멀리 왔을까. 내가 바보지’라는 생각이 절로 난다.
<물빛깔이 대충 이렇다. 물속에 발을 담근 뽀뇨는 좋아서 입을 헤~하고 벌리고선 침을 흘린다. ㅋ 아이 흐뭇해>
그리고 다시 물빛이 너무 아름다운 김녕해수욕장에 한시간만에 도착.
좀 쉴겸 뽀뇨를 바닷물가에 내려놓았는데 신이 나서 놀다가 엎어지더니 운다.
“뽀뇨, 바닷물 먹었어요? 이제 가자”하는데 울며 안갈려고 때를 쓰는 뽀뇨.
해변의 강아지에게 시선을 돌리고선 다시 들쳐 안는다.
뽀뇨와 함께 한 길고도 긴 올레길, 비록 1/5도 제대로 걷지 못하고 반대로 되돌아가야 했지만
종점은 찍어야겠다 싶어 돌아왔던 그길로 곧장 차를 몰았다. 2시간 넘게 걸어갔다 돌아온 길이
차로 고작 10분도 안되는 거리였다니..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색깔의 바다며, 누렇게 익어가는 보리며, 내 어깨를 어루만지는 바람이며..
결국 이 길을 전부 걸을 순 없었지만 종점인 해녀박물관에서 마신 달콤한 당근쥬스와
전망대의 아름다운 광경에서 하루의 피곤을 깨끗이 씻었다.
(하지만 그 다음날의 피로는 씻지 못했다. 결국 일요일은 침대에서 ㅠㅠ)
<해녀박물관 전망대 광경. 평화로운 어촌 포구에 마음마저 온화해진다. 언젠가 뽀뇨랑 이 길을 다시 걸을 수 있겠지?>
->아래 사진을 클릭하시면 두돌을 맞이한 뽀뇨의 축하송이 이어집니다. 여러분도 많이 축하해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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