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라인가르텐.


독일 말로 작은 정원이란 뜻인데 우리는 이 정원을 버스를 이동하며 곳곳에서 보게 되었다.

처음엔 무엇인지 몰랐다. 철조망이 쳐져있고 왠지 사람이 살지 않는 곳에 직사각형으로 구획을 그어놓은 것이

인위적이기도 하고 생계가 어려운 사람들의 임시거처같이 보였다.

 

이 이상한 시설들은 도심으로 들어가는 초입에 있었는데 버스로 이동하는 우리는

높은 위치에서 이 곳이 무슨 공간인지 호기심을 가지고 훔쳐보았다.

언뜻 꽃도 피어있고 채소도 심어져 있었는데 중간에는 작은 통나무집도 있었다.


오후 시간인데 몇몇의 사람들이 텃밭을 관리하고 있었다.

숲을 자연 그대로 보존하며 이와 어울리게 작은 도시를 만든 독일에서

인위적으로 만든 클라인가르텐의 존재가 의아했지만

카를슈헤라는 작은 도시의 클라인가르텐협회에 방문하여 설명을 들으니 절로 이해가 되었다.

 

클라인가르텐을 이야기하면 제일 먼저 거론되는 사람이 있다. 바로 슈레버 박사.

이 의사가 참 재미있는 것이 병원에 찾아오는 많은 사람에게 동일한 처방을 했다고 한다.


햇볕을 쬐고 흙을 만지며 채소를 길러 먹어라’.


그의 사위가 이에 영감을 받아 아이들을 위한 도심 놀이터를 조성했는데 이것이 최초의 클라인가르텐이다.

100년도 넘은 이야기인데 독일의 작은 정원, 클라인가르텐은 인구의 절반이 농촌에 거주하는 독일에서

도시 거주자들 특히 정원이 없는 사람들과 아이들을 위해 기획된 프로그램이다.

 

<카를슈헤 클라인가르텐협회. 슈레버 박사의 이야기, 처음에 가르텐이름도 슈레버가르텐으로 불리었다고. 이 도시에만 7천개가 넘는 정원이있다.>

DSC_0859.JPG


한국의 도시텃밭으로 이해할 수도 있는데 다른 점이라면 100년도 넘은 역사와 정교하게 구성된 시스템이다.

보통 90평의 공간에 실제 통나무집과 길의 면적, 아이들 뛰어노는 정원 및 놀이시설 면적, 텃밭 비율이

1/3의 비율 구성되는데 오두막에서는 살 수 없다.

재배된 텃밭 농산물은 일부만 팔수 있고, 팔더라도 기준가격이 정해질 정도로 까다로운 편이다.

이러한 규칙이 제대로 지켜질지, 혹은 이 규칙을 어긴다고 누가 살피고 범칙금을 부과할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러했다

 

한국에선 보통 도심의 남는 공간이 주차공간으로 빽빽하게 매워지는데 독일은 시를 계획할 때 시유지나 주정부 공유지 일부를

클라인가르텐 공간으로 구성하는데 보통 주거지에서 걸어서 20분을 넘지 않는다고 한다.

시외곽에 있어서 한참을 차를 타고 가서 주말동안 반짝 농사짓는 우리와는 차이가 있다.

30만원 정도의 회비를 내고 임대를 하는데 연금생활자와 아이를 포함한 가족이 많이 분양을 받고 있다.

아이 딸린 가족과 이민자에게 우선권이 부여되는 것도 특이하다.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카를슈헤 클라인가르텐을 둘러보았는데 오후 시간임에도 다들 웃통을 벗고

열심히 정원, 텃밭관리를 하고 있었다. 다리가 불편하여 휠체어를 탄 노인부부 정원을 방문했는데

휠체어를 타고도 정원관리가 가능하도록 정원을 돌로 높여서 만든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90평의 공간이 적다면 적고 크다면 큰 공간인데 빈틈이 없이 아기자기하게 만든 모습이 정원사를 능가하는 수준이었다.


<휠체어를 탄 노부부. 정원이 너무나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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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정원은 꽃과 나무가 많았고 또 어떤 정원은 농작물이 두드러져 보였다.

아이들 놀이 공간도 보였지만 대개는 은퇴한 노인들이 많았고 어떤 정원은 관리가 잘 안되어 풀이 자란 곳도 있었다.

협회에서는 매년 정원관리가 잘 되고 있는지를 확인하여 잘 안 되는 곳은 계약을 해지하고

우선순위에 따라 미리 예약된 회원에게 재분양 한다.


<공원에서 하릴없이 시간을 때우는 우리 할아버지들에게 작은 정원을 분양해드리는건 어떨까?>

DSC_0928.JPG


보통 1단지에 약 100개 정도의 정원이 있는듯한데 다른 국적(?)의 정원도 보였다.

텃밭에 심는 작물이 무엇인지를 보고 어떤 나라 출신인지 알 수 있다고 하는데

이태리 정원은 물을 받아놓은 물뿌리개가 인상적이었다.

설명을 들으니 이태리에서는 직수를 밭에 바로 뿌리는 게 아니라 상온에 맞춰진 미지근한 물로 농작물을 관리한다고.

 

도심 곳곳에 벌이 있고 도마뱀이 있으며 다양한 동물과 식물이 살아있는 공간,

클라인가르텐은 정원을 구경하는 사람들에게 큰 즐거움을 줄 뿐 아니라 생물다양성에도 큰 도움이 될듯하다.

아이들이 교과서에서 혹은 동화책에서, 시장에서 깨끗한 당근을 보게 되는데

독일에서는 클라인가르텐에서 아빠와 아이들이 직접 당근을 심고 큰 줄기와 잎을 보며 키운 다음

이를 직접 수확한다. 자전거를 타고 쉽게 갈 수 있는 거리의 정원에서 이웃과 함께 하는 저녁은 얼마나 꿀맛일까.


<웃통을 벗고 일하다보면 자연스레 이웃집과 친해지기 마련이다. 외국에서 이주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관계없다>

DSC_0947.JPG



아이들에게 신나게 놀고 운동할 공간을 마련해주는 것이 평생의 염원이었던 슈레버 의학 박사,

그의 꿈이 현실화되면서 독일인들은 더욱 건강해지고 사회구성원의 관계는 긴밀해졌다.


작은 정원이 독일을 정원국가로 만드는데 큰 역할을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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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창욱
세 가지 꿈 중 하나를 이루기 위해 아내를 설득, 제주에 이주한 뽀뇨아빠. 경상도 남자와 전라도 여자가 만든 작품인 뽀뇨, 하나와 알콩달콩 살면서 언젠가 가족끼리 세계여행을 하는 소박한 꿈을 갖고 있다. 현재 제주의 농촌 마을에서 '무릉외갓집'을 운영하며 저서로 '제주에서 아이를 키운다는 것', '제주, 살아보니 어때?'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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