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 사니까 어때?’ 

서울에서 제주로 이주한지 2년이 넘었는데도 가장 많이 받게 되는 질문이다. 

늘상 받는 질문인지라 답변 또한 늘상 같다. 


“여러가지로 좋아요. 형도 내려오실래요? 한달 여행온다는 기분으로 내려와서 한번 살아보세요”


제주를 사랑하여 제주로 내려왔지만 탈서울에 대한 생각도 이주에 한 몫을 했다. 

왜 사람들은 똑같은 목적을 갖고 아등바등 살아가야 할까? 

늘 피곤하고 쳇바퀴 돌아가는 일상에 틈은 없는 걸까? 


이러한 허무맹랑한 생각에 단초를 제공한 것은 

한겨레21의 독자 편집위원회 시절 만난 김형태(황신혜밴드)씨와의 인터뷰에서였다. 


“항상 똑같은 시간에 일어나 똑같은 교복(양복)을 입고 똑같은 학교(직장)를 갑니다. 

이런 생활에서 조금만이라도 벗어나면 낙오될까봐 두려워합니다. 

하지만 벗어나보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유로워지죠”


아버지와 친구, 여러 사람의 죽음을 가까이에서 지켜보며 

내 삶을 찾아나가자는 믿음은 더 강해졌지만 용기가 없었다. 

그럴 때 손을 내밀어 준 것이 바로 아내였다. 

고향을 떠나 서울에서 10년을 넘게 살아온 아내. 

고교 시절 제주 수학여행에서 배멀미한 추억(?)때문인지 이주를 내켜하지 않았다. 

아내나 나나 아는 사람 하나 없는 낯선 곳이었으니까.


그런데 아내의 마음을 결정적으로 돌려놓은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돈도 선물도 아니고 뱃속에 든 뽀뇨였다. 

그렇게 우리 세 식구는 제주에 이주했다. 

남편은 회사에 다니며 사회에 적응해 가는데 아내는 아는 곳도, 아는 사람도 없는 곳에서 

얼마나 힘이 들었을까? 


이주하고 얼마되지 않아 한 교차로에서 두리번거리는 빨간색 코트를 입은 만삭의 아내를 발견하곤 어찌나 눈물이 나던지.


하지만 힘든 생활도 오래가지 않았다. 

집에서 걸어 10분이면 출근하고 6시면 퇴근하는 직장생활. 

만나서 술 마실 사람 없고 TV조차 보지 않으니 저녁시간은 모두 우리 차지였다. 

둘이 서울서 직장 다닐 때 새벽 5시에 일어나 영어 학원을 다니고 

퇴근하면 늘 10시가 넘었던 것과는 너무도 다른 생활이었다. 

밤시간 동안 뽀뇨 돌보기는 아빠차지였으니 지금의 육아생활도 그 연장이라 어렵지 않았다.


차로 10분이면 갈 수 있는 텃밭과 해수욕장. 

아빠와 함께 출근하는 시골마을과 뽀뇨를 항상 반기는 마을 어르신들. 

생각해보면 아이덕분에 새로운 곳에서의 정착이 어렵지 않았다. 

타지에서 온 사람에 대한 경계심은 어느 시골 마을에나 있는데 

뽀뇨가 함께라면 모두 마음을 열었다. 

거기다 ‘뽀뇨아빠’라는 이름으로 신문에 기고도 하고 방송에도 출연했으니 이 얼마나 호사인가.


최근에 출간된 ‘거침없이 제주이민’이라는 책에, 나와 뽀뇨가 한 꼭지를 차지하게 되었다. 

그 책의 저자가 내게 물었다. 


“앞으로 아이를 어떻게 키우실 건가요?” 


육아방식이 남다를 거라고 생각했나본데 대답이 너무 싱겁다.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아이랑 그냥 노는게 좋아요”


뽀뇨와 함께 하고 있는 622일. 

아내와 가끔 서울에 살았다면 어땠을까라는 이야기를 종종 해본다. 

그리고 아이와 함께 할 수 있는 아름다운 자연환경과 넉넉한 시간을 준 우리 자신에게 감사한다.   


<아내는 내 인생의 은인이다. 아내의 소원을 위해 나는 무얼 해야할까?>

P5110179.JPG


<뽀뇨와 함께 "아빠의 제주이주 생활"이 책에 실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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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창욱
세 가지 꿈 중 하나를 이루기 위해 아내를 설득, 제주에 이주한 뽀뇨아빠. 경상도 남자와 전라도 여자가 만든 작품인 뽀뇨, 하나와 알콩달콩 살면서 언젠가 가족끼리 세계여행을 하는 소박한 꿈을 갖고 있다. 현재 제주의 농촌 마을에서 '무릉외갓집'을 운영하며 저서로 '제주에서 아이를 키운다는 것', '제주, 살아보니 어때?'를 출간했다.
이메일 : pporco25@naver.com       트위터 : pponyopap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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