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28일. 예정일은 분명 금요일이었다.
출산은 다가오는데 소식이 없다는 아내말을 듣고 예정일보다 하루 지난 토요일에 전주로 향했다.
혹시나 금요일 밤에 아이를 낳는 것은 아닐까 걱정을 하며 비행기를 탔다.
“아빠가 올 때까지 세상에 나오지 않겠다는 하나. 아빠가 간다, 기다려!”
토요일 도착하여 오늘 낳을까 내일 낳을까 하고 산만큼이나 부른 아내의 배를 만졌다.
태동이 덜 느껴지고 배가 뭉쳐서 진통이 온다고 하는데 아빠를 알기나 하는건지 손을 배위에 가져다 대면
뱃속에서 몸을 움직이며 난리가 났다.
미리 준비를 하는 것이 좋을듯하여 베이비트리앱의 동영상을 차례로 감상하며
직접 아내와 체조도 하고 맛사지도 했다.
‘진통이 오면 이렇게 감소시켜야지’하며 반복하며 보았다.
예정일이 4일이나 지난 월요일, 마음이 바빠지기 시작했다.
출산시기는 다가오는듯한데 아내에게 물어보면 아무런 진통도 없다고 한다.
어찌된 일일까.
가만히 있으면 안되겠다 싶어서 ‘베이비트리 앱’의 마사지와 체조들을 한번씩 다 돌려보고
부부끼리 한다는 ‘허리 흔들기 춤(살짝 귀여우면서도 부끄러운 춤)’까지 했는데 도대체 신호가 오질 않는다.
화요일, 아이가 오지 않으면 찾기로 되어있었던 산부인과로 갔다.
장인어른과 나와 아내가 탄 차는 정적이 흘렀다.
마음이 너무나 무거웠다.
내가 아이 낳는 것도 아닌데 속이 꽉 막히고 마음이 떨린다.
첫째 낳을 때도 이랬는데..
무슨 죄라도 지은 사람같이 의사선생님 앞에서 이야기를 들었다.
“엄마는 준비가 되었는데 아직 아이가 나올 생각을 하지 않네요.
시동만 걸리면 금방 나올텐데. 보통 1주일 정도는 늦게 나오기도 합니다만
7일을 넘기면 좋지 않을 수도 있으니 내일 밤에 입원하는 것으로 합시다.
모레 새벽에 유도분만을 하는게 좋을듯 싶습니다”,
“네”하고 나왔는데 아내나 나나 기분이 좋지 않았다.
‘아이가 나올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데 억지로 나오도록 하는 것이 과연 올바른 선택일까’라는 생각과
‘1주일을 넘기면 아이건강에 안 좋을수 있다’라는 의학적 소견이 머릿속에 심하게 싸우고 있었다.
아내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아이가 나와야겠다고 생각이 되도록 열심히 운동하는 방법밖에는 없었다.
처음엔 아내 혼자서 열심히 걸었는데 나라도 아내 옆에서 말동무가 되어주고 싶어서 함께 걸었다.
다음날 하루종일 함께 걸으며 “열심히 운동했으니까 내일이면 신호가 오지 않을까 싶어요”라고 이야기를 했고
나는 잠을 자는 아내의 부풀어오른 배와 그 속에서 요동치듯이 운동을 하고 있는 아이를 한참을 지켜보곤 잠이 들었다.
“수미씨, 어때요. 오늘은?”
혹시 진통이 오는게 아닌가 하고 일어나자마자 물어보았으나
“진통이 하나도 없어요”라고 아내가 대답했다.
유도분만을 하지 않기로 결심하고 첫날은 하루 종일 걷고 이것도 부족하여
무릎에 무리가 갈 수 있는 아파트 계단까지 오르내렸으나 소식은 없었다.
입원을 하지 않고 운동을 선택한 다음날부터,
아내와 나는 언제쯤 아이를 만날 수 있을까하고 조금씩 지쳐가고 있었다.
입원을 했다면 목요일쯤 아이를 만날 수 있었을텐데 시간은 점점 흘러가고
나 또한 제주로 가야할 날이 며칠 남지 않았다.
아이도 못보고 제주로 가야할 수도 있는 남편을 보고
아내는 “뱃속의 아이가 원망스러워요”라고 얘길했다.
충분히 공감하면서도 열심히 함께 운동하고 자고 일어나면 아무런 통증이 없다는 아내가 원망스럽기까지 했다.
거의 마지노선까지 온 상황.
배는 전혀 아프질 않고 나는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는 금요일이 온 것이다.
‘내일이 지나면 이제 가야한다.’
아이가 예정일보다 7일이 지났는데 아무 소식이 없고
아빠는 멀리 제주에 가야하고
아내는 남편없이 아이를 낳을 수도 있는 절박한 상황.
어떻게 해야할까?
우선 병원을 찾아가 현재 상황을 정확히 보기로 했다.
“예정일보다 시간이 지나서 아이가 안 좋을수가 있어요.
오늘 밤 11시에 입원해서 내일 출산하는 것으로 합시다”.
1주일이나 지난 상황이라 더 이상은 미루기 어려웠다.
결국 아내와 병원을 나서며 향후 1년간 함께 보기 힘든 영화를 보러 가기로 했다.
마침 가족영화인 ‘우아한 거짓말’을 대낮에 눈물을 흘리며 보고는
며칠째 이어지고 있는 진짜 만찬을 즐겼다.
드디어 입원의 시간.
밤 11시 정각, 분만실에 누워 아이 심장박동수와 진통체크를 하는데
진통이 주기적으로 나타나는게 아닌가.
“수미, 5분마다 진통이 오네요.
지금 수치가 조금씩 올라갔다고 내려오고 하는데..
몇 정도 되어야 아기 낳는거에요?”,
“뽀뇨 낳을때 보니까 진통이 10이 되어야 한다고 하더라구요. 지금 1이죠?”
당직의사가 와서 내진을 하는데 자궁문이 3센치 정도 열렸다고.
와!
아이를 억지로라도 나오게 하려고 병원에 왔는데
어떻게 알고 아이도 열심히 세상을 나오려 노력하고 있었다.
우린 둘다 “정말 다행이에요”라고 이야기를 했다.
밤새 잠이 오질 않아 여러 가지 자료를 찾아보니
분만을 촉진하는 두가지 자연적인 방법이 눈에 띄어 읽어보았다.
‘가슴마사지’와 ‘남편의 *액’.
이제껏 안보이더니 출산하러 와서 방법이 눈에 들어오는게 뭐람.
잠시 눈을 부치고 약속된 시간 새벽 3시가 왔다.
다시 크로스 체크를 잠시하고 링겔을 맞았다.
아내와 이야기하고 음악도 함께 듣고 졸기도 한지 5시간 정도 되었을까?
서서히 진통이 온다는 아내. 아침이 되니 수간호사인듯한 분이 오시더니 내진도 하고
아내 몸을 주물러주기도 하고 본격적인 준비에 들어갔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내옆에서 평정심을 가지고 함께 심호흡을 하며 지켜주는 일.
옆에서 아내의 땀에 젖은 손을 수건으로 닦아주고 어깨도 주물러 주고 손바닥의 혈도 짚어주었다.
30분 정도 흘렀을까?
진통 주기가 빨라지고 진통이 올 때 들이마신 숨을 멈추고 힘을 주는 것을 반복했다.
아내의 얼굴이 찌푸려지며 울상이 되는데 나는 옆에서 “수미, 조금만 힘내세요”라고 하며
목뒤에 베개를 바쳐주는 일밖에 할 수 없었다.
아내가 죽을 힘을 다해 아이를 낳을 때 그 표정을 보고
나는 아내가 그 동안 살아오며 힘들었던 모습이 비치는 듯해서 순간 눈물이 핑돌았다.
그런 순간도 잠시 이제 아이를 낳는 마지막 절정으로 가고 있었다.
아내가 힘에 부치는지 입이 조금씩 벌어지면서 “힘을 못주겠어요”라고 울먹여서
“수미, 입을 다물어야 힘을 줄 수 있어요”, “심호흡을 해야 해요. 코로 빨아들이고 입으로 내쉬어야 해요.”,
간호사는 “이제 두 번만 더 하면 끝나요”.
정말 두 번이면 끝이 날까라고 했는데 아이의 까만 머리가 보이기 시작했고
드디어 큰 울음소리를 들었다.
“이제 나왔구나”.
감격에 젖을 시간도 없이 배꼽을 자르게 하고 아기 바구니에 놓고선 사진을 찍으라고 해서
조금 당황스러웠다.
곧 엄마품에 올려진 아이, 깨끗이 씻고는 엄마젖을 빨수 있도록 가슴에 안겼다.
아직 엄마젖을 몰라서 입술에만 대고 있는 아이에게 젖을 물렸다.
간호사가 나가면서 “아빠를 똑 닮았네요”라고 하는데 기분이 묘하다.
제주에서 첫째를 낳을 때는 병원에와 진통도 누구 도움없이 아내 혼자서 하고
출산후에는 우리 세 식구가 병실에 남겨져 밤새 우는 아이를 어쩔줄 몰라했는데
둘째를 낳을 때가 되니 아이 낳는데 한결 여유가 생기고 밤에는 아이와 격리되어
산후에 아내가 편히 쉴수 있었다.
거기다 처가에서 아내를 잘 보살펴 줄 것이기에 여러모로 안심이 된다.
장인어른께 “아버님, 어머님이 계셔서 정말 다행입니다”라고 감사인사를 올렸다.
아내와 8일동안 함께 운동하고 이야기하고 맛있는 것을 먹고 아이를 낳았다.
아이를 낳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가를 첫째때도, 둘째때도 가까이에서 느낄 수 있었다.
아내 곁을 지켜줄 수 있는 남편이 되어, 아이곁을 지켜줄 수 있는 아빠가 되어 너무 고맙다.
이제 우리 네 가족이 더 행복하게 살아가는 일만 남았다.
<동생을 처음 본 뽀뇨는 어떤 느낌일까?>
<둘째 하나의 윙크 ^^>
*그 동안 뽀뇨네 가족을 응원해주신 독자분들께 너무 감사합니다.
하나가 건강하게 잘 태어났구요. 뽀뇨의 책도 함께 나왔답니다.
저와 아내가 뽀뇨를 키운 소중한 기록이어서 여러분들이 재미있게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